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나의 살 σάρξ - 성찬례의 영성 3

James Chae 2021. 8. 13. 15:10

 

2021. 8. 15. 나해_연중20주일

성모 안식 (816일로 옮겨 지킨다) / 광복절

 

열왕상 2:10-12, 3:3-14 / 시편 111 / 에페 5:15-20 / 요한 6:51-58

 

광복절 전례독서 : 출애 6:2-13 / 시편 136 / 2데살 3:1-4 / 루가 1:67-80

 

 

 

나의 σάρξ

-성찬례의 영성 3-

 

채야고보 신부 / 제주 한일우정의 교회, Artist

 

영국의 화가 프랜시스 베이컨(Francis Bacon, 1909~1992) 작품을 혹시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푸줏간에 걸린 고깃덩어리같이 사람의 몸을 해체하여 흉측한 살덩어리로 표현한 작품들. 나중에 한번 검색해보시기 바랍니다. 그의 작품은 인간의 몸을 갈기갈기 해체하여 인간이 고깃덩어리에 지나지 않는 존재임을 작품을 통해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대로 살뿐인 인간. 베이컨의 입장에서 인간은 동물과 전혀 다르지 않습니다. 고깃덩어리에 불과한 인간. 이러한 작가의 뇌리에는 유물론적인 생각도 깃들어 있지만, 결국에는 사람 또한 육체를 하찮게 여겼던가현설주의자(Docetist)’ 별반 다를 바가 없습니다. 가현설을 주장한 사람들은 예수께서 참된 인간의 육신을, 우리와 같은 갖지 않았다고 주장했으며, 십자가에 달린 예수는 단지 환상이었다고 주장했습니다. 인간의 육체를 한갓 고깃덩어리로 생각한 베이컨이나 육체를 경멸하고 눈에 보이지 않는 영적인 것만을 추구했던 영지주의의 가현설주의자나 결국은 인간 육신이 갖는 존엄성과 인간이 몸과 영으로 이루어진 총체적 존재라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한 사람들임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몸에 ‘Imago Dei 이마고 데이’, 하느님의 형상 깃들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의미인즉 우리 인간은 존엄한 존재라는 뜻입니다.

 

우리는 평소에 자신의 몸을 인식하지 못하고 생활하다가 갑자기 몸이 아프거나 다쳤을 극심한 고통과 함께 우리가 가진 존재임을 새삼 깨닫게 됩니다. 특히 다쳐서 피가 나거나 뼈가 부러지는 부상을 당할 육체는 고통을 통해 우리 정신과 감각을 지배하며 자신의 존재감을 완전하게 우리에게 인식시킵니다. 그러다 고통이 사라지면 우리는 다시 언제 그랬냐는 듯이 우리의 육체를 잊고 다시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이럴 경우 자신의 몸을 돌보는 것은 다시 2차적인 문제가 되고 맙니다.

 

우리의 육체는 이루어져 있습니다. 헬라어로 ‘σάρξ 사르크스 합니다. ‘ 자양분을 받아야 새로운 세포를 생성하고, 우리 몸의 세포 조직을 건강하게 합니다. 살은 피를 통해 자양분을 공급받고 피에 녹아 있는 자양분은 우리가 먹는 음식을 통해 얻어집니다. 그러므로 음식----살로 이어지는 생명의 순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결국 음식이 이러한 순환 속에서 우리 몸을 통해 살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먹는 것이 생명이라는 것입니다. 오늘 말씀은 이러한 생명의 순환 고리를 통해 어떻게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되는 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것이 요한이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성육신과 성찬례의 신비입니다.

 

주님께서는 자신을하늘에서 내려온 생명의 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빵은 광야의 만나처럼 하늘에서 내려왔습니다. 그러나 잠깐 몸의 허기를 달래는 만나와는 다르게 영원성을 가진 빵입니다. 빵은 자체로 결코 우리 몸과 하나가 되지 못합니다. 이는 입을 통해 씹고 소화되고 자양분이 되어 피를 통해 우리 살에 생명을 전달합니다. 이러할 빵은 우리 살이 되고 생명이 됩니다. 만질 있고, 느낄 있으며, 장소와 시간에 제약을 받고, 자양분을 통해서만 생명을 이어가는 σάρξ’입니다. 사르크스는 그대로 단백질로 구성된 살을 뜻합니다. 말은 성서에서 세속적인 용어로 하느님의 뜻이나 믿음에 반할 때도 사용되고, 요한복음 1 14 말씀처럼말씀이 육신(σάρξ ) 되어 우리와 함께 하셨다 그리스도의 없는 육신에도 사용됩니다. 분명한 것은 천상적인 것이 아니라 그래도 세상에 속한 물질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살이 생명을 주는이라고 오늘 말씀은 선포합니다.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이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살 것이다. 내가 줄 빵은 곧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다.” (요한 6:51)

 

먹는 것이 사는 것이라는 단순한 진리가 여기에서도 발견됩니다. 먹지 않고 생명을 유지할 존재는 세상에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리고 언급하시면서 우리가 세상에서 먹는 음식도 우리 육신에 생명을 주는데 하물며 주님의 살과 피가 어떠하겠느냐고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는 영원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이는 주님께서 자신을 온전히 십자가의 희생양으로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생양은 자신의 목숨을 내어놓아야 하고 희생 제사 후에는 살점을 사람들이 나눠 먹음으로 사함의 의미가 완성되는 것입니다.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는 것입니다(히브 9:22).  인간이 하느님 앞에 나아가는 길은 오직 죽음을 통한 속죄 밖에 없기에 유대인들은 자신을 위해 대신 죽어줄 어린양을 죽여 희생양의 피를 문설주에 발라 유월절의 재앙을 피했고, 성전에서 유월절마다 희생양을 제물로 받쳤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상 양의 피로 써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살과 피를 주심으로 속죄의 길을 여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바로 속죄의 희생양이 되신 것입니다.

 

요한복음 6장에서오병이어 이야기다음에 계속되는빵의 이야기 자연스럽게 성찬례의 영성체를 연상시킨다는 점을 우리는 있습니다. 6 54절에서먹는다 의미로 사용된 헬라어트로고τρώγω’ 동물이 음식을 먹는 사용되는갉아먹다, 우적우적 씹는다 의미이지만, 요한이 단어를 선택한 것은 성만찬 시에 실제로 주님의 살을씹어먹는다 점을 강조하기 위함이었을 것으로 추측됩니다. 요한복음 6장에는 먹는다는 점잖은 뜻의 ‘φάγω 파고 동시에 사용되었습니다. 여기에서가현설주의자들을 요한이 염두에 뒀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이러한씹어 먹는다 표현은 사실 가현설주의자들에게는 불쾌한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논쟁이 발생한 것입니다.

 

유다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 사람이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수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요한 6:52)

 

 

여기에서 먹는 문제로다툼 있었다고 요한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μάχομαι 마코마이 다투다는 뜻으로 단순히투덜거리거나’, ‘따진 아니라 그대로 다툰 것입니다. 출애굽기에 이스라엘이 모세와 다퉜을 사용했던 רב이라는 히브리어가 헬라어마코마이 같은 뜻입니다. 자기 살을 먹으라는 말에 유대인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모세에게 화를 냈던 것처럼 예수에게 화를 내고 있는 것입니다. 식인종도 아닌데 어떻게 사람이 사람을 먹는단 말인가? 가현설주의자나 일반 사람들은 성만찬에 드려지는 빵과 포도주의 의미를 이해할 없었기 때문에 당연한 반응이라 생각합니다. 요한은오병이어 사건 이어생명의 먹는 문제를 강조함으로써 성만찬이 단순히최후의 만찬 기념하는 (Anamnesis)’ 이상의 의미가 있음을 여기에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살과 피를 먹는 것은최후의 만찬 지닌 아남네시스(Anamnesis, 기억, 기념 / 1 고린 11:24-25 참조 ) 의미도 있지만, 이는 살과 피를 통한 실제적인 신인합일의 표상 또한 담겨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철저히삼위일체적설정입니다. 요한은 성만찬의 의미를성육신적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로가 성만찬을기억과 기념아남네시스 이해한 것과 더불어 성만찬의 성육신적 이해는 우리에게 성찬의 신학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줍니다.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살 것이다.(요한 6:57)

 

 

성자 하느님을 파송하신 성부 하느님이 성자 하느님의 생명의 원천이듯이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 그리스도인의 생명의 원천은 예수님이 되는 것입니다. 이는 성부가 성자 안에, 성자가 우리 안에상호 거주하는 방식을 말해줍니다. 인류 역사상 이러한 신인합일의 가능성이 있었던 적은 예수님 이전에도, 이후에도 번도 없었습니다.

 

나는 이미 율법의 손에 죽어서 율법의 지배에서 벗어나 하느님을 위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려 죽었습니다.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내 안에서 사시는 것입니다. 지금 내가 살고 있는 것은 나를 사랑하시고 또 나를 위해서 당신의 몸을 내어주신 하느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갈라 2:19-20)

 

이제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우리 몸의 주인은 그리스도이시다는 사도 바울로의 고백입니다. 여기에 더해 요한은 주님의 살을 먹음으로 우리가 주님 안에 주님이 우리 안에 상호 거주하심을 선포한 것입니다. 이러한 차원의 신비가 우리가 주일 드리는 성찬례를 통해 표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 바울로가 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써의 코이노니아가 이루어지는 신비입니다. 왜냐하면우리는 빵을 나누며 몸을 이루기 때문입니다.” 빵이 오늘 요한이 말한주님의 입니다.

 

그렇다면 생명의 영원성은 주님의 언급처럼 과연 어떻게 우리에게 담보되는 것일까요? 여기에서 우리는 말씀을 하나는 종말론적 차원에서, 다른 하나는기억과 기념 차원에서 각각 살펴볼 있습니다.

 

먼저종말론적인 차원에서 말씀은 마지막 때에 우리가 주님과 하나 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이라는 표징은 정확히 종말론적인 영원성과 관련합니다. 성육신하신 주님의 살과 피는 영원성의 표상입니다. 그것은 죽어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도 살리는 부활의 실재입니다. 아담 이후 죽을 수밖에 없었던 육신이 그리스도의 성육신으로 거룩한 영원성을 획득했습니다. 그러나 완전한 초월과 내재의 합일은 마지막의 때까지 유보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종말론적인 차원은 다가오고 있는 하느님 나라의 완성에서 실현될 미래의 것이 됩니다.

 

여기에 더해 번째 차원이 바로 현재 속에서 영원성을 담지해 가는 길입니다. 그것은 바로 사도 바울로가 말한기억과 기념(Anamnesis)’ 차원입니다. 우리가 주일 모여 주님의 살과 피를 나눠먹는 것은 이러한 영원성을 우리의 일상의 기억 속에 간직하는 방법입니다. 이는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까지 계속 지속될 우리의 일상입니다. 우리는 정기적으로 영성체를 통해 손과 입과 혀를 통해 우리의 육체로 주님의 살과 피를 기억합니다. 이러한 기억은 개인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고백 속에서 영원성을 획득합니다. 이는 유대인들이 유월절마다 가정에 모여서 무교병을 먹으며 옛날 그들의 조상들의해방의 이야기 기억하고 자녀들에게 전수함으로 영원성을 획득하는 방식과 유사합니다. 기억은 매우 영적이며, 이러한 기억의 전수는 유한한 인간이 영원성을 획득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그러므로 공동체는 기억을 통해 영원성을 담보하는 역사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정기적으로 자리에 모여 주님을 예배하고 기억하고 찬양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 교회가 고백하는 감사성찬례의 영성에 담긴 신비입니다. 

 

기억은 우리의 믿음을 추동하고, 주님의 살과 피로 표현되는 성찬의 빵과 포도주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신비를 우리에게 체화시켜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일마다 조금씩 거룩함으로 나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거룩함은 우리 모두를 우리가 인식하든 인식하지 않든 간에 우리를 조금씩 그리스도의 몸으로 성장해 가게 만듭니다. 우리 모두는 그리스도의 몸의 지체로서, 이루어진 육신을 가진 인간으로서 거룩함을 덧입는 은총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성찬례의 원래 뜻인유카리스트(Eucharist)’ 우리말로 번역하면감사 예식 또는 감사제 됩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배의 본질이감사 있음을 말해줍니다. 주님께 받은 이러한 거룩한 은총이 너무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귀한 자리에 여러분과 함께해서 저는 너무 기쁘고 반갑습니다. 그리고 시간 우리 모두에게 영성체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이 가득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연중20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세상의 구원을 위하여 자신을 살아있는 빵으로 우리에게 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성체를 나눌 때마다 주님이 함께 하심을 알게 하시며 부활의 생명을 얻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열왕상 2:10-12, 3:3-14

2:10 다윗은 선조들과 함께 잠들어 다윗 성에 안장되었다. 11 다윗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햇수는 사십 년이다. 헤브론에서 , 예루살렘에서 삼십삼 년을 다스렸다. 12 솔로몬이 선왕 다윗의 왕좌에 앉았다. 그는 왕위를 든든히 굳혔다.

3:3 솔로몬은 야훼를 사랑하였고 그의 아버지 다윗의 법도를 따라 살았다. 다만 가지, 그는 산당에서 제사하고 향을 피웠다. 4 기브온에는 산당이 하나 있었는데 솔로몬은 그리로 가서 제사를 드렸다. 솔로몬은 제단에 번제물을 마리나 바친 적이 있다. 5 야훼께서 기브온에 있던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셨다. 하느님께서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면 좋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6 솔로몬이 대답하였다. “당신께서는 저의 아버지인 당신의 다윗에게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아버지가 당신의 면전에서 성실하고 올바르게, 당신을 향한 일편단심으로 살았다고 하여 당신께서는 그에게 한결같은 은혜를 베푸셨고 오늘 그에게 주신 아들로 하여금 그의 왕좌에 앉게 하셨습니다. 7 나의 하느님 야훼여, 당신께서는 소인을 아버지 다윗을 이어 왕으로 삼으셨습니다만 저는 어린 아이에 지나지 않으므로 어떻게 처신하여야 지를 알지 못합니다. 8 그런데 소인은 수도 헤아릴 없이 많은 당신의 백성 가운데서 살고 있는 몸입니다. 9 그러하오니 소인에게 명석한 머리를 주시어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있고 흑백을 가려낼 있게 해주십시오. 감히 누가 당신의 백성을 다스릴 있겠습니까?” 10 이러한 솔로몬의 청이 야훼의 마음에 들었다. 11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가 장수나 부귀나 원수 갚는 것을 청하지 아니하고 이렇게 옳은 것을 가려내는 머리를 달라고 하니 12 , 내가 말대로 해주리라. 이제 너는 슬기롭고 명석하게 되었다. 같은 사람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으리라. 13 뿐만 아니라 네가 청하지 않은 , 부귀와 명예도 주리라. 평생에 너와 비교될 만한 왕을 보지 못할 것이다. 14 네가 만일 아비 다윗이 길을 따라 살았듯이 길을 따라 살아 법도와 계명을 지킨다면 수명도 길게 해주리라.”

 

 

시편 111

1    알렐루야!
.     정직한 이들이 많이 모인 자리에서
.     마음 쏟아 주님께 감사하리라.

2    주께서 하시는 일들 하도 장하시어
.     일들을 좋아하는 사람, 모두 깊이 생각한다.

3     하신 영광스럽고 찬란하여
.     정의는 영원히 남으리라.

4     놀라운 일들을 기념토록 남기셨으니,
.     주께서는 자비롭고 인자하시다.

5    맺으신 계약을 길이 잊지 아니하시고
.     당신을 경외하는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신다.

6    민족의 땅을 그들에게 유산으로 주시고
.     위력을 당신 백성에게 보여 주신다.

7    하시는 일은 정의와 진리이시며
.     모든 법은 진실 자체이시니,

8    영원히 흔들리지 않도록
.     진실과 정직으로 제정되었다.

9    속전을 내어 당신 백성을 구해 내시고
.    
영원히 지킬 계약을 맺으셨으니,
.     그의 이름 두렵고도 거룩하여라.

10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원이요,
.    
그대로 사는 사람이 슬기를 깨치나니,
.     주님 찬송 영원히 올려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5:15-20

15 그러므로 여러분은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깊이 생각해서 미련한 자처럼 살지 말고 지혜롭게 사십시오. 16 시대는 악합니다. 그러니 여러분에게 주어진 기회를 살리십시오. 17 여러분은 어리석은 자가 되지 말고 주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이 되십시오. 18 취하지 마십시오. 방탕한 생활이 거기에서 옵니다. 여러분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야 합니다. 19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모두 같이 부르십시오. 그리고 진정한 마음으로 노래불러 주님을 찬양하십시오. 20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 드리십시오.

 

 

요한 6:51-58

… 51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살아 있는 빵이다 빵을 먹는 사람은 누구든지 영원히 것이다. 내가 빵은 나의 살이다. 세상은 그것으로 생명을 얻게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52 유다인들이 말씀을 듣고 사람이 어떻게 자기 우리에게 먹으라고 내어줄 있단 말인가?” 하며 서로 따졌다. 53 예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정말 들어두어라. 만일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과 먹고 마시지 않으면 너희 안에 생명을 간직하지 못할 것이다. 54 그러나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이며 내가 마지막 날에 그를 살릴 것이다. 55 살은 참된 양식이며 피는 참된 음료이기 때문이다. 56 먹고 피를 마시는 사람은 안에서 살고 나도 안에서 산다. 57 살아 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고 내가 아버지의 힘으로 사는 것과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의 힘으로 것이다. 58 이것이 바로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빵은 너희의 조상들이 먹고도 결국 죽어간 그런 빵이 아니다. 빵을 먹는 사람은 영원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