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James Chae 2021. 2. 11. 23:09

Vincent van Gogh, The Red Vineyard, 1888. 자료출처 : 드림투게더(http://www.thedreamtogether.com)

 

 

2020.9.20. 가해_연중25주일_감사성찬례

요나 3:10-4:11_시편145:1-8_필립 1:21-30_마태 20:1-16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자비)”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사제

 

어두컴컴한 새벽부터 용역사무소 앞은 일용직 일자리를 얻기 위해 몰려든 많은 사람으로 북적입니다. 하루 벌어서 하루를 살아야 하는날품팔이의 ”.  특히 추운 겨울 혹독한 한기가 몰아쳐도 그들은 자신들의 몸뚱이 하나에 의지하여 그곳에 모입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그날 하루의 생계가 막막해집니다. 부양할 가족이 있는 사람들에게는 가족을 면목조차 없습니다. 비나 눈은 그들에게 가장 치명적인 아픔을 줍니다.  그런 날의 아침은 정말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을 절감하게 됩니다. 삶은 정말 녹록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복음 20장의포도원 일꾼과 품삯이야기는날품팔이의 비애를 느끼게 합니다. 오늘날이나 예수님 시대에나 일용직 일자리는 한정되어 있지만, 일자리를 원하는 자는 넘쳐납니다. 그곳에서는 우선 건강한 사람과 있는 사람, 능력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 약삭빠르고 성실한 사람 등이 환영을 받는 법입니다. 게으르고 힘없는 사람을 누가 고용하겠습니까? 힘이 없고 기술도 없다면 차라리 약삭빠르기라도 해야 남의 눈에 띄어 고용이 되겠지요. 이도 저도 아닌 사람은 그곳에서 살아남기가 어렵습니다. 개인의 운명으로 치부해버리기에는 너무나 아픈 우리의 현실입니다.

 

포도원 주인이 직접 날품팔이를 고용하는 것은 아마도 노예가 없는 중간 정도 규모의 농장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이고, 수확철이라 매우 바쁜 날이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주인은 다섯 번이나 일꾼을 모집하러 나간 거지요. 많은 교부들은 이를 종말론적인 급박함을 표현한 것이라 해석합니다. 우의적인 해석이 어떤 것이든 우리는 이야기에 집중해 보겠습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포도원 주인이 시간대로 각각 다른 조건을 내세웠다는 사실입니다. 이른 아침에 고용된 사람들은 데나리온 하루 품삯으로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9시와 12 오후 3시에 고용된 사람들에게는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라고 약속합니다. ‘ 데나리온이라 명시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오후 5시에 고용된 사람들에게는 아예 품삯 얘기 조차 꺼내지 않았습니다. 

 

마태오 같이 치밀한 사람이 이러한 내용을 간과했을 리가 없습니다. 여기에는 마태오가 말하고자 하는 특별한 메시지가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마태오 특수자료 다른 복음서에는 나오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마태오 특수자료 마태오의 신학과 편집 의도를 가장 드러냅니다. 마태오는 특수자료를 마태오 19 27~30절의 배의 받을 것이라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는 부분 다음에 자료를 배치합니다. 그리고 19 30절에그러나 첫째였다가 꼴찌가 되고 꼴찌였다가 첫째가 되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라는 구절을 배치하고, 이를 오늘 이야기 마지막인 20 16절에 다시 한번 배치합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첫째와 꼴찌를 순서를 바꿔 편집합니다.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것이다.” 아마도 같은 문장에서 단어의 순서를 바꿔 꼴찌를 강조하려 했던 같습니다. 이를 통해 마태오 기자의 의도는 분명해집니다. 

 

우리는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앞부분으로 거슬러 올라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마태오복음 18장의교회설교부분입니다. 교회 설교는 크게 개의 주제로 나뉩니다. 첫째는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이고 둘째는용서 대한 내용입니다. 여기에서 마태오 공동체의삶의 자리 드러납니다. 많은 학자들이 마태오 공동체는 시리아 지역에 있던 유대계 그리스도 교회라고 생각합니다. 이들은 유대 전통 위에 율법의 새로운 해석자로,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를 믿었던 공동체입니다. 또한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아직 유대교적 율법에서 자유하지 못한 공동체로 오해를 받았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마태오 공동체는 극심한 분열을 내부적으로 겪고 있었던 같습니다. 제자 중심의 교회로 시작한 마태오 공동체는 작은 자들에 대한 포용심과 신자들 간의 용서를 잃은 교회가 되었던 같습니다. 그러한 배경이 아니었다면 결코 마태오는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나 용서에 대해 강조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의 계보를 잇는 12 사도들이새로운 이스라엘임을 고백한 교회. 그러면서 공동체는 중심에서부터 기득권의 권한이 막강해지며, 차츰 주변의 작은 자들에게 소홀해지면서 이는 교회의 갈등의 요소가 됐던 같습니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말씀을 우리는 이해했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오 공동체에 처음부터 주님을 따르던 제자들과 연관된 사람들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이 있었을 겁니다. 그들과 새로 합류한 사람들 간에 생겨난 간극. 첫째가 자들은 기득권을 가지려 했을 거고, 나중 자들은 소외를 느꼈을 겁니다. 누가 먼저고 누가 정통이고 하는 논쟁이 있었을 겁니다. 새로운 개종자들은 좀처럼 중앙으로 들어갈 수도 없었을 겁니다. 사도성의 기틀 위에 중심을 잡고 시작한 공동체는 좀처럼 중앙을 새로운 사람들에게 내어줄 생각이 없었을 겁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끊임없이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와 섬기는 자는 먼저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메시지를 계속해서 말하고 있는 겁니다. 정말 복잡하고 바람 없던 마태오 교회였습니다.

 

마태오는 오늘 말씀을 통해선한 포도원 주인이신 주님에 대해 말하고 싶었습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보면 첫째로 자나 나중에 자나 모두가 같은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이야기를 깊이 들여다보면 여기에서 우리는 하느님의 무한한 배려와 사랑을 깨달을 있습니다. 데나리온의 돈은 노동자의 하루 품삯입니다. 이는 작은 밀전병 10 정도를 있는 돈입니다. 한마디로 가족이 하루 겨우 입에 풀칠할 정도의 금액입니다. 아침 일찍 고용된 사람들은 분명 건장한 체격과 부지런함과 약삭빠름과 전문성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누가 봐도 사회적으로 무리가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남들보다 일찍 일어나 일자리를 얻으러 나가면 쉽게 고용되는 능력 있는 일용직 노동자들입니다. 가족에 대한 책임감도 커서 가족도 부양하고 성실했을 겁니다. 그래서 그들은 아침의 노동 시장에서 선택을 받는 별다른 어려움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해가 뜨고 포도원 일이 한창 시작된 9, 12, 오후 3시에 고용된 사람들은 마디로 노동 시장에서 2류로 분류되는 사람들이라 있습니다. 그들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모르지만, 이른 아침에 고용되지 못했다는 사실로 짐작컨대, 아침 일찍 고용된 사람들보다 뭔가가 모자라는 사람들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들이 고용되고 되고는 그날의 운수에 달려 있습니다. 이미 모든 농장주들이 부지런한 날품팔이들을 고용해 후에 남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마태 20:7)

 

그들은 차마 가족에게 미안해서라도 집으로 수도 없었을 겁니다. 일없이 주변을 배회하며 혹시나 찾아올 고용의 기회를 기다리며 시간을 보냈을 겁니다. 오늘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가족들은 굶을 것이 분명합니다. 아이들 학비도 내야 하고, 학용품도 사야 하고, 밀린 외상값도 갚아야 하는데아마도 그들은 점심도 굶고 자리를 지키고 있었을 겁니다. 어쩌면 그들은 아침 일찍 일어나지 못하는 게으른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일하기 싫어 하루 종일 빈둥거리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선택받지 못한 것이 그들의 그러한 운명 때문일지 아니면 그들의 부족한 능력과 게으름 때문일지, 그것은 선한 포도원 주인이신 우리 주님께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주님은 그들이 일자리를 얻지 못하면 일용할 음식조차 받지 못할 것에 마음 아파하셨습니다. 그들의 능력 부족과 게으름을 탓하지도 않으셨습니다. 그들이 아침 일찍 고용된 사람들보다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주님께서도 알고 계셨을 겁니다. 그러나 사람의 기본 생존권은 그들의 능력과 무관하게 보장을 받아야 하는 법입니다. 그것이약육강생 동물적 본능과 다른 인간 존엄의 가치입니다. 주님께서는 조각 먹지 못하고 굶주릴작은 자들 아픔을 느끼셨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은 기도를 가르쳐주신 겁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십시오.”(마태 6:11 비교)

 

오늘 말씀의 문장으로 돌아갑니다.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있다.”(마태 20:1)

하늘 나라는 “하느님의 나라 유대식 표현입니다. 다른 말로천국이지요. “천국이란 말이 너무 오해의 소지가 있어 공동번역에는하늘 나라라고 표현한 같습니다. 주님께서 말씀하신하늘 나라에 대해 많은 신학적 해석이 있지만, 사실 어느 하나 흡족한 답을 말해주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현존과 통치가 미치는 이란 표현을 많이 사용하곤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누구도하늘 나라는 이렇다고 자신 있게 말할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마태오 복음서에 나온하늘 나라에 대한 비유를 통해 어렴풋하게 이를 유추해볼 뿐입니다. 분명한 것은 오늘 이야기를 보면하늘 나라는 우리의 경험과 판단과 이성을 넘어서는 같습니다. 주님께서도 이를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는 세상에는하늘 나라를 설명할 말이 없기 때문일 겁니다. 언어는 우리의 문화와 관습의 범위를 뛰어넘을 없습니다. 그러니비유 통해 가늠해볼 뿐입니다. “하늘 나라주님과 함께 이미 시작되었고 종말에 완성될 것이라고 신학적으로 정리됩니다. 

 

분명한 것은 포도원 주인이신 우리 주님의 판단 기준은 우리의 기준과 사뭇 다릅니다. 노력과 보수가 정비례해야 한다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납니다. 일한 만큼 보수를 받고 싶은 것이 인지상정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자신의 뜻대로 존재를 세우시고 존재를 멸하시는 분이십니다.  여기에서 공덕에 의해 보상을 받는다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사들의 생각을 뒤엎습니다. 그러므로하느님 앞에 개인 그분과의 개별적 관계에 의해 자신의 존재를 바로 세웁니다. 각자가 주님께서 허락하신 분량만큼일당 받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아침 일찍 품꾼들에게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 것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마태 20:15) 오늘 1 독서에서 요나에게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니느웨에는 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요나 4:11) 

 

하느님의 자비입니다.

 

아침 일찍 품꾼들이 바로 선민사상을 가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상징한다는 것은 쉽게 눈치챌 있을 겁니다. 결국 니느웨의 멸망을 기다린 요나나, 먼저 택함을 받았다고 선민사상에 빠져 있던 이스라엘이나 모두가 같은 부류임을 우리는 있습니다. 그들의 마음에는 다른 이들에 대한 자비가 없습니다. 그러나 선한 포도원 주인이신 우리 주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한 사람 한 사람의 능력에 따른 보상보다도 한 사람 한 사람의 일용할 양식을 더 걱정해주시는 분이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더불어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오는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이러한 주님의 이야기로 자신의 공동체에 가르치고 싶었던 것입니다. 가르침은 오늘 우리에게도 해당됩니다. ‘작은 자들에 대한 배려’, ‘주변인들에 대한 배려’ , ‘경계인들에 대한 배려’. 우리 자신이 우리 교회 공동체의 중심에 있다고 생각하신다면 이제 외곽에 있는 자들에게도 많은 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중심은 밖으로 열려 있어야 숨이 통하여 질식하지 않는 법입니다. 우리 모두의 열린 마음과 배려하는 마음 가운데 주님의 자비가 함께 하시길 기원드립니다. 아멘. 

 

 


연중25 (가해) 성서정과 말씀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주님의 자비와 용서는 무한하시어 우리가 기대하는 것보다 항상 풍성하게 베푸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모든 이기심을 버리고 기꺼운 사랑으로 이웃을 섬기며, 마침내는 주님이 주시는 상급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요나 3:10-4:11

3:10 이렇게 사람들이 못된 행실을 버리고 돌아서는 것을 보시고 하느님께서는 뜻을 돌이켜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었다.

1 요나는 잔뜩 화가 나서 퉁명스럽게 2 야훼께 기도했다. “야훼님, 제가 집을 떠나기 전에 이렇게 되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저는 다르싯으로 도망치려 했던 것입니다.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애처롭고 불쌍한 것을 그냥 보아 넘기지 못하시고 좀처럼 화를 내지 않으시며 사랑이 한없으시어, 악을 보고 벌하려 하시다가도 금방 뉘우치시는 분인 어찌 몰랐겠습니까? 3 그러니 야훼님, 당장 목숨을 거두어주십시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4 아니, 네가 어찌하여 그렇게 화를 내느냐?” 하고 야훼께서 타이르셨지만, 5 요나는 시내를 빠져 나가 동쪽으로 가서 앉았다. 거기에 초막을 치고 그늘에 앉아 도시가 장차 어찌 되는가 심산이었다. 6 하느님 야훼께서는 요나의 머리 위로 아주까리가 자라서 그늘을 드리워 더위를 면하게 해주셨다. 요나는 아주까리 덕분에 아주 기분이 좋았다. 7 이튿날 새벽에 하느님께서는 아주까리를 벌레가 쏠아 먹어 말라 죽게 하셨다. 8 그리고 해가 뜨자마자 뜨거운 열풍이 불어오게 하셨다. 더욱이 해마저 내리쬐자 요나는 기절할 지경이 되었다. 요나는 죽고만 싶어서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다.”투덜거렸다.

9  하느님께서 요나를 타이르셨다. “아주까리가 죽었다고 이렇게까지 화를 내다니, 말이냐?” 요나가 대답했다. “어찌 화가 나지 않겠습니까? 화가 나서 죽겠습니다.” 10 야훼께서 대답하셨다.

 너는 아주까리가 자라는 아무 일도 없으면서 그것이 하루 사이에 자랐다가 사이에 죽었다고 해서 그토록 아까워하느냐? 11 니느웨에는 뒤를 가리지 못하는 어린이만 해도 십이만이나 되고 가축도 많이 있다. 내가 어찌 도시를 아끼지 않겠느냐?”

 

 

시편 145:1-8

1  나의 하느님, 나의 임금님,

.     내가 당신을 높이 받들며
.     언제까지나 당신 이름 찬양하오리이다.

2    날이면 날마다 당신을 기리며,

.     언제까지나 당신을 기리며
.     언제까지나 당신 이름 찬양하오리이다.

3    높으시어라, 주님.

.     끝없이 찬미받으실 ,
.      높으심, 측량할 없어라.

4    당신의 업적 세세에 전해지고
.     찬란한 공적 대대손손 알려지리이다.

5    찬란한 당신의 명성과 이룩하신 놀라운 ,
.     전하고 전하리이다.

6    당신의 무서운 사람들에게 알려질 것이며
.     나는 당신의 위대함을 이야기하리이다.

7    끝없이 어지신 일들 기억하며
.     사람들은 당신의 정의를 기뻐 외칠 것입니다.

8    주님은 자애롭고 자비로우시며
.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지극하시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필립 1:21-30

21 나에게는 그리스도가 생의 전부입니다. 그리고 죽는 것도 나에게는 이득이 됩니다. 22 그러나 내가 세상에 살아서 보람 있는 일을 있다면 과연 어느 쪽을 택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23 나는 사이에 끼여 있으나 마음 같아서는 세상을 떠나서 그리스도와 함께 살고 싶습니다. 편이 훨씬 낫겠습니다. 24 그러나 여러분을 위해서는 내가 세상에 살아 있어야 하겠습니다. 25 이런 확신이 섰기 때문에 나는 살아 남아서 여전히 여러분과 함께 지내게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되면 나는 여러분의 믿음을 발전시켜 주고 기쁨을 더해 있을 것입니다. 26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다시 찾아가게 되면 여러분은 나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를 더욱 자랑할 있게 것입니다.

27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은 사람다운 생활을 하십시오. 그리고 내가 여러분을 찾아가서 만나게 되든지 이렇게 떨어져 있든지 간에 나는 여러분이 복음의 교리를 위하여 한마음 뜻으로 굳게 서서 분투 노력하며 28 반대자들이 무슨 짓을 하더라도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고 싶습니다. 그러한 용기가 그들에게는 멸망의 징조가 되고 여러분에게는 구원의 징조가 것입니다. 구원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것입니다. 29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을 특권뿐만 아니라 그분을 위해서 고난까지 당하는 특권, 그리스도를 섬기는 특권을 받았습니다. 30 여러분은 내가 전에 그리스도를 위해서 싸우는 것을 보았고 지금도 계속해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듣고 있을 터이지만 지금 여러분도 같은 싸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 20:1-16

1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있다. 어떤 포도원 주인이 포도원에서 일할 일꾼을 얻으려고 이른 아침에 나갔다. 2 그는 일꾼들과 하루 품삯을 데나리온으로 정하고 그들을 포도원으로 보냈다. 3 아홉 시쯤에 다시 나가서 장터에 없이 있는 사람들을 보고 4당신들도 포도원에 가서 일하시오. 그러면 일한 만큼 품삯을 주겠소.’ 하고 말하니 5 그들도 일하러 갔다. 주인은 열두 시와 오후 시쯤에도 나가서 그와 같이 하였다. 6 오후 다섯 시쯤 다시 나가보니 없이 있는 사람들이 있어서 당신들은 하루 종일 이렇게 빈둥거리며 있기만 하오?’ 하고 물었다. 7 그들은아무도 우리에게 일을 시키지 않아서 이러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래서 주인은당신들도 포도원으로 가서 일하시오.’ 하고 말하였다. 8 날이 저물자 포도원 주인은 자기 관리인에게일꾼들을 불러 나중에 사람들부터 시작하여 먼저 사람들에게까지 차례로 품삯을 치르시오.’ 하고 일렀다. 9 오후 다섯 쯤부터 일한 일꾼들이 와서 데나리온씩을 받았다. 10 그런데 처음부터 일한 사람들은 품삯을 많이 받으려니 했지만 그들도 데나리온씩밖에 받지 못하였다. 11 그들은 돈을 받아들고 주인에게 투덜거리며 12막판에 와서 시간밖에 일하지 않은 사람들을 온종일 뙤약볕 밑에서 수고한 우리들과 똑같이 대우하십니까?’ 하고 따졌다. 13 그러자 주인은 그들 가운데 사람을 보고내가 당신에게 잘못한 것이 무엇이오? 당신은 나와 품삯을 데나리온으로 정하지 않았소? 14 당신의 품삯이나 가지고 가시오. 나는 마지막 사람에게도 당신에게 만큼의 삯을 주기로 것이오. 15 것을 마음대로 처리하는 것이 잘못이란 말이오? 후한 처사가 비위에 거슬린단 말이오?’ 하고 말하였다. 16 이와 같이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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