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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예수로 보는 "예수 수난사"(마르코 복음)

James Chae 2012. 1. 17. 16:54



[역사적 예수로 보는 예수 수난사]



예수 수난사(마르코 복음)


저자 미상


이제까지 보았듯이 예수께서는 오로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뜻을 설파하고 체현하는데 혼신의 노력을 기울이셨다. 이처럼 철저한 삶은 처절히 막을 내리게 마련이다. 일찍이 예루살렘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최후를 이야기로 엮었다. 70년경 마르코는 그 이야기를 채록하였다(14-15). 그 줄거리는 다음과 같다.
예수께서는 30 4 6일 목요일 저녁 예루살렘 시내 어느 집 이층 방에서 제자들과 함께 마지막 저녁 진지를 드신 다음 올리브 산기슭에 있는 게쎄마니 숲으로 가셨다. (14:22-26)게쎄마니에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면서 외로이 기도하시다가 제자 유다의 배신으로 체포되어 밤중 내내 가야파 대제관의 저택에서 종교재판을 받으셨다. 이튿날 아침 총독 관저 헤로데 궁전으로 압송되어 빌라도 총독에게 심문을 받고 정오쯤에 국사범이라는 죄목으로 사형언도를 받으셨다(요한19:14). 곧 이어서 예루살렘 북쪽 성곽 밖에 있는 골고타 형장에서 십자가에 못박히시고 오후 세 시경에 숨을 거두셨다. 그분의 춘추는 대략 36. 그날 해가 지면 해방절 겸 안식일이 시작되겠기에(요한18.28; 19.14.31)아리마태아 사람 요셉이라는 사람이 본티오 빌라도 총독의 허락을 받고 서둘러 장례를 치렀다. 이것이 마르코 14-15장에 실린 수난사의 줄거리이다. 이제부터 예수님의 최후 사건들을 하나씩 살펴보자 



3-1.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14,32-42)
예루살렘 성전 동쪽, 올리브 산 기슭에 있는 게쎄마니에는 올리브나무가 무성했고, 올리브 기름을 짜는 집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곳을 게쎄마니(기름틀)라 불렀다. 예수께서는 시시각각 다가오는 죽음을 예감하신 나머지 "몹시 놀라고 번민하시며.... 죽도록 근심에 싸여" 하느님 아빠께 간절한 기도를 바치셨다. "아빠 아버지, 아버지께서는 어떤 일이든 하실 수 있사오니, 이 잔을 제게서 거두어 주소서, 그러나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소서." 


기도는 독백이 아니고 대화다. 그러므로 하느님을 느끼고 부르게 마련이다. 예수님은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르셨다. 아빠는 본디 어린 아가가 말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자기 아버지를 부르고 가리키는 아가말이다. 부자관계가 무척 친밀한 경우에는 어린이가 어른이 되어서도 아빠라는 호칭을 사용하는 경우가 더러 있었다. 어쨌거나 아빠는 정겨운 호칭임에 틀림없다. 예수께서 머나먼 하느님, 두려운 하느님을 얼마나 가까운 하느님, 정겨운 하느님으로 느끼셨으면 아빠라고 부르셨을까


예수님도 죽음을 두려워하셨다. 그러기에 죽음의 잔을 거두어 주십사고 전능하신 아빠께 매달리셨던 것이다. 예수님의 인간적인, 너무나도 인간적인 모습이 환히 드러난다. 죽음의 독배를 생수인양 쭉 들이킨 소크라테스와는 얼마나 대조적인가? 이 철학자는 영혼불멸을 확신한 나머지 기꺼이 죽음을 맞아들였다. 그러나 너무나도 인간적인 예수께서는 죽음을 두려워하셨다. 피하고자 하셨다. 그렇지만 하느님의 뜻이라면 받아들이기로 작심하셨다.

3-2 체포되시다(14,43-52)
예수께서는 30 4 6일 목요일 밤 게쎄마니에서 기도하시다가 최고의회에서 보낸 하인들에게 체포되셨다. 피하려면야 캄캄한 밤이니 얼마든지 달아나실 수도 있었으리라. 해방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순례 온 수십만 군중 사이로 쉽게 잠적하실 수 있었으리라. 그러나 당신의 삶을 죽음으로 날인하는 것이 하느님 아빠의 뜻이라고 확신하셨기에 묵묵히 대제관 저택으로 붙들려 가셨다. 그때 제자들은 모두 갈릴래아로 달아나고 베드로만은 대제관 저택까지 따라가서 최고의회의 심문을 지켜보다가 결국 스승을 부인하고 역시 갈릴래아로 도망쳤다.


3-3 가야파의 심문 (14,53-65)
예수께서는 30 4 6일 목요일 밤부터 7일 금요일 새벽까지 대제관 가야파의 저택에서 심문을 받으셨다. 대제관의 저택 위치는 밝혀지지 않고 있으나, 시온 성문 앞에 있는 아르메니아 정교회 묘지로 추정된다. 대제관 측근들은 밤새 예수님을 심문한 결과, 하느님을 모독한 중죄인으로 단정하고, 율법에 따라 사형에 처해 마땅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총독 홀로 사령언도와 사형 집행을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저들은 7일 금요일 아침에 빌라도 총독 관저로 예수를 압송하였다.

3-4 빌라도 재판(15.1-15)
본티오 빌라도는 26~36년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의 총독으로서 지중해변 가이사리아에 상주했다. 그런데 30 4월 초군 해방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상경하여, 예루살렘 서부 언덕에 자리잡은 헤로데 궁전에서 정무를 보았다. 마침 예수 사건이 터져 30 4 7일 금요일 오전 중에 예수 사건을 심리하고 정오쯤에 사형 언도를 내렸다


대제관이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기면서 고발한 죄목은 신성모독 죄목이 아니고 정치적인 죄목이었으니, 곧 예수께서는 로마 황제의 윤허도 없이 "유다인의 임금"으로 자처했다는 것이었다. 빌라도는 예수께서 정치와는 거리가 먼 분이심을 간파했지만, 최고의회의 사주로 조작된 민의에 밀려 그만 사형 언도를 내리고 당일 사형 집행을 명했다. 총독의 눈에는 갈릴래아 출신 시골청년의 운명쯤은 대수롭지 않았던 것이다.

3-5 십자가에 달리시다 (15,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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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정오가 지나 예수께서는 총독 관저인 헤로데 궁전에서 예루살렘 북쪽 성곽 밖에 있는 골고타 형장으로 십자가를 지고 가셨다. 기운이 핍진해서 잘 걷지 못하셨던가, 로마군 형리들이 리비아 키레네 출신 시몬을 징발하여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가도록 하였다.
형장에 이르러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기 전에, 로마 군인들은 그 분을 마취시키려고 포도주에다 몰약을 타서 마시도록 했으나 예수게서는 끝내 사양하셨다. 맑은 정신으로 최후를 마치고자 하셨던 것이다.

3-6 돌아가시고 묻히시다(15.33-47)
마르코 복음서에 의하면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께서는 숨을 거두시기 직전에 모국어인 아람어로 딱 한 말씀만 하셨다. "엘로이 엘로이 레마 사박타니"(나의 하느님, 나의 하느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습니까?)라는 말씀인데, 이 말씀만 떼어놓고 보면 절망적인 절규처럼 들릴 수도 있다. 프랑스 문호 앙드레 지드가 그런 해석을 내렸다. 그러나 저 임종게는 시편 22.2라는 사실에 유념하라. 시편 22편은 곤경에 처한 의인이 바치는 간구이다. 그러니 예수께서는 하늘과 땅 사이에 외롭게 매달려 있는 동안 힘을 다해서 시편 간구를 바치고 숨을 거두셨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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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금요일 서산에 해가 지면서 안식일겸 과월절이 시작 되겠기에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이라는 최고의회 의원이 서둘러 예수님의 장례를 치렀다. 이렇게 역사의 예수는 끝났다. 아닌 끝장났다. 그렇지만 불가사의하게도 예수 사건은 계속 되었고,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예수 부활신앙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