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신학이야기

'먹을 것'과 관련하여 역사적 예수를 보다_역사적 예수와 밥상공동체

James Chae 2012. 1. 4. 21:16



*역사적 예수(존 도미닉 크로산_김준우 옮김한국기독교연구소서울, 2000)를 읽고… 


 


먹을 것과 관련하여 역사적 예수를 보다

역사적 예수와 밥상공동체


채창완


 

 

신비적 신앙에 실천적 분별력이 동반될 때만, 강력하고 지속적인 결과가 뒤따른다.

                                                        -Joseph Klausner-

 

너무나 오랫동안 인류는 카리스마적 예수’, 즉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만 바라보았다. 신앙의 그늘에 가려진 예수의 또 다른 모습, ‘역사적 예수는 늘 역사의 흐름 속에 잘 드러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20세기에 시작된 예수에 대한 역사적 연구의 성과로 아마도 인류는 너무나, 너무나 인간적인이란 말을 이제 이 카리스마적 예수에게 붙여야 될지도 모르겠다. 왜냐하면 카리스마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는 예수 실체의 각각 반쪽의 모습이기 때문이다.


1991년 미국에서 출판되어 선풍적 인기를 끈 크로산의 역사적 예수는 우리가 그 동안 알아왔던 카리스마적이고 도그마적인 예수의 상() 대신에 철저히 비교문화적, 문화인류학적 방법으로 구체적인 증거를 제시하며 역사적인 예수의 모습을 우리에게 하나씩 보여주고 있다. 물론 많은 부분 그의 상상력에서 출발한 가설들이지만 매우 설득력 있는 자료의 제시와 분석으로 앞으로도 많은 부분 연구의 가치가 충분히 있는 책이라는 생각이 든다. 약간 아쉬운 것이 있다면 카리스마적이고 도그마적인 예수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을 들 수 있지만 이 책의 성격이 역사적 예수를 논하는 것임으로 이점은 충분히 이해가 된다. 결국 카리스마적 예수와 역사적 예수의 균형 잡힌 예수상()에 대해서 또 다시 풀어야 할 과제로 우리에게 남겨진 것 같다.


크로산은 그리스.로마 사회를 브로커들의 제국으로 정의하고 관료들이 민중을 지배하는, 그리고 후견인이 없이는 아무것도 이루어질 수 없는 계급과 명예를 중시하는 사회로 설명하고 있다. ‘명예와 수치를 중시한 사회였으므로 이 사회에서는 반드시 사람과 사람, 권력층과 일반인들을 연결하는 후견인을 필요로 했다. 당시의 사회는 중산층이 별로 없이 크게 특권층과 농민층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또 그 속에 다양한 사회 각 계층들 사이에 불평등한 간격들이 존재했기 때문에 이러한 간격을 이어주는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이 브로커 체제였다. 그러나 이 브로커체제는 사회적 불평등한 관계 속에서 존재하는 것임으로 이러한 체제에 대항하는 다양한 저항들이 있었다. 농민계층의 투쟁과 같은 저항들이 있었으며, 사회적으로는 그리스.로마 문화를 비웃는 견유학자들도 등장했다. 크로산은 이러한 교차문화적인 분석들을 통해 로마의 식민지였고 역사적 예수의 삶의 터전이었던 유대라는 사회를 설명했다. 그는 예수가 출신적으로 가난한 농부였다는 것과 사상적으로는 견유학파에 가깝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기존 체제에 반대한 주술자와 혁명가의 역사적 전통 위에 예수가 서 있다는 결론을 내린다.


 이 책의 핵심 부분인 제3부에서 크로산은 예수는 로마와 유대 사회의 모든 연결된 브로커 체제를 하나도 남김없이 붕괴시키려 했다는 점을 강조하며 파격적인 예수운동의 핵심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주술과 식사이다. 주술은 치병사역이며 식사는 밥상공동체이다. 이 두 가지 사역은 예수의 제자파송의 설교’(9:35~11:1,6:6~13,9:1~6) 속에 모두 들어있다.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고 치유하며 함께 밥상공동체를 이루어 브로커 체제를 허물고 서로 평등하고 나누는 공동체를 만들라는 메시지로 크로산은 이 성서 구절들을 설명하고 있다. 매우 흥미로운 것은 크로산의 예수연구의 최종 핵심 중 하나가 식사인데 이는 민중신학에서 말하는 밥상공동체라는 말과 개념적으로 전혀 다르지 않다는 점이다. ‘예수운동과 밥상공동체(박재순 저)’라는 책이 크로산의 책보다 몇 년 먼저 나왔다는 사실도 재미있지만 나는 서로 다른 나라에서 시작한 예수의 연구가 이렇게 일치된 결론에 이른다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이 말은 달리 말해 이 밥상의 개념이 예수 운동의 중요한 그 무엇임에는 틀림없다는 확신을 나에게 심어준다.


나는 여기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져본다.


왜 예수는 이토록 먹을 것에 집착하셨을까?라는 것이다. 유대인들로부터 먹기를 즐기는 자요 술을 좋아하는 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하시면서도 그는 끊임없이 먹을 것과 함께 그의 메시지를 전한다. 예수와 먹을 것과 관련한 이야기가 복음서에는 수도 없이 많이 나온다. 안식일에 제자들이 벼 이삭을 베어 먹고 유대인들로부터 비난을 받았을 때 제자들을 변호하신 사건,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신 사건, 시장하시다고 철 아닌 무화과 나무에서 열매를 찾으신 사건, 우물가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목마르다고 물을 청한 사건, 그리고 최후의 만찬 뿐만 아니라 부활 후에도 제자들과 함께 식사를 하신 사건 등과 같이 많은 사건들이 이 먹을 것과 관련하여 일어나거나 아니면 예수가 식사하시던 자리에서 일어난 사건들이었다.


그렇다면 먹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먹는다는 것은 사람의 생명을 유지시켜주는 행동이며 활동의 에너지를 먹을 것으로부터 얻게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먹는다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활동의 부분이며 인간에게 없어서는 안될 행위이며 사건인 것이다.


먹을 것때문에 인간은 역사를 통해 치열한 싸움을 해야만 했고, ‘먹을 것을 해결하기 위해 온 인류는 고민해왔고, 고민하고 있으며, 또 앞으로 고민하게 될 것이다. 유전공학은 인류가 먹거리들의 유전자 변이에 의해 먹을 것에 대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이 말을 하고 있지만 과연 먹을 것의 문제가 먹거리의 물질적 수량과 부피의 확대로 모두 해결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이 먹을 것에는 물질적인 요소와 인간의 욕망과 관련한 비물질적인 요소도 반드시 함께 존재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서 먹을 것생산에 관련한 문제일 뿐만 아니라 또한 분배의 문제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역사를 통해 이 먹을 것이 늘 공평하게 분배되었던 적이 한번도 없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성서 속에는 만나 사건이나 사도행전에 언급된 나눔의 공동체 사건이 있지만 이는 어떤 특수한 상황에서 일어났던 일시적인 사건에 불과했지 결코 전 인류가 공유하는 보편적인 분배의 사건은 아니었다(물론 이 사건이 예수의 밥상공동체 운동과 직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을 터이지만). 이 세상에서 어느 누군가가 이 먹을 것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이 지구상의 먹거리 총생산량이 한정되어 있음으로, 반드시 어느 누군가는 상대적으로 먹을 것을 적게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뜻한다. 현대 사회에서 이 먹을 것으로 대체되기도 했지만 결국 돈으로 인간은 먹을 것을 살 수 밖에 없으므로 그 근본적인 성격상 둘 사이의 차이는 없다. 이와 같이 먹을 것은 늘 분배를 전제로 한다. 힘있는 자들은 더 많이 갖고 그렇지 못한 자들은 더 적게 가질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이러한 분배의 불균형이 인간의 빈부의 차이를 만들고 세상을 평등하지 못한 계급사회로 만들게 되었다는 것이 공산주의자들의 주장이 아니었던가! 그러나 이 주장이 역사적 예수의 주장과 일치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나는 지울 수 없다.


먹을 것과 관련하여 중요한 또 다른 하나는 먹을 것을 먹는 식사 또는 밥상이 가지고 있는 사회적 기능이다. 크로산은 식사는 사회적 계층을 확립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다고 말한다. 사회 각 계층의 사람들은 결코 자신과 다른 계층의 사람들과 함께 식사를 하지않는 법이다. 상대가 자신과 비슷하거나 혹은 똑같은 계층의 사람일 때 함께 식사하는 것이 가능하다. 이런 의미에서 식사는 불평등한 사회적 기능들 중 하나인 것이다. 그러나 절대 섞여서는 안 될 계급사회의 식사질서를 예수는 과감히 파괴하시고 평등공동체의 본을 보여주셨다는 것이 크로산이 주장하고 있는 바이다.


사람들은 거지에게 동냥을 하거나 먹을 것을 줄 수는 있지만 그를 자신의 식탁에 초대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님을 안다. 함께 한 식탁에서 식사를 한다는 것은 그 식탁에 모인 사람들이 서로 평등한 조건 하에 있다는 것을 뜻함으로 신분이 다른 사람과 식사를 함께 한다는 것은 결국 신분의 질서를 파괴하는 것이 된다. 더욱이 거지와 함께 식사를 하는 경우는 거지의 더러운 옷의 역겨운(?) 냄새를 견뎌야 할 뿐만 아니라 식사 예절을 어기는 것에 대해서도 인내해야 하는 많은 어려움들이 실제하는 것이다. 결국 섞일 수 없는 다른 계층의 사람과 함께 식사를 한다는 것은 사회적인 모든 관습과 금기를 넘는 엄청난(?) 모험이라고 할 수 있겠다.


가난한 농부 예수는 이러한 사회적 금기를 깨고 사회적 계층을 분리하는 식사의 사회적 기능을 부정했다. 그는 어느 누구와도 거리낌없이 식사를 하셨다. 그의 식탁에 초대되는 사람들은 창녀, 세리, 빈민, 농부, 외국인 등과 같은 당시 사회적으로 죄인 또는 불결한취급을 받는 사람들이었다. 즉 그들과는 함께 식사를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함께 식사하는 행위 만으로도 죄인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이데거의 해석학적 방법론인 언제(when)’ 그리고 어디(where)’를 적용해보아도 예수운동의 이러한 성격은 분명해진다. 예수는 늘 민중이 원할 에 함께 하셨고, 또 민중이 원하는 장소는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으셨다. 고통 받는 민중과 함께할 가 바로 식사의 때였으며 그들과 함께하는 장소가 바로 밥상이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역사적 예수민중의 터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겠다.


예수께서 허문 밥상의 권위는 당시의 문화와 사회에 대한 도전일 뿐만 아니라 모든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도전이었다. 이는 불평등하고 계급적인 모든 사회질서의 근간을 흔들 수 있는 무서운 힘을 가진 도전이었다. 유대인들이 예수의 밥상공동체운동을 보고 비판의 활을 쏘는 것 만큼이나 그들은 매우 두려웠을 것이다. 그 두려움은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불평등한 사회 체제가 도전 받아 위태롭게 될 수도 있고, 또 더 나아가 그들이 소유한 기득권을 예수나 민중에게 빼앗길까 두려웠던 것이다. 이러한 예수의 도전이 제국의 침략과 약탈보다도 더 두려웠던 것은, 제국이 이러한 유대의 사회적 신분질서와 분배질서를 인정해 주었던 것에 반해, 예수는 이러한 질서를 완전히 뒤집어 엎는 혁명가였기 때문이다. 만약 예수운동이 한자리에서 만 일어났다면 예수도 똑 같은 브로커 체제를 유지했을 터이지만 예수는 결코 한자리에서 오래 머물지 않고 민중들 속으로 끊임없이 움직이시는 방랑적 급진주의운동을 전개하셨다고 크로산은 주장한다. 병자들을 찾아 다니셨고 배고프고 고통 받는 사람들을 찾아 늘 움직였던 예수였다. 그의 공생애 3년 동안 그는 하루도 머리 둘 곳이 없을 정도로 바쁘게 이 밥상공동체운동을 전개해 나가셨다.


나는 역사적 예수의 예수운동의 핵심중 하나인 이 공동식사에 대한 크로산의 견해에 동의한다. 이는 박재순 교수가 사용한 밥상공동체와도 의미상 같은 것이며, 또한 예수운동이 바로 민중운동과 같은 선상에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밥상공동체운동영적이며 물질적인 자원들을 함께 나누는 평등주의운동이라고 크로산은 결론짓는다.


누구와 함께 식사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이 이 책을 읽고 난 후 나에게 던져진 질문이다.그 말은 누구와 나눔의 삶을 실현할 것인가라는 근본적 질문인 것이다. 카리스마적인 예수, 신앙의 대상으로서의 예수가 아닌 2000년 전 저 중동의 작은 나라에서 살다간 한 30대 청년의 삶을 나는 상상해본다.


: 아주 지극히 처참한 환경 가운데 태어나고 가난한 농촌에서 성장한 한 청년이 있었다. 교육도 받지 못한 그가 어느 날 갑자기 깨달음을 얻고 하나님의 나라를 논하기 시작하며 정신 없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결혼도 마다하고 가족도 멀리하며 민중이 원하는 장소에는 어김없이 나타나며 죄인들과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민중들과 함께 울고 웃고, 그리고 그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는 일을 하고 다녔다. 그는 누구를 만나도 거리낌없이 상대했다. 그가 만난 사람들은 권력자들 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각계각층의 사람들이었다. 기존 종교와 기득권층에 대단한 불쾌감(?)을 보인 그는 늘 기득권층을 향해 쓴 소리(?)를 하고 다녔다. 그러나 그의 쓴 소리는 기존 기득권층에게는 도전이었으며 반대로 가난한 민중에게는 희망의 소리였다. 결국 유대와 헬라 제국은 그를 살려둘 수 없었으며 질서를 파괴한 반체제 운동을 전개했다는 명목으로 그는 죽음을 당하게 된다. 30대의 청년 예수, 그는 인생의 가장 왕성한 시기에 가장 완벽한 하나님의 나라의 본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자신의 삶을 마감했다. 그러나 그의 죽음은 기득권자들의 승리가 아니라 오히려 패배였음을 그는 자신의 부활로 증명했다. 부활이 실재적인 사건이었는가 아닌가는 역사적 예수에게 중요한 문제가 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의 예수운동은 수 천년 동안을 역사 속에서역동하며 온 인류에게 감동과 영향과 도전을 주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가 부활하여 내 안에 그리고 우리들 사이사이 가운데에 존재하고 계시다고 믿는다. 그의 존재는 언제나 예수운동을 통해서만 느껴지고 역사 속에서 그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역사적 예수와 카리스마적 예수의 만남의 지점에 예수의 밥상공동체운동이 존재한다. 이 운동은 예수의 사랑 실천의 결정체이다. 오래전에 들었던 사랑은 움직이는 거야라는 한 tv선전 카피가 생각난다. 나는 이 말이 예수 운동에 가장 적합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사랑은 동사이지 표현과 감정 만은 아닌 것이다. 결국 어떻게 살 것인가 라는 질문은 어떻게 사랑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되는 것이다. 여기에 나의 고민이 있다. ‘신앙과 실천의 문제, 즉 어떻게 실천할 것인가라는 문제이다. 실천에 대한 구체적인 전략과 전술은 이미 역사적 예수가 그 본을 보이셨다. 결국 나에게 남는 것은 오직 행함뿐이다. 여기에 내가 역사적 예수 앞에서 변명할 수 없는 그 무엇이 있다는 것을 직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