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5. 2. 나해_부활5주일_감사성찬례
사도 8:26-40 / 시편 22:25-31 / 1요한 4:7-21 / 요한 15:1-8
“아름다운 열매”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Ἐγώ εἰμι ὁ ποιμὴν ὁ καλός. 에고 에이미 호 포이멘 호 칼로스.(요한10:11)
지난주에 우리는 “나는 착한 목자다”라는 예수의 정체, 즉 요한이 말하는 ‘신원선언’의 그리스도론을 보았습니다.
요한은 “Ἐγώ εἰμι 에고 에이미, 나는 ~이다”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한 그리스도론을 전개했습니다.
Ἐγώ εἰμι ἡ ἄμπελος ἡ ἀληθινή, 에고 에이미 헤 암펠로스 헤 알레티네.”(요한 15:1)
“나는 참 포도나무다.”라고 오늘 말씀은 예수의 또 다른 정체를 밝히고 있습니다. 이러한 표현이 은유임을 우리는 압니다. 보통 포도나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은 야훼가 직접 선택하시고 가꾸신 포도나무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여기에서 포도나무를 이스라엘과 연관시키지 않습니다. 또 그리스도를 마태오처럼 이스라엘의 구속사적 연속으로 생각하지도 않았습니다. 농사를 짓는 사람이 아니더라도 누구나 쉽게 알 수 있는 너무나 자명한 사실을 예로 들어 요한은 자신만의 그리스도론을 전개합니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다”. 꺾인 가지가 말라죽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메타포를 통해 요한이 말하고자 하는 점은 어떻게 하느님과 예수가, 그리고 그리스도와 우리가 연결되어 있고, 또 하나가 되는 지를 밝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의 중심 신학은 그리스도론이라 말씀드렸습니다. 그래서 요한복음은 공관복음과 다른 독특한 지위를 획득합니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는 요한복음을 ‘영적인 복음서’라고 불렀습니다. 중요한 것은 요한도 바울로처럼 십자가 사건을 ‘구원의 사건’으로 인식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요한은 이러한 십자가를 하느님의 영광과 연결시킨다는 점에서 바울로와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 우리가 하느님의 영광을 “봤다”는 점, 즉 ‘현재’에서 봤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에서 봤다는 것은 믿음으로, 곧 마음의 눈으로 봤다는 것이다.라는 것을 이미 지난번에 설명드렸습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영광을 봤다는 것은 미래적인 차원도 아니고 과거에 대한 회고적인 차원도 아닙니다. 구속사적 시간의 연속성도 없으며 바로 현재에서 봤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가능한 것은 현재의 우리의 믿음이 그 중심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직 믿는 자만이 부활을 본 것입니다.
오늘 포도나무의 표상은 창세기의 생명나무와 연결될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요한 14:6)
요한의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는 바로 생명나무인 것입니다. 아담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되었던 생명나무로 향하던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로 다시 열리게 됩니다.
“이렇게 아담을 쫓아내신 다음 하느님은 동쪽에 거룹들을 세우시고 돌아가는 불칼을 장치하여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목을 지키게 하셨다.” (창세 3:24)
생명나무를 지키는 “돌아가는 불칼”은 이제 십자가로 인해 “쪼개졌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생명나무이시기에 첫 아담으로 말미암은 죽음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생명이 됩니다.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요한 15:4a)
이러한 그리스도와의 합일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요한은 우리의 믿음으로 가능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이를 보충해서 더 설명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 요한 4:13)
우리를 도와주시는 분.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
보혜사 성령께서 이를 가능하게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요한의 그리스도론은 단순히 이러한 신앙적 차원에만 머무르지 않습니다. 그 믿음에서 한걸음 더 나아갑니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요한 15:5)
결국 부활의 완성은 “열매”에 있었던 것입니다. 믿음은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는 것입니다. 열매는 우리의 전인격과 삶을 통해, 행위를 통해, 우리의 성화 과정을 통해 맺어갈 결실입니다. 요한복음에서는 바울로와 같은 칭의의 개념이 없습니다.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고, 믿고, 행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되고 열매를 맺을 가능성을 획득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은 하느님과 하나 됨으로 말미암아 다음과 같은 결과를 가져옵니다.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요한 15:8)
결국, 십자가도, 부활도, 믿음도, 성령도 모두 하느님의 영광으로 향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이 지금, 바로 여기에 나타났다고 요한은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행함이 어느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는지 오늘 말씀은 분명히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아름다운 열매”.
우리는 각자 어떤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그냥 포도나무에 매달린 부러진 가지처럼 바람에 이리저리 흔들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미 나무에서 떨어져 땅에서 짓밟히는 쓸모없는 가지가 된 것은 아닙니까? 요한이 말하는 “아름다운 열매”는 바로 “사랑의 열매”입니다. 그것은 단순한 동정이나 감정적 동의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그 아들을 보내신 사랑에 근거한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그리스도를 통해 많은 사랑을 받은 사람들이라고 요한은 강조합니다.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1요한 4:10a)
십자가에서 자신을 “쪼개신” 그리스도의 사랑은 곧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그러한 사랑을 받은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요한은 아주 명확히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요한 4:11)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친아들을 제물로 받치기까지 사랑하셨다고 요한은 말합니다. 또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 요한 4:8a)고 말합니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 요한 4:8b) 우리가 비록 부활하신 예수님을 직접 보지 못했지만, 우리가 서로 사랑함으로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1 요한 4:12)
이제 우리 앞에 주교좌성당 건축이라는 커다란 산이 놓여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성당 건축에 비전문가들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집조차도 지어본 경험이 없습니다. 그래서 서로 먼저 나서기가 망설여집니다. 그러나 성당은 몇몇 사람의 헌신으로 결코 세워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조금씩 지혜를 모으고 힘을 모은다면 주교좌성당은 “아름다운 열매”를 하느님께 봉헌할 수 있을 겁니다. 사랑은 남을 배려해서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주교좌성당은 그러한 사랑과 배려 속에서 함께 지어가야 합니다. 사랑은 움직일 때 사랑이지, 마음에 담아 놓는 사랑은 단순히 감정일 뿐입니다. 저는 주교좌성당이 여러분의 사랑으로, 여러분의 적극적인 참여로 건축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느님께서 지어주소서!”
이 말씀은 단순히 되길 바라는 수동태의 말씀은 아닙니다. 하느님과 함께, 교우들과 함께, 여러분의 손으로, 사랑의 힘으로 움직이라는 말씀입니다. 먼저 건축을 위해 각자가 할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주교좌성당을 짓는 사랑의 역사에서 결코 한 사람도 소외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혜를 모으고, 여러분의 시간을 내시고, 몸을 움직여 하나씩 하나씩 성당을 세우는 일에 사랑으로 함께하시기 바랍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주교좌성당의 포도나무이십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 포도나무의 가지들입니다. 이제 아름다운 성당을 열매로써 하느님께 봉헌할 일만 남았습니다.
저는 제주도에서 여러분과 주교좌성당을 위해 늘 기도하겠습니다. 그동안 저를 사랑해주시고 섬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드릴 말씀은 제 안에 너무 많지만, 한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주교좌 교우들에게 너무 많은 사랑의 빚을 지고 떠납니다. 감사합니다. 그 사랑에 보답하는 것은 그러한 사랑을 실천하는 아름다운 사제가 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저를 위해 기도해주십시오. 비록 저는 떠나지만, 주교좌성당은 저의 신앙의 고향입니다. 영원히 제 마음속에 남을 것이고, 늘 여러분을 위해 기도하겠습니다. 사랑합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부활5주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주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참 포도나무요 우리는 그 가지라 하셨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이 변화 많은 세상에서 주님을 떠나지 않고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8:26-40
26 그 때 주의 천사가 필립보에게 나타나서 “여기를 떠나 예루살렘에서 가자로 내려가는 남쪽 길로 가라.” 하고 일러주었다. (그 길은 인적이 없는 길이다.) 27 필립보는 그 곳을 떠나 길을 가다가 에티오피아 사람 하나를 만났다. 그는 에티오피아 여왕 간다케의 내시로서 그 여왕의 모든 재정을 관리하는 고관이었다. 그는 예루살렘을 순례하러 갔다가 28 돌아가는 길에 마차에 앉아서 이사야의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29 그 때에 성령이 필립보에게 “가서 저 마차에 바싹 다가서 보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30 필립보가 달려갔을 때 그는 이사야 예언서를 읽고 있었다. 그래서 필립보는 “지금 읽으시는 것을 아시겠습니까?” 하고 물었다. 31 그러자 그 내시는 “누가 나에게 설명해 주어야 알지 어떻게 알겠습니까?” 하고 대답하며 필립보더러 올라와 곁에 앉으라고 하였다. 32 그가 읽던 성서 구절은 다음과 같았다.
. “도살장으로 끌려가는 양처럼
.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어린 양처럼
. 그는 입을 열지 않았다.
33 그는 정당한 재판을 받지 못하고 굴욕만 당하였다.
. 지상에서 그의 생애가 끝났으니
. 누가 그의 후손을 이야기하랴?” 이사 53:7-8
34 내시는 필립보에게 “한 가지 묻겠는데 이 말은 예언자가 누구를 두고 한 말입니까? 자기를 두고 한 말입니까? 혹은 딴 사람을 두고 한 말입니까?” 하고 물었다.
35 필립보는 이 성서 말씀을 비롯하여 여러 가지 말씀을 풀어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하였다. 36 그들이 같이 길을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자 내시가 “자, 여기 물이 있습니다. 내가 세례를 받아서는 안 될 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37(어떤 사본에) 빌립보가 “당신이 마음을 다하여 믿는다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하고 말하자 내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8 내시는 마차를 세우게 하고 필립보와 함께 물로 내려가 그에게 세례를 받았다. 39 그들이 물에서 올라오자 주의 성령이 필립보를 어디론가 데리고 가셨다. 그래서 내시는 그를 볼 수 없게 되었지만 기쁨에 넘쳐 제 갈 길을 갔다. 40 그 뒤 필립보는 아스돗에 나타나 여러 동네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다가 마침내 가이사리아에 이르렀다.
시편 22:25-31
25 큰 회중 가운데
. 주님을 찬송함도,
. 주께서 허락하심이니, ◯
. 주님을 경외하는 무리 앞에서
. 나의 서원 지키리라.
26 가난한 사람 배불리 먹고
. 주님을 찾는 사람은 그를 찬송하리니 ◯
. 그들의 마음 길이 번영하리라.
27 온 세상이 주님을 생각하여 돌아오고 ◯
. 만백성 모든 가문이 그 앞에 경배하리니,
28 만방을 다스리시는 주님께 ◯
. 모든 왕권이 있으리라.
29 땅 속의 잠든 이들도 주 앞에 엎드리고 ◯
. 먼지 속에 내려 간 자들도
. 주 앞에 머리를 조아리리라.
30 이 몸은 주님 덕분에 살고,
. 오고 오는 후손들이 그를 섬기며 ◯
. 그 이름을 세세대대로 전하리라.
31 주께서 건져주신 이 모든 일들을 ◯
. 오고 오는 세대에 길이 전해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요한 4:7-21
7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당부합니다. 우리는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께로부터 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느님께서 당신의 외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는 그분을 통해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 분명히 나타났습니다. 10 내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에게 대한 우리의 사랑이 아니라 우리에게 대한 하느님의 사랑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보내셔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려고 제물로 삼으시기까지 하셨습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명심하십시오. 하느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해 주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아직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면 하느님께서는 우리 안에 계시고 또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이미 완성되어 있는 것입니다.
13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당신의 성령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느님 안에 있고 또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4 우리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아들을 구세주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하고 있습니다. 15 누구든지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을 인정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계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있습니다. 16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알고 또 믿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있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있으며 하느님께서는 그 사람 안에 계십니다. 17 이 세상에서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살게 되었으니 사랑이 우리 안에서 완성된 것이 분명합니다. 이제 우리는 자신을 가지고 심판 날을 맞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몰아냅니다. 두려움은 징벌을 생각할 때 생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두려움을 품는 사람은 아직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19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도 사랑을 합니다. 20 하느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자기의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자가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겠습니까? 21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의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이 계명을 우리는 그리스도에게서 받았습니다.
요한 15:1-8
1 “나는 참 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2 나에게 붙어 있으면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모조리 쳐내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도록 잘 가꾸신다. 3 너희는 내 교훈을 받아 이미 잘 가꾸어진 가지들이다. 4 너희는 나를 떠나지 마라. 나도 너희를 떠나지 않겠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가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나에게 붙어 있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할 것이다. 5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누구든지 나에게서 떠나지 않고 내가 그와 함께 있으면 그는 많은 열매를 맺는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6 나를 떠난 사람은 잘려 나간 가지처럼 밖에 버려져 말라버린다. 그러면 사람들이 이런 가지를 모아다가 불에 던져 태워버린다. 7 너희가 나를 떠나지 않고 또 내 말을 간직해 둔다면 무슨 소원이든지 구하는 대로 다 이루어질 것이다. 8 너희가 많은 열매를 맺고 참으로 나의 제자가 되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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