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4.14. 성 목요일(성찬 제정/세족례) 감사성찬례
출애 12:1-4(5-10)11-14 / 시편 116:1-2, 12-19 / 1고린 11:23-26 / 요한 13:1-17, 31하-35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요한 13:1)
오늘 읽은 복음서의 앞부분에 나온 문장입니다. 이를 다시 번역하면 “이 세상에서 사랑해 오셨던 그들을 끝까지 사랑하셨다.”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자신의 마지막 때를 직감하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표현하셨습니다. 요한복음은 이 사랑의 표현이 바로 ‘세족례’ 임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끝까지, τέλος’라는 말은 문맥상 ‘시간의 끝’을 의미하지만, 예수님의 사랑의 하염없음의 질적 가치 또한 동시에 내포하고 있는 단어입니다. 주님께서는 한번 사랑하시면 ‘끝까지’ 책임감 있게, 또 의리 있게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 말입니다.
요한은 하느님의 편에서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사랑은 결코 변함이 없음을 ‘세족례 이야기’를 통해 확증합니다. 이건 아마 절대적일 겁니다. 다른 복음서에 없는 ‘세족례 이야기’를 요한복음이 우리에게 전해주는 것은 이러한 하느님의 사랑을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주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신 이래로 한 번도 제자들에 대한 사랑을 거두신 적이 없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의 발을 직접 씻겨주시면서 그들을 향한 자기의 사랑을 마지막으로 제자들에게 확증하십니다. 그리고 그 사랑은 십자가 위에서 완성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보여주신 발을 씻기시는 행위는 단순히 부정한 것을 씻는 구약의 정결례 차원을 넘어섭니다. 그것은 스승이 어떻게 제자를 섬기는지, 높은 사람이 어떻게 낮은 사람을 섬기는지, 사람이 어떻게 서로를 사랑하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예인 것입니다. 세상은 높은 사람, 잘날 사람이 대접받지만, 우리 교회는 그런 곳이 아닙니다. 교회는 서로의 발을 씻어주는 곳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요한 13:15)
아마도 이 ‘세족례’는 요한복음 공동체에서 매우 중요한 예식으로 자리매김을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성찬 제정’보다 ‘세족례’를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이라고 공동번역에 번역된 부분은 직역하면 “이 세상에서 사랑해 오셨던 당신의 사람들,ἀγαπήσας τοὺς ἰδίους ” 이란 뜻입니다. 이 말에서 보여주는 예수와 제자들 간의 사랑의 관계성은 요한복음 전반에 걸쳐 일관되게 표현되는 ‘목자와 양’의 관계와 일치합니다.
“나는 착한 목자이다. 착한 목자는 자기 양을 위하여 목숨을 바친다.” (요한 10:11)
예수님과 제자들 간의 사랑의 관계는 목자가 양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사랑의 관계입니다. 어쩌면 이건 한쪽이 전적으로 헌신해야 만 가능한 관계라는 뉘앙스를 풍깁니다. 양이 먼저 목자를 사랑한 것이 아니라, 목자가 양을 먼저 사랑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드리고 나니,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주님의 모습에서 애틋한 그분의 ‘외사랑’이 느껴집니다. 사실 제자들은 ‘세족례’가 의미하는 바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또 ‘세족례’에 내포된 그리스도의 죽음 또한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한편으로 치우친 ‘외사랑’은 원래 그런 것입니다. 사랑을 받기만 하는 사람은 그 ‘외사랑’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외사랑’이 더 애잔하고 가슴 시린 법입니다.
세족례를 통해 주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했던 것을 깨닫지 못한 베드로는 아직 ‘세족례’를 구약의 정결례적으로 이해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손과 머리”도 씻어달라고 외친 것입니다. 제자들을 향한 주님의 ‘외사랑’을 베드로뿐만 아니라 제자들 또한 잘 이해 못했습니다. 그들을 향한 한결같은 ‘외사랑’을 말입니다. 이것이 요한복음이 말하는 ‘목자와 양’의 관계로 표현된 ‘하느님의 외사랑’입니다. 즉, 인간 편에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인간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것도 ‘끝까지’. 그래서 요한복음은 일관되게 예수 그리스도를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 보내신 분으로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의 인간을 향한 ‘외사랑’을 전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한복음은 13장 후반부에 “새로운 계명”인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제자들에게 주시면서, 마지막 ‘고별사’를 14장에서 17장까지 이어서 기록한 것입니다. ‘고별사’라 하는 이유는 그분은 제자들 곁을 떠나셔서, 원래 자신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를 “하강-상승 그리스도론”이라 부릅니다. 위로부터 아래로 오셨으니 다시 위로 돌아가셔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에게 보여주신 주님의 ‘세족례’는 하느님의 ‘외사랑’인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의 표현이라 할 수 있습니다. 표현되는 것은 그분의 마음이고, 우리는 이를 통해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기억하며 이를 기념하게 되는 것입니다. 중동이나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남의 발을 씻는 것은 원래 낮은 하인들이 하는 일입니다. 인도에서는 존경의 표현으로 다른 사람의 발을 손으로 만지며 인사하는 것을 존경의 최대 표현으로 생각합니다. 문화적으로 차이는 있을 수 있지만, ‘발’을 씻어주는 것은 상대에 대한 최대의 경의를 표현한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니 남의 발을 씻는다는 것은 결국 자신을 낮춰 남을 섬기고 세워주는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오늘 세족례를 통해 하느님께서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셨는지를 묵상할 수 있습니다. 그분의 ‘외사랑’, 그리고 ‘끝까지 변하지 않는 사랑’. 우리가 이러한 사랑을 깨달을 수 있다면, 우리는 주님의 예를 본받아 다른 사람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라!’는 주님의 새 계명은 이렇게 우리 가운데서 실현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사랑의 실천이 우리 가운데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성 목요일 / 성찬 제정일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에 성체성사를 세우시어 구원의 신비를 보여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는 우리를 모든 죄악에서 벗어나게 하시고 주님의 새 계명을 마음 속에 새기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출애 12:1-4(5-10), 11-14
1 야훼께서 이집트 땅에서 모세와 아론에게 이르셨다. 2 “너희는 이 달을 한 해의 첫 달로 삼고, 달수를 이 달에서 시작하여 계산하여라. 3 너희는 이스라엘의 모든 회중에게 알려라. 이 달 십일에 사람마다 한 가문에 한 마리씩, 한 집에 한 마리씩 새끼 양을 마련해 놓아라. 4 만일 식구가 적어 새끼 양 한 마리가 너무 많거든 한 사람이 먹을 분량을 생각하여 옆집에서 그만큼 사람을 불러다가 먹도록 하여라. (5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이면 양이든 염소든 상관없다. 6 너희는 그것을 이 달 십사일까지 두었다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모여서 해 질 무렵에 잡도록 하여라. 7 그리고 그 피를 받아, 그것을 먹을 집의 좌우 문설주와 문 상인방에 바르라고 하여라. 8 그 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도록 하는데, 9 날로 먹거나 삶아 먹어서는 안 된다. 머리와 다리와 내장도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한다. 10 그것을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도 안 된다. 아침까지 남은 것은 불에 살라버려야 한다.) 11 그것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한다. 이것이 나 야훼에게 드리는 과월절이다. 12 그 날 밤 나는 이집트 땅을 지나가면서 전국에 있는 맏이들을 사람이건 짐승이건 모조리 치리라. 또 이집트의 신들도 모조리 심판하리라. 나는 야훼다. 13 집에 피가 묻어 있으면, 그것이 너희가 있는 집이라는 표가 되리라. 나는 이집트 땅을 칠 때에 그 피를 보고 너희를 쳐죽이지 않고 넘어가겠다. 너희가 재앙을 피하여 살리라. 14 이 날이야말로 너희가 기념해야 할 날이니, 너희는 이 날을 야훼께 올리는 축제일로 삼아 대대로 길이 지키도록 하여라.”
성시_ 시편 116:1-2, 12-19
1,2 주님은 나의 사랑,
. 나의 애원하는 소리를 들어주셨다. ◯
. 내가 부르짖을 때마다
. 귀를 기울여 주셨다.
12 주께서 베푸신 그 크신 은혜 ◯
. 내가 무엇으로 보답할까?
13 구원의 감사 잔을 받들고서 ◯
.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라.
14 주님께 서약한 것, 내가 채워 드리리니 ◯
. 당신의 백성은 빠짐없이 모여라.
15 주님께 충실한 자의 죽음은 ◯
. 그분께 귀중하다.
16 주여, 이 몸은 당신의 종이옵니다. ◯
. 당신 여종의 아들인 이 종을
. 사슬에서 풀어 주셨습니다.
17 내가 당신께 감사제를 드리고 ◯
. 주님의 이름을 부르리이다.
18 주님의 모든 백성이 모인 가운데서 ◯
. 주님께 나의 서원을 채워드리리라.
19 주님의 집 뜰 안에서,
. 너 예루살렘 한 가운데서 ◯
. 나의 서원을 바치리라.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1고린 11:23-26
23 내가 여러분에게 전해 준 것은 주님께로부터 받은 것입니다. 곧 주 예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손에 드시고 24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빵을 떼시고 “이것은 너희들을 위하여 주는 내 몸이니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5 또 식후에 잔을 드시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니 마실 때마다 나를 기억하여 이 예를 행하여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26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 빵을 먹고 이 잔을 마실 때마다 주님의 죽음을 선포하고, 이것을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하십시오.
복음서_ 요한 13:1-17, 31하-35
1 과월절을 하루 앞두고 예수께서는 이제 이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실 때가 된 것을 아시고 이 세상에서 사랑하시던 제자들을 더욱 극진히 사랑해 주셨다. 2 예수께서 제자들과 같이 저녁을 잡수실 때 악마는 이미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의 마음속에 예수를 팔아넘길 생각을 불어넣었다. 3 한편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당신의 손에 맡겨주신 것과 당신이 하느님께로부터 왔다가 다시 하느님께 돌아가게 되었다는 것을 아시고 4 식탁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수건을 허리에 두르신 뒤 5 대야에 물을 떠서 제자들의 발을 차례로 씻고 허리에 두르셨던 수건으로 닦아주셨다. 6 시몬 베드로의 차례가 되자 그는 “주께서 제 발을 씻으시렵니까?” 하고 말하였다. 7 예수께서는 “너는 내가 왜 이렇게 하는지 지금은 모르지만 나중에는 알게 될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 8 베드로가 “안 됩니다. 제 발만은 결코 씻지 못하십니다.” 하고 사양하자 예수께서는 “내가 너를 씻어주지 않으면 너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도 없게 된다.” 하셨다. 9 그러자 시몬 베드로는 “주님, 그러면 발뿐 아니라 손과 머리까지도 씻어주십시오.” 하고 간청하였다. 10 예수께서는 “목욕을 한 사람은 온몸이 깨끗하니 발만 씻으면 그만이다. 너희도 그처럼 깨끗하다. 그러나 모두가 다 깨끗한 것은 아니다.” 하고 말씀하셨다. 11 예수께서는 이미 당신을 팔아넘길 사람이 누군지 알고 계셨으므로 모두가 깨끗한 것은 아니라고 하신 것이다.
12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발을 씻고 나서 겉옷을 입고 다시 식탁에 돌아와 앉으신 다음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왜 지금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는지 알겠느냐? 13 너희는 나를 스승 또는 주라고 부른다. 그것은 사실이니 그렇게 부르는 것이 옳다. 14 그런데 스승이며 주인 내가 너희의 발을 씻어주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주어야 한다. 15 내가 너희에게 한 일을 너희도 그대로 하라고 본을 보여준 것이다. 16 정말 잘 들어두어라. 종이 주인보다 더 나을 수 없고 파견된 사람이 파견한 사람보다 더 나을 수는 없다. 17 이제 너희는 이것을 알았으니 그대로 실천하면 복을 받을 것이다. …”
31 … “이제 사람의 아들이 영광을 받게 되었고 또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하느님께서도 영광을 받으시게 되었다. 32 하느님께서 사람의 아들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으신다면 하느님께서도 몸소 사람의 아들에게 영광을 주실 것이다. 아니, 이제 곧 주실 것이다. 33 나의 사랑하는 제자들아, 내가 너희와 같이 있는 것도 이제 잠시뿐이다. 내가 가면 너희는 나를 찾아다닐 것이다. 일찍이 유다인들에게 말한 대로 이제 너희에게도 말하거니와 내가 가는 곳에 너희는 올 수 없다. 34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35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세상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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