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10.13. 나해_연중28주일
욥기 23:1-9, 16-17 / 시편 22:1-15 / 히브 4:12-16 / 마르 10:17-31
“청렴결백(淸廉潔白)”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청렴결백(淸廉潔白)”
고리타분하게 들리는 고사성어이지만, 요즘처럼 부정과 부패와 거짓말이 난무한 시대에 이 말이 우리에게 절실하게 요구되는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이 말의 뜻을 살펴보는 것으로 설교를 시작하고자 합니다.
“청렴”이란, 여러분이 아시는 대로, “성품과 행실이 맑고 깨끗하며 재물 따위를 탐하는 마음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업은 재정 투명성을 논하고, 정부는 ‘김영란법’과 같은 법을 제정하여 공직자의 청렴성을 높여 국민의 신뢰를 얻으려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접하는 뉴스들은 정말 겉과 속이 다른 사람들의 사건 사고 소식으로 넘쳐납니다. 공직자의 비위도 좌우진영논리로 덮어버리는 현 정국을 보면 여당이나 야당이나 “도긴개긴”입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그 내면이 일치하는 사람을 찾아보기가 정말 힘듭니다. 특히 자본에 근간을 둔 자본주의 경제체제 하에서는 ‘청렴’이란 말은 너무나 낯선 말처럼 느껴집니다. 윗물이 진흙탕이니 아랫물은 오직 하겠습니까?
“결백”은 “마음이나 행동이 깨끗하여 아무런 허물이 없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청렴”에 “결백”을 합쳐서 “성품이 맑고 검소하며 깨끗하고 순수한 사람”을 일컫는 “청렴결백”이란 말이 탄생했습니다. 이 말은 공직에 있는 사람들이나 리더들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 아닙니다. 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하느님의 명령입니다. 그래서 초기 기독교가 전래되던 조선 시대에 서학이나 그리스도교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사는 마을의 원님들은 뇌물이나 편법은 꿈도 꾸지 못했다는 이야기도 전합니다. 이는 우리나라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얼마나 청렴결백을 지조 있게 잘 지켰는지를 보여줍니다.
오늘 히브리서의 말씀은 이를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피조물 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히브 4:13”
모든 피조물이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벌거벗겨진다고 말합니다. 마치 바닥이 훤히 보이는 맑은 시냇물을 들여다보듯이 하느님 앞에서 모든 것이 투명해 짐을 뜻합니다. 아무리 우리가 우리의 행동을 변명하고 우리의 마음의 진실을 숨기려 해도 하느님 앞에서는 모든 것이 투명하게 드러나고, 아무것도 숨길 수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람은 속일 수 있어도 결코 하느님을 속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오늘 히브리서에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라고 번역한 헬라어 “τραχηλίζω 트라첼리조”라는 동사는 직역하면 좀 잔인한 의미가 됩니다. “살해할 사람을 뒤에서 목을 꺾어 목에 칼을 들이대는 동작”을 뜻합니다. 목에 칼이 들어온 절체절명의 순간에 사람은 진심을 이실직고하게 된다는 데서 유래된 말인 것 같습니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까지 와야지만 인간은 솔직해질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죽음 앞에서 가장 솔직해지는 것 같습니다. 감추고 싶은 것, 감춰왔던 자신의 치부조차도 죽음 앞에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이런 소리를 잘 듣지 못하지만, 과거 7,80년대에는 소위 “가짜 대학생”들이 있었습니다. 자신의 직업과 신분을 숨기고 어려운 전공서적을 팔에 끼고 다니며 대학생인척 미팅도 하고 수업도 듣고 했던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그래도 애교 수준이었습니다. 몇 년 전에 방영됐던 “꼬리에 꼬리를 무는 그날이야기”라는 프로그램을 최근에 본 적이 있습니다. 바로 이 “가짜 대학생”으로 인한 비극 사건에 대한 이야기였습니다. 피의자는 “홍순영”. 그녀는 남부럽지 않은 강남의 중산층 가정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나 명문대학에 낙방하고 재수를 했는데 또다시 낙방을 했습니다. 부모의 기대가 너무나 컸던지 그녀는 그 낙방 소식을 부모님께 솔직하게 말할 수 없었습니다. 비극은 그렇게 자신을 숨기는 그녀의 단 한마디에서 시작됐습니다.
“엄마, 나 합격했어”
그 이후로 그녀는 4년 내내 대학을 오가며 자신의 본모습을 숨기고 정치외교학과 학생으로 생활했습니다. 동아리 활동도 하고 수업도 듣고 학과 친구들과 MT도 다니고… 아무도 그녀가 “가짜 대학생”이란 것을 알 수가 없었습니다. 우연히 길에서 주은 “학생증”을 위조하여 들고 다녔으니 그녀의 가족도 4년 동안 그 사실을 전혀 몰랐다고 합니다. 문제는 졸업을 하면서 더 심각해졌습니다. 용돈을 받던 대학생 때는 상관이 없었지만, 이제 사회인이 된 그녀는 돈을 벌어야 했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녀는 어느 방송사에 취업했다고 또다시 가족을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녀의 통장 잔액은 거짓말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녀는 어린아이를 유괴하여 몸값을 요구하는 유괴범이 됐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녀는 아이가 자꾸 징징대고 울어서 그 아이를 살해하기까지 했습니다. 한 마디의 거짓말이 결국 그녀를 살인자가 되게 한 것입니다. 그녀가 유괴살해범으로 잡혀갈 때까지 그녀의 가족들은 그녀의 정체를 전혀 몰랐습니다. 그 부모가 받은 충격이 어떠했을지 상상도 안 갑니다. 결국 그녀는 사형집행 전에 사제에게 고해성사를 하며 아이의 유족들과 자신의 가족들에게 죄송하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남겼다고 합니다. 진실이 드러날까 두려운 마음에 한번 내뱉은 거짓말이 이렇게 커다란 비극이 될 줄은 그녀는 꿈에도 몰랐을 겁니다.
이런 경우뿐만 아니라 신용불량자가 된 어떤 여인이 자신의 신분을 숨기고 남의 신분으로 살아가는 이야기를 그린 “화차”라는 영화도 있습니다. 결국에는 모두 돈과 자신의 양심을 속이는 거짓말이 원인이었습니다. 돈 앞에서 인간은 정말 비굴해지든지 아니면 청렴해지든지 둘 중에 하나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청렴결백하지 않은 사람에게 하느님께서 돈을 맡기실 일은 절대로 없을 겁니다.
“어떤 주인이 한 관리인에게 다른 종들을 다스리며 제때에 양식을 공급할 책임을 맡기고 떠났다면 어떻게 하는 사람이 과연 충성스럽고 슬기로운 관리인이 되겠느냐? 주인이 돌아올 때 자기 책임을 다하고 있다가 주인을 맞이하는 종이 아니겠느냐? 그 종은 행복하다. 틀림없이 주인은 그에게 모든 재산을 맡길 것이다.” 루가 12:42~44
재물에 있어서 청렴결백한 사람은 하느님께서 아시고 또 본인의 양심도 압니다. 그래서 모든 경제적인 문제는 외부적인 요인과 내부적인 요인이 동시에 작용하는 것입니다. 경기가 나쁜 것은 우리가 어떻게 할 수 없는 일이지만, 주어진 돈을 규모 있게 검소하게 관리하고 또 필요한 재물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것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주님께서 돈과 관련하여 “선한 청지기”를 언급하신 이유입니다. 모든 것이 주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에 우리의 소유를 잘 관리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의 것을 잘 관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야 우리도 살고 하느님도 영광을 받으시는 것입니다.
“‘너희 가운데 누가 망대를 지으려 한다면 그는 먼저 앉아서 그것을 완성하는 데 드는 비용을 따져 과연 그만한 돈이 자기에게 있는지 곰곰이 생각해 보지 않겠느냐?’ 기초를 놓고도 힘이 모자라 완성하지 못한다면 보는 사람마다 ‘저 사람은 집 짓기를 시작해 놓고 끝내지를 못하는구나!’ 하고 비웃을 것이다.” 루가 14:28~30
이런 비웃음이 부끄러워 우리는 우리의 치부를 너무나 자주 숨깁니다. 우리 모두가 선한 청지기가 되고 싶지만 실제로 그렇게 사는 사람은 많지가 않습니다.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우리의 소비를 유발하고 또 소비가 있어야만 경제가 유지되는 체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모두 자본주의 탓으로 돌릴 수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를 선한 청지기로 부르신 주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자본에 함몰되어 살아가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소유를 의지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주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우리를 포장하고 우리를 안일하게 만드는 모든 거짓을, 모든 가식을 벗어버린 사람들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히브 4:12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이 찬양은 구약성서의 잠언과 헬라철학을 집대성한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유대 철학자 필로도 창세기를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자연 속에 있는 모든 것을 나누고 쪼갠다.”라고. 말씀은 모든 사건과 존재의 본질을 꿰뚫어 투명성을 드러내는 힘이 있습니다. 날카로운 칼로 못 벨 것은 없습니다. 우리의 양심도 바로 하느님의 말씀 앞에 모두 명명백백하게 드러나는 것입니다. 앞에서 언급한 유괴살인범은 결국 가족과 남을 속인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부터 철저히 속였기 때문에 남을 속일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사기꾼의 자질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자신을 속일 수도 있는 존재임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말씀의 칼은 이러한 우리의 양심 깊은 내면을 쪼갭니다. 방금 읽어드린 말씀에서 “살아 있고 힘이 있다”는 말은 하느님의 말씀이 생명과 능력을 발휘하는 실체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를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투명하도록,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진실하도록,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청렴결백하도록 힘과 용기를 줍니다. 부족하면 부족한 대로, 많으면 많은 대로, 능력 있으면 있는 대로, 능력 없으면 없는 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을 숨김없이 하느님과 사람들 앞에 떳떳하게 드러낼 용기를 하느님의 말씀은 줍니다. 그래서 이러한 그리스도인은 언제나 사람들 앞에 당당하고 솔직합니다. 사귐에서 숨기는 것이나 거리낌이 없습니다. 그의 존재의 힘이 바로 소유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에 기반하기 때문입니다.
“혼”은 우리의 정신이고, “영”은 우리의 영혼입니다. 이는 우리의 본질과 내면을 드러내는 표징어입니다. “관절과 골수”는 우리 육신의 가장 깊은 곳입니다. 우리 육신의 생명이 여기에 있습니다. 결국 이 말은 하느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을 속속들이 파해쳐 하느님 앞에 명명백백하게 우리의 존재를 모두 드러나게 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이 없으면 우리는 끊임없이 쓸데없는 것으로 우리를 포장하고 우리의 내면을 가리기 급급해지는 것입니다. 겉과 속이 다른 이상한 괴물이 탄생하는 것이지요. 성서는 그런 사람들을 생명의 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니 몸은 있으데 죽은 몸입니다. 이러한 몸으로 이 험한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습니까? 그러니 사람들은 거짓말과 가식으로 자신을 포장하는 것입니다. 마치 뭘 아는 사람인양, 마치 뭘 가진 사람인양, 마치 신앙이 있는 사람인양. 그러나 여러분의 지금 있는 모습이 바로 여러분 자신입니다. 거울 앞에 서서 자신의 모습을 보면 겉모습밖에 볼 수 없지만 하느님의 말씀 앞에 서면 여러분의 혼과 영과 골수가 모두 쪼개지고 여러분이 여러분 자신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 자유를 얻게 됩니다.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는 주님의 약속은 이렇게 하느님의 말씀으로 자신을 명명백백 투명하게 드러낸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그런 사람을 우리는 한마디로 ‘청렴결백하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청렴결백한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하느님 앞에 복을 받아 이 현세뿐만 아니라 내세에도 그를 위한 은총이 약속됐습니다. 이는 제 말이 아니라 성서의 말씀입니다. 사람 앞에, 하느님 앞에 솔직하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 여러분의 영혼에 힘과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을 주기적으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말씀이 없는데 어떻게 여러분의 영과 혼과 관절과 골수가 쪼개지겠습니까? 진정한 자유와 평화를 원하신다면 매일 조금씩 하느님의 말씀을 가까이하시기 바랍니다. 히브리서 기자의 충고대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여러분을 홀로 힘겹게 삶을 감당하도록 내버려 두시지 않고 반드시 말씀을 통해 여러분을 지켜주실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연중28주 (나해) 1
본기도
자비하신 하느님, 주님은 영원한 생명에 이르는 참 길을 가르쳐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께서 베푸시는 모든 일에 감사하며, 언제나 주님의 풍성한 은총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욥기 23:1-9, 16-17
1 욥이 말을 받는다.
2 오늘 또 이 억울한 마음 털어놓지 않을 수 없고
⋅ 그의 육중한 손에 눌려 신음 소리조차 내지 못하겠구나.
3 그가 어디 계신지 알기만 하면,
⋅ 당장에 찾아가서
4 나의 정당함을 진술하겠네.
⋅ 반증할 말도 궁하지는 않으련만.
5 그가 무슨 말로 답변하실지를 꼭 알아야겠기에
⋅ 그 하시는 말을 하나도 놓치지 않고 들어야겠네.
6 그가 온 힘을 기울여 나를 논박하실까?
⋅ 아니, 나의 말을 듣기만 하시겠지.
7 그러면 나의 옳았음을 아시게 될 것이고
⋅ 나는 나대로 승소할 수 있을 것일세.
8 그런데 앞으로 가보아도 계시지 않고
⋅ 뒤를 돌아보아도 보이지 않는구나.
9 왼쪽으로 가서 찾아도 눈에 뜨이지 아니하고
⋅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도 보이지 않는구나.
⋅ …
16 하느님 앞에서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고
⋅ 전능하신 분 앞에서는 간담이 서늘해지는구나.
17 차라리 온통 어둠에 싸여,
⋅ 나의 얼굴이여, 흑암 속에 묻혀라.
6절은 “제발 변호사를 내세워 변론하시지 마시고 당신께서 친히 나의 변론을 들어주셔야 할 터인데.”라고 옮길 수도 있음
성시_시편 22:1-15
1 하느님, 나의 하느님,
. 어찌하여 나를 버리십니까? ◯
. 살려 달라 울부짖건만
. 들리지도 않습니까?
2 나의 하느님,
. 온종일 불러 봐도 대답 하나 없으시고, ◯
. 밤새도록 외쳐도 모르는 체하십니까?
3 그러나, 당신은 옥좌에 않으신 거룩하신 분, ◯
. 이스라엘이 찬양하는 분이십니다.
4 우리 선조들은 당신을 믿었고 ◯
. 믿었기에 그들은 구원을 받았습니다.
5 당신께 부르짖어 죽음을 면하고 ◯
. 당신을 믿고서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6 나는 사람도 아닌 구더기, 세상에서 천더기, ◯
.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되었으니,
7 사람마다 나를 보고 삐쭉거리고 ◯
. 머리를 흔들며 빈정댑니다.
8 “주님을 믿었으니 구해 주겠지. ◯
. 마음에 들었으니, 건져 주시겠지.”
9 당신은 나를 모태에서 나게 하시고, ◯
. 어머니 젖가슴에 안겨 주신 분,
10 날 때부터 이 몸은 당신께 맡겨진 몸, ◯
. 당신은 모태에서부터 나의 하느님이시오니
11 나를 멀리하지 마옵소서. ◯
. 어려움이 닥쳤는데, 도와 줄 자 없습니다.
12 황소들이 떼 지어 에워쌌으며 ◯
. 바산의 들소들이 에워쌌습니다.
13 으르렁대며 찢어발기는 사자들처럼 ◯
. 입을 벌리고 달려듭니다.
14 물이 잦아들듯 맥이 빠지고
. 뼈 마디마디 어그러지고, ◯
. 가슴 속 심장도 촛농처럼 녹았습니다.
15 깨진 옹기조각처럼 목이 타오르고 ◯
. 혀는 입천장에 달라붙었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히브 4:12-16
12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더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의 마음을 꿰뚫어 영혼과 정신을 갈라놓고 관절과 골수를 쪼개어 그 마음속에 품은 생각과 속셈을 드러냅니다. 13 피조물치고 하느님 앞에 드러나지 않는 것은 없습니다. 하느님의 눈앞에는 모든 것이 다 벌거숭이로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언젠가는 우리도 그분 앞에서 심판을 받아야 합니다.
14 우리에게는 하늘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가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분에 대한 신앙을 굳게 지킵시다. 15 우리의 사제는 연약한 우리의 사정을 몰라주시는 분이 아니라 우리와 마찬가지로 모든 일에 유혹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러나 죄는 짓지 않으셨습니다. 16 그러므로 용기를 내어 하느님의 은총의 옥좌로 가까이 나아갑시다. 그러면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와 은총을 받아서 필요한 때에 도움을 받게 될 것입니다.
복음서_마르 10:17-31
17 예수께서 길을 떠나시는데 어떤 사람이 달려와서 그 앞에 무릎을 꿇고 “선하신 선생님, 제가 무엇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18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선하신 분은 오직 하느님뿐이시다. 19 ‘살인하지 마라.’ ‘간음하지 마라.’ ‘도둑질하지 마라.’ ‘거짓 증언하지 마라.’ ‘남을 속이지 마라.’ ‘부모를 공경하여라.’ 한 계명들(출애 20:12-16)을 너는 알고 있을 것이다.” 20 그 사람이 “선생님, 그 모든 것은 제가 어려서부터 다 지켜 왔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1 예수께서는 그를 유심히 바라보시고 대견해 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에게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다. 가서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러니 내가 시키는 대로 하고 나서 나를 따라오너라.” 22 그러나 그 사람은 재산이 많았기 때문에 이 말씀을 듣고 울상이 되어 근심하며 떠나갔다.
23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둘러보시며 “재물을 많이 가진 사람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모른다.” 하고 말씀하셨다. 24 제자들은 이 말씀을 듣고 놀랐다. 그러나 예수께서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참으로 어렵다. 25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귀로 빠져 나가는 것이 더 쉬울 것이다.” 26 제자들은 깜짝 놀라 “그러면 구원받을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27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똑바로 보시며 “그것은 사람의 힘으로는 할 수 없으나 하느님은 하실 수 있는 일이다. 하느님께서는 무슨 일이나 다 하실 수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28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보시다시피 저희는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9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또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머니나 아버지나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30 현세에서 박해도 받겠지만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의 복도 백 배나 받을 것이며 내세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얻을 것이다. 31 그런데 첫째가 꼴찌가 되고 꼴찌가 첫째가 되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