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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도 제대로 못 보는…”

James Chae 2023. 3. 19. 07:42

 

2023. 3.19.가해_사순4주일(장미주일)

사무상 16:1-13 / 시편 23 / 에페 5:8-14 / 요한 9:1-41

 

보고도 제대로 보는…”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작년에도확증 편향이란 주제로 설교를 했던 것이 기억납니다. 확증 편향은자신의 가치관, 신념, 판단 따위와 부합하는 정보에만 주목하고 외의 것은 무시하는 사고방식입니다. 마디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보고, 자기가 듣고 싶은 것만 듣는 것입니다. 이런 편향성은 우리의 세계관이나 지식, 그리고 사람들의 관계에 치명적인 오류를 가져옵니다. 특히 요즘 인터넷 유튜브나 검색 엔진들은 모두 이러한 편향성을 부추기는 한몫을 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유튜브의 검색 알고리즘은 자신이 자주 검색하고 찾는 주제와 관련된 것만을 모아서 계속 추천해 주는 기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유튜브를 처음 하시는 분이나 이러한 알고리즘을 모르시는 분이 유튜브를 경우 편향성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매우 높습니다. 특히 정치적인 성향은 치명적인 독이 됩니다. 만약 보수적인 성향이나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이 그러한 성향의 유튜브를 보면 그런 알고리즘이 작동되어 추천 동영상들이 모두 자신이 원하는 성향의 동영상들만 올라오게 됩니다. 자신과 반대되는 정치 성향의 동영상은 전혀 자신의 채널에 추천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 것을 보다 보면 세상이 모두 자신의 생각과 같다는 착각에 빠지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자신도 모르게 다양한 생각을 하지 못하게 되고 점점 자신이 믿고자 하는 것만 보게 됩니다. 세상을 지극히 좁게 보며 살아가는 것이지요. 우리나라 정치 성향이 요즘 들어 좌우진영으로 극단적으로 분열되는 현상은 분명 이러한 인터넷의 알고리즘과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 알고 싶은 것을 말해주는 사람을 좋아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요한 9:39

 

 

오늘 이야기는 요한복음 전반부에 배치된 7가지 이적 사화 6번째 기적 사화입니다. 사화들은예수의 신원 드러내는 표징을 가지씩 소개합니다. 오늘 시각장애인의 눈을 뜨게 기적은 예수의 정체가세상의 이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예수를 통해서만 제대로 우리가 있다는 뜻입니다. 태어나면서 눈먼 사람은 평생 빛을 제대로 없습니다. 그러나 눈은 성한데도 제대로 빛을 보지 못하는 다른 무리가 있습니다. 바로 유다인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그분이 오신 이유는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가려내는 입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누가 진짜 시각장애인인지 판명이 납니다. 본다는 사람은 보는 사람이 되고, 보는 사람이 이제 보는 사람이 됩니다. 이러한 전복은 오직세상의 이신 예수로 말미암아 가능해진 것입니다. ‘세상의 이라는 예수의 신원은 오늘 읽은 복음서에 앞서 요한복음 8 12절에서 이미 선포 됐습니다. “ Ἐγώ εἰμι τὸ φῶς τοῦ κόσμου 나는 세상의 빛이다.” 헬라어 ‘φῶς 포스 물리적이상입니다. 그것은빛의 원인, 빛의 근원입니다. 예수님을 통해 빛의 근원인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난 것입니다. 8장에서 이렇게으로서의 예수의 신원을 밝혔으니 요한복음 사가는 오늘 읽은 9장에서 실제로 눈먼 사람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이적 사화를 배치함으로 주제를 더욱 명확하게 합니다. 육신의 눈이 사람이 눈먼 사람이 아니라 본다고 자신하는 사람이, 자기가 보고 싶은 , 아는 것만 보는 사람이 , 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이 진짜 눈먼 사람임을 말합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 우리는 모두 본다고 생각하지만, 과연 우리는 제대로 보고 있는 것일까요? 그림을 가르쳐보면 사물을 묘사하고 못하고는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제대로 보지 못해서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우리는 심지어 자기의 얼굴조차도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그래서 사진을 찍고 나면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의 사진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자기가 보고 싶은 대로, 자기가 기억하는 자기의 모습을 기대합니다. 대부분의증명사진 그러한 주관적인 것을 모두 제거하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과 다르게 사진이 찍힙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신의 증명사진을 싫어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한층 아름답게 꾸며주고 자신의 부족한 부분을 교정해 주는 어플들을 좋아하는 이유입니다. 그것이 자신의 진짜 모습이 아니라는 것은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의 실제 모습을 대하는 데는 엄청난 용기가 필요한 법입니다. 그러니 '세상의 우리는 부담스럽습니다. ‘주님의 으로 우리 자신을 비추면 우리의 모든 본모습이 가운데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인정하기 싫어해도 주님 앞에 드러난 바로 우리 본모습입니다. 증명사진처럼 밋밋한 자신이 결국은 우리입니다. 그러니 주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숨길 것이 없습니다. 

 

유다인들은 인간의 고통은 그만한 죄에 대한 결과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죽을병에 걸렸다는 것은 죽을죄를 지었다는 논리입니다. 정도니 나면서부터 앞을 보는 사람은 죄가 어떻겠습니까?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라고 말하며 시각장애인 회당에서 쫓아냈습니다. 무서운 편견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예레 31:29-35) 에제키엘 선지자(에제 18:1-4) 시대부터 부모의 죄를 보속 하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예레미야는죽을 사람은 죄지은 사람이다.”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유다인들은 끊임없이 그러한 편견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그러한 편견이 있으니 당시의 장애인들의 처지가 어떠했을지 우리는 짐작할 있습니다. 그들은 장애인들에 대한 편견을 자신들의 의로움을 돋보이게 하는 이용했습니다. 자신들은 성하므로 죄인이 아니라는 의미로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죄인이 눈을 떴으니 그들은 딜레마에 빠지고 맙니다. 때문에 눈이 멀었던 사람인데 시각장애인이 눈을 뜬다는 것은 결국 그가 사함을 받았음을 뜻하기 때문입니다. 자신들의 율법으로 인해 확증 편향에 빠진 유다인들은 결국 자가당착에 이릅니다. 그러니 안식일 규정을 들고 나와서 역으로 예수까지도 안식일을 지키지 않았으니 죄인이라는 논리를 전개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죄를 뒤집어 씌워도 눈먼 자가 눈을 사실을 덮을 수는 없었습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예수께서는 민간요법 치료처럼 침으로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셨습니다. 이러한 치료행위가 안식일을 어긴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고 시각장애인에게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 명령한 것도 안식일 규정 위반입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기자가 이러한 민간요법 치료방법을 생생하게 묘사한 이유는 그러한 치료법에 효용이 있어서라기보다, 주님께서 적극적으로 치료에 임하셨음을 상기시키기 위함입니다. 눈먼 사람이 눈을 사실을 인정할 없었던 유다인들은 트집을 잡을 도리밖에 없었을 겁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사건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예수와 시각장애인을 모두 죄인으로 보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과 반대로 시각장애인은 그러한 확증 편향이 전혀 없었습니다. 끊임없이 시각장애인의 치료를 믿지 못하고 의심하는 유다인들을 향해 그는 자신이 경험한 것을 사실대로 진술하는 밖에는 하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사족이나 편견도 들어있지 않습니다. 그는 단지 보고 느낀 대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앞 못 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잘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요한 9:25

 

 

유다인들의 편견대로 그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그가 치료받았다는 사실, 그가 죄를 용서받았다는 사실 또한 믿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보지 못하는 사람이었는데 이제 보게 되었다는 사실만을 확증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지만, 자신을 고쳐주신 분이 누구인지는 처음에 몰랐습니다. 다만 하느님께서 죄인의 청을 들어주시지 않으신다는 사실은 분명히 알았습니다. 심지어 유다인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오늘 이야기에서 번에 걸쳐 똑같은 질문을 시각장애인에게 했습니다. 사람의 증언이 옳다 하여 그의 부모까지 데려와 물었는데 부모는 책임을 회피합니다. 그들은 확증 편향에 빠져 도저히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디로 보고도 믿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한 것입니다. 이런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들은 눈앞에서 죽었던 사람이 살아나도 절대로 믿지 못하는 법입니다. 확증 편향의 무서움은 그러한 것입니다.

 

최근 논란이 넷플릭스의나는 신이다라는 다큐멘터리 시리즈에서 다룬 내용도 이러한 확증편향과 관계됩니다. 마치가스라이팅당하듯이 끊임없는 반복을 통한 세뇌는 인간의 이성과 감성까지도 마비시킵니다. 종교가 사람을 세뇌시키는 수단이 있음에 두려운 생각마저 듭니다. 또한 이에 못지않은 나치의 선동가 괴벨스가 무서운 것은 그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드러납니다. “거짓말도 번을 하면 진실이 된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는 고사성어처럼 사람이 우기면 호랑이도 만드는 입니다. 이러한 사실을 이용할 알았던 괴벨스는 때론 거짓말로, 때론 사실과 거짓을 교묘하게 섞어서 사람들을 선동했습니다. 결과 우리는 인류의 가장 처참한 악의 모습을 2 세계대전 봤습니다. 사이비 교주들이나 괴벨스를 보며 느끼는 것은 그들이 정말 사탄의 자식들이란 생각을 지울 수가 없습니다. 계속된 반복은 세뇌의 기본이고, 이는 결국 확증 편향으로 이어지게 마련입니다. 그러한 편향성에 빠지는 사람들도 문제이지만, 그것을 악용하는 무리들이 문제입니다. 여기에 우리 인간 의식과 자유 의지의 한계가 있습니다. 사탄은 그러한 약점을 교묘하게 이용할 압니다. 확증 편향에 빠진 사람은 제대로 보지도, 제대로 듣지도 못하지만, 자신은 확실하게 알고, 확실하게 보고, 확실하게 인식한다고 확신합니다. 그래서 그것은 일종의 정신증입니다. 심하면 망상증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의 특징은 다른 사람들의 말에 기울이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타자의 말은 듣는 척할 제대로 듣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사람들은 자신의 말만 하고 싶어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러한 성향을 가지고 있는 같습니다. 우리의 편향성은 더욱 강한 확증 편향을 가진 사람에게 오히려 흡수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유다인을 적으로 상정하고 반대편에 아리안족의 위대함을 강조하면서 위기에 처한 독일을 좌익과 우익 없이 하나로 결속시킨 것은 괴벨스의 교묘함이었습니다. 그는 유다인에 대한 혐오와 증오를 자기 민족의 일치의 수단으로 어떻게 사용하는지 알았습니다. 사람들은 사람을 왕따로 만들어 그에게 혐오와 증오를 집중하면 오히려 다른 사람들이 하나가 되는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자신이왕따 같은 처지에 놓이지 않기 위해 다른 사람들은 더욱 결속하게 마련입니다. 아벨을 향한 카인의 증오와 혐오도 아마 이러한 것일 겁니다. 그는 심지어 하느님 앞에서도 화를 냈다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혐오와 증오에서 우리를 자유하게 하는 것은 오직 타자에 대한 이해와 공감 그리고 사랑뿐입니다. 내가 아는 , 내가 보는 것이 중요한 만큼 타자의 시선, 타자의 의견, 타자와의 공감 또한 매우 중요합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데는 그것이 민주주의이든, 민족주의이든, 우리 기독교이든 절대로 정당화될 없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모든 것이 하느님 앞에 가증한 것입니다.

 

주님께서 그의 눈에 바른 진흙과 그의 눈을 씻은 실로암 물은 사실 그의 눈이 치료되는 것과 하등 관계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요단강에 가서 몸을 씻으라는엘리사 명령에나아만 장군 순종했던 것처럼(열왕하 5: 9-14) 시각장애인도 주님의 말씀에 순종한 것뿐입니다. 치료는 결국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여 이뤄진 것이지 결코 진흙이나 실로암 물이 아닙니다. 치료는 하느님의 말씀이고, 이에 순종하는 우리의 반응의 결과입니다. 이것이 믿음이 작동되는 방식입니다. 확증 편향은 아무리 좋게 포장을 해도 기독교가 말하는 믿음과는 거리가 멉니다. 우리 기독교가 희생과 사랑 위에 있지 않다면, 우리 또한 그러한 확증 편향의 오류에 빠질 위험이 언제나 존재합니다. 이것이 종교가 가진 맹점이고 우리 인간의 나약함입니다. 아무리 인간이 자유의지를 주장하고, 생각하는 존재로서 자기 자신의 우월성을 주장하지만, 우리 모두는 이러한 확증 편향에 빠질 있는 연약한 사람임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영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그분의 빛으로 본질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세상의 이신그리스도의 비추면 모든 거짓된 것은 사라지고 오늘 시각장애인이 눈을 것처럼 제대로 있게 됩니다. 선입견, 편견, 확증 편향의 오류에서 벗어나 밝은주님의 통해 우리 모습을 제대로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한 사순절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의 영적 성장은 철저히 하느님 앞에 외롭게 서는단독자에서부터 시작됨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모두에게 주님의 은총을 빕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성서정과_사순4 (가해)

 

본기도

진리의 하느님,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주님의 의로움을 있도록 우리 눈을 열어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빛의 자녀로 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만 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무상 16:1-13

1 야훼께서 사무엘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사울을 이스라엘 왕의 자리에서 파면시켰다고 해서 너는 언제까지 이렇게 슬퍼만 하고 있을 셈이냐? 기름을 뿔에 채워가지고 길을 떠나거라. 내가 너를 베들레헴에 사는 이새라는 사람에게로 보낸다. 그의 아들 가운데서 내가 왕으로 세울 사람을 하나 보아두었다.” 2 사무엘이사울이 알면 저를 죽일 텐데 어떻게 갑니까?” 하고 여쭙자 야훼께서는, “암송아지 마리를 끌고 가거라.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왔다고 하면서 3 이새를 제사에 초청하여라. 그러면 네가 일을 내가 알려주리라. 너는 내가 지적하여 일러주는 자에게 기름을 부어 그를 성별시켜 나에게 바쳐라.” 하고 이르셨다. 4 사무엘은 야훼께서 이르시는 대로 하였다. 그가 베들레헴에 다다르자 성읍의 장로들은 안절부절못하고 그를 맞으며언짢은 일로 오신 것은 아니 겠지요?” 하고 물었다. 5아니오. 좋은 일로 왔소. 야훼께 제사를 드리러 것이오. 그러니 모두들 목욕재계하고 함께 제사 드리러 갑시다.” 이렇게 일러놓고 사무엘은 이새와 그의 아들들을 목욕재계시킨 다음 제사에 나오라고 초청하였다. 6 그들이 나타나자 사무엘은 엘리압을 보고 속으로바로 여기 야훼께서 기름 부어 성별하실 자가 있구나.” 하고 생각하였다. 7 그러나 야훼께서는 사무엘에게용모나 신장을 보지는 마라. 그는 이미 밖에 났다. 하느님은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겉모양을 보지만 야훼는 속마음을 들여다본다.” 하고 이르셨다. 8 다음으로 이새는 아비나답을 불러 사무엘 앞에 나와 서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들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오.” 하고 말하였다. 9 이새가 다시 삼마를 보여드렸지만, 사무엘은 그도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아니라고 하였다. 10 이렇게 이새가 아들 일곱을 사무엘 앞에 나와 뵙게 하였다. 그러나 사무엘은 아들 가운데는 야훼께서 뽑으신 아들이 없소.” 하고 11 이새에게 밖에 아들은 없느냐고 물었다. 이새가막내가 있긴 하지만 지금 양을 치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사무엘이 이새에게사람을 보내 데려오시오. 그가 때까지 우리는 식탁에 앉을 수가 없소.” 하고 일렀다. 12 이새가 사람을 보내어 데려온 그는 볼이 붉고 눈이 반짝이는 잘생긴 아이였다. 야훼께서 말씀을 내리셨다. “바로 아이다. 어서 아이에게 기름을 부어라.” 13 그리하여 사무엘은 기름 채운 뿔을 집어 들고 형들이 보는 앞에서 그에게 기름을 부었다. 그러자 야훼의 영이 다윗에게 내려 날부터 줄곧 그에게 머물러 있었다. 사무엘은 길을 떠나 라마로 갔다.

 

 

 

 

성시_시편 23

1    주님은 나의 목자시니
.     아쉬울 없어라.
2    푸른 풀밭에 놀게 하시고
.     물가로 이끌어 쉬게 하시니
3    지쳤던 몸에 생기가 넘친다.
.     이름 목자이시니
.     인도하시는 , 언제나 곧은 길이요,
4     비록 음산한 죽음의 골짜기를 지날지라도
.     곁에 주님 계시오니 무서울 없어라
.     당신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     인도하시니 걱정할 없어라.
5    원수들 보는 앞에서 상을 차려 주시고,
.     기름 부어 머리에 발라주시니,
.     잔이 넘치옵니다.
6    한평생 은총과 복에 겨워 사는 ,
.     영원히 주님 집에 거하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5:8-14

8 여러분이 전에는 어둠의 세계에서 살았지만 지금은 주님을 믿고 빛의 세계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니 빛의 자녀답게 살아야 합니다. 9 빛은 모든 선과 정의와 진실을 열매 맺습니다. 10 주님을 기쁘게 하여드리는 일이 무엇인지를 가려내십시오. 11 그래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어둠의 행위에 끼여들지 말고 오히려 그런 일을 폭로하십시오. 12 사람들은 그런 일들을 숨어서 하는데 그것들은 말하기조차 부끄러운 일들입니다. 13 모든 것은 폭로되면 빛을 받아 드러나고 14 빛을 받아 드러나면 빛의 세계에 속하게 됩니다.
.   “
잠에서 깨어나라.
.    
죽음에서 일어나라.
.    
그리스도께서 너에게 빛을 비추어주시리라.”
.    
이사 26:19, 51:17, 52:1, 60:1
말씀이 뜻입니다.

 

 

 

 

복음서_요한 9:1-41

1 예수께서 길을 가시다가 태어나면서부터 시각장애인을 만나셨는데 2 제자들이 예수께선생님, 사람이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것은 누구의 죄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 하고 물었다. 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자기 탓도 아니고 부모의 탓도 아니다. 다만 사람에게서 하느님의 놀라운 일을 드러내기 위한 것이다. 4 우리는 해가 있는 동안에 나를 보내신 분의 일을 해야 한다. 이제 밤이 터인데 때는 아무도 일을 수가 없다. 5 내가 세상에 있는 동안은 내가 세상의 빛이다.”
6 말씀을 하시고 예수께서는 땅에 침을 뱉어 흙을 개어서 시각장애인의 눈에 바르신 다음, 7실로암 연못으로 가서 씻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실로암은파견 라는 뜻이다.) 그는 가서 얼굴을 씻고 눈이 밝아져서 돌아왔다.
8 그의 이웃 사람들과 그가 전에 거지 노릇을 하고 있던 것을 보아온 사람들은 사람은 앉아서 구걸하던 사람이 아닌가?” 하고 말하였다. 9 어떤 이들은 바로 사람이라고 하였고, 어떤 이들은 사람을 닮기는 했지만 사람은 아니라고도 하였다. 눈을 뜨게 사람이내가 바로 사람이오.” 하고 말하였다. 10 사람들이그러면 당신은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묻자 11 그는예수라는 분이 진흙을 개어 눈에 바르시고 나더러 실로암에 가서 씻으라고 하시기에 가서 씻었더니 눈이 띄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2 그들이 사람이 어디 있소?” 하고 물었으나 그는 모른다고 대답하였다.
13 사람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데리고 갔다. 14 그런데 예수께서 진흙을 개어 그의 눈을 뜨게 하신 날은 바로 안식일이었다. 15 그래서 이번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그에게 눈을 뜨게 경위를 물었다. 그는 그분이 눈에 진흙을 발라주신 뒤에 얼굴을 씻었더니 이렇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6 바리사이파 사람들 중에는 그가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것으로 보면 하느님에게서 사람이 아니오.” 하는 사람도 있었고죄인이 어떻게 이와 같은 기적을 보일 있겠소?” 하고 맞서는 사람도 있어서 서로 의견이 엇갈렸다. 17 그들이 눈멀었던 사람에게그가 당신의 눈을 뜨게 해주었다니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하고 다시 묻자 그는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18 유다인들은 사람이 본래는 시각장애인이었는데 지금은 눈을 뜨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 하지 않고 마침내 사람의 부모를 불러 19 사람이 틀림없이 나면서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 어떻게 눈을 뜨게 되었소?” 하고 물었다. 20 그의 부모는, 틀림없이 때부터 눈이 멀었던 저희 아들입니다. 21 그러나 그가 어떻게 지금 보게 되었는지, 누가 눈을 뜨게 하여주었는지는 모릅니다.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일은 제가 대답하겠지요.” 하였다. 22 그의 부모는 유다인들이 무서워서 이렇게 말한 것이다. 유다인들은 예수를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누구나 회당에서 쫓아내기로 작정하였던 것이다. 23 그의 부모가 자란 사람이니 그에게 물어보 십시오.” 하고 말한 것도 때문이었다.
24 유다인들은 시각장애인이었던 사람을 다시 불러놓고 사실대로 말하시오. 우리가 알기로는 사람은 죄인이오.” 하고 말하였다. 25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분이 죄인인지 아닌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내가 아는 것은 내가 보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보게 되었다는 것뿐입니다.” 26그러면 사람이 당신에게 무슨 일을 했소? 어떻게 해서 당신의 눈을 뜨게 했단 말이오?” 하고 그들이 다시 묻자 27 그는 이야기를 벌써 해드렸는데 때에는 듣지도 않더니 다시 묻습니까? 당신들도 그분의 제자가 되고 싶습니까?” 하고 반문하였다. 28 말을 듣고 그들은 마구 욕설을 퍼부으며너는 그자의 제자이지만 우리는 모세의 제자이다. 29 우리가 아는 대로 모세는 직접 하느님의 말씀을 들은 사람이지만 그자는 어디에서 왔는지도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30 그는 이렇게 대꾸하였다. “분명히 눈을 뜨게 하여주셨는데 그분이 어디에서 오셨는지도 모른다니 이상한 일입니다. 31 하느님께서는 죄인의 청은 들어주시지만 하느님을 공경하고 뜻을 실행하는 사람의 청은 들어주신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32 시각장애인으로 태어난 사람의 눈을 뜨게 하여준 이가 있다는 말을 일찍이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33 그분이 만일 하느님께서 보내신 분이 아니라면 이런 일은 도저히 하실 수가 없을 것입니다.34 유다인들은 말을 듣고너는 죄를 뒤집어쓰고 태어난 주제에 우리를 훈계하려 드느냐?” 하며 그를 회당 밖으로 내쫓아버렸다.
35 눈멀었던 사람이 유다인들의 회당에서 쫓겨났다는 말을 들으시고 예수께서 그를 만났을 때에너는 사람의 아들을 믿느냐?” 하고 물으셨다. 36선생님, 믿겠습니다. 어느 분이십니까?” 하고 대답하자 37 예수께서너는 이미 그를 보았다. 지금 너와 말하고 있는 사람이 바로 사람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8주님, 믿습니다.” 하며 그는 예수 앞에 꿇어 엎드렸다. 39 예수께서는 내가 세상에 것은 보는 사람과 보는 사람을 가려, 보는 사람은 보게 하고 보는 사람은 눈멀게 하려는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40 예수와 함께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 몇이 말씀을 듣고그러면 우리들도 눈이 멀었단 말이오?” 하고 대들었다. 41 예수께서는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 하고 대답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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