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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극적 관심

James Chae 2021. 3. 16. 16:39

알브레히트 뒤러의 ‘율법학자들 가운데 선 예수’ (1506) _ 사진출처 : 가톨릭뉴스 지금여기(http://www.catholicnews.co.kr)

 

2020.10.25. 가해_연중30주일_감사성찬례

신명 34:1-12 또는 레위 19:1-2, 15-18 / 시편 90 1-6, 13-17 또는 1 / 1데살 2:1-8 / 마태 22:34-46

성 크리스핀(로마의 순교자, 297년경)

 

 

궁극적 관심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오늘 읽은 복음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벌인 예수님의 번째와 번째 논쟁이야기입니다. 번째는 지난주에 읽었던 2215~22절에 있는세금 논쟁이고 번째와 번째가 오늘 말씀인계명 논쟁그리스도 논쟁입니다. 말씀으로 예루살렘 입성 후에 벌어진 유대교 리더들과의 논쟁의 마지막을 장식합니다. 이후에는심판설교 23~25장까지 이어집니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마태오는 마치 검사가 죄인들을 기소할 혐의 사실을 명시하듯이 유대교 리더들과의 논쟁을 통해 그들의 잘못을 들어내고자 했던 같습니다. 요약하면 그들의 죄목은 명확합니다. 구약의 예언을 성취하신 메시아이시고, ‘하느님의 전권을 가진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알아보지 못하고 배척했다는 것입니다. 논쟁 사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계명 논쟁 통해 마태오는 예수 그리스도가 율법에 통달하고, 율법 해석의 전권을 가진 랍비로서의 예수를 강조합니다. 이와 더불어 뒤에 나오는그리스도 논쟁 통해 그리스도가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계속해서 유대교 리더들에게 공격을 받던 예수께서그리스도 논쟁에서는 공격적으로그리스도는 누구의 자손인가?”라며 질문을 하여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입을 다물게 만듭니다. 당신들 앞에 사람은이스라엘 전통의 계승자이며, “율법의 완성자이고, “하느님의 전권을 가진 그리스도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마태오는 루가(10:25-28) 마찬가지로 마르코 복음(12:28-34)에서 논쟁사화를 인용해옵니다. 인용해 오면서마음(καρδίᾳ,디아)’, ‘목숨(ψυχῇ, 쉬케)’, ‘(생각, 정신, διανοίᾳ,디아노이아)’ 그대로 사용하는 대신 마르코와 루가가 사용한(ἰσχύς,)’이란 단어는 생략합니다. 이유는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루가보다는 마태오가 단어를 적게 사용했고, 단어를 명사형으로는 많이 사용하지 않은 같습니다. 그러나 추측컨데 아마도 마태오는 마르코 복음을 참조하면서 동시에 신명기 본문도 참조한 같습니다. 구약성서에 대한 지식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마태오 기자가 신명기 본문에도 나오는이란 단어를 빼고 대신(διανοίᾳ, 정신,mind)’ 삽입한 것은 어떤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기자가 참고한 구약 본문이 다른 버전이 아닌 이상 말입니다. 원래 신명기 6 5절에서 사용한 해당하는 단어의 히브리 원어는מְאֹד 메오드입니다. 이를 70 역에서는  헬라어 ‘δύναμις 두나미스 번역했습니다. ‘권능’, ‘이란 뜻입니다. 히브리어 메오드는많음’, ‘’, ‘풍성함 뜻합니다. 여기에서 마태오 기자의 의도를 조금이나마 추측해봅니다. 아마도 그는이라는 물리적이며, 측량 가능하고, 에너지로 환원될 있는 것보다는정신적이고 영적이며 추상적인 중점을 것으로 보입니다. ‘마음’, ‘목숨’, ‘(정신)’ 모두 영적이며 추상적입니다. 산상설교인 마태오복음 5장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이란 표현을 이유와도 연관성이 발견됩니다. 루가가  같은 구절을마음 빼고가난한 사람이라고만 표현한 것과 비교됩니다. 이는 마태오가 영적이고 정신적인 것에 중점을 뒀다고 조심스럽게 추측할 있는 근거입니다. 마태오에게는인간의 물리적 보다는 인간 내면의의지 중요했던 같습니다. ‘’, ‘정신’, ‘의지이것이 마태오가 사용한 헬라어디아노이아διανοίᾳ” 뜻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오늘 제가 말씀드리려는 주제와 밀접하게 연관됩니다. 

 

지루한 편집 분석은 여기에서 마치겠습니다. 그렇다면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주는지 한걸음 들어가 보겠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을 대할 때마다 저는 틸리히가 말한궁극적 관심(ulimate concern) 대해 묵상하게 됩니다. 그가 개념을 사용한 것은 오늘 본문 말씀이 인용한 마르코 복음 12 28~34절에 영감을 받은 것입니다. 이는 말씀을 틸리히가 추상적인 신학 용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 틸리히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1) 종교적 관심은 궁극적인 이다. 2) 궁극적인 관심은 무조건적이다. 3) 무조건적인 관심은 총체적이다. 4) 총체적인 관심은 무한한 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지점이 바로 관심입니다. ‘관심 결국 인간의 실존적 태도와 관련합니다. 인간이 어떤 것에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는 것은 결국 그것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바로무관심입니다. 관심에는 인간의의지노력정신 모두 담겨 있습니다. 이것이 앞에서 말씀 드렸던디아노이아 같은 의미입니다. 우리는 관심을 가지는 일에 몰두할 재미를 느끼고 집중을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사람들에게 전한다 해도 우리 자신이, 말을 듣는 사람이 복음에 관심을 가지지 않으면 어려운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척도는 우리의 관심 정도로 가늠해 있을 겁니다.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은궁극적인 관심의 태도 지닌 사람입니다. 그러한 관심의 태도를 지녔다는 것은 자기가 아닌 타자에 대한 배려이며 자기 삶에 대한 긍정입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사랑은궁극적이고, ‘무조건적이며, ‘총체적이고, ‘무한한것이라고. 그러므로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의 순환 들어간 사람은 결코 그것으로부터 자유로울 없습니다. 이러한 관심에 직면한 사람은 틸리히의 말처럼이완이나 휴식의 어떤 순간도 있을 없습니다.” 피할 곳도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139 기자는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조금 길지만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야훼여, 당신께서는 나를 환히 아십니다.
내가 앉아도 아시고  있어도 아십니다.
멀리 있어도 당신은  생각을 꿰뚫어 보시고,
걸어갈 때나 누웠을 때나 환히 아시고
 모든 행실을 당신은 매양 아십니다.

….중략….

당신 생각을 벗어나 어디로 가리이까?

당신 앞을 떠나 어디로 도망치리이까?

하늘에 올라가도 거기에 계시고

지하에 가서 자리깔고 누워도 거기에도 계시며,

새벽의 날개 붙잡고 동녘에 가도,

바다  서쪽으로 가서 자리를 잡아보아도

거기에서도 당신 손은 나를 인도하시고

 오른손이 나를  붙드십니다.

(1391-10)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에 직면하여궁극적 관심 지닌 사람은 이상 이전과 같은 삶을 수가 없습니다. 기도하기 싫어도 기도하게 되고, 남을 섬기기 싫어도 먼저 섬기게 되고, 성서 말씀을 읽기 싫어도 읽게 되고, 주일에 놀러 가고 싶어도 결국에는 교회에 오게 되고, 좋은 것이 생기면 남과 나누게 되고, 아픈 사람을 보면 기도해주게 되고, 어려운 사람을 보면 도와주게 됩니다. 자신의 의지와는 반대로 누군가가 우리 자신을 움직이는 같습니다. 그래서궁극적 관심 지닌 사람은 피곤할 때가 많지만, 언제 그랬냐는 듯이 자고 일어나면 다시 힘이 생겨납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러한 사람을 다음과 같이 묘사합니다.

 

이름 없는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슬픔을 당해도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2 고린 6:9-10)

 

이런 사람은 세상이 감당할 없습니다. 이런 사람의 의지는관심으로 드러납니다. 그러므로관심사랑 불가분의 관계가 아니라 사랑의 다른 이름입니다. 여러분 정말 신앙생활을 이렇게 화끈하게 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궁극적 관심으로 여러분의 삶을 전적으로 성령의 인도하심에 맡기시지 않으시겠습니까? 여러분의 삶에서 여러분이 가장관심 두는 일은 무엇입니까? 여러분은 누구에게 가장 관심을 가지십니까? 오늘 주님께서 정리한 율법과 예언서의 가지 계율도 요약하면 결국사랑과 관심입니다. 이왕 하느님을 믿으신다면 정말 그것에 모든 것을 거는 사랑을 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은 우리의 의지가 발현되는관심에서 출발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러한 여러분의 결단과 노력에 결코 침묵만 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우리와 함께 하시는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함에 힘을 주실 겁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연중30 (가해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사랑이 율법의 완성임을 가르쳐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을 온마음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신명 34:1-12

1 모세가 모압 광야에서 예리고 맞은편에 있는 느보 비스가 봉우리에 오르자, 야훼께서 그에게 땅을 보여주셨다. 단에 이르는 길르앗 지방, 2 납달리와 에브라임과 므나쎄 지방, 서쪽 바다에 이르는 유다 지방, 3 네겝과 종려 도시 예리고 골짜기의 분지를 소알에 이르기까지 보이시며 4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이것이 내가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여 그들의 후손에게 주겠다고 땅이다. 이렇게 너의 눈으로 보게는 해준다마는, 너는 저리로 건너가지 못한다.” 5 야훼의 모세는 모압 땅에서 야훼의 말씀대로 죽어 6 모압 땅에 있는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묻혔는데 그의 무덤이 어디에 있는지는 오늘까지 아무도 모른다. 7 모세는 죽을 나이 백이십 세였다. 그러나 그의 눈은 아직 정기를 잃지 않았고 그의 정력은 떨어지지 않았었다. 8 이스라엘 백성은 모압 광야에서 삼십 동안 모세의 죽음을 슬퍼하며 곡했다. 이렇게 그들은 모세의 상을 입고 곡하는 기간을 채웠다.

9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하느님의 영을 받아 지혜가 넘쳤다. 모세가 그에게 손을 얹어주었던 것이다. 그의 지휘 아래 이스라엘 백성은 야훼께서 이미 모세에게 분부하신 일을 이루었다.

10 후로 이스라엘에는 다시 모세와 같은 예언자, 야훼와 얼굴을 마주보면서 사귀는 사람은 태어나지 않았다. 11 모세가 야훼의 사명을 띠고 이집트 땅으로 가서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땅에 행한 것과 같은 온갖 기적과 표적을 행한 사람은 다시 없었다. 12 모세처럼 강한 손으로 그토록 크고 두려운 일을 이스라엘 백성의 눈앞에서 이루어 보인 사람은 다시 없었다.

 

 

또는

 

 

레위 19:1-2, 15-18

1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너는 이스라엘 백성 회중에게 이렇게 일러주어라. ‘ 야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라… 15 공정하지 못한 재판을 하지 마라. 영세민이라고 하여 두둔하지 말고, 세력 있는 사람이라고 하여 봐주지 마라. 이웃을 공정하게 재판해야 한다. 16 너희는 겨레 가운데서 잡을 소리를 퍼뜨리지 마라. 이웃을 죽을 죄인으로 고발하지 마라. 나는 야훼이다. 17 형제를 미워하는 마음을 품지 마라. 이웃의 잘못을 서슴지 말고 타일러주어야 한다. 그래야 죄에 대한 책임을 벗는다. 18 동족에게 앙심을 품어 원수를 갚지 마라. 이웃을 몸처럼 아껴라. 나는 야훼이다.

 

 

 

시편 90:1-6, 13-17

1    주여, 당신은 대대손손
.     우리의 피난처가 되셨나이다.

2    산들이 생기기 , 땅과 세상이 태어나기 ,
.      옛날부터 영원히 당신은 하느님.

3    사람을 먼지로 돌아가게 하시며
.   “사람아, 돌아가라하시오니

4    당신 앞에서는 년도 하루와 같아
.     지나간 어제 같고, 깨어 있는 밤과 같사오니

5    당신께서 휩쓸어 가시면, 인생은 한바탕 꿈이요,
.     아침에 돋아나는 풀잎입니다.

6    아침에는 싱싱하게 피었다가도
.     저녁이면 시들어 마르는 풀잎입니다.

13  주여, 돌이키소서. 언제까지 노하시렵니까?
.     당신의 종들을 불쌍히 여기소서.

14  동틀녘에 당신의 사랑으로 한껏 배불러
.     평생토록 기뻐 뛰며 노래하게 하소서.

15  우리가 고생한 날수만큼,
.     어려움을 당한 햇수만큼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

16  당신의 종들에게 당신께서 이루신 일들을,
.      후손들에게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소서.

17  , 우리 하느님, 우리를 어여삐 여기시어

.     우리 손이 하는 되게 하소서.
.     우리 손이 하는 되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또는

 

 

시편 1

1    복되어라.

.      악을 꾸미는 자리에 따라 가지 않고

.      죄인들의 길을 거닐지 않으며
.      조소하는 자들과 어울리지 않는 사람,

2    주께서 주신 법을 낙으로 삼아
.      밤낮으로 법을 되새기는 사람.

3    그에게 일이 무엇이랴!

.      냇가에 심어진 나무 같으니
.       잎사귀가 시들지 아니하고,

.       따라 열매 맺으리.

4    사악한 자는 그렇지 아니하니
.      바람에 까불리는 겨와도 같아,

5    주께서 심판하실 때에 머리조차 들지 못하고,
.      죄인이라 의인들 모임에 끼지도 못하리라.

6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      의인의 길은 주께서 보살피신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데살 2:1-8

1 교우 여러분, 아시다시피 우리가 여러분을 찾아간 것은 결코 헛된 일이 아니었습니다. 2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우리가 전에 필립비에서 고생을 겪고 모욕을 당했으나 여러분에게 가서는 심한 반대에 부딪히면서도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담대하게 하느님의 복음을 전했습니다. 3 우리는 잘못된 생각이나 불순한 동기나 속임수로 여러분을 격려하는 것은 아닙니다. 4 우리는 하느님께 인정을 받아 복음을 전할 사명을 사람으로 말하는 것이며, 사람의 환심을 사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을 살피시는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리려고 말하는 것입니다. 5 아시다시피 우리는 지금까지 아첨하는 말을 적도 없고 속임수로써 탐욕을 부린 일도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사실을 알고 계십니다. 6 우리는 여러분이나 다른 사람들이나 없이 사람에게서는 도무지 영광을 구하지 않았습니다. 7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권위를 내세울 수도 있었으나 여러분과 함께 있을 때에는 마치 자기 자녀를 돌보는 어머니처럼 여러분을 부드럽게 대했습니다. 8 이렇게 여러분을 극진히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느님의 복음을 나누어줄 뿐만 아니라 우리의 목숨까지도 바칠 생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토록 여러분을 사랑했습니다.

 

 

 

마태 22:34-46

34 예수께서 사두가이파 사람들의 말문을 막아버리셨다는 소문을 듣고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몰려왔다. 35 그들 율법교사가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 36선생님, 율법서에서 어느 계명이 가장 계명입니까?” 하고 물었다. 37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여라.’[A]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 가는 계명이고, 39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여라.’[B] 둘째 계명도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40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

41 ¶ 예수께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것을 보시고 42너희는 그리스도를 어떻게 생각하느냐? 그는 누구의 자손이겠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다윗의 자손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43 예수께서 다시 물으셨다. “그러면 다윗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그를 주님이라고 부른 것은 어떻게 일이냐?

44 ‘ 하느님께서 주님께 이르신 말씀,

.     내가 원수를 아래 굴복시킬 때까지

.     너는 오른편에 앉아 있어라.’[C]

하고 다윗이 읊지 않았느냐? 45 다윗이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불렀는데 그리스도가 어떻게 다윗의 자손이 되겠느냐?” 46 그들은 한마디도 대답하지 못하였다. 그리고 날부터는 감히 예수께 질문하는 사람이 없었다.

 

[A] 신명 6:5

[B] 레위 19:18

[C] 시편 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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