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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장된 가치와 가장된 흥행_영화 디워

James Chae 2011. 9. 2. 19:16

 

과장(誇張)된 가치와 가장(假裝)된 흥행

 영화 디워와 미술품의 초과가치

 

채창완

 

  

얼마 전 TV토론 프로그램에서 디워에 대한 논쟁이 있었다. 그 후 그 영화에 대하여 혹평을 한 사람에게 쏟아진 네티즌들의 비난이 정도를 넘어 인신공격과 흑색선전의 수준에 이르는 것을 봤다. 완전히 파쇼였다. 황우석 사태 때 그를 지지했던 사람들이 보여준 행태나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였다. 이미 이러한 사태는 2002년 월드컵의 대한민국 응원전에서 그 싹을 보이더니 요즘은 사회 곳곳에서 쉽게 그런 행태를 목격하게 된다. 과거에는 극렬 종교단체에서나 볼 수 있었던 모습이 이제 ON/OFF 라인에 걸쳐 보편화가 된듯하다. 그들이 믿는 신념은 도를 넘어 실재사실은 안중에도 없다. 나는 그들의 맹목적 열정이 두렵다. 왜냐하면 그것에는 실재보다 더 실재 같은 시뮬라시옹만 존재하기 때문이다.

 

 

▲ 영화 '디 워'의 한 장면

 

디워는 지금 관객 1,000만을 바라보고 있다고 자랑한다. ‘디워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가 내려지기도 전에 그 영화는 애국 파쇼의 여의주를 입에 물고 하늘로 승천해 버렸다. 그 여의주를 문 것이 선한 이무기인지 아니면 악한 이무기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작품은 어느새 사라지고 영화제작의 후일담과 애국주의에 대한 호소, TV 프로그램 출연 홍보 등 만 남아 끊임없이 여론 몰이를 하고 있다. 사실 디워는 이전의 용가리보다는 진일보했다. 그렇지만 속 빈 강정같이 엉성한 알맹이에 조금 과장된 C.G.로 시럽을 입힌 것이 전부이다. 개봉 전부터 작품에 대한 평가는 철저히 흑막에 가려졌었고, 개봉 후에는 애국네티즌의 비호아래 평가마저도 저지 당하고 있는 실태이다. ‘실재에 대한 끊임없는 과장의 과잉은 결국 실재를 사라지게 한다.  보드리야르의 말처럼 이미 디워라는 작품은 존재하지 않고 그것이 가진 이미지기호만 난무하다. 거기에는 오직 실재가 없다는 것을 숨기기 위한 음모만 존재할 뿐이다. 그리고 그 시뮬라크르는 실재보다 더욱 실재로서의 권위를 가지게 된다. 결국 디워=애국이라는 어처구니없는 기호에 힘입어 그 영화는 흥행하는 거다. 흥행에 찬물을 끼얹는 비평은 애국네티즌들로부터 혹독한 비난을 감수해야만 한다. 실재가 사라졌으니 비평 조차 할 수 없다는 건가? 정말 웃기는 아이러니다.

 

 

 

▲ 1990년 5월 15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8천2백5십만 달러에 팔린 작품(현재 1억1천6백만 달러)

 

 

어디 디워와 같은 영화만 그런가? 미술에 있어서도 가치의 과잉은 넘쳐난다. 지금 호황을 누리는 미술 옥션을 예로 들지 않더라도 오래 전부터 미술품 시장에는 늘 거품이 존재해왔다. 그 거품은 미술작품을 초과가치의 상태에 놓이게 한다. 나는 개인적으로 고호의 작품을 좋아한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초과가치의 수준에 오르는 것은 반대한다. 그의 작품은 이미 작품의 실재가치를 너무 초과했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그림의 목록에서 그의 작품은 늘 빠지지 않는다. 그렇게 된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이유가 있을 텐데, 그 중에 첫째는 자본의 논리이고, 둘째는 작품보다 더 과장된 고호의 에피소드들과 미술사적 초과가치의 평가이다. 첫 번째 이유에 대해서는 긴 설명이 필요 없을 것 같다. 말 그대로 작품 거래에서 경제논리에 따라 최대의 이윤을 남기기 위함이니깐. 그러나 두 번째 경우는 약간 복잡하다. 생각해보라, 그 동안 여러분이 아는 작가들 중에 그들의 작품보다 사생활에 대해서 얼마만큼 정보를 가지고 있는지. 고호의 작품은 그의 작품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까지 그의 사생활에 대한 에피소드들로 사람들을 매혹시켜왔다. 오직 했으면 조용필은 그의 노래에서 나보다 더 불행하게 살다간 고호라는 사나이도 있었는데라고 하지 않았던가. ‘귀를 자른 얘기’, ‘동생 테오와의 형제애’, ‘탄광에서의 전도사 생활’, ‘고갱과의 인연’, ‘정신병으로 고생하다 자살한 얘기등등. 실로 그의 삶의 얘기들은 한편의 드라마 같이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키며 그를 동경하게 만들었다. 그의 작품과 함께 이러한 얘기들은 늘 그림자처럼 따라다닌다. 결국 고호의 이야기는 불행=고호라는 기호를 만들어냈다.

 

 

 

▲ 영화 '디 워'의 포스터

 

 

또한 미술사에서 내린 그의 작품에 대한 가치의 과잉은 어떠한가? 미술사에서 모더니즘의 3대 거장 중 하나로 고호는 평가 받았다. 미술사가들의 모더니즘적 가치의 레이더에 고호의 작품이 포착된 것이다. 아카데미적인 관점에서는 가치 제로의 작품이 모더니즘적으로는 과대 평가를 받게 된다. 평론가들과 미술사가들은 모든 복잡한 것을 간단히 단순화시키는 재능이 있는 것 같다. 소수의 작가들에 의해 모더니즘이 시작된 것 같이 미술사를 단순화 시킨다. 그래서 우리는 고호와 고갱, 그리고 세잔에 주목하게 된다. 그러나 미술사가들이 그렇게 하지 않았다면 우리 중 몇이나 그들의 그림을 기억하게 되었을지 의문이다.

 

 

 

▲ 1998년 11월 19일 뉴욕의 크리스티 경매에서 6천5백만 달러에 팔린 작품(현재, 7천1백만 달러)

 

 

그러나 냉정하게 생각해보자. 그의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그리고 미술사적 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누군가가 그의 작품을 접했다면 과연 그러한 감동을 쉽게 느낄 수 있을까? 나는 그의 작품이 생명력을 가지고 있기에 어느 정도는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아마도 현재와 같은 대중 작가의 자리를 차지하지는 못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삶은 나름대로 고호만큼 비참하다. 대부분 실업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예술가들의 비하인드 스토리는 늘 작품 뒤로 숨어버리는 것이 다반사다. 그러나 작가가 유명세를 띠기 시작하면서 그 작가의 스토리는 작품의 표면으로 드러나 작품보다 더 귀중한 대접을 받는다. 우리나라의 대표작가라 할 수 있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장욱진 등의 비하인드 스토리도 그들의 유명세에 한 몫을 했다. 우리는 늘 그들 작품에 대한 올바른 평가에 앞서 여담으로 듣는 그들의 이야기들에 의해 선입견을 갖게 된다. 애절한 스토리는 늘 작품을 돋보이게 만들고 작품 거래에 있어서 메리트로 작용한다. 우리는 고호=불행이란 기호를 통해 어느새 고호 작품을 고통, 사랑, 비극’이란 이미지로 받아들인다. 또한 작가와 작품에 대한 평가를 내리는 평론가들이나 미술사가들의 편협한 가치의 조정은 미술계에서 소수의 엘리트 작가들에게만 편중된다. 대표성을 띠는 몇 사람이 전체를 대신하는 것이다. 역사의 성질이 그렇듯이 전체는 소수 속에서, 소수는 전체 속에서 사라진다. 결국 실재를 떠난 역사가 사라지듯이 사라진 미술사에서 미술사적 가치의 과잉만 존재한다. 가치의 과잉은 결국 의미의 사라짐을 뜻한다. 그리고 소수의 엘리트 작가들에게는 미술사의 의미 없음을 감추기 위해 더욱 과잉 된 가치가 부여되곤 한다.

 

이와 같이 늘 원작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는 정보의 보조적 기능이 초과 정보로 말미암아 결국 원작을 사라지게 할 수 있다는 사실. 우리는 여기서 현대사회에 의해 교묘하게 조작된 가장(假裝)된 흥행‘과장(誇張)된 가치의 출현을 목격하게 된다. 그러므로 초과실재’, ‘초과가치’, ‘초과흥행은 결국 의미의 부재를 드러낸다. 거기에는 오직 의미가 없다는 것을 감추려는 음모만이 존재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