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지금은 돌이킬 때입니다.

James Chae 2021. 2. 12. 16:23

‘두 아들의 비유’ by 안드레이 미로노프 (자료출처: catholictimes.org)

 

 

2020.9.27. 가해_연중26주일_감사성찬례

출애17:1-7 또는 에제 18:1-4, 25-32 / 시편 78:1-4, 12-14 또는 25:1-9 / 필립2:1-13 / 마태 21:23-32

 

 

 

지금은 돌이킬 때입니다.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너희의 행실을 고쳐라.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돌려라. (에제18:30) 

 

오늘 1 독서의 말씀입니다. 여기에서마음을 돌려라 히브리어로슈브(שׁוב, return, turn back)”인데 이를 70 (Septuagint)에서는  ἀποστρέφω 아포스트레포로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돌이키는 행위 강조한 것입니다. 이와 비슷한 뜻의 히브리어는니함(נִחַם, regret)”인데 70인역은 이를 “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 번역을 했습니다. 이는 심리적인회심 강조한 것으로 있습니다. 그러나 메타노이아는 이러한 심리적 변화와 행위의 변화 모두가 포함된 것으로 해석되어 왔습니다. 회개라는 말은 기독교 교리를 처음 접할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μετάνοια” 원형은 동사 “μετανοέω메타노에우입니다. 여기에서 메타는 after 또는 beyond라는 뜻이고 “νοέω노에우알다’, ‘깨닫다 뜻입니다. 이를 우리말로 쉽게 풀어보면뒤늦게 깨달음또는마음을 돌이킴이라 하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어떤 일에 잘못했다고 깨달으면 마음을 돌이켜 일을 하지 말고 출발 하라는 뜻입니다. 

 

오늘 읽은 마태오복음 21장은 예루살렘 입성 이후 벌어지는적대자들과의 논쟁사화 하나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전을 정화하시고, 그곳에서 병자들을 치유하신 후에 자신을 반대하는 적대자들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십니다. 이런 사건 후에 오늘 이야기가 나옵니다. 성전에서 가르치고 계신 예수님께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이예수의 권한 문제 삼아 논쟁을 걸어옵니다. 이러한 공격에 예수께서는요한의 권한 대한 질문으로 반문하면서 직답을 회피하십니다. 논쟁사화 뒤에 마태오 기자는 또한 가지 비유를 배치합니다. ‘ 아들의 비유’, ‘ 포도밭 소작인의 비유’, ‘혼인 잔치의 비유’.  가지 비유의 공통점은 선민사상이라는 교만에 빠진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입니다. 결과 하느님 나라가 유대인들에게는 닫히고 다른 사람들에게 열렸음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유대교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권한을 가진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지 못했고 배척했기 때문입니다. 31절에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라는 말은 유대교의 지도자들 입장에서는 매우 치욕적인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은세리와 창녀 가장 천한 죄인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권한에 도전했던 유대 지도자들의 공격에 상응하는 반격을 가하신 겁니다. 아마 그들은 치욕감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을 것입니다.

 

이제 오늘 주제로 넘어가 보겠습니다. ‘예수님의 권한에 대한 논쟁이후에 나오는 번째 비유는 메타노이아 가장 적합한 예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똑같은 부탁을 아들과 작은 아들에게 했는데 아들은 하지 않겠다고 하고는 나중에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에게 순종했고, 작은 아들은 아버지 앞에서는 하겠다고 해놓고선 뒤돌아서서 아버지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중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 사람은 아들이라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중요한 포인트는 여기돌이킴 있습니다. μεταμεληθεὶς 메타멜레떼이스는돌이키어’, ‘회개하여’, ‘후회하여라고 번역할 있습니다. 아버지의 부탁을 듣는 순간에는 깨닫지 못했다가 돌이켜 생각하니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을 돌이켜 아버지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형의 행동을 살펴보면거짓 없었다는 점을 있습니다. 그는 하기 싫은 자신의 마음을 분명히 아버지께 표현했습니다. 그는 유대 지도자들처럼 가식적인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죄가 바로위선임을 마태오복음 23장을 통해 우리는 있습니다. 

 

반면 아들에 비해 작은 아들은 아버지가 보는 앞에서만 착하고 순종적으로 행동한 같습니다. 그는 아버지 앞에서는예스 말하고 뒤로는 딴짓을 같습니다. 이것이위선입니다. 마태오는위선 떨며 남들 앞에서 선한 , 잘난 척하는 사람보다, 비록 불순종했지만 나중에 회개하고 돌이키는 사람을 중요하게 강조했습니다. 포도원 주인 입장에서는 아들은 자기 말을 듣는 것으로 여겼을 수도 있습니다. 주인이 포도원에 가서 직접 확인해보지 않고는 아마 작은 아들이 일로 속아 넘어갔을지도 모릅니다.  결국위선자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리려는 어리석은 자입니다. 포도원 주인이신 주님께서는 사람의위선 분별하시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죄에 취약한 존재입니다. 누구든지 실수를 있고, 누구든지 귀찮아서 남을 돕는 일에 무심할 수도 있습니다. 문제는 우리 마음에 성령께서 두신 양심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려는 노력입니다. 길을 가다가 허름한 사람이 돈을 달라고 했을 머리보다는 먼저 각자의 마음에 집중하십시오. 머리로는 가난한 사람을 돕지 않아도 가지 이유를 만들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마음에 울리는 울림은 아마도 무척 단순할 것입니다. 남을 돕는 일에 있어서 너무 많은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대신 마음의 울림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양심의 거울에 여러분의 행동을 비춰보고 혹시라도 찔리는 것이 있다면 메타노이아, 회개하시기 바랍니다. 누군가에게 사과할 일이 있다면 머리보다 마음의 소리에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그곳이 바로 성령께서 움직이시는 공간입니다. 지혜는 마음에서 지식은 머리에서 나오는 법입니다. 머리와 마음이 따로 놀게 되면 우리 마음에 가지 병이 생깁니다. 하나는위선이고, 다른 하나는망상입니다. ‘위선 자기 자신을 거짓으로 포장하고, 거짓이 장성하여 결국에는망상 이르는 법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우리 인간의 가장 취약함을 아시고회개 기회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들어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없습니다. 그러므로회개 성부께 나아가는문지방입니다. 문설주에 어린 양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발라져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돌이킬 시간이 남았습니다. 그것이 개인적인 일이든 아니면 인류의 당면한 과제이든, 늦기 전에 우리는 돌이켜야 합니다. 

 

코로나 19 그동안 인간의 공격에 침묵하던 자연의 반격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사실 우리는 개인적으로도, 인류 전체적으로도 그동안 너무나 편리함을 추구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20세기 이래로 우리가 누린 편리와 풍요는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에게 해당하는 것이었음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아프리카와 중동 많은 지역에서 전쟁과 기아로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가 누려왔던 문명의 편리와 풍요를 전혀 체험하지 못한 사람들입니다. 세계 206 국가 소위 OECD 34 국가들을 비롯하여 중국과 러시아를 제외하면 이러한 풍요를 전혀 경험하지 못한 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지구의 자원과 물자들을 낭비한 것은 선진국들과 몇몇 강대국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누린 문명의 풍요는 상상할 없는 많은 희생 위에 세워진 것입니다. 기아와 전쟁으로 죽어가는 사람들, 고갈되어가는 자원들, 회복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 환경 파괴 . 이미 위험의 심각성에 대해서는 많은 생태학자들이 경고한 대로 이제 그때가 우리 앞에 놓여있는 같습니다. 앞으로의 삶은 분명 이전과 같을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이전으로 돌이킬 수는 없다고 해도, 속도를 늦추는 우리는 뭔가를 해야   때인 같습니다. 코로나 19 박쥐로부터 인간에게 전염된 우연한 사건이 아니라 자연의 영역을 인간에게 빼앗긴 자연의 반응입니다. 아마도 코로나 19 이제 시작일지도 모릅니다. 우리에게 아직 돌이킬 있는 시간이 있다면, 이제 다시 우리는회개라는 단어를 떠올렸으면 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얻은 새로운 삶이회개에서 시작됐듯이 이제 우리 새로운 인류는회개 통해 새로운 출발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것은 지금보다는 불편하고, 지금보다는 풍성하지 않을지라도, 그래도 지구 상의 모든 생명체가 함께 살아갈 길입니다. 새로운 인류는 새로운 삶의 형식을 필요로 합니다. 지금이 우리가 돌이킬 때라면 바로 지금 함께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연중26 (가해) 1 또는 2

 

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자신을 낮추시어 죽기까지 순종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게 하시어, 우리 자신을 낮추고 이웃을 섬기며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출애 17:1-7

1이스라엘 백성 회중은 광야를 떠나 야훼의 지시대로 진지를 옮겨 가면서 전진하였다. 르비딤에 이르러 먹을 물이 없는 것을 보고, 2 백성들은 모세에게 먹을 물을 내라고 들이대었다. 모세가어찌하여 나에게 대드느냐? 어찌하여 야훼를 시험하느냐?” 하고 말했지만, 3 백성들은 당장 목이 말라 견딜 없었으므로 모세에게 불평을 터뜨렸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왔느냐? 자식들과 가축들과 함께 목말라 죽게 작정이냐?” 4 모세가 야훼께 부르짖었다. “ 백성을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당장 저를 돌로 쳐죽일 것만 같습니다.” 5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이스라엘 장로들을 데리고 백성보다 앞서 오너라. 나일 강을 치던 너의 지팡이를 손에 들고 오너라. 6 내가 호렙의 바위 옆에서 앞에 나타나리라. 네가 바위를 치면, 물이 터져 나와 백성이 마시게 되리라.”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그대로 하였다. 7 여기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대들었다고 해서 고장 이름을 므리바라고도 하고야훼께서 우리 가운데 계신가 계신가?” 하며 야훼를 시험했다고 해서 마싸아라고도 부르게 되었다.

 

또는

 

에제 18:1-4, 25-32

1 야훼께서 나에게 말씀을 내리셨다.

2   “‘아비가 설익은 포도를 먹으면

      아이들의 이가 시큼해진다.’

이런 속담이 너희 이스라엘 사람이 사는 땅에 퍼져 있으니 어찌 일이냐? 3 야훼가 말한다. 내가 무슨 일이 있어도 다시는 너희 이스라엘에서 이런 속담을 말하지 못하게 하리라. 4 사람의 목숨은 나에게 딸렸다. 아들의 목숨도 아비의 목숨처럼 나에게 딸렸다. 그러므로 죄지은 장본인 외에는 아무도 죽을 까닭이 없다.(…)

25 너희는 야훼가 하는 일을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아, 들어라.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26 옳게 살던 자라도 옳은 길을 버리고 악하게 살다가 죽는다면 그것은 자기가 악하게 탓으로 죽는 것이다. 27 못된 행실을 하다가도 못된 행실을 털어버리고 돌아와서 바로 살면 그는 자기 목숨을 건지는 것이 . 28 두려운 생각으로, 거역하며 저지르던 모든 죄악을 버리고 돌아오기만 하면 죽지 않고 살리라. 29 너희는 내가 하는 일을 부당하다고 한다마는,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가 하는 일이 부당하지 내가 하는 일이 부당하냐? 30 나는 너희 하나하나를 너희의 행실대로 다스리리라. 야훼가 하는 말이다.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의 행실을 고쳐라.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모두 버리고 마음을 돌려라. 그래야 올가미에 걸려 망하지 아니할 것이다. 31 거역하며 저지르던 죄악을 벗어버리고 마음을 먹고 뜻을 품어라. 이스라엘 족속들아, 너희가 죽다니 말이냐? 32 죽을 죄를 지은 사람이라도 사람이 죽는 것은 나의 마음에 언짢다. 야훼가 하는 말이다. 살려느냐? 마음을 고쳐라.”

 

 

 

시편 78:1-4, 12-14

1     겨레여, 나의 가르침을 들어라.
   내가 하는 말에 귀를 기울여라.

2    내가 역사에서 교훈을 뽑아내어
    숨은 뜻을 밝혀주리라.

3    선조들이 입으로 전해 이야기,
   우리 모두 들어서 익히 아는 이야기,

4    주님의 영예와 크신 능력, 그리고 이루신 위대한 일들을
   우리는 다음 세대에 숨김없이 전하리라.

12  이집트 소안평야에서
   저희 선조들에게 보여 주신 기적을 잊어 버렸다.

13  주님은 바다를 갈라 그들을 건네주셨고
   바닷물을 강둑처럼 서게 하셨다.

14  낮에는 구름으로 밤에는 불빛으로
   그들을 밤낮으로 인도하셨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또는

 

시편 25:1-9

1    주여, 영혼이 당신을 우러러 뵈오며
     나의 하느님, 당신만을 믿습니다.

2    그러므로 부끄러운 당하지 않게 하시고
     원수들이 으시대지 못하게 하소서.

3    당신만을 믿고 바라면 망신을 당하지 않으나 
     당신을 함부로 배신하는 수치를 당하리이다.

4    주여, 당신의 길을 가리켜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가르쳐주소서.

5    당신만이 나를 구해 주실 하느님이시오니,

     당신의 진리 따라 나를 인도하시고 가르치소서.
     날마다 당신의 도움만을 기다립니다.

6    주여, 당신의 자비와
     한결같으신 사랑을 기억하시고

7    젊어서 저지른 나의 잘못과 죄를 잊어주소서.
     주여, 어지신 분이여, 자비하신 마음으로 나를 생각하소서.

8    주여, 당신은 바르고 어지시기에
     죄인들에게 길을 가르치시고

9    겸손한 옳은 길로 인도하시며
     그들에게 당신의 길을 가르치십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필립 2:1-13

1 여러분은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힘을 얻습니까?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위안을 받습니까? 성령의 감화로 서로 사귀는 일이 있습니까? 서로 애정을 나누며 동정하고 있습니까? 2 그렇다면 같은 생각을 가지고 같은 사랑을 나누며 마음을 합쳐서 하나가 되십시오. 그렇게 해서 나의 기쁨을 완전하게 해주십시오. 3 무슨 일에나 이기적인 야심이나 허영을 버리고 다만 겸손한 마음으로 서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십시오. 4 저마다 실속만 차리지 말고 남의 이익도 돌보십시오.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내어놓고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위와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12 그러므로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함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순종하였거니와 때뿐만 아니라 떨어져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일을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마태 21:23-32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고 계실 때에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이 와서당신은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들을 합니까? 누가 이런 권한을 주었습니까?” 하고 물었다. 24나도 가지 물어보겠다.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한으로 일을 하는지 말하겠다. 25 요한은 누구에게서 권한을 받아 세례를 베풀었느냐? 하늘이 것이냐? 사람이 것이냐?” 하고 반문하시자 그들은 자기들끼리 권한을 하늘이 주었다고 하면 그를 믿지 않았느냐 것이고 26 사람이 주었다고 하면 모두들 요한을 예언자로 여기고 있으니 군중이 가만 있지 않을 테지?” 하고 의논한 끝에 27모르겠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예수께서는나도 무슨 권한으로 이런 일을 하는지 말하지 않겠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이런 것은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이 아들을 두었는데 먼저 맏아들에게 가서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을 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맏아들은 처음에는 싫다고 하였지만 나중에 뉘우치고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가서도 같은 말을 하였다. 둘째 아들은 가겠다는 대답만 하고 가지는 않았다. 31 중에 아버지의 뜻을 받든 아들은 누구이겠느냐?” 하고 예수께서 물으셨다. 그들이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가고 있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를 찾아와서 올바른 길을 가르쳐 때에 너희는 그의 말을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치지 않고 그를 믿지 않았다.”

사본에 따라 맏아들과 둘째 아들이 뒤바뀌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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