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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들”_2026. 9.13.가해_연중24주일_그림 읽어 주는 강론 5

[그림 읽어 주는 강론 5] 2026. 9.13.가해_연중24주일출애 14:19-31 / 시편 114 / 로마14:1-12 / 마태 18:21-35 “일만 달란트 빚진 사람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오늘 복음서 말씀은 용서와 관련된 내용입니다. 일곱 번 용서를 구하면 그래도 용서해 주라는 루가의 기록(루가 17:4)보다 마태오는 이 말씀을 더 확장하여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마태오는 “무자비한 종의 비유”를 추가하여 무제한적인 용서에 관해 보충 설명까지 더합니다. 마태오는 용서에 관한 예수의 메시지를, 우리가 그분께 용서받은 만큼 다른 사람도 용서하라는 뜻으로 이해했습니다. “일흔 번씩 일곱 번” 용서하라는 말은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뜻입..

“파스카 식사”_2026. 9.6.가해_연중23주일_그림 읽어 주는 강론 4

[그림 읽어 주는 강론 4] 2026. 9.6.가해_연중23주일출애 12:1-14 / 시편 149 / 로마13:8-14 / 마태 18:15-20 “파스카 식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가 교회에서 흔히 들었던 ‘파스카’ (פֶּסַח, Pesach))라는 말은 히브리어 ‘페사흐’의 라틴어 음역입니다. 그 뜻은 “~을 넘어서다, ~을 건너다”입니다. “죽음을 넘어섰다”라는 의미로 이스라엘의 출애굽 해방을 한마디로 함축해서 설명해 주는 말입니다. 출애굽 때에 이집트에 내린 하느님 심판의 마지막 재앙이 바로 모든 태의 첫 열매의 죽음이었습니다. 그것은 태의 첫 열매가 가족을 대표하여 대신 죽음으로써 전체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모든 인류를 다시는 멸하지 않겠다는 노아와의 약속을 지킨 ‘인..

글모음/설교문 2026.09.06

“불가항력적 현존 앞에서…”_2026. 8.30.가해_연중22주일_그림 읽어 주는 강론 3

[그림 읽어 주는 강론 3] 2026. 8.30.가해_연중22주일출애 3:1-15 / 시편 105:1-6, 23-27, 45 / 로마12:9-21 / 마태 16:21-28 “불가항력적 현존 앞에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이리로 가까이 오지 마라. 네가 서 있는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어라.” 출애 3:5 오늘 우리가 묵상할 작품은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대가 도메니코 페티(Domenico Fetti, 1589~1623)의 작품입니다. 출애굽기 3장에 나오는 불타는 떨기나무 앞에서 야훼를 만난 모세를 극적인 장면으로 묘사한 작품입니다. 르네상스 미술의 조화와 균형의 구조적이고 정적인 형식에서 탈피한 바로크 미술은 ‘극적인 연출, 강렬한 명암 대비, 그리고..

글모음/설교문 2026.08.30

“신임의 척도”_2026. 8.23.가해_연중21주일_강론

[그림 읽어 주는 강론 2] 2026. 8.23.가해_연중21주일출애 1:8-2:10 / 시편 124 / 로마12:1-8 / 마태 16:13-20 “신임의 척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오늘 우리가 읽은 로마서와 마태오복음은 우리에게 두 가지 교회에 관한 이미지를 전해줍니다. 하나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이고, 또 하나는 “역사적 사도직의 계승으로서의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는 우리가 받은 은사는 서로 다르지만,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공동체라는 뜻입니다. 이는 서로의 다름과 차이를 존중하면서도 그리스도로 일치와 하나가 되는 교회를 말합니다. 각각 은사를 가진 객체들이 모여 하나의 몸을 이루는 우주적 교회, 그리고 가시적 교회 모두가 여기에 포..

글모음/설교문 2026.08.23

“어머니의 절규”_2026. 8.16.가해_연중20주일_강론

[그림 읽어 주는 강론 1] 2026. 8.16.가해_연중20주일창세 45:1-15 / 시편 133 / 로마 11:1-2상, 29-32 / 마태 15:21-28 “어머니의 절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 말에 “지성이면 감천이란” 말이 있습니다. 지성이란 시각장애인과 감천이란 하반신 장애인의 감동을 주는 우정 이야기에서 비롯됐다는 이 말은, 말 그대로 지성을 다하여 간구하면 하늘도 감동하여 그 기도를 들어준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제가 어렸을 때는 TV 사극에서 길 떠난 아들을 위해 정화수 떠 놓고 정갈한 마음으로 간절히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을 종종 봤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우리 조상은 특정 종교를 넘어서 기본적으로 자식과 가족의 안녕을 위해 ‘천지신명’께 간구하던 민족이었습니다..

글모음/설교문 2026.08.16

“역풍노도(逆風怒濤) 속에서…”_2026. 8.9.가해_연중19주일_강론

2026. 8.9.가해_연중19주일창세 37:1-4, 12-28 / 시편 105:1-7, 16-22, 45 / 로마 10:5-15 / 마태 14:22-33 “역풍노도(逆風怒濤) 속에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질풍노도(疾風怒濤)’라는 말이 있습니다. 거센 바람과 성난 파도처럼 변화무쌍한 청소년 시기를 빗대는 말입니다. 저는 이 말을 약간 바꿔서, 어려움을 겪는 중년이나 노년의 삶을 ‘역풍노도(逆風怒濤)’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갈팡질팡하는 청소년기의 방황하는 청소년처럼, 인생 후반부에 예기치 않은 역풍으로 갈팡질팡하는 사람들을 빗대서 표현한 말입니다. 인생 후반부나, 인생 말년에 갑자기 몰아치는 감당할 수 없는 어려움에 부닥친 사람들을 보면, 우리 또한 불안과 염려가 떠나지 않습..

글모음/설교문 2026.08.09

“예수의 마음”_2026. 8.2.가해_연중18주일_강론

2026. 8.2.가해_연중18주일창세 32:23-32 / 시편 17:1-7, 15 / 로마 9:1-5 / 마태 14:13-21 “예수의 마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는 지난주에 “성령의 탄식”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그때 제가 설명해 드린 ‘탄식’에 관한 헬라어 “στενάζω 스테나죠”는 ‘신음하다, 탄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이는 “현실의 압박과 한계 속에서 속으로 짓눌려 터져 나오는 탄식”을 의미합니다. 이는 대상에 대한 지향성이 바라보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서에 예수께서 군중에게 연민을 느끼시는 감정을 표현한 헬라어는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mai)”입니다. 이는 스테나죠와 유사한 듯하지만, 지향성이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라 그 바라보..

글모음/설교문 2026.08.02

“기도의 연대”_2026. 7.26.가해_연중17주일_강론

2026. 7.26.가해_연중17주일창세 29:15-28 / 시편 105:1-11, 45 / 로마 8:26-39 / 마태 13:31-33, 44-52 “기도의 연대”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우리 말에 “단장의 아픔”이란 말이 있습니다. 형언할 수 없는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때 씁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아픔이 어느 정도인지 상상이 가지 않지만, 한 개인이 느끼는 가장 고통스러움을 표현한 말임이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고통의 정도는 결코 절대적이지 않습니다. 사람마다 아픔을 느끼는 정도는 모두 상대적입니다. 우리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주삿바늘조차 두렵기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남의 고통에 대해서 “뭘 그것 가지고, 호들갑이야” 또는 “뭘 그 정도로 아파해” ..

글모음/설교문 2026.07.26

“양자의 영”_2026. 7.19.가해_연중16주일_강론

2026. 7.19.가해_연중16주일창세 28:10-19상 / 시편 139:1-12, 23-24 / 로마 8:12-25 / 마태 13:24-30, 36-43 “양자의 영”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여러분이 받은 성령은 여러분을 다시 노예로 만들어서 공포에 몰아넣으시는 분이 아니라 여러분을 하느님의 자녀로 만들어주시는 분이십니다.” 로마 8:15 오늘 읽은 로마서에서 공동번역 성서가 “하느님의 자녀”로 번역한 부분을 직역하면 “양자의 영”입니다. “양자(養子)”란 뜻의 헬라어 “υἱοθεσία 휘오데시아”는 로마의 문화를 잘 반영하고 있습니다. 유교주의 문화의 영향을 받은 우리는 양자에 대한 선입견 때문에 자녀를 입양하는 것을 떳떳한 것보다는 숨겨야 하는 것으로 인식됩니다. 그것은 “..

글모음/설교문 2026.07.19

“장자권의 오해”_2026. 7.12.가해_연중15주일_강론

2026. 7.12.가해_연중15주일창세 25:19-34 / 시편 119:105-112 / 로마 8:1-11 / 마태 13:1-9, 18-23 “장자권의 오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즘은 상식을 허무는 다양한 일들로 뉴스를 접하는 것이 두려울 지경입니다. 가해자가 오히려 보호받고 피해자가 마치 죄인 취급받는 분위기. 피해자를 철저히 무시하고 짓밟는 분위기. 여러분도 잘 아시겠지만, 최근에 쟁점이 된 배재고 학생들의 광주 비하 응원 문제를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아려옴을 느꼈습니다. 어떠한 이유에서든 분명히 상대를 비하하는 응원 구호가 있었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혐오적 응원 구호가 단순히 학생이라서, 장난이라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이유를 주장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을 ..

글모음/설교문 2026.0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