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tigmata 거룩한 상흔
심정아 사순절 묵상 展
2022.3.6~4.7
www.jungahshim.com
전시 장소: 경동갤러리카페
서울시 중구 장충단로 204 경동교회선교관 2층
관람문의: 02-2274-0161
Stigmata 그리스도의 몸에 새겨진 십자가상흔들을 의미합니다. 인두로 천을 태우는 작업은 긴 시간의 고독과 집중과 기다림을 필요로 합니다. 손과 발의 못 자국을 타 들어가는 불꽃으로 표현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을 때, 그렇게 해야지 하면서도 마음이 너무 아팠던 기억이 납니다. 스티그마타 연작은 작업실에서 완성되지 않습니다. 자연광이 들어오는 공간에 걸고, 태운 자국에 빛이 통과되도록 해 주어야 비로소 완성이 됩니다. 아픈 상흔의 선들이 아름다운 빛의 선으로 바뀌어 지는 것을 보면서 예수님만이 주실 수 있는 치유와 회복, 구원에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불타는 책
어느날 성경책을 펼치는데, 붉은 색 밑줄들과 눈물 자국으로 얼룩진 모습이 마치 불타고 있는듯 느껴져서 이 드로잉을 그리게 되었습니다. 여인은 성경책을 읽으며 불꽃처럼 뜨거운 눈물을 흘리고 있습니다. 불꽃은 책을 젖게 하는 동시에 불타오르게 하고 있습니다. 불타는 책은 여인과 여인의 삶을 모두 불타오르게 할 것입니다.
당신의 아름다운 손
세상에서 가장 무거운 무게로 떨어지는 한 방울의 무게를 받아내기 위해 손을 펼친다는 것! 한 사람이 흘리는 눈물, 피, 땀. 그 한 방울의 무게, 불꽃보다 뜨거운 온도, 가늠할 수 없는 낙하의 속도.그것을 손으로 받아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을 감히 할 수 있을까요? 결국 손은 타들어 가고, 깊은 상흔을 남기고 말것입니다. 동일한 작품을 2022년 부활절에 재개관하게된 한국기독교순교자 기념관 채플실에 헌정드렸습니다. 이 손은 순교자의 눈물과 피를 받아주시는 그리스도의 손이고, 그리스도의 보혈을 온 삶을 드려 받아내는 순교자들의 손, 그리고 세상이 흘리는 눈물, 피, 땀을 받아내는 그리스도인들의 손이기도 합니다.
Rose of Lent 사순절의 장미 : 봄날과 부활의 장미 (좌측 작품)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 이사야 53장
“봄은 겨울로부터 오지 않습니다. 봄은 침묵으로부터 옵니다.” - 영화 <위대한 침묵> 중에서
사순절을 뜻하는 'Lent'는 '봄날'이라는 뜻의 영어 고어 'lencten'에서 나왔습니다. 장미는 본래 북반구의 꽃으로 추운 겨울, 죽음에 이르렀던 씨앗이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온 후에야 꽃을 피운다 하여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을 상징하는 꽃으로 사용되어 왔습니다. 백 개의 꽃잎에 싸여 무게를 이기지 못해 고개를 숙이는 모습 때문에 '침묵'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침묵은 우리에게 봄날을, 생명을 선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분의 낮추심, 내려가심은 우리를 구원하여 하늘나라로 함께 올라가기 위함이었습니다. 얼어붙은 땅, 죽음의 심연으로 내려가셨던 예수님이 이제 봄날과 부활의 장미로 피어납니다.
그리스도의 발
베다니의 마리아는 그리스도의 발에 값비싼 향유를 부어드리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렸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는 바로 그 소중한 발로 험한 골고다의 언덕길을 오르셨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발에 사람들이 못을 박았습니다. 만유 가운데 가장 자유로우신 발을 십자가 형틀에 가두어 버린 것입니다. 마리아는 모든 것을 부어드렸던 그 소중한 발이 상흔투성이가 된 채 십자가에 못 박힌 모습을 어딘가에서 울며 바라보고 있을 것입니다. 십자가 곁을 지켰던 제자, 요한도 그 발을 바라보고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사랑하는 제자들을 떠날 때가 온 것을 아시고 허리에 수건을 두르고 손수 발을 닦아 주셨습니다. 바로 그 분의 발이 요한의 눈 앞에 발가벗겨져 상흔투성이가 된 채 울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창조물들을 그리스도의 발 아래 무릎 꿇게 하겠노라 약속하셨습니다. 그 발이 울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픔 때문이 아니라 우리를 향한 사랑 때문에.
그리고 이제 저는 더 많은 발들을 떠올려봅니다. 신발을 신을 겨를도 없이 인생 밖으로 쫓겨난 사람, 한번도 신발을 가져보지 못한 사람, 기다려도 신발이 지급되지 않는 사람. 그래서 오늘도 맨발로 서 있는 한 사람의 발을 떠올려봅니다. 그리고 그 한 사람을 위하여 기꺼이 신발을 버리고 맨발이 되어 걷고 있는 한 사람의 발을 떠올려봅니다. 그리하여 모든 순례자의 발은 본디 맨발이었던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맨발의 연대속으로 들어와, 그 가슴 뭉클한 행렬에 끼여 천천히 걸어가다 보면, 순례의 목적지는 어떤 성스러운 교회도 신비한 기적이 일어났다는 장소도 아니라, 거친 땅 위에 맨발로 서 있는 한 사람의 마음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든 길 위에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가시 면류관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이사야53장)
복잡하게 엉켜있는 줄기들과 날카로운 가시들은 우리의 허물과 죄악을 상징합니다. 성경에서는 로마병사들이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씌웠다고 나와있지만, 우리 모두가 자신의 죄와 허물을 엮어 가시관을 만들고 그리스도의 머리에 씌운 것이 아니겠습니까? 가시면류관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시간도 오래 걸리고 몸이 많이 소진되기도 하지만 자연스럽게 죄를 참회하게 되면서 영혼이 소진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하지만 드로잉을 마치고 햇살에 걸었을 때 가장 아름답게 변화되는 작품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짙은 어둠 속에서 더욱 찬란히 빛나는 빛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모든 고통을 체휼하신 대제사장, 일찍 죽임을 당하신 어린양이십니다. 그분 자신이 "상처 입은 치유자"이기에, 고통 당하는 이들에게 온전한 치유자로 찾아가실 수 있는 것입니다.
가슴울새 여인의 옷 (우측 작품)
가슴울새의 피멍이 든 가슴에서 울려나오는 노래는 매서운 겨울바람을 녹이고 따스한 봄의 생명을 부활 시킵니다. 이 옷은 2017년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추모하는 전시와 퍼포먼스를 올리면서 위안부 여인역의 무용수를 위해 제작한 작품입니다. 고난의 시간을 이겨내고 인권운동가로 활동하셨던 길원옥 할머니의 존재감이 사순절 장미와 닮았다고 여겨져서 나란히 걸어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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