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신학이야기

예수시험설화_공관복음비교연구

James Chae 2012. 1. 17. 17:45

[공관복음비교연구: 예수시험사화비교]




예수시험설화(說話)

(4:1~11, 1:12~13, 4:1~13)


채창완

 

예수시험설화의 역사성이나 사실성을 따지기에 앞서, 물론 문자 그대로 믿는 자들도 있겠지만, 우리는 이 글의 기록목적과 문학적양식비판의 관점에서 이 설화를 다뤄야 한다. 그래야만 이 설화를 기록한 복음서 저자들의 저작 목적과 그 메시지를 분명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필요한 것이 편집비평과 양식비평일 것이다. 필자는 먼저 이 설화의 편집 상태를 파악하여 공관복음서 간의 차이점과 편집의도를 살펴볼 것이다. 그런 다음에 양식비평적으로 이 글의 용도와 의미를 밝혀 보고자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이 설화를 기록한 저자의 의도에 가까이 접근할 수 있고 각 복음서가 기록된 당시의 삶의 자리(Sitz im Leben)’에서 공관복음서들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편집분석]

예수시험설화는 마가자료와 Q자료를 기본으로 이루어졌고, 마태.누가저자는 이를 근거로 하여 각각의 서술방식을 취해서 저자나 혹은 저자가 속한 공동체의 목적에 따라 내용을 보충하거나 빼거나 하는 식으로 기록했다. 필자는 여기서는 가장 먼저 쓰여진 것으로 믿어지는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마태.누가복음을 각각 비교하는 형식으로 진술해 갈 것이다. 그러므로 먼저 마태.누가복음 중 마가복음과 공통으로 겹치는 마가자료를 빼고, 마태.누가복음에 공통으로 남는 부분이 Q-자료이다. 여기에 마태.누가복음의 Q-자료까지 빼고 나면 자연스럽게 각 공관복음서들의 독특한 자료들 만 남는데 이것이 특수자료 또는 S-자료가 된다. 이 자료들은 각 저자들이 각각 다른 전승을 따랐거나 아니면 자신이나 공동체의 목적에 의해 각색했거나, 추가 또는 삽입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이 특수자료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이 설화를 기록한 저자의 서술 목적을 어느 정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마가복음이 가장 간단한 형태를 취하는 것으로 보아 공관복음서 중 가장 먼저 쓰여졌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 다음이 마태복음이고 마지막이 누가복음 순이다. 누가는 마가와 마태의 것을 종합하거나 가장 많은 삽입구를 넣고 있기 때문에 가장 나중 것으로 사료된다. 마가복음에서 마태.누가복음과 공통으로 겹치는 부분을 빼고 나면 순수한 마가복음만의 특수자료만 남는데, 이는 바로 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1:13)”라는 구절이다.(도표참조) 그런데 왜 마태.누가저자가 마가복음의 이 부분을 생략했을까? 그 이유는 마태저자의 경우, 마태복음의 주제 중 하나인 , ‘왕으로 오신 메시야와 맞지 않아서 일 것이다. 누가저자의 경우, 역사적인 사실성을 강조하려 노력한 누가복음의 전반적인 분위기와 너무도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이는 마가저자가 척박한 광야를 설명하기 위해 은유적으로 표현한 것이고, 마태.누가저자도 이를 알고 있었겠지만, 그렇다고 마태.누가저자가 문자 그대로들짐승과 함께 계신 예수를 기록하는 데는 상당한 부담을 느꼈을 것으로 짐작된다.


다음엔 마태.누가저자가 공동으로 사용한 Q자료에 대한 것인데 이는 바로 예수의 세가지 시험에 대한 구체적 진술 부분이 된다. 여기서 마태.누가저자는 Q자료의 예수 시험의 순서를 바꿈으로써 각각의 편집의도를 드러낸다. 마태.누가저자 모두 돌이 빵이 되게 하는 유혹을 먼저 기록한 후 바로 뒤이어서 마태저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유혹을 먼저 적고 다음에 세상 권세에 대한 유혹을 적고 있다. 누가저자는 이 두 부분의 순서를 반대로 기록했다. 어떤 순서가 Q자료의 순서인지는 모르지만 마태저자는 하나님을 시험하는 유혹, 또 누가저자는 세상 권세에 대한 유혹을 각각 더 중요하게 생각한 것이 분명하다. 이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의 전체적인 맥락에서도 이해될 수 있는 부분이다. 유대교적이고 민족주의적인 마태복음은 세상의 유혹보다 하나님에 대한 시험을 더 우의에 뒀고, 세계화와 이방인들을 생각하고 쓰여진 누가복음은 세상의 유혹하나님에 대한 시험보다 더 우선시 했다고 할 수 있다.


아무튼 이 Q자료 부분을 빼고 나면 결국 우리는 각 복음서들의 특수자료를 보게 된다. 특수자료에 대해 언급하기 앞서 한가지 살펴보고 갈 것은 마태.마가복음에만 있고 누가복음에는 없는 자료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1:13, 4:11)”이다. 이 구절은 마태저자가 마가자료를 근거로 쓴 것으로 생각된다. 그런데 누가저자가 왜 이 마가자료를 사용하지 않았는지 의문이 생긴다. 그것은 누가복음의 전체 관심사인 소외된 자들에 대한 관심과 왠지 동떨어져 보이기 때문이 아닐까? ‘천사들의 시중을 받는 예수는 누가복음 2227절의 섬기러 온 예수와도 맞지 않고, 가난한 목자들의 환대를 받고 태어나신 서민적 예수와도 이미지가 맞지 않는다. ‘예수는 섬기려 오신 분이시지 섬김을 받으러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이 누가저자의 입장이다.


마가복음의 특수자료는 이미 앞에서 언급했고 여기서는 먼저 마태복음의 특수자료를 살펴보자. 마태복음 5,6,8절 등의 조사나 부사 등은 그냥 넘어가자.(도표참조) 그리고 4절을 보면 마태저자는 신명기83절을 누가저자에 비해 모두 적고 있다. 마태저자는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를 빠짐없이 적어 넣고 말씀을 강조함으로써 율법의 유효성을 강조하는 마태복음의 전반적 특징과 일치시킨다. 이에 반해 누가저자는 이 부분을 생략함으로써 율법 지향적인 성격을 배제하고 이방세계 지향적이고 회개와 용서중심적인 누가복음의 전반적인 성향과 일치시켰다.


마태복음 4 3절의 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는 마태저자가 시험하는 자인 사탄을 의인화해서 강조한 표현으로 여겨진다. 그리고 마4 10절의 사탄아, 물러가라는 예수의 호령은 마태복음 1623절의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에서도 마태저자가 사용하는 것으로 보아 마태저자의 개인적 표현이며, 이는 마태복음의 위엄 있는 왕이신 예수의 이미지에 부합된다. ‘사탄을 호령하는 왕이신 예수의 위엄을 마태저자는 표현하려 했던 것이다.


다음은 누가복음의 특수자료를 살펴보자.


누가복음 41절에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는 누가저자의 삽입구가 나온다. 누가저자는 이 삽입구를 넣어서 같은 절에 성령을 두 번 반복 사용하여 성령의 활동을 강조하고 있다. ‘성령으로 가득하여라는 표현은 성령의 내주하심을 설명한 것으로 성령의 역사를 강조하고 있는 누가복음 전체의 내용과도 일치한다. 4 2절과 13절의 에 대한 언급은 누가저자의 역사가적 관심의 표현으로 여겨진다.(여기서부터는 참고 도표를 참조할 것) 그리고 나머지 단편적인 조사나 어미, 접속사 등은 누가저자의 문체로 여겨진다. 누가복음의 삽입구 중 가장 두드러지는 것은 아무래도 4 6절이다. 누가저자는 이 한 절을 통째로 집어넣어 무엇을 설명하려 한 것일까?  7절 내용은 마태복음의 경우와 같이 Q자료를 그대로 사용한 것으로 보아 누가저자는 6절을 삽입함으로써 더욱 강조하려는 의도를 보인다. 강조할 것은 바로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라고 말한 사탄에게 세속적인 권세와 영광이 귀속되어 있다는 것이다. 누가저자는 누가복음 전반에 걸친 재물과 부()’에 대한 비판의 근거를 여기서 보여주려 한 것 같다. 세속적인 부귀영화는 사탄에게 속한 것임으로 우리가 이를 경계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양식 비평]

우리는 이 설화에서 표면적인 양식과 신학적 내용을 구별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설화의 진정한 숨은 의미를 알 수가 없다. 문자 그대로 예수께서 사탄에게 시험을 받았다고믿기에는 너무나 석연치 않다. 마가복음의 형식을 보면 가장 간략하면서 또 시험 받는 자세한 내용이 생략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마태.누가저자는 마가복음의 간단한 형태에 Q자료 전승을 접목시킴으로써 마가복음의 내용을 더욱 생동감 있고 구체적으로 표현했다. 이런 Q자료와 같은 전승이 팔레스타인 문화 속에서 더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사탄이 예수에게 행한 3가지 유혹들의 이면을 살펴보면 우린 마태.누가저자가 왜 이를 상세하게 기록했는지를 알 수 있다.


앞서 3가지 유혹의 순서에 대한 마태.누가의 편집의도에 대해서 이미 언급하였으므로, 여기서는 편의상 마태복음의 순서대로 설명을 하려한다. 우리는 왜 사탄이 이와 같은 유혹을 했고 예수께서 왜 이러한 유혹을 물리치셨는지를 깊이 생각해봐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예수의 시험이 결코 그에게만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간 모두에게 해당되는 시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그 점이 예수 시험 전승의 목적이며 그 숨은 의미이다.

 

1) 첫 번째 유혹 : 돌들로 빵이 되게 하라

금식으로 지친 예수에게 배고픔의 필요를 충족시키라는 사탄의 아주 잔인한(?) 유혹이다. 이러한 먹는 것에 대한 유혹은 비단 예수에게만 해당되는 유혹이 아닐 것이다. 인간의 삶 속에서도 우리 인간은 끊임없이 빵 문제해결을 위해 고민하며 배고파 하고 그리고 피땀 흘려 일해야만 한다. 만약 예수가 이 유혹에 넘어 갔으면 아마도 우리 인간들은 먹을 것 걱정 없이 살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인간의 가장 절박한 생존의 위기가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을 예수가 제시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예수는 이 유혹을 단호히 거절하셨다. ? 무엇을 위해? 사람이 빵만 먹고 사는 존재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예수는 날카롭게 간파하셨기 때문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요, 사고하는 존재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존재인 것이다. 예수는 육적인 굶주림이 인간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인간의 정신적 굶주림이 인간을 죽이는 것임을 아셨다. 인간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영의 양식을 먹어야 살수 있는 것이다(여기서 말씀은 인쇄된 책인 성서와 같이 좁은 의미의 말씀이 아니다. 이는 바로 살아 역사하는 역동적인 하나님의 ‘Logos’를 뜻한다. 천지를 창조한  바로 그 말씀말이다). 돌로 만든 빵을 사람이 만약 먹는 다면 인간의 마음과 정신이 더욱 돌 같이 딱딱하게 굳어버려 죽을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예수는 알고 계셨던 것이다.

 

2) 두 번째 유혹 :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려라

뛰어내려라’.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능력을 가진 분에게 해당하는 가장 적절한 유혹이다. 예수가 뛰어내리면 다치지 않을 능력이 예수에게 있다는 것을 사탄도 알고 있었다. 예수는 충분히 그러한 전능한 힘을 가지고 계셨다. 그리고 만약 뛰어내리면 우리는 그가 정말 하나님의 아들임을 더욱 쉽게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즉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세상 사람들이 볼 수 있게 사용했다면 인간은 더욱 예수를 잘 믿었을 텐데 예수는 그렇게 하지 않으셨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고 단호하게 거절하신다. 그렇다면 예수가 뛰어내리는 것이 어떻게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과 연결 지어지는가? 예수의 능력과 권위는 모두 하나님께로부터 오기 때문이다. 인간은 예수와 같이 남보다 나은 자신만의 능력이나 힘을 갖게 되면 그것을 사용하고 싶어 안달이다. 조그만 권세를 가져도 자랑하고 뽐내고 싶어 하는 것이 인간이다. 그러한 모습들을 우리는 소위 신령한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의 행태를 통해 쉽게 확인할 수 있다. 그들은 자신들의 은사를 자랑하고 뽐낸다. 그리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고 그 능력의 주체가 마치 자기인양 착각하기에 이른다.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려 하는 사람들이나 지도자들은 이러한 유혹에 반드시 주의해야 하는 것이다.

 

3) 세 번째 유혹 : 세상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주겠다

예수께서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 세상을 다스리는 세속적 권세와 부귀영화를 보이셨다면 우리는 하늘의 자녀가 아니라 세상의 자녀가 되었을 것이다. 만약 예수께서 세속 세계를 다스렸다면 세계의 정치질서는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랬다면 우리는 우리 위에 군림하는 예수를 볼 수 있었을 뿐, 우리의 고통과 아픔을 함께 나누고 민중의 친구가 되셨던 예수를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굴복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만 섬기라고 강조하고 계신다. 하나님 나라는 결코 세속적인 정치와 경제력, 그리고 군사력 같은 물리적인 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는 맨몸과 맨마음의 가난한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다. 예수께서 민중의 삶을 함께 나누셨던 것 같이 이 세상 속에서 우리도 그러한 길을 따라 갈 때 하나님 나라가 함께하는 것이다. 세속적 힘에 의한 평화는 오래가지 못한다. 세속적 힘은 언제나 민중의 삶을 핍박하고 억압하기만 했지 진정한 평화를 가져 다 주지 못했다는 것을 우리는 인류의 역사를 통해 잘 알고 있다. 이 세속의 세상은 지배자와 피지배자의 갈등 구조 속에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다. 지배자와 피지배자 사이에는 억압적인 힘이 늘 작용한다. 우리는 이러한 세상적인 힘, 억압하는 힘에 굴복해서는 안되고 하나님의 힘에 굴복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숨은 의미가 예수시험설화에 담겨있는 것이다. 많은 고대의 설화들이 인간에 대한 어떤 메시지를 담고 있는 것 같이 이 설화의 경우도 그러한 일반적인 구전설화의 양식을 따르고 있다. 이를 문자적으로 해석할 때 우리는 이 설화의 진정한 의미를 깨닫지 못하고 신비주의적으로 또는 교리적으로 치우치게 되는 것이다.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된 곰에서 우리 한민족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문자 그대로 믿는 사람은 한명도 없을 것이다. 이러한 설화는 양식사적 비평을 통해서만 이해될 수 이다. 마태.누가저자들은 이점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이 Q자료의 전승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이다. 그들은 이 내용의 뒷면에 있는 진정한 의미를 독자들이 깨닫기를 바랬고 그것을 문자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는 마치 이솝우화를 기록한 이솝이 그 내용을 사람들이 문자 그대로 이해하리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았던 것과 같은 것이다. 이런 우회적인 내용 전달 방법은 설화양식이 갖는 강력한 메시지 전달 효과를 가지며 이것이 설화양식의 강력한 설득력 있는 힘이다. 그 목적은 사람들을 훈계하거나 교육하기 위한 것이다. 만약 그 이상을 이야기해야 할 때는 늘 조심성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소위 믿음있는 사람들은 너무 쉽게 성서를 문자 그대로 믿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참고도표]

예수시험사화 비교도표 [Q + Mk]

*표준새번역 개정판 참조

마태복음 4:1~11

마가복음 1:12~13

누가복음 4:1~13

비고

-1절 전반부

-2절 전반부

-1절 중반부

-12

-13절 전반부

-13절 후반부

-1절 후반부

-2절 전반부

-2절 중반부

마가자료를 근거로 한 마태.누가 공통자료

-11천사들이 와서, 예수께 시중을 들었다

-13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

마가자료 생략

마가자료를 마태저자는 사용하고 누가저자는 생략한 경우

마가자료 생략

-12성령이내보내셨다

-13‘…예수께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셨는데…’

마가자료 생략

마가복음의 특수자료

-3그런데 시험하는 자가 와서…’

-4‘…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다…’

-5그 때에…’

-6‘…그리고…’

-8또 다시…’

-10‘…사탄아 물러가라…’

없음

-1예수께서 성령으로 가득하여 요단 강에서 돌아오셨다

-2‘…그 동안…, 그 기간이 다하였을 때에는…’

-3악마가…’

-4‘…악마에게…’

-5그랬더니…,순식간에…’

-6그리고 나서 악마는 그에게 말하였다. “내가 이 모든 권세와 그 영광을 너에게 주겠다. 이것은 나에게 넘어온 것이니, 내가 주고 싶은 사람에게 준다.”

-7그러므로…’

-9그래서…,…,그에게…’

-10‘…,너를 지키게…’

-11또한…’

-13‘…,어느 때가 되기까지 예수에게서 떠나 있었다.’

마태.누가의 각각의 삽입구 : 마태.누가의 특수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