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으로 (3)

James Chae 2021. 5. 17. 00:13

 

 

 

2021. 4. 18.  나해_부활3주일_감사성찬례

사도 3:12-20 / 시편 4 / 1요한 3:1-7 / 루가 24:36-48

 

 

 

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으로 (3)

 

 

채야고보 신부 / artist, 성공회 사제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이미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비록 장차 우리가 어떤 존재로 드러날지는 잘 모르지만. 우리는 그분이 나타나실 때에 우리도 그와 같은 존재임을 알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에) 우리가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1요한3:2 비교)

 

오늘 읽은 2 독서를 나름대로 번역해 것입니다. 요점은 재림 때에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부활할 것이고, 그리스도를 존재 자체로 보게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우리는 달라진 것이 없는 보여도 이미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부활의 증언들이 모두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모습을 보았다고 증언했다는 점을 우리는 지난 2주간에 걸쳐서 봤습니다. 보는 것이 믿음과 연결됨을 또한 우리는 살펴봤습니다. 오늘 루가복음 또한 우리 눈으로 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에 대해 강조하고 있습니다.

 

내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자,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루가 24:39,40)

 

루가는보라 명령어를 번이나 사용하며 이를 강조합니다. 예수의 손과 발을보고’, 영적 존재에게는 없는뼈와 예수에게 있음을보라 합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몸이뼈와 가지고 있다고 표현한 것은 복음서 중에 루가복음이 유일합니다. 그리고 심지어 예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생선 토막을 맛있게(?) 드시는 것을 제자들이봤다 루가는 진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루가가 강조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가현설주의자들의 주장처럼 영이나 유령과 같이 육신이 없는 환영이 아님을 분명히 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과 같이 살과 뼈를 지닌 모습으로, 눈으로 있고, 손으로 만질 있으며, 음식을 먹을 있는 육신으로 부활하셨음을 강조합니다. 

 

이런 부활 사건을 접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제자들처럼 허둥대게 마련입니다. 자신의 경험과 이성을 넘어서는 사건 앞에서 인간은 당황하기 때문입니다. 당황하여 자기 이성에서 현상을 밀어내며 부인하든지, 아니면 그것을 깊이 받아들이며숭고(the sublime)’ 감정을 느끼든지 하나를 선택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20장을 보면, 막달라 마리아의 경우도 그녀는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을나자로 경우처럼 죽은 자가 다시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증언들은 부활은 단순히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난 것과는 다르다는 것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것은 보이는 현상의 세계와 보이지 않는 초월의 세계가 하나로 합일한 무엇입니다. 나자로는 다시 살아났어도 자연적 육신의 한계에 머물렀습니다. 그가 영생을 얻은 것이 아니기에 그는 반드시 죽음을 경험했을 겁니다. 그러나 부활은 영원과 순간이 하나가 되며, 신성과 인성이 하나가 되고, 썩어 없어질 존재가 영원한 것을 덧입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육신을 지니고 계셨으면서도 또한 시간과 공간의 자연적 법칙에 얽매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한 신비한 현상이 제자들이 모여 있을 예수께서 갑자기 나타나셨다는 이야기(인지발현사화) 속에 묘사되어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을 빼고는 나머지 복음서에서는 모두 공통으로 이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르코는 장면을 매우 부정적으로 기록합니다. 열한 제자가 식사하고 있을 예수께서 나타나셨는데, 제자들이 너무마음이 완고하여믿지 않아서 예수께서 그들을 꾸짖으셨다고 기록합니다.(마르 16:14) 부활을 목격한 사람들의 말을 믿지 않음에 대한 책망입니다. 요한은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무서워해서 문을 걸어 잠그고 모임을 주께서 나타나셨다고 기록합니다. (요한 20:19) 루가는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 다음에제자들에게 나타나신 이야기 배치합니다. 그리고 제자들의 반응을안절부절못하고 의심을 품는모습으로 그립니다. 루가는 마르코의 거친 표현을 약간 각색해서 조금 부드럽게 고쳐 기록한 같습니다. 지난주에 읽은 요한복음 20장에서 제자들이 예수의 등장으로너무 기뻐서 어쩔 줄을 몰랐다.”(요한 20:20) 표현과는 대조적입니다.  물론 요한은 제자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사도 토마에게만 투사하고 있는 반면, 마르코와 루가는 모든 제자들에게 부정적 반응을 투사하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입니다. 루가가 설정한 부활에 대한 반응을 정리하면 정확히양가적 감정 제자들이 사로잡혔음을 있습니다. “양가적 감정이란, 일전에 말씀드렸듯이, 하나의 일에 가지 마음이 동시에 발생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데…”(루가24:41)

 

루가는 이러한 양가적 감정을 해결하고자 더욱 적극적인 장치를 다음에 덧붙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생선을 제자들에게 받아서 먹는 장면 말입니다. 이는 요한이 토마 이야기를 통해 의심을 극복했던 방법보다 단계 강한 액션입니다. “맛있게라는 단어가 들어가지 않았지만, 구절을 읽을 때면, 저는 예수께서 그것을 맛있게 드시는 모습과 이를 놀란 눈으로 지켜보고 있는 제자들의 모습이 동시에 상상이 됩니다. 꼼꼼하고 친절한 루가다운 성격이 여기에서 드러납니다. 제자들이 어떤 이유로 모여 있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우리는 그들이 성찬례 또는 애찬을 하고 있었을 것으로 추측해 있습니다. 그래서 엠마우스로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났던 제자가 이야기를 하고 있는 중에 예수께서 나타나신 것으로 오늘 이야기는 시작합니다. 그러므로 루가의 부활 이야기의 설정은 분명해집니다. 길을 걸을 때와 식사할 일상의 속에서 부활하신 주님께서 오셨음이 강조됩니다. 평소에 주님과 제자들이 했던 일상이 여전히 반복되고 있습니다. 다른 것이 있다면 이제 그분의 말씀이 그들 마음에 새겨지기 시작했다는 점입니다.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루가 24:45)

 

이제 예수의 공생애 동안 제자들과 예수 사이에 있었던 제자들의 몰이해가 사라지고, 부활에 대한 의심이 사라지며 제자들의 마음이 열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앰마우스 가는 길에 예수를 만났던 제자들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길에서 그분이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나 성서를 설명해 주실 때에 우리가 얼마나 뜨거운 감동을 느꼈던가!”(루가 24:32)

 

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 느꼈다. 이것이 루가가 부활 전승 이야기에 덧붙인 반응입니다. 성령을 가장 강조한 복음서답게 루가는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에 성령의 역사를 반영합니다. 성서에 눈이 뜨이고 뜨거운 감동을 느끼는 것을 우리는 성령의 은총이라 믿기 때문입니다. 루가의 공동체나 현재의 우리 교회 모두 성령의 역사의 1차적 표징으로 이러한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도행전 9장을 보면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서 예수를 만났던 사도 바울로가 눈이 멀었다가 눈의 비늘이 떨어지며 다시 보게 이야기가 나옵니다. 이와 같이 성령이 역사하시면 우리는 이전과 전혀 다른 시선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눈의 비늘이 떨어지고”, “마음이 열리고, 눈이 아니라 마음으로 보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으로 보는 것이 믿음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2 독서인 요한의 첫째 편지 3장에서 말하는 부활에 대한 해석입니다. 지금 비록 우리는 그리스도의 부활하신 몸을 덧입지 못해 육신의 한계에 놓여 있지만, 그날이 오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몸을 덧입을 것이라는 희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에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라고 말합니다. 육신의 한계와 실존의 고통에서 믿음의 눈으로 희망을 바라볼 있는 . 이것이 요한의 첫째 편지에서 말하는 부활의 희망입니다. “그리스도의 참모습 뵙게 그날을 기다리며 희망으로 바라보는 것이 바로마음으로 보는 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요한은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우리도 순결하라고 충고를 합니다. ‘순수한’, ‘맑은’, ‘거룩한’, ‘성스러운이란 뜻의하그노스ἁγνός’ 전례적 용어로 예배드리기에 깨끗하고 순결한 상태를 말합니다. 부활의 1차적 증인이 아닌 우리는 이제 재림하실 그리스도를 기다리며 우리의 부활을 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날우리는 부활하신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로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의 메시지를 루가와 요한의 말씀으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의 부활은 특수한 상황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발생한 사건이고, 그것은 우리가 있고 만질 있는 몸의 부활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부활 사건을 접할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는양가적 감정 사로잡히게 됩니다. 그래서 성령이 없이는 부활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과 이성은 한계에 부딪히게 됩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의 눈을 열어주실 우리는 부활을 희망의 사건으로 인식하게 되고,   재림에 대한 기대와 우리 자신의 부활에 대한 확실한 희망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부활하셔서 영광을 받고 승천하셨기에 이제 우리 모두는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되었고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으로 우리 자신의 순결함을 위해 노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활을 바라보는 우리 교회의 신앙이고 고백입니다. 너무 원론적이고 교리적인 느낌이 많이 나지만 교회가 오랫동안 견지해온 부활의 신앙은 이렇습니다. 

 

마음이 열리고”, “뜨거운 감동으로

부활은 우리에게 이러한 사건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열린다면…. 우리는 부활을 감동으로 느끼고 있을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주시길 기도합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 교회의 부활의 신앙은 단순히 신학과 교리의 문자 속에서 역동성을 잃고 생명력 없는 공허한 고백이 되고 것입니다. 과학적이나 실증적으로 절대 설명이 불가능하기에, “봤다 증언에 의존한 부활의 최초의 이야기들은 성령의 조명에 의해서 역동성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러고 보면 부활에 대한 믿음은 결국 주님의 은총임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주님을 확실히 보게 그날까지는 이러한 은총으로 우리는 부활의 증인의 역할을 해야 것입니다. 요한의 첫째 편지의 말씀을 읽어 드리며 설교를 마치고자 합니다.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1요한 3:3)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부활3주일 (나해) 전례독서

 

본기도

생명의 하느님, 부활하신 주께서 빵을 떼실 때에 제자들이 주님을 알아보았나이다. 비오니, 우리의 눈을 뜨게 하시어 지금도 세상 속에서 구원을 이루시는 주님을 증거하게 하소서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도 3:12-20

12 베드로는 사람들을 보고 말하였다. “이스라엘 동포 여러분, 사람을 보고 놀랍니까? 우리를 유심히 쳐다봅니까? 우리 자신이 무슨 능력이 있거나 경건해서 사람을 걷게 하여준 줄로 생각합니까? 13 여러분이 하느님의 예수를 잡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을 빌라도가 예수를 놓아주려고 작정하였는데도 여러분은 빌라도 앞에서 그를 배척하였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하느님이시며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출애 3:6,15이신 하느님께서 바로 예수를 영광스럽게 해주셨습니다. 14 여러분은 거룩하고 죄없으신 그분을 배척하고 그분 대신에 살인자를 놓아달라고 빌라도에게 청하여 15 마침내 생명을 주관하시는 분을 죽이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우리는 목격자들입니다. 16 보시는 바와 같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은 바로 예수의 이름으로 낫게 것입니다. 이것은 이름을 믿는 우리의 믿음으로 것이며 예수를 믿는 믿음이 여러분 앞에서 사람을 완전히 낫게 것입니다.

17 그런데 형제 여러분! 여러분이 그런 잘못을 저지른 것은 여러분의 지도자들과 똑같이 무지한 탓이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습니다. 18 하느님께서는 모든 예언자의 입을 빌려 그리스도가 고난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말씀이 미리 예언하신 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19 그러니 여러분은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오시오. 그러면 하느님께서 여러분의 죄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이며 20 여러분은 주께서 마련하신 위로의 때를 맞이하게 것입니다. 주께서는 여러분을 위하여 미리 정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주실 것입니다. 예수가 그분이십니다.”

 

 

시편 4

1     무죄함을 밝히시는 하느님, 부르짖음 들으소서
.     곤경에서 나를 빼내시고, 불쌍히 여기사 기도를 들으소서.

2    너희 사람들아 언제까지 영광을 짓밟으며
.     언제까지 헛된 일과 거짓을 찾아 헤매려느냐?

3    알아 두어라, 주께서는 경건한 자를 각별히 사랑하시니,
.     내가 부르짖으면 언제나 들어 주신다.

4    무서워하여라, 다시는 죄짓지 마라.
.     자리에 누워 반성하여라, 고요를 깨지 마라.

5    제물을 바쳐 죄를 벗어라.
.     그리고 주님만을 의지하여라.

6  “ 누가 우리에게 좋은 일을 보여 줄까?”하고 말하는 자가 많사오니,
.     주여, 밝으신 얼굴을 우리에게 돌리소서.

7     마음에 심어 주신 당신의 기쁨,
.   곡식과 포도주가 풍년이다흥겨워 하는 저들의 기쁨보다 크옵니다.

8    누운즉 마음 편하고 단잠에 잠기오니,
.     내가 이렇듯 안심하는 것은 다만 당신 덕이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1요한 3:1-7

1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이 얼마나 큰지 생각해 보십시오. 하느님의 사랑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라고 불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과연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알지 못하는 것은 그들이 하느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2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우리는 하느님의 자녀입니다. 우리가 장차 어떻게 될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면 우리도 그리스도와 같은 사람이 되리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때에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모습을 뵙겠기 때문입니다. 3 그리스도께 대하여 이런 희망을 가진 사람은 누구나 그리스도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기 자신을 순결하게 합니다.

4 죄를 짓는 자는 누구나 하느님의 법을 어기는 자입니다. 법을 어기는 것이 죄입니다. 5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그리스도께서는 죄를 없애시려고 세상에 나타나셨던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죄가 없는 분이십니다. 6 언제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습니다. 언제나 죄를 짓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보지도 못한 사람이고 알지도 못하는 사람입니다. 7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여러분은 아무에게도 속지 마십시오. 올바른 일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와 마찬가지로 올바른 사람입니다.

 

 

루가 24:36-48

36 그들이 그런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 예수께서 나타나 그들 가운데 서시며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말씀하셨다. 37 그들은 너무나 놀랍고 무서워서 유령을 보는 알았다. 38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그렇게 안절부절 못하고 의심을 품느냐? 39 손과 발을 보아라. 틀림없이 나다! , 만져보아라. 유령은 뼈와 살이 없지만 보다시피 나에게는 있지 않느냐?” 40 하시며 당신의 손과 발을 보여주셨다. 41 그들은 기뻐하면서도 믿어지지가 않아서 어리둥절해 있는데 예수께서는여기에 무엇이든 먹을 것이 없느냐?” 하고 물으셨다. 42 그들이 구운 생선 토막을 드리니 43 예수께서는 그것을 받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잡수셨다.

44 그리고 그들에게내가 전에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말했거니와 모세의 율법과 예언서와 시편에 나를 두고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하시고 45 성서를 깨닫게 하시려고 그들의 마음을 열어주시며 46성서의 기록을 보면 그리스도는 고난을 받고 죽었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난다고 하였다. 47 그리고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면 죄를 용서받는다는 기쁜 소식이 예루살렘에서 비롯하여 모든 민족에게 전파된다고 하였다. 48 너희는 모든 일의 증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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