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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임의 척도”_2026. 8.23.가해_연중21주일_강론

[그림 읽어 주는 강론 2] 2026. 8.23.가해_연중21주일출애 1:8-2:10 / 시편 124 / 로마12:1-8 / 마태 16:13-20 “신임의 척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와 마태오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회에 관한 이미지를 전해줍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사도직의 계승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우리가 받은 은사는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이는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그리스도로 일치와 하나가 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가진 객체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우주적 교회, 그리고 가시적 교회 모두가 여기에 포..

글모음/설교문 2026.08.23

“어머니의 절규”_2026. 8.16.가해_연중20주일_강론

[그림 읽어 주는 강론 1] 2026. 8.16.가해_연중20주일창세 45:1-15 / 시편 133 / 로마 11:1-2상, 29-32 / 마태 15:21-28 “어머니의 절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 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성이란 시각장애인과 감천이란 하반신 장애인의 감동을 주는 우정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이 말은, 말 그대로 지성을 다하여 간구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기도를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는 TV 사극에서 길 떠난 아들을 위해 정화수 떠 놓고 정갈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 조상은 특정 종교를 넘어서 기본적으로 자식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천지신명’께 간구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글모음/설교문 2026.08.16

“역풍노도(逆風怒濤) 속에서…”_2026. 8.9.가해_연중19주일_강론

2026. 8.9.가해_연중19주일창세 37:1-4, 12-28 / 시편 105:1-7, 16-22, 45 / 로마 10:5-15 / 마태 14:22-33 “역풍노도(逆風怒濤) 속에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처럼 변화무쌍한 청소년 시기를 빗대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약간 바꿔서, 어려움을 겪는 중년이나 노년의 삶을 ‘역풍노도(逆風怒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청소년기의 방황하는 청소년처럼, 인생 후반부에 예기치 않은 역풍으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빗대서 표현한 말입니다. 인생 후반부나, 인생 말년에 갑자기 몰아치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보면, 우리 또한 불안과 염려가 떠나지 않습..

글모음/설교문 2026.08.09

“예수의 마음”_2026. 8.2.가해_연중18주일_강론

2026. 8.2.가해_연중18주일창세 32:23-32 / 시편 17:1-7, 15 / 로마 9:1-5 / 마태 14:13-21 “예수의 마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는 지난주에 “성령의 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제가 설명해 드린 ‘탄식’에 관한 헬라어 “στενάζω 스테나죠”는 ‘신음하다, 탄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현실의 압박과 한계 속에서 속으로 짓눌려 터져 나오는 탄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지향성이 바라보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연민을 느끼시는 감정을 표현한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mai)”입니다. 이는 스테나죠와 유사한 듯하지만, 지향성이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바라보..

글모음/설교문 2026.08.02

“기도의 연대”_2026. 7.26.가해_연중17주일_강론

2026. 7.26.가해_연중17주일창세 29:15-28 / 시편 105:1-11, 45 / 로마 8:26-39 / 마태 13:31-33, 44-52 “기도의 연대”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 말에 “단장의 아픔”이란 말이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때 씁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한 개인이 느끼는 가장 고통스러움을 표현한 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정도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는 모두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주삿바늘조차 두렵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고통에 대해서 “뭘 그것 가지고, 호들갑이야” 또는 “뭘 그 정도로 아파해” ..

글모음/설교문 2026.07.26

“양자의 영”_2026. 7.19.가해_연중16주일_강론

2026. 7.19.가해_연중16주일창세 28:10-19상 / 시편 139:1-12, 23-24 / 로마 8:12-25 / 마태 13:24-30, 36-43 “양자의 영”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로마 8:15 오늘 읽은 로마서에서 공동번역 성서가 “하느님의 자녀”로 번역한 부분을 직역하면 “양자의 영”입니다. “양자(養子)”란 뜻의 헬라어 “υἱοθεσία 휘오데시아”는 로마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교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는 양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자녀를 입양하는 것을 떳떳한 것보다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것은 “..

글모음/설교문 2026.07.19

“장자권의 오해”_2026. 7.12.가해_연중15주일_강론

2026. 7.12.가해_연중15주일창세 25:19-34 / 시편 119:105-112 / 로마 8:1-11 / 마태 13:1-9, 18-23 “장자권의 오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즘은 상식을 허무는 다양한 일들로 뉴스를 접하는 것이 두려울 지경입니다. 가해자가 오히려 보호받고 피해자가 마치 죄인 취급받는 분위기. 피해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는 분위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최근에 쟁점이 된 배재고 학생들의 광주 비하 응원 문제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려옴을 느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분명히 상대를 비하하는 응원 구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혐오적 응원 구호가 단순히 학생이라서, 장난이라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유를 주장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을 ..

글모음/설교문 2026.07.12

“감사의 법이 곧 믿음의 법”_2026. 7.5.가해_맥추감사주일_강론

2026. 7.5.가해_맥추감사주일_연중14주일신명 8:1-4 / 시편 119:33-48 / 히브 12:32-40 / 마태 6:25-34 “감사의 법이 곧 믿음의 법”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기도의 법이 곧 믿음의 법(lex orandi, lex credendi)”이란 말이 있습니다. 교회 전례학에서 다루는 주제로 공동체 예배의 중심이 되는 기준을 제시한 말입니다(아퀴테인의 프로스퍼). 우리가 기도하고 예배하는 방식이 곧 우리의 믿는 바이고, 우리의 믿음을 결정한다는 뜻입니다. 저는 이 말을 약간 바꿔서 이렇게 말하고 싶습니다. “감사의 법이 곧 믿음의 법”이라고.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에서 “감사”가 차지하는 비중은 아무리 강조해도 절대 지나치지가 않습니다. 감사는 하느님의 은총에..

글모음/설교문 2026.07.05

“상호 받아들임”_2026. 6.28.가해_연중13주일_강론

2026. 6.28.가해_연중13주일창세 22:1-14 / 시편 13 / 로마 6:12-23 / 마태 10:40-42 “상호 받아들임”환대의 영성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로완 윌리암스 대주교는 우리 그리스도인이 모두 하느님의 식탁에 초대받은 손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물론 그 식탁의 주인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께서 베푸신 환대에는 어떠한 구분도 차별도 없습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이나 의인이나 모두를 한 식탁에 초대하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공생애는 이러한 환대적 식탁의 연속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싫어했던 세리 자캐오도, 자신의 몸을 팔던 여인도, 소외당하던 나병환자도 주님께서는 모두 환대하셨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가 죄인들과 어울렸다고 예수 또한 죄인이라 비..

글모음/설교문 2026.06.28

“내가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_2026. 6.21.가해_연중12주일 강론

2026. 6.21.가해_연중12주일창세 1:1-2:4상 / 시편 8 / 2고린 13:11-13 / 마태 28:16-20 “내가 그를 큰 민족이 되게 하리라.” 환대의 축복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최근에 화제가 된 “참교육”이란 넷플릭스 드라마를 봤습니다. 특히 5편에서 다룬 주제는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합니다. 사사건건 자기 아들 중심으로 교육해 주길 바라는 엄마의 마음. 그것이 어떻게 교사에게 폭력이 될 수 있는지를 드라마는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자기 아들이 기죽으니, 칠판에 나와 문제를 풀지 말라고 요구하고, 자기 자식이 기죽으니 “안돼, 하지마!” 등의 말은 하지 말라고 담임 선생님께 요구합니다. 공동체 생활에서 오직 자기 아들만 잘 보호받고 잘 자라기를 바라는 마음은 아마..

글모음/설교문 2026.0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