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용서와 은총의 상관관계

James Chae 2021. 1. 26. 17:12

"The Unforgiving Servant" by Kazakhstan Artist Nelly Bube.

 

2020.9.13. 가해_연중24주일_감사성찬례

창세 50:15-21_시편103:8-14_로마 14:1-12_마태 18:21-35

 

 

 

용서와 은총의 상관관계

 

 

 

채야고보 신부/ artist, 성공회 사제

 

 

오늘 읽은 마태오복음 18장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교회설교집성문 마지막 부분입니다. 앞의 말씀들의 출처가 마르코 복음과 예수어록인 것에 반해, 오늘 말씀은마태오의 특수자료입니다. 이는 마태오가 어떤 자료를 참고 삼아 자신의 의도대로 가필을 것으로 여겨집니다. 아마도무자비한 종의 비유 통해용서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같습니다. 21~22절의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라는 문장을 서두로 하고 35절의 종말론적인 심판의 메시지로 마무리를 합니다. 이미 지난주에 말씀드린 대로 18장의 교회 설교의 핵심은 지극히 작은 자에 대한 관심과 용서라는 맥락 속에서 오늘 말씀을 보아야 합니다. 마태오가 이러한 점을 그의 교회 설교에 중요한 주제로 삼은 이유는 마태오 공동체가 처한삶의 자리 무관하지 않습니다. 이방인 그리스도인들과 유대 민족의 비난 속에서도 꿋꿋하게 율법의 정신과 그리스도의 은총의 새로운 가르침을 실천하기 위한 마태오 공동체의 고민이 느껴집니다. 그리고 공동체가 처한 현실은 그들의 이상과 다르게 매우 분열의 조짐을 겪고 있었던 것으로 예상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작은 자들에 대한, 실족하여 넘어진 자들에 대한 관심과 한없는 용서를 호소하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오늘 성서정과의 말씀 모두용서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요셉이 자신을 괴롭혔던 형제들을 용서한 이야기, 믿음이 약한 자를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사도 바울로의 권면. 모든 말씀이 오늘 마태오복음 18장의 말씀과 연관성을 갖습니다. 마태오가 용서라는 의미로 사용한 헬라어 단어의 원형은아피에미 ἀφίημι”입니다. ‘방출하다’, ‘내보내다’, ‘내뿜다 의미입니다. 죄인을 용서하여놓아주고’, 마음에 분노나 억하심정을 담아두지 않고내뿜는다 의미이겠지요. 그러나용서 많은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말입니다. 상대가 진정성 있는 사과 대신 유감이라 말할 , 가해자가 하느님께 용서를 받았으니 정작 용서를 구하여할 피해자에게는 용서를 구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할 . 물론 이러한 모습을 영화밀양 보신 분들은 기억할 것입니다. 자신의 아들을 죽인 자를 신앙의 힘으로 용서하기 위해 용기를 내어 감옥을 찾아갔는데, 살인범은 하느님께 이미 용서를 받았다고 하면서 무척이나 평온한 모습으로 주인공 전도연을 맞이했던 장면을 기억합니다. 자기 자신은 번도 진정성 있는 사과조차 가해자로부터 받지 못했는데, 용서는 무슨 용서? 그리고 우리는 많은 성폭력범들의 뻔뻔한 태도를 보면서법적인 합의라는 이름으로 많은 피해자들이 용서를 강요받고 있는 사실 또한 자주 뉴스를 통해 접하고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 기독교가 그리스도의 사랑을 빙자하여용서 너무 값없는 것으로 사람들에게 가르친 것은 아닌지 반성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마태오가 18장에서 일관되게 용서에 대해 다루는 방식을 통해 용서에 담긴 진정한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주에 읽었던잃은 마리 비유와형제가 죄를 지은 경우에 대한 교회의 대처 방법 통해 우리는 오늘 용서에 대한 실마리를 찾을 있습니다. 마태오는 일대일로, 두세 사람으로, 교회의 권위로 순차적으로 죄를 지은 형제가 용서받는 길을 제시합니다. 이는 하느님의 용서의 은총 이전에 먼저 죄를 지은 자와 피해를 당한 사람 사이에서 용서의 관계가 이루어져야 함을 가르쳐줍니다. 그리고 용서가 우리 인간의 힘으로 가능하지 않기 때문에 두세 사람이라도 주님의 이름에 의지하여 기도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런 후에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라는 말을무자비한 종의 비유앞에 배치를 합니다. 용서에는 한계가 없다는 것을 전제하고, 그러한 용서의 근거를 마태오는 오늘 말씀에서 제시합니다. 오늘 말씀의 핵심은 34절에 있습니다.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것이 아니냐?” 그리고 결론으로 마태오는 다음과 같은 말을 덧붙입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35)  

 

한마디로 우리가 하느님께 많은 용서를 받았으니 남을 용서하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무한하신 용서가 여기에서 앞섭니다. 우리가 감당할 없는 용서를 하느님께 받았으니 이웃의 잘못을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라는 것입니다. 이를 루가복음 6 36절에는 이렇게 표현되어 있습니다. “너희의 아버지께서 자비로우신 것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사람이 되어라.”  또한 요한의 첫째 편지 4 10-11절에는 다음과 같이 표현되어 있습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용서의 동기는 하느님께 드리는 우리의 사랑 때문이 아니라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사랑 때문입니다. 

 

이러한 용서는 사도 바울로가 말한카리스χάρις (은총)”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카리스를 단수형으로 사용합니다. 이유인 , 이를 하느님의 구원 활동과 연관을 시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카리스는 인간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순수한 선물이 됩니다. 은총 근거해서 사도 바울로의디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라는 개념이 나오는 것입니다. ‘카리스, 은총 인간의 모든 자랑을 분쇄시키고, 인간의 노력과 행위를 무력화시킵니다. 하느님의 카리스 앞에 우리 인간은 어떠한 공로도 내세울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은총을 정양모 교수는대자대비라는 불교적 표현을 써서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카리스가 죄인에 대한 하느님의 용서뿐만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사명과도 연결하여 설명합니다. 사도 바울로가 이방인의 사도가 또한 하느님의 카리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카리스에의무 대한 개념도 포함되어 있음을 짐작할 있습니다. 용서받은 은총에는 반드시 어떤 의무 또한 주어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용서받은 만큼 이웃도 용서하라는의무 겁니다.

 

이렇게 말하고 나니 정말세상에 공짜는 없다.” 말이 실감이 납니다. 차라리 빚을 탕감받지 않는 것이 낫지 않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읽은 18장의 말씀에는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동시에 담겨 있습니다. 오늘 이야기가 과거형으로 쓰인 것을 보면 이는 마태오 공동체에게 과거에 이미 용서받은 사건을 되새기게 합니다. 그러나 이야기의삶의 자리 당시 마태오 공동체가 사실 서로 용서를 하고 있지 않다는 것을 어렴풋이 보여줍니다. 그러니 현재 진행 중인 갈등을 하느님의 용서로 서로 용서하라고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야기 마지막에 미래형을 사용하여 장차 종말에 닥칠 심판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종말에 있을 단죄는 이렇습니다.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35) 

 

용서는 먼저 형제에 대한 사랑 어린 권면에서 시작합니다. 죄를 지은 형제가 잘못을 깨닫는 다면 피해자에게도 용서를 구하도록 도와야 합니다. 권면은 두세 사람의 도움이 필요하고, 교회 공동체의 도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두세 사람이라도 이러한 문제로 간절히 기도하는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용서하기 위한 우리의 수고는 결코 우리가 받은 용서의 은총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님을 마태오는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받은 용서의 은총이 너무도 크기 때문에 아무리 이웃이 내게 죄를 지어도 그것은 비교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집행유예를 받은 사람으로 우리는 아직 완전한 의인은 아닙니다. 우리는 단지 의롭다 함을 받은 사람입니다. 우리 앞에 종말적인 심판은 반드시 있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우리가 행한 대로 평가를 받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해주셨으니 우리도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러할 진정한 사과와 진정한 용서가 우리 가운데 있을 있습니다. 

 

 

 


연중24 (가해) 성서 말씀(공동번역)

 

본기도

하느님, 교회를 통해 세상 속에서 구원의 역사를 이루어가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복음을 전파하여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용서와 기쁨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창세 50:15-21

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시자어쩌면 요셉은 우리가 미워 우리에게서 당한 온갖 억울함을 앙갚음할지도 모르겠다.” 하면서 16 요셉 앞에 나가 빌었다. “아버지께서는 세상 떠나시기 전에 당신의 말씀을 요셉에게 전하라 하시면서 이렇게 분부하셨습니다. 17형들이 악의로 일이건 어떻게 마음을 잘못 먹고 일이건 못할 것을 용서해 주어라. 아비를 돌보시던 하느님의 종들이 비록 악의에 일을 했지만 용서해 주어라.’” 요셉은 말을 들으 울었다. 18 형들도 울며 앞에 조아렸다. “이제 우리를 종으로 삼아다오.” 19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 대신 벌이라도 내릴 싶습니까?” 20 하면서 요셉은 이렇게 말하였다. “나에게 못할 짓을 꾸민 것은 틀림없이 형들이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도리어 그것을 좋게 꾸미시어 오늘날 이렇게 백성을 살리시지 않았습니까?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형들과 형들의 어린것들을 돌봐 드리리다.” 이렇게 위로하는 요셉의 말을 들으며 그들은 가슴이 터지는 듯하였다.

 

 

시편 103:8-14

1    주께서는 자비하시고 은혜로우시며
.     화를 참으시고 사랑이 넘치신다.

2    끝까지 따지지 아니하시고
.     앙심을 오래 품지 않으신다.

3    우리 죄를 그대로 묻지 않으시고
.     우리의 잘못을 그대로 갚지 않으신다.

4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     경외하는 이에게 베푸시는 사랑 그지없으시다.

5    동에서 서가 것처럼
.     우리의 죄를 멀리 치우시고

6    아비가 자식을 어여삐 여기듯이
.     주께서는 당신 경외하는 자를 어여삐 여기시니

7    우리의 됨됨이를 알고 계시며
.     우리가 한낱 티끌임을 아시기 때문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로마14:1-12

1 믿음이 약한 사람이 있거든 그의 잘못을 나무라지 말고 반가이 맞으십시오. 2 어떤 사람은 믿음이 있어서 무엇이든지 먹지만 믿음이 약한 사람은 채소밖에는 먹지 않습니다. 3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은 가려서 먹는 사람을 업신여기지 말고 가려서 먹는 사람은 아무것이나 먹는 사람을 비난하지 마십시오. 하느님께서는 사람도 받아들이셨습니다. 4 우리에게 남의 종을 판단할 권리가 있습니까? 그가 서거나 넘어지거나, 그것은 그의 주인이 상관할 일입니다. 주님께는 그를 있게 하실 힘이 있으시니 그는 넘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5 어떤 사람들은 어떤 날을 특별히 좋은 날로 여기고 어떤 사람들은 어느 날이나 같다고 생각합니다. 하여간 각각 신념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6 어떤 날을 따로 정해서 지키는 사람도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합니다. 아무것이나 가리지 않고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이고 가려서 먹는 사람도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며 먹으니 역시 주님을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7 우리들 가운데는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사는 사람도 없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8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해서 살고 죽더라도 주님을 위해서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아도 주님의 것이고 죽어도 주님의 것입니다. 9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자의 주님도 되시고 자의 주님도 되시기 위해서 죽으셨다가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10 그런데 어떻게 우리가 형제를 심판할 있으며 멸시할 있겠습니까? 우리는 하느님의 심판대 앞에 사람이 아닙니까? 11 성서에도,

   “정녕 나는 모든 무릎을 앞에 꿇게 하고

      모든 입이 나를 하느님으로 찬미하게 하리라.”

      이사 45:23

주님의 말씀이 있습니다. 12 때에 우리는 각각 자기 일을 하느님께 사실대로 아뢰게 것입니다.

 

 

마태 18:21-35

21 때에 베드로가 예수께 와서주님, 형제가 저에게 잘못을 저지르면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이면 되겠습니까?” 하고 묻자 2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일곱 번뿐 아니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라.”

23 하늘 나라는 이렇게 비유할 있다. 어떤 왕이 자기 종들과 셈을 밝히려 하였다. 24 셈을 시작하자 일만 달란트나 되는 돈을 빚진 사람이 앞에 끌려 왔다. 25 그에게 빚을 갚을 길이 없었으므로 왕은 몸과 처자와 너에게 있는 것을 팔아서 빚을 갚아라.’ 하였다. 26 말을 듣고 종이 엎드려 왕에게 절하며조금만 참아주십시오. 갚아드리겠습니다.’ 하고 애걸하였다. 27 왕은 그를 가엾게 여겨 빚을 탕감해 주고 놓아 보냈다. 28 그런데 종은 나가서 자기에게 데나리온밖에 되는 빚을 동료를 만나자 달려들어 멱살을 잡으며 빚을 갚아라.’ 하고 호통을 쳤다. 29 동료는 엎드려 갚을 터이니 조금만 참아주게.’ 하고 애원하였다. 30 그러나 그는 들어주기는커녕 오히려 동료를 끌고 가서 빚진 돈을 갚을 때까지 감옥에 가두어두었다. 31 다른 종들이 광경을 보고 매우 분개하여 왕에게 가서 일을 낱낱이 일러바쳤다. 32 그러자 왕은 종을 불러들여 몹쓸 종아, 네가 애걸하기에 나는 많은 빚을 탕감해 주지 않았느냐? 33 그렇다면 내가 너에게 자비를 베푼 것처럼 너도 동료에게 자비를 베풀었어야 것이 아니냐?’ 하며 34 몹시 노하여 빚을 갚을 때까지 그를 형리에게 넘겼다. 35 너희가 진심으로 형제들을 서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이와 같이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