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거룩한 이름 예수”-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

James Chae 2021. 12. 31. 12:33

 

2022.1.1. 다해_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

민수 6:22-27 / 시편 8 / 갈라 4:4-7 / 루가 2:15-21

 

 

거룩한 이름 예수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에 대 묵상하다, 이름으로 삼행시 편을 지어봤습니다. 쑥스럽지만 한번 들어보세요.

 

워지지 않는 커다란 공허가 마음속에 있습니다.

조의 속에서 홀로 떨어져 나와 외롭게 광대한 우주를 떠도는 듯한 외로움.

전하지 않을지라도, 공허를 매일 하나씩 아름다운 별들로 채워가고 싶습니다.

 

이름에 대해 묵상해보니  이름에 대한 저의 느낌을 있었습니다. 저의 부모님께는 죄송하지만, 사실 저는 이름채창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제가 선택한 이름도 아니고, 자음의거센소리발음도 마음에 들지 않고…. 무엇보다도 이름을 묵상하다 보니 왠지 모를 외롭고 아픈 날들의 기억들이 너무 많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야고보라는 신명을 좋아합니다. 성공회에 와서 제가 받은 가장 축복은 2 이름이 생겼다는 것입니다. 아마도 제가야고보라는 이름을 좋아하는 것은야고보성인을 연상할 있어서 이지만, 다른 이유는야고보라는 글자의예사소리 너무 좋기 때문입니다. ‘야고보 원래 이름인야곱보다도 훨씬 부드럽지 않습니까? 말이 나왔으니 여러분도 본인의 이름으로 삼행시를 지으면서 한번 자신의 이름에 대해 묵상해보시기 바랍니다. 색다른 경험이 되실 것입니다.

 

이름에 대해 말씀을 드리다가, 이제 딱딱한 이야기로 넘어갑니다. 스위스의 구조주의 언어학자인 소쉬르의기표'(記標, signifiant)’기의(記意, signifie)’ 대한 이야기입니다. ‘기표 쉽게 말해 우리가 사용하는 소리로 이나문자 기호등을 말합니다. ‘기의 그러한 말이나 문자를 우리가 듣거나 봤을 구체적인 대상이나 의미를 우리 인식 안에 떠올리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기표자체는 사실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의 문자나 소리는 자체로 어떠한 의미도 없다는 뜻입니다. 문자와 소리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가 경험하고 학습받으며 사회적으로 약속된 개념에 의해서입니다. 이것이기의입니다. 머리 아픈 설명은 여기까지 하고 적절한 예일지는 모르겠지만,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전라도 사투리인 거시기하네라는 말은기표기의간에 정확한 연결성을 찾기가 정말 어려운 단어 하나입니다. 구글을 검색해 보니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말이 있더군요.

 

거식아, 네가 그때 거시기를 거시기해서 거시기하지 않았드냐.

아따 거시기 있잖냐.

? 거시기 아녀? 오랜만이다?

기분 거시기허다.

 

(출처: namuwiki)

 

거시기 하나의기의 결코 정의될 없는 아주거시기 단어입니다. 이는 이에 대한 경험치와 개념이 같은 대화 상대가 아니면 도저히 감을 잡을 수가 없습니다. ‘거시기 사물을 말하는지 아니면 어떤 사건을 말하는지 아니면 어떤 사람을 말하는지는기표 발설되는 대화 속에서만기의 감지될 있습니다. 물론 여기에는 대화 상대 간에 공통의 어떤 경험이나 개념이 반드시 전제가 되어야 하겠지요. 

 

오늘 요셉과 마리아는 천사의 신탁대로 아기의 이름을예수라고 명명합니다. 예수 그리스식 이름이에수스(Ἰησοῦς)’ 음역 발음이고 원래 아람어로는 이를예호슈아" (יהושוע)라고 합니다. 이를 우리 음역으로는여호수아라고 하지요. 이름은 모세의 후계자 이름이고, ‘여호수아서 통해 우리가 익히 아는 이름입니다. 뜻은야훼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을 정할 장자일 경우는 돌아가신 조상들의 이름을 승계하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장녀의 경우는 어머니나 할머니의 이름을 따릅니다. 장자와 장녀가 아닐 경우는새로운 이름 짓는 것이 가능했는데 경우도 가까운 혈육이나 친척 집안의 이름을 대부분 가져온다고 합니다. 아무튼 그런 연유로 같은 이름들이 너무 많아서누구의 아들 누구또는 지명을 사용하여나자렛의 누구’, ‘알렉산드리아의 누구등으로 불렀습니다. 우리에게 익숙한나자렛 예수라는 호칭은나자렛 출신의 예수라는 뜻이 됩니다. 사도 바울로는타르수스(다소)’출신이니타르수스의 바울로 되겠습니다. 우리가 아는 예수님의 호칭이 복음서에 넘쳐나는 것은 이름들이 예수라는 인물의 정체성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주님’, ‘임마누엘’, ‘구세주’, ‘다윗의 아들’, ‘인자(사람의 아들)’, ‘하느님의 아들등등. 명칭들이 신학적으로 다양한기의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오늘 언급하기에는 시간적으로 역부족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이름의기표기의간에 존재론적 의미까지 더해지면 문제는 더욱 복잡해집니다. 중요한 것은예수라는 호칭의기표 하나이지만, 이에 대한 기의는 많을 있다 정도만 우리가 인지하고 넘어갔으면 좋겠습니다.

 

마태오와 루가가 각각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를 다르게 기록했다는 점은 모두가 아실 겁니다. 수태고지 이야기도 각각 다른데, 마태오는 마리아의 남편 요셉에게 천사가 고지했다고 반면, 루가는 마리아에게 고지했다고 기록합니다. 탄생한 때도 마태오는헤로데 때이고, 루가는아우구스투스가 호적등록 명령을 내렸을 라고 기록합니다. 탄생한 장소도 마태오는’( 아마도 마리아와 요셉의 )이고, 루가는 마구간의 구유입니다. 메시아의 탄생을 천사로부터 신탁을 받은 사람들도 마태오는동방박사이고 루가는 양을 치는목자들입니다. 탄생 이후의 행적도 각각 다릅니다. 마태오는 헤로데를 피해 예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했다고 기록했고, 루가는 성전에서 율법대로 아기를 봉헌도 하고 시므온과 한나의 축복도 받았다고 기록했습니다. 같은 이야기의 가지 버전같이 느껴집니다. 이러한 일은 보도자의 관점과 삶의 자리, 참고한 전승 자료의 차이에 기인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같은 사실을 기록해도 관점이 달라지면 이렇게 차이가 있는 법이지요. 어떤 것이 사실에 부합한 지를 확인하는 것은 아마도 의미가 없을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효녀 심청전 이야기, ‘오디세우스 신화 사실이냐 아니냐를 따지는 것처럼 부질없는 짓이기 때문입니다. 이야기는 이야기가 담고 있는 고유한 내러티브의 실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실제를 염두에 두고 이야기를 접근할 , 이야기가 발설된 공동체와 오늘 이야기를 듣는 우리들의 삶의 자리 간에 교차하는 지점을 발견하게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갈라 4: 4-5)

 

오늘 말씀을 이해하는 데는 사도 바울로가갈라디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중요한 신학적 관점을 제공합니다. 이는 아마도 루가의 신학적 관점과도 일치하는 같습니다. 루가는 예수님의 유년기 이야기를 모두율법과 성전 중심으로 전개합니다. 더욱이 예수의 활동무대로 복음이 선포되는예루살렘 중심에 놓았습니다. 마태오가 예수의 가족이 이집트로 피신했다가 후에 갈릴리에 정착했다고 기록한 것과 달리 루가는 율법을 따라 성전에서 여드레만에 예수에게 할례도 행했고, 율법이 명한 정결례(레위 12:1-8) 속량법(출애 13:2,12-13; 민수 18:15-16) 따라 예수를 성전에서 봉헌했으며, 12 때에는 성전 순례도 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는 사도 바울로가 말한 대로 성육신 하신 예수께서 철저히 우리 인간과 같이율법의 지배 받았음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루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율법과 불가분의 관계에 있음을 강조합니다. 루가가 우리에게 말하고자 하는 바는 예수가 모세처럼하느님의 새로운 계약’(루가 22:20) 따라 사람들을 구원으로 이끄실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사도 바울로의 말대로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자녀로 신분이 변화됩니다. 이런 면에서 사도 바울로와 루가의 신학적 지평이 서로 겹쳐짐을 확인할 있습니다.

 

구원(소테리아)’이란 말이 루가복음의 가장 중요한 화두라고 전에 말씀드린 적이 있습니다. 루가가 바라보는 구세주(소테르) 모든 면에서 율법 아래 있는 인간을 이해하시는 분이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복음사가들이 기록하지 않은 율법의 준수와 성전과의 관계 그리고 예수의 유년기 이야기도 성실히 기록한 것입니다. 루가가 바라본 메시아는 우리와 성정이 같은 분이셔야 하고 율법의 예언을 실현하시는 분이시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루가의 관점은 철저히 하느님의 구원 사관을 따릅니다. 그것이만인 구원 통해 드러난하느님의 자비이기 때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야훼는 구원이시다 뜻의여호수아, 예수라는 이름은 예수님의 정체에 가장 어울리는 이름이 됩니다. ‘기표기의그리고 가리키는 대상이 모두 일치합니다. 모세의 유업을 승계하여 이스라엘을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던여호수아처럼, 이제 예수께서는 모든 죄인들을하느님의 나라 이끄실 구원자가 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예수라는 이름은기표기의 우리 모두의 개념 속에서 정확하게 일치하여구원 인지하게 되는 이름이 아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분의 이름 앞에거룩함 더하여거룩한 이름 예수 기념하는 것입니다. 김춘수 시인의 표현처럼, 우리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그의 이름은 단순히 무의미의 바다를 떠도는 것처럼 우리와 상관이 없는 존재였지만, 우리가 그의 이름을  예수 부를 그는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구원이 되시는 입니다.

 

오늘 사도 바울로는 그분의 이름이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이라 했고, 세상 모든 피조물들이무릎 꿇고 이름을 찬미한다고 합니다. 그리고 오늘 시편의 시인도주님의 이름이 세상에서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찬양합니다. 우리는 오늘 새로운 새해를 시작하며, 우리가 주님이라 부르고 예배하는 분이 어떤 분이신지를 명확히 인지하기를 바랍니다. 예수라는 이름의기표기의 정확하게 우리 안에서 일치된다면, 우리는 함께 같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그래서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모든 기도가 온전히 그분에게만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우리의 이기심과 욕망을 붙드는 다른 모든 이름들은 우리 뒤에 남겨두고, 우리에게 주어진 새로운 해를 오직 예수 이름과 함께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할 우리 각자와 우리 공동체가 하느님 안에서 아기 예수께서 성장하시듯이 우리도 성육신 안에서 그의 이름과 함께 성장해 것입니다. 그러한 해가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전례독서: (다해) 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

 

본기도

영원하신 성부여,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신 성자께서는 우리 구원의 표지로 예수라는 이름 받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위하여 율법에 순종하신 성자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세상의 구원자임을 선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야훼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시편 8

1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주님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     어린이, 젖먹이들도 노래합니다.
2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하늘과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 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하느님, 우리의 주여!
.     주님의 이름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갈라 4:4-7 또는 필립 2:5-11

 

갈라 4:4-7

4 그러나 때가 찼을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5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6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있게 되었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 것입니다.

 

 

필립 2:5-11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내어놓고
.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위와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     예수의 이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10이사 45:23 참조

 

 

루가 2:15-21

15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사실을 보자.” 하면서 16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17 아기를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18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19 마리아는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째 되는 날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다. 날이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