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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사랑 안에 머물라”

James Chae 2021. 5. 17. 00:52

 

2021. 5. 9. 나해_부활6주일

사도 10:44-48 / 시편 98 / 1요한 5:1-6 / 요한 15:9-17

 

 

사랑 안에 머물라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마음이 두근거리고, 두렵습니다.

사랑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이 부담스럽습니다. 자신이 온전히 사랑을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이론이 아니라 실천이고, 남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남을 섬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당신의 목숨을 내놓으셨습니다. 이것으로 우리가 사랑이 무엇인지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형제들을 위해서 우리의 목숨을 내놓아야 합니다.” ( 1요한 3:16)

 

사랑에 대해 이보다 정확한 표현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아마도 요한은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목숨이라 생각했던 같습니다. 그러니 사랑은 자신이 가진 가장 귀한 것을 남을 위해 내놓은 것이라 설명합니다. 쉽지 않습니다. 오늘 복음에도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요한 15:13)

 

주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방식과 정확히 일치하는 보도입니다. 이제 우리가 주님의 종이 아니라친구임을 강조하며, 우리에게 이러한 사역에 동참하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요한의 관점에서주인의 모든 인류를 구원하시고자 자신의 외아들을 파송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요한은 자신의 신학의 핵심을 모두 모아 13장에서 17장까지 5장에 걸쳐 강론의 형식으로 이를 전개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강론들의 배경이 무척 궁금합니다. 세족식을 필두로 섬김의 실천을 보여주고 고별사를 배치하여 죽음과 부활에 대해 강론합니다. 그리고 성령의 약속과 제자들과 자신이 어떻게 몸을 이루는지에 대해 포도나무를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어떻게 하느님과 예수가, 예수와 우리가 하나가 되는지 사랑의 실천을 통해 강조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슬픔이 기쁨으로 바뀔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하고 그들을 위해 기도함으로 강론을 마칩니다. 고별사로 너무 완벽한 구조입니다. 자꾸 읽고 읽어도 감동이 밀려와 마음이 벅찬 구절들입니다. 여러분도 시간을 내어서 13장부터 17장까지를 천천히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사랑하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여러분에게 당부하는 말씀이라 생각하며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고요한 새벽에 촉촉이 젖은 풀잎 사이로 희망의 햇살이 영롱히 비추듯 아름다운 주님의 고별 말씀이 우리 각자의 마음에서 빛날 것입니다.

 

재미있는 사실은 고별강론의 배경이최후의 만찬이라는 사실입니다. 공관복음서와 다르게 요한복음은 최후의 만찬을 과월절 전날로 설정합니다(니산 14 해진 후부터. 무교절은 니산 15 해진 후부터 7일간). 공관복음서 보다 하루가 빠릅니다. 결과 파스카의 만찬이 아니라마지막 만찬임이 두드러집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예수의 죽음을 니산 14일에 전통적인 파스카 어린양의 도살 시간과 일치시킵니다(니산 14 오후3시부터). 예수 그리스도는하느님의 어린양”(요한 1:29, 36)이셨음이 또한 강조됩니다. 그러나 13장부터 17장까지 어디에도 성찬제정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없습니다. 이상한 일입니다. 세족례에 대한 언급뿐입니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요한의 공동체가 성찬례보다는 세족례를 중시한 공동체 또는 비전례적 공동체였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는 전혀 근거없는 이야기입니다. 공관복음이 모두 언급하고 있는 성찬의 중요성을 요한이 간과한 것은 절대 아닙니다. 고별강론을 차분히 읽어 보면 이미 강론들이최후의 만찬 배경으로 전제로 하고 있음을 느낄 있습니다. 그리고 성찬례를 연상할 있는 구절 또한 발견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빵을 적셔서 줄 사람이 바로 그 사람이다.’ 하셨다. 그리고는 빵을 적셔서 가리옷 사람 시몬의 아들 유다에게 주셨다.” (요한13:26)

 

빵을 적셔서 주셨다.” 가리옷의 시몬에게 주신 행위는 원시기독교공동체의 성찬례를 연상시킵니다. 분명한 것은 요한복음을 들었던 초기 공동체 사람들은 고별사가 성찬례와 연관성을 가진다는 것을 충분히 인식했을 겁니다. 그래서 요한은 고별사를 통해 성찬에 담긴 신학적 의미를 보강하고, 주님의 마지막 만찬을 더욱 극적으로 부각하려 했던 같습니다.

 

요한은 이미 예수 자신이 성찬의생명의 임을 요한복음 6 35장에 선언했습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요한은 예수 그리스도를 성찬의 중심에 놓고 요한복음을 서술한 것입니다. 학자들은 고별강론의 내용들이 초기 공동체의 성찬례의 신학을 반영하고 보충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성찬례에 대한 언급이 없어도 이미 고별강론은 성찬례의 실제적인 면들을 담고 있는 것으로 봐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이 이미 성찬의 중심인 빵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빵을 떼어 주님의 성체를 나눕니다.
우리는 서로 다르나 빵을 나누며 몸을 이룹니다.”

 

고별강론은 어떻게 우리가 성찬례를 통해, 우리 삶을 통해 하느님과 실제적으로 하나가 되는 지를 체계적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 자신이 하느님 안에 있고, 우리가 예수와 하나가 되어 결국에는 하느님과 우리가 하나가 된다는 것이 어떻게 실제적으로 가능한 지를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오늘 전례독서의 핵심을 이루고 있습니다.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요한 15:9b)

 

우리들이 성자 안에 거하는 것은 우리들이 서로 사랑할 가능합니다. 이것이 예수의 사랑에 머무르는 조건이라고 요한은 말합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요한 15:12)

 

이것이 주님이 우리에게 주신 계명입니다. 계명은 문자로 것이 아니라, 주님의 사랑이 표현된 십자가를 통해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자신을 내어주는 사랑.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힘만으로 이러한 사랑을 행할 없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우리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가지처럼 그러한 사랑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먼저 믿음 필요합니다. 믿음은 예수께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세상에 파송되었고 이로써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느님의 뜻이 드러났음을 믿는 것입니다.

 

“너희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요한 16:27)

 

요한복음은 결코 믿음을 “πίστις 피스티스명사로 사용하지 않는다는 점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πιστεύω 피스테우”, “믿는다요한은 믿음을 동사로 사용합니다. 이는 믿음에는 우리의 적극적인 의지가 반영된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믿는 것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우리의 믿음의 연약함을 알기에고별사 통해 우리를 도우시는 파라클레토스 παράκλητος”; “조력자”, “보호자”, “보혜사이신 성령을 끊임없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를 고아들처럼 버려두지 않겠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요한 14: 18)

 

고별강론에서 말씀은 우리에게 위로가 됩니다. 우리는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우리는 다시 오실 예수님을 외롭게 기다리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사실 위의 말씀은 가지 의미로 해석될 있습니다. “성령의 오심주님의 재림말입니다. 루가처럼 요한은 예수의 부활 발현의 장소를 예루살렘과 인근 지역으로 보도합니다. 성령께서 오순절에 임하시는 장소도 예루살렘입니다. “기어이 너희에게로 돌아오겠다.” 주님의 번째 약속은 오순절 예루살렘에서 성령께서 제자들에게 임하심으로 지켜졌습니다. 우리는 이에 근거해서 그의 번째 약속인 재림 또한 믿습니다. 성령께서 예수를 대신해서 우리와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온전히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형제를 사랑할 힘을 얻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도 사랑도 은사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한 은사 없이 우리는 결코 사랑할 수도, 믿을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을 믿는 우리는 복된 사람들입니다. 주님께서 제시하신 사랑의 기준은 우리의 취향이나 성향에 의해 누군가를 좋아하는 차원을 넘어서는, 희생을 바탕으로 사랑입니다.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물며 그분께 받은 사랑과 믿음을 이제 우리 이웃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과 일상이 그러한 사랑으로 변화되어 간다면 우리는 아름다운 열매를 주님께 봉헌할 있을 겁니다.

 

이제 부활절기가 막바지로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동안 주님의 부활에 대해 많이 묵상하고, 의미를 얼마만큼 우리 속에 실천을 하셨는지 우리 자신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사순절기 40, 부활절기 40 80일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고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묵상하고, 의미를 우리 속에 적용하기 위해 보낸 훈련의 시간. 년의 4분의 1 해당하는 시간입니다. 충분하지 않지만 사람을 훈련시키고 단련시킬 있는 시간입니다. 우리의 삶과 일상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지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만약 80 이전과 이후의 우리의 삶에 전혀 변화가 없다면 우리는 그냥 종교적 절기로 의례적으로 80일을 흘려보낸 것일지도 모릅니다. 회개와 희망이 어우러진 절기가 온전히 성령강림을 간절히 바라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지 우리 삶을 한번 돌아봅시다. 사랑에 대한 주님의 마지막 당부의 말씀이 어떻게 우리의 삶에 적용되고 우리의 일상을 변화시키는지 살펴봅시다. 우리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성령의 도움을 간절히 원하게 되면 우리는 성령강림절을 전혀 새로운 마음으로 맞이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가 떠나가는 것이 너희에게는 더 유익하다. 내가 떠나가지 않으면 그 협조자가 너희에게 오시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가면 그분을 보내겠다.” (요한 16:7)

 

이번 목요일 5 13일이 주님께서 하느님 곁으로 올라가신 날입니다. “승천대축일”. 이로써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실 조건이 갖춰진 것입니다. 부활 6주일을 보내며 우리는 이제 주님의 승천과 성령강림에 대한 희망을 말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온전히 성령과 함께 바꿔나갈 것을 기대하고 희망하며 오늘 말씀을 마칩니다. 아멘.

 

 

 


 

부활6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사랑의 하느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택하시어 벗이라 불러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계명을 따라 이웃을 사랑함으로써 썩지 않는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10:44-48

44 베드로가 이렇게 말하고 있는 동안에 성령이 모든 청중에게 내려오셨다. 45 신자가 유다인으로서 베드로와 함께 왔던 사람들은 성령의 은혜가 이방인들에게까지 내리시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 46 그것은 이방인들도 기이한 언어로 말하며 하느님을 높이 찬양하는 것을 들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47 사람들도 우리처럼 성령을 받았으니 이들이 물로 세례를 받는 것을 어떻게 막을 있겠습니까?” 하며 48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일렀다. 그들은 베드로에게 자기들과 함께 며칠 머물러달라고 간청하였다.

 

 

시편 98

1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여라.

.     놀라운 기적들을 이루셨다.
.     그의 오른손과 거룩하신 팔로 승리하셨다.

2    주께서 거두신 승리를 알려 주시고
.     당신의 정의를 만백성 앞에 드러내셨다.

3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다던
.     사랑과 진실을 잊지 않으셨으므로
.     끝까지 모든 사람이

.     우리 하느님의 승리를 보게 되었다.

4     세상아, 주님께 환성을 올려라.
.     기뻐하며 목청껏 노래하여라.

5    거문고를 뜯으며 주님께 노래 불러라.
.     수금과 많은 악기 타며 찬양하여라.

6    우리의 임금님, 주님 앞에서
.     은나팔 뿔나팔 불어대며 환호하여라.

7    바다도 속에 가득한 것들도,
.     땅도 위에 사는 것들도,감사성

.     모두 환성을 올려라.

8    물결은 손뼉을 치고 산들은

.     같이 환성을 올려라,
.     그가 세상을 다스리러 오시니,

.     앞에서 환성을 올려라.

9     세상을 올바르게 다스리시고
.     만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요한 5:1-6

1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아버지를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자녀를 사랑합니다. 2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를 사랑하고 있다는 것을 있습니다. 3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이 하느님을 사랑하는 일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명은 무거운 짐이 아닙니다. 4 하느님의 자녀는 누구나 세상을 이겨냅니다. 그리고 세상을 이기는 승리의 길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5 세상을 이기는 사람은 누구입니까?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믿는 사람이 아니겠습니까?

6 하느님의 아들이 인간으로 오셔서 물로 세례를 받으시고 수난의 피를 흘리셨습니다. 그분이 바로 그리스도이신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물로 세례를 받으신 것뿐만 아니라 세례도 받으시고 수난의 피도 흘리셨습니다. 이것을 증언하시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은 진리입니다.

 

 

요한 15:9-17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계명을 지키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것이다.”

11 내가 말을 것은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사랑은 없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알려주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들어주실 것이다. 17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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