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11.1. 가해_연중31주일_감사성찬례
묵시 7:9-17 _ 시편 34:1-10,22 _ 1요한 3:1-3 _ 마태 5:1-12
모든 성인의 날 대한성공회 초대주교 고요한(존 코프)주교 서품일 1889년
“행복하여라!”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묵시7:13상)
오늘 묵시록 말씀입니다.
여기에서 “흰 두루마기를 입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결론부터 말하면 그들은 다음과 같은 사람들일 겁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 ; “슬퍼하는 사람” ; “온유한 사람” ;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 “자비를 베푸는 사람” ; “마음이 깨끗한 사람” ;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 ;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와 비난을 받는 사람”
여기에 우리가 몇 가지나 해당되는지 잠시 묵상해 봅시다.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이번에는 헬라어 원본 형태로 읽어보겠습니다.
원어는 공동번역과는 다르게 도치법 문장으로 되어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 “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 “행복하여라.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 “행복하여라.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들” ; “행복하여라. 예수님 때문에 모욕과 박해와 비난을 받는 사람들!”
이제 느낌이 조금 다릅니다. "행복하여라"라는 말이 주는 느낌이 그다음에 나오는 사람들을 특별하게 정의하는 것 같습니다. 결코 이 세상에서 행복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역설적으로 행복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행복하여라”는 선포에 가깝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산’ 위에서 이 말씀을 선포하시는 장면을 상상하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선포하는 모세의 모습이 연상됩니다. 아마도 마태오는 그러한 의도를 가지고 “평지”를 선택한 루가와 다르게 “산”이라는 장소를 선택한 것 같습니다. 예수의 새로운 율법의 선포가 모세의 율법과 비교해서 더 나으면 나았지 부족함이 없음을 부각시킨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메시지의 첫마디가 ‘행복 선언’이었습니다. “행복하다”는 히브리어 ‘אַשְׁרֵ’ 아쉬레이’를 칠십인역(LXX)에서 헬라어 ‘Μακάριοι 마카리오이’로 번역한 것입니다. ‘마카리오이’는 μακάριος 마카리오스의 남성주격복수형용사로 ‘행복한 이들이’라는 의미입니다. 마카리오스는 ‘행복한’ 외에도 ‘기쁜’, ‘밝은’이란 뜻도 있습니다. 마태오는 예수가 모세를 뛰어넘는 율법의 새로운 스승으로 독자들에게 소개하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선포의 느낌과 주제를 강조하기 위해 ‘도치법’을 사용하여 ‘형용사’를 문장 앞에 배치합니다. 이러한 ‘행복 선언’ 형식은 루가복음과 마태오복음 밖에는 없습니다. 루가가 '평지'에서 묘사한 것과는 대조적으로 마태오의 표현은 조금 더 웅장하고 비장한 느낌마저 듭니다.
사실 교회 전통적으로 “모든 성인의 날”은 그리스도인들이 성인들의 삶을 본받고자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와 더불어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성인들을 또한 기념하는 날이기도 합니다. 비종교인들에게는 “핼러윈 데이”로 더 잘 알려졌지요. 그리고 “모든 성인의 날”은 우리 성공회가 기념하는 “일곱 가지 대축일” 중 하나입니다. “대축일”은 다른 축일과 주일에 우선하여 지킵니다. 나머지 여섯 대축일이 모두 예수님의 행적과 관련이 있는 것에 비해, 이 “모든 성인의 날”은 우리와 같은 ‘사람’과 관련 있습니다. 묵시록 기자는 이러한 사람들에 대한 환상을 보았던 것 같습니다.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묵시7:9)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들”은 비단 성인들만은 아닐 것입니다. 그런 차원에서 이 날은 성인들 뿐만 아니라 마지막 날에 성인들과 함께 주님께 나아갈 우리 모든 신자들까지 포함되는 것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이러한 그리스도인들에게 엄격한(?) 조건을 달고 있습니다. 이미 열거한 아홉 가지 조건이 그것입니다. 마지막 9번째는 8번째의 핍박과 연관된 것이므로 총 8가지 조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문장 흐름상 아마도 9번째는 핍박의 위기에 놓인 마태오 공동체를 위한 위로의 메시지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러므로 총 8가지 조건이라 해도 무방합니다. 이것은 마태오가 제시한 예수님의 ‘하늘나라’에 적합한 8가지 인격입니다. 달리 말하면 ‘그리스도인의 품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품성을 지닌 사람이 이 세상에서나 마지막 하늘나라에서나 ‘행복’을 누릴 권한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마태오는 ‘산상설교(5장에서 7장)’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지녀할 품성에 대해 열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빛과 소금으로서의 인격이 어떠해야 하는지 말하고 있습니다. 교인들에게 엄격한 기준을 제시하는 율사다운 마태오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결코 율법주의자도 근본주의자도 아닙니다. 그는 율법이 지닌 ‘율법의 정신’을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그것은 행위에 앞서는 인간의 의지와 뜻과 연관됩니다. 제가 지난주에 말씀드린 헬라어 ‘디아노이아διανοίᾳ’가 바로 모든 행위에 선행되어야 합니다. 우리 개인이 지닌 ‘뜻’, ‘정신’, ‘의지’가 결국 우리의 행위를 결정짓습니다. 그러므로 음행을 행하는 자가 죄인이 아니라 마태오의 관점에서는 음욕을 마음에 품기만 해도 죄가 되는 것입니다. 가식적인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율법 실천에서 빠져있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선한 의지’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율법의 '문자 만능주의'에 빠져 율법의 근본정신을 망각했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 같이 율법 문구의 준수에만 목을 매다가 정작 율법이 제시하는 ‘사랑의 정신’을 놓치게 될 위험을 경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마음을 늘 관찰하고 묵상하며 반성하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행위의 동기가 무엇인지 분명히 분별해야 합니다. ‘선한 동기’에 의해 자발적으로 행하는 선행이 아니면 그것 또한 ‘위선’입니다. 이것이 오늘 복음서에서 말하는 8가지 유형의 사람들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입니다.
“흰 두루마기”는 예복의 느낌을 줍니다. '하늘나라'의 혼인 잔치에 초대받은 사람들의 예복 말입니다. 마태오복음 22장에 나오는 “혼인 잔치의 비유”가 연상됩니다.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쫓겨나 어두운 데서 가슴을 치며 통곡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무지막지한 것 같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자’의 마음 상태에 문제가 있다고 마태오는 생각한 것입니다. “혼인 잔치의 비유”는 마태오와 루가가 모두 Q자료(예수 어록)를 참고하여 작성한 것입니다. 그러나 마태오는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쫓아낸 이야기를 덧붙였습니다. 루가복음에는 이러한 내용이 빠져 있습니다. 문맥상 어울리지 않는 이러한 이야기를 넣어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의 내면적 동기를 들여다본 것이 마태오입니다. 물론 문맥상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아마도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유대교의 지도자들과 원로들 일 겁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섬긴다고 하지만 정작 혼인 잔치에서 하느님 앞에 예복도 입지 않은 무례한 사람들로 판명 납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잘 섬기고 있다고 굳게 믿고 있었지만, 결국에는 하느님을 무시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갖은 모욕과 적의를 드러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율법 지상주의' 신앙은 위선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마태23:3)
마태오는 단호합니다. 예복, 즉 “흰 두루마기”를 입지 않은 사람은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 내쫓아라.”는 것입니다. 동기가 선하지 않은 행위는 위선입니다. 사람은 그것을 분별하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가능하십니다. 아마도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은 자신이 예복을 입지 않았다는 것조차 몰랐을 수도 있습니다. 위선에 빠진 사람은 거의 ‘망상증’ 증상과 비슷해지기 때문입니다.
‘흰 두루마기를 입은 셀 수 없이 많은 사람들’이 마지막 날 주님과 함께하는 환상을 묵시록 기자는 보았습니다. 색의 삼원색은 파랑, 빨강, 노랑(C.M.Y.)입니다. 이것을 모두 섞으면 검은색이 됩니다. 그러나 빛의 삼원색은 R.G.B입니다. 빨강, 녹색, 파랑. 이 세 가지 빛이 합쳐지면 하얀빛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영적인 신비를 발견하게 됩니다. 만약 선함이 빛으로 상징될 수 있다면 그것의 '융합'은 ‘밝은 하얀빛’이라는 사실입니다. 그것이 묵시록 기자가 본 하얀 두루마기의 이미지일 겁니다. 수를 셀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이 융합하면 할수록 그 빛은 더욱 하얗게 빛이 날 겁니다. 그곳에는 어둠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늘 읽은 묵시록은 알레고리적 표현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리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가려주실 것입니다.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태양이나 어떤 뜨거운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요, (묵시7:15하-16)
옥좌에 앉으신 분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얼굴은 하얀 광채로 빛날 것입니다. 시편 34장 5절의 말씀입니다.
그를 쳐다보는 자, 그 얼굴 빛나고, 부끄러운 꼴 당하지 아니하리라. (시편34:5)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 (묵시7:17하)
오늘 묵시록 말씀을 터무니없는 환상이라 생각하면 정말 정신 나간 소리로 밖에는 들리지 않을 겁니다. 실제로 아무도 경험한 바가 없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것을 ‘신앙의 신비’라 부릅니다. ‘신비’는 우리의 이성과 판단으로 분별할 수 없음을 솔직히 표현하는 우리의 고백입니다. 어느 누구도 묵시록 기자의 환상을 거짓이라 말할 수 없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도 그것이 사실이라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오직 믿음으로만 그것을 우리는 받아들입니다. 우리는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말할 뿐입니다. 그래서 종교는 ‘신비’라는 ‘가로 넣기’를 우리 삶 속에 드러냅니다. 중요한 것은 핍박과 환란의 시기에 이러한 말씀은 분명 요한 공동체에 커다란 위안이 되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서 이러한 말씀은 묵시록 기자와 그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서 이해되어야 합니다. 현재 우리의 '삶의 자리'가 핍박의 때가 아니기 때문에 우리가 느끼는 느낌은 그들과 다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핍박의 상황에 놓이게 된다면 이러한 말씀은 다른 어떠한 성서의 말씀들 보다 우리에게 커다란 위로가 될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현재의 우리는 ‘행복하여라’라는 주님의 선언이 "미래가 우리의 현재에 투사되고 있다."는 강력한 메시지라는 사실을 아는 것으로 충분할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러한 축복에 합당한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만은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 노력은 바로 현재에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현재가 다가올 미래에 참여케”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이 ‘행복하여라’라는 선언은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다가올 미래에도 모든 인류에게 보편성을 띠는 위로의 말씀입니다. 그것이 우리가 성인들로부터 그리고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로부터 물려받은 그리스도교의 귀한 신앙의 유산입니다. ‘행복하여라’는 주님의 선언은 우리의 현실이 불행하면 불행할수록 더욱 역설적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는 말씀입니다. ‘흰 두루마기’를 준비하고 계시는 여러분의 삶이 늘 우리 주님으로 말미암아 더 행복해졌으면 좋겠습니다. 아멘.
11.1. 모든 성인의 날 (가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인들의 믿음과 헌신으로 교회를 새롭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도 앞서간 모든 성인들의 거룩한 삶을 본받아 주님의 진리를 이 세상에 증거하고, 마지막 날에 성인들과 더불어 영원한 잔치에 참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묵시 7:9-17
9 그 뒤에 나는 아무도 그 수효를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사람이 모인 군중을 보았습니다. 그들은 모든 나라와 민족과 백성과 언어에서 나온 자들로서 흰 두루마기를 입고 손에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서 옥좌와 어린 양 앞에 서 있었습니다. 10 그리고 그들은 큰소리로 “구원을 주시는 분은 옥좌에 앉아 계신 우리 하느님과 어린 양이십니다.” 하고 외쳤습니다. 11 그러자 천사들은 모두 옥좌와 원로들과 네 생물을 둘러서 있다가 옥좌 앞에 엎드려 하느님께 경배하며 12 “아멘, 우리 하느님께서 영원 무궁토록 찬양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영예와 권능과 세력을 누리시기를 빕니다. 아멘.” 하고 외쳤습니다.
13 그 때 그 원로들 가운데 하나가 “흰 두루마기를 입은 이 사람들은 도대체 누구이며 또 어디에서 왔습니까?” 하고 나에게 물었습니다. 14 “어른께서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하고 내가 대답했더니 그는 나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 사람들은 큰 환난을 겪어낸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어린 양이 흘리신 피에 자기들의 두루마기를 빨아 희게 만들었습니다.
15 그러므로 그들은 하느님의 옥좌 앞에 있으며
. 하느님의 성전에서 밤낮으로 그분을 섬기는 것입니다.
. 그리고 옥좌에 앉으신 분이 그들을 가려주실 것입니다.
16 그들이 다시는 주리지도 목마르지도 않을 것이며
. 태양이나 어떤 뜨거운 열도 그들을 괴롭히지 못할 것이요, 이사 49:10
17 옥좌 한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셔서
. 그들을 생명의 샘터로 인도하실 것이며 시편 23:2
.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눈에서 눈물을 말끔히 씻어주실 것입니다.” 이사 25:8
시편 34:1-10, 22
1 나 어떤 일이 있어도
. 주님을 찬양하리라. ◯
.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
. 내 입에서 그칠 날이 없으리라.
2 나의 자랑, 주님께 있으니 ◯
. 비천한 이들아, 듣고 기뻐하여라.
3 나와 함께 “주, 높으시도다” 노래 부르자. ◯
. 모두 소리 맞춰 그 이름 기리자.
4 주님 찾아 호소할 때 들어 주시고 ◯
. 몸서리쳐지는 곤경에서 건져주셨다.
5 그를 쳐다보는 자, 그 얼굴 빛나고 ◯
. 부끄러운 꼴 당하지 아니하리라.
6 가엾은 이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
. 주께서 곤경에서 건져 주셨다.
7 주님의 천사가 그를 경외하는 자들 둘레에 ◯
. 진을 치고 그들을 구해 주셨다.
8 너희는 주님의 어지심을 맛들이고 깨달아라. ◯
. 그에게 피신하는 자는 복되다.
9 주님의 거룩한 백성아,
.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겨라. ◯
. 두려운 마음으로 그를 섬기면
. 아쉬울 것 없으리라.
10 맹수들은 먹이 찾아 배고플지 모르나 ◯
. 주님을 찾는 사람은 온갖 복을 받아 부족함이 없으리라.
22 주께서 당신 종의 목숨을 구하시니 ◯
. 그에게 피신하는 자는 죽지 아니하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요한 3:1-3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그 큰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
마태 5:1-12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2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 행복하다.
.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 행복하다.
.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 행복하다.
.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 행복하다.
.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 행복하다.
.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 행복하다.
.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 행복하다.
.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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