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1.2. 다해_ 공현대축일(성탄 2 주일)
이사 60: 1-6 / 시편 72:1-7, 10-14 / 에페 3:1-12 / 마태 2:1-12
1월 6일 공현일은 성탄 2 주일(1월2일)로 옮겨 지킴.
“에피파니: 성장을 위한 내적 자각”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공현절 또는 주현절을 영어로 ‘에피파니 Epiphany’라 부릅니다. 어원은 헬라어 ‘에피파네이아ἐπιφάνεια’에서 유래했는데 뜻은 ‘등장, 출연’입니다. 기독교 전통적으로 동방박사가 아기 예수를 알현한 날을 기념합니다. 이는 쉽게 말해서 ‘초월적인 하느님께서 가시적으로 나타나신 날’입니다. 보이지 않는 초월적인 존재가 우리와 같은 모습으로 빛 가운데 나타나셨으니 그것이 바로 주님의 생일인 성탄절이지요. 성탄절인 12월 25일은 로마의 동지로 로마 축일인 태양신 축일과 성탄절이 만나 정해진 날이라고 하지요. 역사적으로 동방기독교에서는 1월 6일을 성탄절로 지키다가 431년 에페소 공의회의 결정에 따라 12월 25일은 성탄절로 1월 6일은 공현절로 각각 나눠 지키게 된 것입니다. 러시아 정교회는 아직도 ‘율리우스 달력’을 사용하는 고로 1월 7일을 성탄절로 지킨다고 합니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공현절은 하느님이 공식적으로 빛 가운데 자신을 드러내신 사건입니다. 이는 초월과 내재가 만나는 최초의 순간입니다. 이러한 사건은 복음서 속에서 ‘예수님의 세례 이야기’, ‘변화산’에서의 ‘주의 변모 이야기’ 속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느님의 영광이 가시적으로 드러난 사건이므로 이를 모두 ‘공현’ 또는 ‘에피파니’라 부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에피파니’의 의미는 문학적으로 ‘직관’, ‘통찰’, ‘깨달음’이란 뜻도 있습니다. 이는 제임스 조이스의 문학에서 “평범한 사건이나 경험을 통하여 직관적으로 진실을 발견하는 것”과도 연관된 말입니다. 제가 하느님의 성소를 받고 평소 저를 아티스트로 알고 계시던 한 목사님께서 제게 꼭 읽어보라 추천하셨던 책인 제임스 조이스의 자전적 소설 “젊은 날을 초상”. 이 책에서 성직자의 길을 가려던 주인공이 어느 날 바닷가에서 하얀 허벅지를 드러낸 어떤 소녀의 모습에서 성적인 황홀감에 싸이며 그동안 자신을 둘러친 가식과 위선을 깨닫는 장면이 나옵니다. 제임스 조이스의 작품 속 인물의 이러한 깨달음의 순간도 ‘에피파니’라 부릅니다. 그는 이를 ‘갑작스럽게 나타난 사물의 본질의 현현’이라 설명합니다. 그러한 ‘깨달음’은 전혀 예측하지 않은 일상 속에서 어느 날 갑자기 주어집니다. 마치 평소와 같이 들판에서 밤샘하며 양을 치던 목자들이 ‘에피파니’를 목격한 것처럼. 또 평소와 같이 예수님과 변화산에 산기도를 드리러 갔다가 갑자기 예수의 영광의 발현을 목격한 예수의 수제자들처럼 성서 속에서도 ‘에피파니’는 일상 속에서 갑자기 일상을 뚫고 들어오는 어떤 현상으로 묘사됩니다. 이러한 ‘깨달음’을 자각한 사람들은 다시는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가 없게 됩니다. 삶의 방향의 대전환이 이뤄지는 것이지요. 제임스 조이스가 그 ‘깨달음의 순간’에 자신은 절대로 욕망과 성욕을 버릴 수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고 ‘성직자의 길’이 아니라, ‘예술가의 길’로 방향을 전환한 것처럼 말입니다. 아주 소소한 사건조차도 ‘에피파니’로 인식되는 순간 그 깨달음은 폭풍처럼 사람을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2018년 발표된 BTS의 앨범 “Love Yourself”에 실린 ‘에피파니’라는 곡의 가사를 조금 읽어드리겠습니다.
참 이상해
분명 나 너를 너무 사랑했는데 (사랑했는데)
뭐든 너에게 맞추고
널 위해 살고 싶었는데
그럴수록 내 맘속의
폭풍을 감당할 수 없게 돼
웃고 있는 가면 속의
진짜 내 모습을 다 드러내
I'm the one I should love in this world
빛나는 나를 소중한 내 영혼을
이제야 깨달아, oh, so I love me
좀 부족해도 너무 아름다운 걸
I'm the one I should love
흔들리고 두려워도 앞으로 걸어가
폭풍 속에 숨겨뒀던 진짜 너와 만나
왜 난 이렇게
소중한 날 숨겨두고 싶었는지?
뭐가 그리 두려워
내 진짜 모습을 숨겼는지?
(출처: Musixmatch 작사: Si Hyuk Bang / Soo Hyun Park / Do Hyung Kwon Epiphany 가사 © Hybe Co. Ltd.)
절망과 고통 가운데서 자신의 참모습을 ‘에피파니’하는 순간을 묘사한 가사가 마음을 울립니다. BTS는 제 딸아이가 한때 좋아했던 보이그룹이지만, 저는 딸아이처럼 다른 보이그룹으로 진도가 더 이상 나가지 못해서, 아직도 BTS가 제가 아는 유일한 최근 보이그룹입니다. 가사를 보면 이 젊은 친구들이 인문학적 소양이 깊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서 제가 말씀드리고자 하는 요점은 바로 이것입니다. ‘에피파니’가 단순히 하나의 사건이었고, 또 우리가 매년 접하는 기독교의 절기 중 하나로 취급될 때, 우리는 이 ‘에피파니’에 담긴 의미를 이러한 BTS보다도 깨닫지 못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에피파니’는 단순히 우리 밖에서 생기는 사건이나 현상의 차원을 넘어 우리 내면에 침투해 들어오는 ‘신적 깨달음’이기 때문입니다. BTS가 노래를 통해 자신의 가식적이고 꾸며진 모습이 아니라 자신의 참 자아를 발견해가는 것처럼 우리도 오늘 ‘에피파니’를 통해 우리 안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지 않으면 ‘에피파니’는 우리와 전혀 관계가 없는 사건이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초월이 우리 안에 내재한다는 것의 의미와 그 은총의 무게를 우리가 깨닫지 못한다면 결국 ‘에피파니’는 2천 년 전의 사건으로 단순히 과거에 머물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각에서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도 전해집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에 따라, 12월 25일 성탄절에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별을 보고 동방박사들이 길을 떠나 예수께서 계신 곳에 도착한 날이 1월 6일이라는 이야기. 이러한 이야기는 그럴듯해 보이지만,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의 삶의 자리를 고려하지 않은 일종의 성서 이야기 짜깁기에 불과하다고 생각됩니다. 마태오복음은 예수의 ‘에피파니’를 ‘왕’이시며, ‘제사장’이시고 그리고 ‘메시아’이심으로 이해합니다. ‘왕’, ‘제사장’, ‘메시아’. 이는 마태오복음서에서 예수의 정체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호칭입니다. 그러니 화려한 동방박사들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선물한 것은 마태오복음의 삶의 자리와 정확히 일치합니다. 그런 값비싼 선물들을 루가복음처럼 목자들이 바칠 수는 없으니깐요. 마태오 공동체는 루가공동체보다 경제적으로 훨씬 부유한 배경을 가진 것으로 추측됩니다. 산상수훈에서 마태오는 “복되도다. 마음이 가난한 자”라고 기록함으로써 물질적인 결핍보다는 인간의 내면적 핍절에 더 무게 중심을 두기 때문입니다. 실제적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가난한 자들이 모인 루가의 공동체와는 배경이 완전히 다릅니다. 그러니 예수님 시대에 선진국이었던 동방에서 박사들이 방문하는 이야기가 마태오복음에는 더 자연스럽습니다.
여기에서 언급한 ‘동방’은 아마도 고대 페르시아를 이은 ‘파르티아 제국’으로 추측이 됩니다. ‘동방박사’로 번역된 말은 영어로 ‘메이자이(magi)’를 뜻합니다. 단수형은 ‘메이구스(magus)’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를 뜻합니다. 조로아스터교는 기원전 1400년~1000년 사이에 탄생한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종교 중 하나입니다. 불을 숭배한다고 ‘배화교’라고도 불립니다. 조로아스터교는 다신론이 지배하던 시대에 ‘아후라 마즈다’가 최고의 ‘유일신’ 임을 전파한 매우 혁명적인 종교였습니다. 그 선지자의 이름은 ‘조로아스터(자라투스트라)’입니다. 세상을 선과 악의 이분법적인 대결의 각축장으로 묘사하고, 최후에는 선이 승리한다는 가르침을 가진 종교입니다. 이스라엘의 바빌론 포로 시대에 유대교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추정됩니다. 흥미로운 것은 조로아스터교 신자인 것으로 여겨지는 ‘퀸’의 리드보컬인 ‘프레디 머큐리’가 이 ‘에피파니’를 소재로 노래한 곡이 있다는 것입니다. 초기 앨범에 나오는 ‘Jesus’라는 곡인데 그 2절에 동방박사의 예수 탄생 방문을 묘사한 부분이 나옵니다. 동방박사들이 바로 조로아스터교의 사제들인 ‘메이자이’였다는 점에서 영감을 받아 작곡한 것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이곡을 듣다 보면 나름 조로아스터교가 기독교에 영향을 끼쳤다고 생각하는 그의 자부심이 느껴집니다. 인도계 영국 이민자 2세였던 프레디 머큐리가 그러한 노래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고민했던 흔적이라고 할까요? 제가 음악평론가가 아니니 이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지금까지 저는 ‘에피파니’와 관련된 몇 가지 이야기를 들려드렸습니다. 그런 이유는 우리가 성탄절이니 공현절이니 어떤 게 더 역사적 진실에 더 가까운가를 생각하며 우리의 관심을 분산시키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에서였습니다. 그러한 것들은 ‘고고학’과 ‘문서비평’이 발달하면 발달할수록 역사적 사실에 대한 부분은 차차 더 드러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 ‘에피파니’가 우리에게 주는 내러티브의 진실이 무엇인지에 집중하는 데 있습니다. 오늘 언급한 제임스 조이스나 BTS, 프레디 머큐리 등은 자신의 삶의 자리에서 이러한 ‘에피파니’를 각각 자신에게 적용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한 ‘에피파니’는 단순히 문학이나 예술적 영감이나 깨달음을 넘어 우리 기독교에 있어서는 ‘초월’이 우리 일상 가운데 드러난 엄청난 사건입니다. 그러나 사건은 어디까지나 우리 외부에서 일어난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변화산에서 예수의 ‘에피파니’를 목격했던 베드로는 엉뚱하게도 그곳에 초막 셋을 짓겠다는 말을 했던 것입니다. 초월이 인간의 시간으로 들어왔을 때, 그것을 깨닫는 우리의 내면적 자각이 뒤따르지 않으면 우리도 이 ‘에피파니, 공현절’을 단순히 전례 행위 또는 현상적 사건으로 제한시키고 말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피파니’는 일회적 사건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 속에서 끊임없이 재현되는 ‘하느님의 현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한 ‘하느님의 현현’은 단순히 개인의 경험에 국한되지 않는 공동체의 경험과 고백 속에서 이뤄져야 합니다. 그러할 때 그러한 경험은 우리를 ‘신의 전능감’이란 착각에 물들게 하는 것이 아니어야 합니다. 체험이나 경험의 위험성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깨달음이 없는 체험은 우리를 영적인 파멸로 이끌 위험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현현 체험’은 부인할 수 없는 실제이기에 여기에는 영의 분별이 분명히 따라야 합니다. ‘하느님의 현현’은 철저히 ‘성육신론’에 교리적으로 의존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가현설주의자나, 영지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영과 육은 이분법적으로 구분될 수 없습니다. ‘에피파니’는 우리의 소소한 일상에서, 우리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공동체 속에서 서로가 서로를 세우고 살리는 방향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모두를 살릴 수 있는 ‘에피파니’가 아니라면, 그것은 우리를 교만으로 이끌 수 있는 위험한 것이 될 수 있습니다. ‘에피파니’가 과거의 사건이 아니라 현재에도 여전히 진행되는 ‘하느님의 현현’이라면 우리는 그것이 우리의 예배 가운데 드러나기를 간절히 바래야 합니다. 그러할 때 우리가 드리는 예배가 더욱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가 되고, 우리의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하느님의 현현을 경험하며 우리가 함께 성장해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 성공회가 지향하는 공동체성이고 사도 바울로가 말한 ‘그리스도의 몸으로서의 교회’입니다. 우리 교회 가운데 올 한 해동안 이러한 ‘에피파니’가 넘쳐나는 한 해가 되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그리하여 내년 이맘 때는 우리 모두가 더욱 성장한 모습으로 하느님 앞에 나오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다해) 성탄 1 주일
공현일은 1월 2일에서 8일 사이의 주일로 옮겨 지킬 수 있습니다. 공현일 본기도는 연중 1주일 전까지 드립니다.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동방박사를 별빛으로 인도하시어 아기 예수를 경배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이 세상 모든 나라를 참 빛으로 인도하시어 온 인류가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살 수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이사 60:1-6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2 온 땅이 아직 어둠에 덮여,
. 민족들은 암흑에 싸여 있는데
. 야훼께서 너만은 비추신다.
. 네 위에서만은 그 영광을 나타내신다.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들며
.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
4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아라.
. 모두 너에게 모여오고 있지 않느냐?
. 너의 아들들이 먼 데서 오고,
. 너의 딸들도 품에 안겨온다.
5 이것을 보는 네 얼굴에 웃음의 꽃이 피리라.
. 너의 가슴은 벅차 올라 부풀리라.
. 바다의 보물이 너에게로 흘러오고
. 뭇 민족의 재물이 너에게로 밀려오리라.
6 큰 낙타떼가 너의 땅을 뒤덮고
.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이 우글거리리라.
. 사람들이 세바에서 찾아오리라.
. 금과 향료를 싣고
. 야훼를 높이 찬양하며 찾아오리라.
시편 72:1-7, 10-14
1 하느님, 임금에게
. 올바른 통치력을 주시고, ◯
. 임금의 아들에게
.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2 당신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
. 약한 자의 권리를 세워 주게 하소서.
3 임금이 의를 이루면
. 높은 산들이 백성에게 평화를 안겨주고 ◯
. 언덕들이 정의를 가져다주리라.
4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을 쳐부수고
. 약한 자들의 권리를 세워 주며 ◯
. 빈민들을 구하게 하소서.
5 해와 달이 다 닳도록 ◯
. 그의 왕조 오래오래
.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6 풀밭에 내리는 단비처럼,
. 땅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
. 그 은덕 만인에게 내리리니
7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
. 저 달이 다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10 다르싯과 섬나라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고 ◯
. 세바와 스바의 왕들이 예물을 바치며,
11 만왕이 다 그 앞에 엎드리고 ◯
.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
12 그는 하소연하는 빈민을 건져주고 ◯
. 도움 받을 데 없는 약자를 구해주며,
13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
. 가난에 시든 자들을 살려주며
14 억울한 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
. 억압과 폭력에서 그 목숨 건져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에페 3:1-12
1 그러므로 이방인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가 된 나 바울로는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2 하느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여러분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여러분도 잘 알고 있습니다. 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앞서 간단히 적은 바 있으므로 4 그것을 읽으면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에 관한 심오한 계획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5 지금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빌려 그 심오한 계획을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전에는 지금처럼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었습니다. 6 그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한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7 나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을 받고 내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이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8 나는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사 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이 은총을 주셔서 헤아릴 수 없이 풍요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셨고 9 또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과거에 감추고 계시던 심오한 계획을 어떻게 실현하시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려주게 하셨습니다. 10 이렇게 되어 결국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신들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 이 모든 것은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를 내세워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살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서슴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마태 2:1-12
1 예수께서 헤로데 왕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그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 “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왕이 당황한 것은 물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4 왕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다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5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서의 기록을 보면,
6 ‘유다의 땅 베들레헴아,
.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 내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 미가 5:1
하였습니다.”
7 그 때에 헤로데가 동방에서 온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보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가서 그 아기를 잘 찾아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9 왕의 부탁을 듣고 박사들은 길을 떠났다. 그 때 동방에서 본 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그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이를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11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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