글모음/그림이야기

두 작품 속의 어린이들

James Chae 2011. 9. 3. 16:28

 

 

 

두 작품 속의 어린이들

 

 

채창완

 

 

유럽미술에서 바로크시대 이전에는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그림을 찾아보기 힘들다.  그림에 등장하는 아이는 대부분이 아기 예수 천사또는 큐피드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종교적인 이유도 있었겠지만 당시로서는 막대한 비용이 드는 그림제작에 어린이만을 주제로 그림을 그린다는 것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중세 이후 미술의 가장 큰 후원자가 교회에서 부르주아지로 넘어가면서 이러한 현상은 점차 변화된다. 우리는 예술의 주제와 표현에 다양성을 확보했던 바로크시대의 작품들을 통해 어린이들을 주제로 한 작품들을 접하게 된다. 네덜란드의 얀 스텐(Jan Steen, 1625/6~1679)과 스페인 출신의 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1599~1660)의 작품들이 그것이다.

 

 

 

 

그림1_얀 스텐(Jan Steen). '성 니콜라스 축제'. c.1660-65. 켄버스에 유채, 82x70.5cm. 암스테르담

 

 

 

얀 스텐의 성 니콜라스 축제라는 작품은 한 중산층 가정의 단란한 모습을 통해 일상의 한 장면을 보여주고 있다. 서민들의 생활상을 담은 풍속화를 주로 그린 작가는 특히 어린아이들의 천진난만한 표정과 심리를 작품에 담아내는 데 탁월한 솜씨를 보였다. 산타할아버지의 기원이 되는 성 니콜라스는 어린이들의 수호성인이다.  착한 아이들에게는 선물을, 나쁜 짓을 많이 한 아이들에게는 회초리를 선물한다는 설정이 이 그림의 테마를 이루고 있다. 좌측에 울고 있는 아이는 이 가정의 큰아이로 여겨지는데, 그림 중앙에 회초리를 들고 우는 형을 놀리는 동생이 이 그림의 중심 주제를 드러내 준다. 한 해 동안 나쁜 짓을 많이 한 형에게 산타클로스가 회초리를 선물했다고 놀리는 모양이다. 한편 그림 뒤편에서 커튼 뒤를 손짓하며 웃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우는 아이를 위한 진짜 선물이 그 뒤에 숨겨져 있다는 사실이 암시되어 있다. 그의 그림은 해학적이며 서민적이어서 중세미술이나 르네상스 미술이 보여주던 종교적이고 절제된 엄숙함은 전혀 찾아보기 힘들다. 300년의 시간적 간격을 넘어 현대를 사는 우리의 아이들에게서도 느껴지는 것과 같은 천진난만함과 자유로움이 물씬 풍겨나는 작품이다. ‘동심으로 대변되는 어린아이들의 익살스러움과 순진함은 예나 지금이나 결코 변함이 없는 것 같다.

 

 

 

 

 그림2_디에고 벨라스케스(Diego Velázquez). '궁중의 시녀들'. 켄버스에 유채, 320x270cm. 마드리드

 

 

비슷한 시기에 그려진 어린이를 주제로 한 또 다른 그림은 얀 스텐의 것과는 매우 대조적이다. 스페인의 대표 작가 디에고 벨라스케스의  궁정의 시녀들로 알려진 작품 속의 어린 아이는 귀엽지만 귀족답게 엄숙하고 어른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점이 스텐의 작품과 대조적이다. 국왕 부부의 초상화를 그리고 있는 벨라스케스 자신이 그림의 좌측 면에 있고 그의 모델이 되고 있는 국왕 부부는 그림을 보고 있는 우리와 같은 위치인 그림 밖에 설정되어 있다. 그들의 모습은 뒷면에 보이는 거울 속에 비춰져 있다. 그림의 모델이 되고 있는 국왕 부부의 지루함을 달래듯 귀여운 공주가 시녀들을 거느리고 화가가 작업하고 있는 작업실에 찾아와 자신의 부모에게 인사를 하는 장면을 그림은 보여준다. 어린 여자아이들이 좋아할 법한 드레스를 입고 있는 인형 같은 공주의 모습은 얀 스텐의 아이들의 얼굴에서 볼 수 있는 천진함과는 달리 무표정하다. 이는 공주의 주변에 있는 시녀들과 광대들의 모습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린아이들의 장난기가 드러나는 것은 그림 오른편에 있는 광대아이가 공주의 소유로 보이는 개를 발로 툭 차는 모습에 국한 되어 있다. 그 만큼 이 그림에서는 귀족적인 품위와 예의를 아이들의 동심보다 우위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마치 장난과 어린아이다운 동심은 귀족에게 속한 것이 아니라 광대들에게 속한 것인 양 그림은 전반적으로 어린아이들의 동심을 광대라는 존재에 투영하여 표현하고 있다.

 

300여 년 전에 존재했던 어린아이들의 모습을 오늘날에도 생생하게 볼 수 있다는 점에서 두 작가들에게 감사하다. 귀족다운 화려함과 엄숙함, 절제 그리고 천진난만한 동심과 장난스러운 익살이 어린 아이들에게 모두 가능한 성품임을 작품을 통해 엿볼 수 있다. ‘벨라스케스의 어린이얀 스텐의 어린이는 환경과 자신의 삶의 배경에 따라 아이들이 어떻게 다르게 보이는지 잘 보여준다. 중요한 것은 그 만큼 우리 아이들은 어른들이 만들어 놓은 환경에 따라 천차만별 달라질 수 있다는 점이다. 어떤 부모는 벨라스케스의 어린이처럼, 또는 어떤 부모는 얀 스텐의 어린이처럼 자신의 아이가 자라주길 바랄 것이다. 어떤 것이든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이해심 있게 수용해 주는 어른들의 자세가 아닐까 생각한다.

 

 

어린이들이 내게로 오는 것을 허락하고, 막지 말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이런 사람의 것이다.” [ 1816]

  

 

'글모음 > 그림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형과 색으로 본 미술 (1)  (0) 2011.09.03
마을과 풍속화  (0) 2011.09.03
죽음과 부활  (0) 2011.09.03
사이_시공간의 미학적 의미  (0) 2011.09.03
예술계와 예술작품  (0) 2011.09.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