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하느님의 기쁨” (회개-2)

James Chae 2022. 3. 26. 19:28

 

2022.3.27. 사순 4 주일 감사성찬례

여호 5:9-12/ 시편 32 / 2고린 5:16-21 / 루가 15:1-3, 11하-32 

 

 

하느님의 기쁨” (회개-2)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아들이 있었습니다. 어느 작은 아들이 재산을 상속해달라고 졸랐습니다. 그래서 아버지는 하는 수없이 아들에게 공평하게 재산을 나눠줬습니다. 길로 작은 아들은 자신의욕망 충실하여 집을 나가 온갖 방탕한 생활을 하며 가진 것을 모두 탕진했습니다.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모두 하고 것이지요. 그러나 큰아들은 장남이란 의무감 때문이지 아니면 모험심이 없어서 인지 물려받은 재산을 가지고도 아버지 곁에서 충실하게 가족을 돌보며 살았습니다. 큰아들이라고 하고 싶은 것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자신의욕망 표출하는 것보다는 그것을 억누르며 성실하게 살았습니다.

 

작은 아들이 자신의 소유를 모두 탕진하고 어떻게 다시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오게 됐는지 설명하지 않아도 모두 아실 것입니다. 제가 아들을욕망 관점에서 다시 진술한 이유는 이야기를욕망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결과가 어떠할지 궁금했기 때문입니다. 프로이트나 라캉의 관점에서 보면 모든 금기를 깨고 자신의욕망 실현했던 작은 아들이 정신분석학적으로 온전할 개연성이 높다고 평가 내릴지 모르겠습니다. “모든 금기는 결국 우리 안에서 욕망으로 표출된다 것이 프로이트와 라캉이 분석한 인간의 정신이 구조적으로 작동하는 방식입니다. 젖먹이 아기가 젖을 때가 되어 어머니의 젖을 빠는 것을 박탈당할 경우, 아기는 금기로 말미암아 오히려 다른 방향으로 욕망 키워가게 됩니다. 물론 그것이 성적인욕망으로 자라나게 된다는 것이죠. 금기로 인해 억눌린 우리의 무의식은 이러한욕망 은연중에 우리 내면에서 더욱 추동합니다. 결국 우리의욕망 우리의 성장 과정에서자유 의지 억압하는 무수한금기들로부터 생성될 있다는 개연성. 이것은 프로이트와 라캉이 우리의 정신이 작동하는 시스템의 부분을 밝힌 공헌이라 있습니다. 물론 그러한 것에 모두가 전적으로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큰아들이 자기 안에 억눌려 왔던욕망 아버지가 방탕한 자신의 동생을 아무 조건 없이 환대한 데서 폭발하고 맙니다.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루가 15:28)

 

드디어 그의욕망 질투와 함께 폭발했습니다. 그의 평정심은 일순간에 무너졌습니다. 그러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루가 15:29-30)

 

큰아들은처럼 일했고,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없었습니다. 그것이 가능했던 것은 그가 철저히 자신의욕망 억누르고 살았기 때문입니다. 조금 순화해서 말하며, 큰아들의 진술에 과장이 없다는 전제하에, 그는 모든 것에 절제하며 살았던 같습니다. 말썽 한번 피우지 않고 착실하게 듣는 아들입니다. 파파보이일까요? 아니면 성실한 장남일까요? 아무튼 그는 아버지께 성실하고 믿음직한 아들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가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마리 주지 않았다라고 말에서 그의 서운함이 느껴지고, 마치 아버지가 매우 인색했던 사람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버지가 이에 대해 대답한 말에서 아버지의 마음을 이해하게 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루가 15:31)

 

얼마나 대단한 말입니까? 이는염소 새끼 마리 비교가 되지 않는 것입니다. 이미 큰아들은 아버지의 것을 모두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유산으로 물려받은 것에 더해 아버지의 몫까지도 말입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가 만든금기때문인지, 아니면 사회적, 종교적 관습이 만든금기때문인지, 자신의 욕망을 표출하거나, 가진 것을 즐기지 못하고 살았던 같습니다. 그는 친구들과염소 새끼 마리잡아 술자리를 함께하지도 않았던 같습니다. 큰아들은 충분히 그러한 것을 누릴 자유가 있었고, 그러한 것을 즐길 재산도 넉넉했습니다. 결국 그는 자신이  또는 사회가 만든금기속에 자신을 철저히 가둔 것입니다. 그런 그에게 금기의 울타리를 벗어난 동생은 결국 질투의 대상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에게 자신의 동생은 사랑을 나눈 핏줄이기 이전에 자신이 누린 것들을 전부 누리고 돌아온 뻔뻔한 동생일 뿐입니다. ‘욕망 사랑하는 사람도대상화시켜 버리고 맙니다. 그렇게 되면, ‘인간 인간 인격적 만남은 사라지고, ‘사물 사물이라는 물성의 속성만 남는 것입니다. 거기에는 사랑도 없고 인격적 만남도 없습니다. 욕망과 질투는 모든 관계를 물성으로 환원시킵니다. 

 

제가 이렇게 큰아들에 대해 말씀을 드리는 것은욕망 관점에서 큰아들을 이해할 지점을 찾기 위함입니다. 작은 아들은 이미 자신의욕망대로 모든 것을 대상화시켜 소비도 했고 결국에는 자신의 영혼까지도 탈탈 털린 사람이니 이상 언급할 것이 없어서입니다. 작은 아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말고는 다른 길이 없는 인생의 막다른 길에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나가다가는 결국 돌아올 기회조차 잃고 상황이었지요. 그는 한마디로하느님 없이 없는 사람 것입니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 ‘회개밖에는 없습니다. 회개에 대해서는 지난 설교에 말씀을 드렸으니 그것을 참조하시기 바랍니다. 

 

이러한 회개가 큰아들에게도 필요함을 오늘의 묵상을 통해 발견합니다. 큰아들은 아직 자신의욕망 번도 제대로 대면해보지 못했던 같습니다. 동생에 대한 질투로 인해 그의욕망 드러나기 전에는 말입니다. 그가 평생 금기시하고 지냈던 것들이 무엇이든 이제 큰아들에게도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어 보입니다. 그가 지닌 금기들 때문에 그가 아버지의 모든 것을 소유하고도 그것을 온전하게 즐길 몰랐다는 . 그가 금기를 깨고 온전하게 그것을 즐기며, 다른 사람들과 나누며 있는 길이 없었겠습니까? 결국 그의 금기는 자신 안에서 다른 방향으로욕망 키우는 기재로 작동을 것입니다. 작은 아들은욕망 너무 표출하여 결국에는 욕망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삼켜버린 것을 경험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큰아들은 욕망 어떤 것인지도 아직 전혀 대면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안에서 자란 욕망이 어떤 모습인지, 실체도 아직 그는 모릅니다. 이제동생에 대한 질투 그는 자신의욕망 처음 대면했습니다. 아기의 박탈감은욕망으로 승화되어 결국에는 어머니 또는 아버지에 대한 질투심으로 발전하게 되는 것처럼, 모든 금기는 우리 안에 욕망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분출구를 찾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욕망은 억누르는 것이 아니라 우리 안에서 흘러가게 해야 합니다. 물은 막으면 언젠가는 다른 출구로 흐르던지, 만일 출구가 없으면 넘치게 마련입니다. 

 

사실 우리가 이야기에서 집중해야 지점은 이러한 아들보다는아버지에게 있습니다. 물론 아들을 통해 우리 인간의 실존의 모습을 깨달을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큰아들 또는 작은 아들의 케이스를 통해동병상련 감정을 느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을 넘어 우리는 아버지의 태도를 살펴봄으로써 이야기의 뜻에 발짝 가까이 다가갈 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아버지는 작은 아들도 큰아들도 모두 품고 갑니다. 작은 아들이 왔을 때도, 큰아들이 토라져 있을 때도 먼저 다가간 사람은 아버지입니다. 이것이하느님의 마음임을 루가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하느님 보시기에 모두가 사랑스럽습니다. 그러나하느님의 기쁨 조금 다릅니다. 우리 하느님은 회개할 없는 의인 99명보다 1명의 회개한 사람으로 기뻐하시는 분이십니다. 이상합니다. 하느님께서는 회개한 사람을 기뻐하시는 것일까요? 다음 아버지의 진술을 보겠습니다.

 

그런데 네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루가 15:32)

 

결국생명 대한 이야기입니다. 죽음과 생명. 하느님께서는 생명을 기뻐하십니다. 왜냐하면 생명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주신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생명 하느님을 기쁘게 하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는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 더욱 풍성하게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생명이 가진 속성이 아마도 사랑의 본질과 맞닿아 있는 같습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작은 아들이 돌아왔으니 죽었던 사람이 다시 살아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에 대한 유비입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탕자처럼 욕망을 탕진하지는 않으셨지만, 주님께서 고난당하시고 죽으셨다가 다시 부활하신 사건이 성부 하느님께 얼마나 아픔이었고 기쁨이었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주는 유비입니다. 부활은 그런 것입니다. 죽음을 생명이 이긴 것입니다. 그러니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 당연합니다.

 

루가복음은 이러한하느님의 기쁨 우리에게 전하고 있습니다. ‘잃었던 마리”, “잃었던 은전”, “잃었던 아들루가는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들을 통해하느님의 기쁨 무엇인지 우리에게 전한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의 기쁨과는 확연히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의 상식은 작은 아들보다는 성실한 큰아들이 칭찬받고 대접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우리의 상식은 마리의 잃은 양보다는 아흔아홉 마리의 절대 다수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잃어버린 동전 닢을 찾는 시간을 낭비하는 것보다 나머지 아홉 닢의 동전으로 수익을 올리는 관심이 있습니다. 우리 누구도 실패자에게, 소외자에게, 왕따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관심을 갖는 것이하느님의 기쁨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우리는하느님의 기쁨보다는 당장 우리의 안녕과 기쁨을 원합니다. 우리는하느님의 기쁨으로부터 소외됐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기쁨이 없고, 쉽게 넘어지고, 쉽게 지치고, 쉽게 절망하고, 쉽게 질투합니다. 우리에게 정작 필요한 것은 마리의 잃은 양을 찾은 기쁨, 잃어버린 동전 하나를 찾은 기쁨, 절망한 사람을 품는 기쁨입니다. 그것이 바로하느님의 기쁨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없는 기쁨이하느님의 기쁨입니다. 하느님은 그런 것이 기쁘실까요?라고 물을 수는 있지만, 대답을 기대하긴 어려울 같습니다. 왜냐하면 하느님께선 이미 대답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똑똑히 들어라. 여기 있는 형제들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 곧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 (마태 25:45)

 

말씀은 마태오의 특수 자료이지만, 루가복음의 관점과도 일맥상통합니다. ‘하느님의 기쁨 느끼고 나눌 있는 것은 다른 길은 없는 듯합니다. 하늘의 기쁨은 우리 자신이 회개할 , 또는 다른 사람들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인도될 우리도 그것을 은총으로 함께 느낄 있는 같습니다. 우리는 천하보다 귀한 영혼들입니다. 그리스도의 값으로 구원받은 사람들이니깐요. 그러니 하느님께 돌아갑시다. 그것이 회개의 본질입니다. 우리가 인생의 어떠한 지점에 있든지, 이것이 아니다 싶으면 하느님께로 돌아오십시오. ‘욕망 금기나, ‘욕망 분출을 통해 우리가 얻을 있는 것은 전혀 없습니다. 이것이 오늘 아들을 통해 배운 우리의 교훈입니다. ‘욕망 채워도 끝이 없고, 그것을 비워내도 채워지는 법입니다. 우리 안에하느님의 기쁨으로 가득할 우리는 이러한 모든 것을 능히 감당해낼 있을 것입니다. 사람이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는 . 이것이하느님의 기쁨이듯이 우리의 기쁨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이러한 기쁨이 우리 교회 가운데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아멘. 

 

 


 

전례독서_ 사순4 (다해)

 

본기도

자애로우신 하느님,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시며, 통회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시나이다. 비오니, 주님께 돌아온 우리가 함께 성찬을 나눌 때에,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하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여호 5:9-12

9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인들의 수모를 벗겼다.” 그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10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쳤다. 그리고 십사일 저녁때에 예리고 평야에서 과월절을 지켰다. 11 과월절 다음날 그들은 땅의 소출을 맛보았다. 바로 그들은 누룩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던 것이다. 12 그들이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 만나가 멎었다. 후로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당년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9, ‘길갈 히브리어로굴리다, 벗기다라는 뜻인 갈랄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성시_ 시편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용서받고
.     죄의 허물 벗겨진 이여,
2    복되어라, 주께서 잘못을 묻지 아니 하시고
.      마음에 거짓이 없는 이여.
3    , 주님께 아뢰지 않으려 했더니
.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4    밤낮으로 당신 손이 나를 짓누르시니
.      몸은 여름 가뭄에 시들듯
.     진액이 말라버렸습니다.
5    그리하여 당신께 죄를 고백하고
.      잘못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주여, 죄를 고백합니다하고 아뢰었더니,
.      잘못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6    당신을 굳게 믿는 어려운 때에
.     당신께 기도 하리이다.
  고난이 물결처럼 밀어 닥쳐도,
.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7    당신은 나의 은신처,
.     내가 곤경에 빠졌을 건져주시어
.     구원의 노래 속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8    나는 너를 가르쳐 길을 배우게 하고
.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주시리라.
9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
10  악인들에게는 고통도 많겠으나
.     주님을 믿는 이는
.     한결같은 사랑 속에 싸이리라.
11  의인들아, 기뻐하여라.
.     주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여라.
.     마음이 바른 사람들아, 모두 기뻐뛰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2고린 5:16-21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18 이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9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 .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21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복음서_ 루가 15:1-3, 11-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11어떤 사람이 아들을 두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거두어가지고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14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15 하는 없이 그는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18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20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그러자 아들은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25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26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일이냐고 물었다. 27 하인이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30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31 말을 듣고 아버지는얘야, 너는 나와 함께 있고 것이 모두 것이 아니냐? 32 그런데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