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 전시장가요~! (1)
-전시장에서 지켜야 할 에티켓-
채창완
나는 틈나는 대로 어린 딸과 함께 전시장을 가곤 한다. 작품을 자주 봐야 하는 내 직업 때문이기도 하지만 아이에게 그림을 감상하는 기쁨을 조금이라도 느끼게 하고픈 마음에서이다. 내 아이의 나이가 네 살이고, 전시장을 데리고 가기 시작한 것이 생후 10개월부터이니 벌써 3년 째 아이와 함께 이일을 하는 셈이다. 이제 제법 자신이 좋아하는 그림을 골라 감상할 줄도 알게 되고, 어떤 그림은 뭐가 뭐해서 싫고, 어떤 건 이러이러해서 좋고, 나름대로 평가도 하는 걸 보면 귀엽기가 연간 아니다. 내 아이가 그림 보기와 전시장을 방문하는 것에 대해 거부 반응을 갖지 않는 것을 다행으로 여기며 나름대로 아빠로서 보람도 느낀다.
그러나 전시장에 어린 아이를 데리고 방문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만은 아니다. 나야 직업상 그런 기회를 만들기가 남들보다 쉽지만 미술과 관련 없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라면 사정이 다를 거다. 쉬는 날, 아이를 안고 다녀야 하는 수고와 피곤한 발품을 팔아야 하는 고통(?)을 제외하더라도 전시장을 자주 가기 어려운 일반인들에게는(특히 아빠들) 전시장의 문턱이 결코 낮게 느껴지지 않는 게 당연한 것 같다. 매 방학 때 마다 대형 미술관에서 앞을 다퉈 실시하는 외국의 유명 작가의 대형 전시회는 그나마 관람객이 많은 고로 매표소에서부터 출구까지 멋모르고 관람행렬을 따라 만 가면 되니 별다른 어려움이 없지만, 사람이 한산한 중소형 갤러리를 방문하면 왠지 그 낯섦에 당황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전시장에서 일하다 보면 그런 방문객을 쉽게 만나곤 한다. “입장료는 얼마예요?”, “봐도 되요” 라며 쑥스럽게 현관문을 들어서는 관람객들을 대할 때면 나 또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 그렇게 쑥스럽게 들어온 후에는 어느 방향으로 관람을 하며 돌아야 할지 몰라 주춤하기도 하고, 시선을 어디다 두어야 할지 몰라 두리번거리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그런 분들은 대부분 전시장을 처음 방문한 사람들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전시장의 낯섦뿐만 아니라 현대미술의 낯섦 또한 대단한 스트레스가 되는가 보다. 다들 2~3분을 못 견디고 전시장을 떠나기 십상이다. 이런 분들은 아이를 데리고 가기 전에 먼저 혼자 가보는 것이 더 좋을 듯싶다. 이전 글에서 필자가 언급한대로 미술작품을 감상하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작품과 전시장과 관람객 사이에 이루어지는 “아우라 Aura”인데 이에 익숙해지는 훈련(?)이 다소 필요하다 생각되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우리가 예상하는 것 보다 훨씬 이러한 “아우라”에 더 빨리 익숙해진다. 물론 예외도 있을 수 있지만……
몇 일전 인사동을 딸 아이와 함께 갔는데 모갤러리의 쇼 윈도우에서 보이는 작품의 색깔이 너무 아름다워 아이와 함께 들어가려 했는데 13세 미만은 ‘출입금지’란다. “왜 못 들어가?", “ 나, 저 그림 보구 싶은데 왜 못 들어가~아?” “나 저 그림 보올래~에” 하는 딸아이의 볼멘 소리를 달래며 전시장을 나오는 내 마음 또한 무척 쓰렸다(그날은 날씨도 무척 더웠다). 나도 전시장에서 일하는 사람이지만 음악회와 같은 공연도 아닌데 아이를 출입금지 시키는 것이 납득이 가지 않았다. 눈으로 보는 그림 조차도 아이들에게는 감상의 기회를 빼앗는 것이 합당한 일일까? 그 갤러리에 걸린 작품들 보다 더 고가(?)의 작품을 아이들을 위해 개방하는 곳이 얼마나 많은데……내 아이의 마음을 위로하며 할 말이 없어 “응, 여긴 나쁜 갤러리인가 봐, 아이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데” 했더니, “응 그러면 딴데 가자” 한다. 딸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은 지워지지 않았지만 나름대로 그 갤러리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아이들을 받을 수 없는 이유가 분명 있었을 게다.
내가 일하는 전시장은 구립도서관 맞은 편에 위치하여 엄마와 아이들이 자주 방문하는 곳이다(아빠와 함께 오는 것은 한번도 못 봤다). 아이와 엄마가 함께 전시장을 찾는 모습을 보는 것은 정말 마음 뿌듯하다. 그러나 그럴 때 마다 반가움에 앞서 염려 또한 되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특히 전시된 작품이 설치 작업일 경우는 아이들이 작품에 손을 댈까 특히 염려된다. 아이들이 전시장에서 보이는 행동은 다양하다. “엄마 이것 봐” 라며 큰소리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소리치며 뛰어 다니기, 작품 만져보기, 먹던 과자 부스러기 떨어뜨리기 등 전시장의 분위기를 흐려놓기 일쑤이다. 주의를 주려 하면 왜 내 아이에게 잔소리냐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부모님들도 때론 있다. 알아서 자기 자식에게 주의를 주는 부모도 있지만 그냥 형식에 그칠 때가 많다. 물론 모든 관람객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이런 상황들을 고려해 본다면 위에 언급한 “모갤러리”의 처사가 조금은 이해가 된다. 그렇다면 그 책임은 갤러리 측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에게도 어느 정도 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들은 어른의 거울이므로 아이들의 예의 없음은 결국 그 부모의 책임이 된다. 심지어 다른 사람의 집을 방문해도 예절을 지켜야 하는데 전시장이라고 나름대로의 예절이 없을까? 나도 아이와 함께 전시장을 방문할 때면 사전에 늘 많은 주의를 준다. 그리고 내 아이는 아직 그러한 무례(?)를 범하지 않았다. 자랑이 아니라 교육시키는 대로 아이는 그대로 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교육이 가장 중요하다. 처음 시기를 놓치면 다음부터는 통제가 더 어려워진다. 아이에게 강압적으로 예절을 주입하는 것이 아니라 자발적인 참여를 유도하도록 각별한 지도가 필요하다.
이런 관점에서 이번 1부에서는 전시장에서 지켜야 할 최소한의 예절을 몇 자 적어 보고자 한다(다음 2부에서는 전시장을 처음 방문하는 사람들을 위해 간단한 안내를 하려고 한다). 너무 간단하면서도 당연한 얘기이지만 환기시키는 차원에서 읽어주기 바란다.
첫째 전시장에서는 절대 조용할 것. 전시장은 가구나 다른 것들로 가득 찬 생활 공간과 달리 텅빈 공간이므로 작은 소리도 크게 울리다. 그러므로 가능하면 말은 작은 소리로 하는 것이 좋을 듯싶다. 관람객의 참여를 유도하는 전시회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의 전시회에서 이런 예절이 필요하다. 아이들이 전시장에서 가장 지키기 어려운 부분이지만 가장 중요하게 지켜야 할 에티켓이다.
둘째 작품에 절대 손대지 말 것. 이는 작품의 안전뿐만 아니라 관람자의 안전을 위한 것이다. 현대미술작품은 재료를 다양한 것을 쓰는 고로 파손의 위험도 높고 혹 관람객이 만졌을 경우 다칠 수 있는 재료들도 많기 때문이다. 작품을 만져서 떨어뜨릴 경우 작품의 파손뿐만 아니라 관람객이 크게 다칠 수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리고 작품의 가격이 대부분 고가임으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전시장에서 만지라고 허락한 작품 말고는 절대 만지지 않는 것이 최선이다. 대부분의 전시회에서 만질 수 있는 작품은 극히 드물 것이다. 안전 제일!
세 번째는 뛰거나 아무데나 주저앉지 말 것. 가능하면 발자국 소리를 내지 않고 걷는 것이 좋다. 아이들은 넒은 전시장을 보면 뛰고 싶은 충동을 느끼는지 막 뛰어다닌다. 이러한 충동을 억제 시키는 것이 결코 쉽지 않겠지만 아이에게 잘 설득해주기 바란다. 그리고 전시장에 관람객이 쉴 수 있는 의자나 걸상이 없는 경우 바닥에 앉는 경우가 있는데 절대 그러지 말기 바란다. 그것은 전시장과 작가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이기 때문이다.
네 번째, 아이들이 흥미를 못 느끼는 전시회일 경우 오래 머물지 말고 빨리 나오기 바란다. 아이들은 솔직하다. 작품이 자신에게 흥미롭지 않으면 금방 실증을 느낀다. 인사동, 사간동, 청담동 같은 지역은 여러 갤러리가 운집해 있음으로 관람할 옵션이 많다. 그러므로 아이들이 실증을 느끼는 전시회는 오래 머물지 말고 바로 나오기 바란다. 다섯 번째는 전시회를 감상하고 나름대로 좋았다면 전시장에 비치된 방명록이나 노트에 꼭 이름이나 리플을 쓰실 것. 그리고 인쇄물을 가져올 때 꼭 작가나 큐레이터들이 그 자리에 있으면 고맙다는 인사 정도는 꼭 하시길 부탁 드린다. 이런 작은 예의가 작가를 위로하는 큰 힘이 되곤 한다. 이상의 예절은 최소한의 것들이다. 이러한 예절을 아이들에게 전시장 방문 전 꼭 다짐을 시켜야 한다. 몇 번 해보면 아이들은 금방 익숙해진다. 꼭 실천해보시길……
-2부로 계속-
(다음 2부에서는 전시장을 처음 찾는 분들을 위해 작품 관람 방법을 간단히 안내하려고 합니다. 전시장을 가고자 하나 왠지 어색해서 망설이시는 분들을 위하여, 특히 아빠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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