케노시스 10

“겸손의 찬가”

2023. 10. 1. 가해_연중26주일 출애 17:1-7 / 시편 78:1-4, 12-14 / 필립 2:1-13 / 마태 21:23-32 “겸손의 찬가”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필립비서 2장에서 필립비 교회에 대한 사도 바울로의 권면은 절정에 이릅니다. 그는 네 가지의 그리스도의 모범을 제시합니다.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격려”, “그리스도의 사랑에 기반한 위로”, “성령 안에서의 친교”, “신자 간의 애정과 동정심” 등입니다. 이러한 모든 것의 출발점은 그리스도의 겸손과 봉사의 정신입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덕목을 따르기 위해서는 “같은 생각”과 “같은 사랑” 그리고 “같은 마음”으로 교회가 하나가 되라고 권면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에서..

글모음/설교문 2023.10.01

“죽음,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2023. 5. 21. 가해_승천대축일_부활7주일 다니 7:9-14 / 시편 93 / 사도 1:1-11 / 루가 24:44-53 “죽음,부활, 승천 그리고 성령강림”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죽음. 죽음은 누군가에게는 두려움으로, 누군가에게는 절망으로, 누군가에게는 이별로, 누군가에게는 죽지 못해 산다는 말처럼 삶을 부정하는 변명으로… 너무나 각양각색의 죽음에 대한 생각들을 가지고 우리는 살아갑니다. 어쩌면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지 않는 사람들도 많을 겁니다. 요즘은 죽음을 마치 게임을 ‘리셋’하는 듯한 뉘앙스로 생각하는 사람도 있는 듯합니다. 2천 년 전, 자신들의 모든 것을 걸고 ‘역사의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은 과연 스승의 죽음 앞에서 어떤 생각했을까요? 톨스토이..

글모음/설교문 2023.05.21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2023. 1. 1. 가해.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 감사성찬례 민수 6:22-27 / 시편 8 / 갈라 4:4-7(또한 필립 2:5-11) / 루가 2:15-21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이 세상 작은 이름 하나라도 마음 끝에 닿으면 등불이 된다 아플 만큼 아파 본 사람만이 망각과 폐허도 가꿀 줄 안다 내 한때 너무 멀어서 못 만난 허무 너무 낯설어 가까이 못 간 이념도 이제는 푸성귀 잎에 내리는 이슬처럼 불빛에 씻어 손바닥 위에 얹는다 세상은 적이 아니라고 고통도 쓰다듬으면 보석이 된다고 나는 얼마나 오래 악보 없는 노래로 불러왔던가 이 세상 가장 여린 것, 가장 작은 것 이름만 불러도 눈물겨운 것 그들이 내 친구라고 나는 얼마나 오래 여린 말로..

글모음/설교문 2023.01.01

“Amor Ex Nihilo 무로부터의 사랑”

2022.12.18. 가해. 대림4주일 이사 7:10-16 / 시편 80:1-7, 17-19 / 로마 1:1-7 / 마태 1:18-25 “Amor Ex Nihilo 무로부터의 사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Creatio Ex Nihilo 무로부터의 창조’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어떠한 질료도 사용하지 않고 무로부터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창조론입니다. ‘무로부터의 창조’는 히브리 사상에 기반하며, 토마스 아퀴나스를 비롯하여 현대 신학자 몰트만에 이르기까지 많은 신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해왔습니다. 과학에서는 빅뱅의 원인이 수소나 헬륨의 영향 때문이라 추측하고 있어 빅뱅 이전에도 이 우주에는 어떤 물질이 있었다고 가정합니다. 그래서 ‘무로부터의 창조’는 과학에서는 받아..

글모음/설교문 2022.12.18

“공간의 얼굴: 공간의 위계(位階)”- 청주산남교회 전례공간 워크샵 설교

2022.8.22. 연중22주일 _히포의 어거스틴(주교, 430년) / 대한성공회 청주산남교회 전례공간 워크샵 예레 2:4-13 / 시편 81:1, 10-16 / 히브 13:1-8, 15-16 / 루가 14:1, 7-14 “공간의 얼굴: 공간의 위계(位階)”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제주교회 사제관에는 매일 아침저녁으로 옆집 고양이가 밥을 달라고 방문을 합니다. 그런데 그 고양이가 가끔 신발장 위나 성당 안내 테이블 위같이 높은 곳에 올라가는 바람에 종종 소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좁은 그곳에 어떻게 올라가 앉는지 신기할 따름입니다. 그럴 때는 아마도 경쟁자가 나타났거나 경계를 해야 하는 상황이 있을 때 그런 것 같습니다. 자신에게 좀 더 안전한 곳, 자신에게 좀 더 유리한..

글모음/설교문 2022.08.28

제자도의 조건

2022.6.26. 연중 13주일 열왕하 2:1-2, 6-15 / 시편 77:1-2, 11-20 / 갈라 5:1, 13-25 / 루가 9:51-62 “제자도의 조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복음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예루살렘 상경기”의 시작 부분입니다. 이는 루가복음 9장에서 19장 27절까지 장장 10장에 걸쳐 기록되었으며 “예루살렘 입성” 전까지의 이야기들을 담은 것입니다. 특히 루가복음 9장 이전에는 이적과 치병사화가 중심이라면, 9장 이후 “예루살렘 상경기”에는 비유와 설교 그리고 논쟁 사화 등이 중심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루가복음 9장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굵직한 주제들이 이 9장 속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12제자를 파송한..

글모음/설교문 2022.06.26

십가가, 하느님 부재의 자리

2022.4.14. 성 금요일(주님의 수난) 예식 이사 52:13-53:12 / 시편 22 / 히브 10:16-25 / 요한 18:1-19:42(수난복음) ‘십자가, 하느님 부재의 자리’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 우리는 여느 때처럼 아침을 맞이했고, 직장이나 집안일을 했으며, 여느 때처럼 식사를 하고 사람들을 만났으며 평소처럼 또 우리 아이들을 돌봤습니다. 오늘은 다른 일상과 다를 바 없이 평범했으며, 특별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매년 찾아오는 이 금요일을 다른 날들과 조금은 다르게 느낍니다. 하루 종일 우리 마음 구석에 무거운 무엇인가가 웅크리고 있는 듯, 우리의 미소가, 우리의 말이 여느 때와는 다름이 느껴집니다. 해와 달, 하늘과 나무들, 거리의 자동차..

글모음/설교문 2022.04.16

부활의 의미

2021. 4. 25. 나해_부활4주일_감사성찬례 사도 3:12-20 / 시편 4 / 1요한 3:1-7 / 루가 24:36-48 부활의 의미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우리는 그 말씀을 듣고 눈으로 보고 실제로 목격하고 손으로 만져보았습니다.” (1요한 1:1c) 이는 부활에 대한 요한의 증언의 결론입니다. 이를 통해 그는 가현설의 주장도, 부활에 대한 불신도 끊으려 했던 것 같습니다. 요한에게 있어서 본다는 것은 단순히 눈으로 목격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보고 그것을 이해한 사람만이 진정으로 본 것입니다. 진정으로 본다는 것은 마음으로 보는 것이고, 마음으로 보는 것은 곧 믿음으로 보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내가 이 세상에 온 것은 보는 사람과 못 보는 사람을 가려, 못 보는 ..

글모음/설교문 2021.05.17

덜어내고, 비우기 (1)

2021. 3. 7. 나해_사순 3주일_감사성찬례 출애 20:1-17_ 시편 19_ 1고린 1:18-25_ 요한 2:13-22 “덜어내고, 비우기” (1)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그림을 그리는 데 그림에 뭔가를 그리고 더하고 꾸미는 일은 사실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랜 숙련된 기술과 요령을 터득하면 언젠가 되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정작 어려운 것은, 화가들의 표현대로 말하면, ‘덜어내고, 비우기’입니다. 사물을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는 것이 아니라, 그 사물의 핵심적인 부분은 남기고 나머지는 생략하며, 의미와 표현의 과잉을 피해 생각을 덜어내고, 표현을 최대한으로 절제해 가는 것. 이것이 작품에서 뭔가를 ‘덜어내고 비우는’ 과정입니다. 이는 요령이나 기술이 아닌 오랜..

글모음/설교문 2021.05.16

<새가정> 2021.5월호 vol.743_ "존재의 자리-바라 봄" _채야고보 신부

존재의 자리_바라 봄 채야고보 신부(Artist/성공회 사제) 본다는 것에 대해 생각해 봅니다.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보는 세상을 모두 똑같이 보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각자가 보고 싶은 것, 아는 것을 보게 마련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화병에 담긴 꽃을 보고 여러 사람들이 각자가 보고 느낀 것을 나눠보면 서로 다른 경험을 말하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누구는 꽃의 색을, 누구는 꽃의 잎사귀를, 누구는 꽃의 모양을 말합니다. 사실 본다는 것은 단순히 빛의 굴절에 의해 대상을 보는 것이 아니라 결국 우리 마음과 관심이 반영된 적극적인 행위인 것입니다. 그림을 그리는 작가는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눈으로 보고 자신의 마음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대상을 자기 안에 한번 더 걸러서 표현을 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