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빛과 함께 성장하기

James Chae 2021. 12. 26. 09:09

2021.12. 26. 다해_ 성탄 1 주일

사무상 2:18-20, 26 / 시편 148 / 골로 3:12-17 / 루가 2:41-52

 

 

빛과 함께 성장하기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사제, Artist

 

 

우리는 성탄밤 전례를 통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신 아기의 영광, 빛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빛이 인간이 되시어 성육신하신 하느님임을 성탄대축일에 또한 고백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성탄 1 주일에 우리는 이제 빛으로 인한 성장에 대해 이야기할 차례입니다. 오늘 전례 말씀은 사무엘과 예수의 유년기 성장에 대해 언급함으로써 성탄이 지닌 다른 신비를 우리에게 전해줍니다. 그것은 빛을 받는 모든 것은 성장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어린 사무엘은 야훼와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사무상 2:26)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 (루가 2:52)

 

 

루가는 예수의 유년기를 기록한 유일한 복음사가입니다. 그는 아마도 사무엘의 이야기와 그리스 로마의 전기문학의 형식을 토대로 이야기를 전개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루가의 특수자료로 그가 어떤 전승 자료를 참고했는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분명한 것은 루가는 당시의 전기작가들이 했던 것처럼 예수의 인생을 실제적인 역사적 지평 위에서 설명하고자 루가복음을 기록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루가복음 서두에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서 보내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루가 1:3)

 

루가복음을 기록하며 루가는 자신의 기록의 목적을 정확하게 밝힙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언급한 대로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대한 자료를 모으고 그것을 정리하여 기록하는 방식으로 글을 썼다는 점입니다. 그것은 그가 여느 전기작가 또는 역사가와 비슷한 자세로 이에 임했음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예수의 유년기 이야기의 진위여부를 가리는 것은 사실 여기에서는 무의미하며 가능하지도 않은 일입니다. 우리는 현재 이에 대한 객관적 자료를 전혀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중요한 것은 루가가 이야기를 통해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입니다. 그것은성장 관한 이야기입니다.

 

성육신하신 예수께서도 인간의 성장의 과정을 경험했다는 점을 루가는 강조하고 싶었던 같습니다. 그것은 예수의 지상 활동을유령이나환상정도로 설명하는가현설주의 대한 거부이고, 영과 육을 구분하는영지주의 대한 거부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성육신하신 예수님은 하느님이시면서도 아이에서 어른으로 성장하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모두 밟으셨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 로고스의 실체를 그대로 지니고 계시다는 성육신론의 관점에서 성장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저는 이를 우리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대한 유비로 해석을 합니다. 하느님이신 예수께서도 성장을 하셨다면, 다시 말을 바꾸어, 아기 예수도 점차적으로 성장하여 성인이 되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렇게 그리스도인으로 점점 성장해야 한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같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어른으로 성장하셨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그러한 성육신의 믿음 안에서 함께 성장해야 하지 않을까요? 중요한 점은 사무엘과 유년기의 예수 모두하느님과 사람들 앞에서 총애와 사랑을 받으며 성장했다는 입니다.

 

오늘 읽은 2 독서 말씀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성장에 중요한 가지 점을 강조합니다. 하나는용서이고, 다른 하나는감사입니다. 물론 단어를 하나로 묶는 키워드는 아마도사랑 것입니다.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골로 3:13)

 

성육신하신 그리스도와 함께 성장하기위해 사도 바울로는 제일 먼저용서라는 덕목을 거론합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문에도 언급된 것처럼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이를 용서하듯이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라고 우리는 기도합니다. 우리는 주님께 용서를 받은 자들이므로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은 마땅하다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우리는 여러 관계 속에서 때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고, 때론 다른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습니다. 아마 여기에서 예외인 사람은 사람도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내가 남에게 상처를 것은 빨리 잊어버리지만, 아니 기억조차 못할지도 모르지만, 남으로부터 상처를 받은 것은 오래 기억하는 같습니다. 그래서 남에게 자신이 상처의 흉터보다 자기에게 새겨진 상처의 흉터에 크게 보이는 법입니다. 서로가 자신의 상처만을 바라보고 있으면 결국 타인에 대한 원망과 불평만 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의 몸을 이루는 교회는 불가능해집니다. 사도 바울로는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라고 말함으로써 용서의 덕목을 강조합니다. 쉽지 않은 일이지만, 용서는 그리스도인의 성장에 필수적으로 따르는 덕목이 아닐 없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교회를 이루는 가장 기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 우리 마음을 새롭게 하라고 바울로는 말합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부르심을 받은 몸이기에 우리의 성장은 개인의 성장이 아니라 결국함께 성장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내가 성장하기 위해서는 혼자서는 되고, 우리 모두가 함께 성장해야 합니다. 하나가 성장하면 모두가 함께 성장하는 것이고, 모두가 성장하면 결국 하나도 함께 성장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성장의 번째 덕목은감사입니다. 사회생활을 해보신 분들은 모두 공감하시는 것이겠지만, 감사할 모르고 불평만 늘어놓는 사람과 함께하는 것은 모두에게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매사에 긍정적이고 감사할 아는 사람은 사람들을 끄는 매력이 있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에게감사 신앙의 가장 중요한 덕목이면서 필수적인 신앙의 요소입니다. 우리가 드리는감사성찬례 원어는유카리스트(Eucharist)’ 하는데, 번역하면감사제 됩니다. 이는감사라는 뜻의유카리스티아 εὐχαριστία’ 어원으로 하는 전례 용어입니다. 그러니 우리가 드리는 예배는 그대로 하느님께 감사드리고, 신자들끼리 서로에게 감사하는 그러한 예배인 것입니다. 감사가 없는 예배는 불가능합니다. 시편 69 30-31절을 잠시 볼까요?

 

찬미가로 하느님의 이름을 기리리라, 

감사의 찬송으로 하느님을 높이리라. 

소를 바치는 것보다, 달리고 달린 황소를 바치는 것보다

야훼께서는 기뻐하시리라. 

 

감사는 사람의 마음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마음도 움직입니다. 진정한 감사는 얼어붙은 인간의 마음을 녹이는 따뜻한 빛이며, 하느님께 드리는 찬양입니다. 가장 추운 말구유에 누은 아기 예수님을 경배한 가난한 목자들은 그들을 구원할 메시아의 탄생에 기뻐하며 감사했습니다. 성탄의 기쁨이 주는 것은 바로 이러한 감사에 기반합니다. 절망에 빠진 우리를 구원하시려 오신 분에 대한 감사말입니다. 우리에게 오신 아기 예수님으로 우리가 감사할 있다면 우리는 기독교의 성육신 신학을 우리 몸으로 체화하는 것이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선포는 우리 인간 편에서는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분을 우리 안에 모시는 것이 됩니다.

 

김기석 목사님의 글에서 읽은 기억이 나는데, 인디언들은 말을 타고 달릴 혹시 자신의 영혼을 뒤에 빠트리고 왔을 잠깐잠깐 멈춘다고 합니다. 정말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의미심장한 이야기라 생각됩니다. 열심히 한눈팔지 않고 앞으로만 달려가는 우리 현대인들에게 시시하는 바가 큽니다. 오늘 복음서에서도 예수의 부모는 성전 순례를 마치고 곧장 고향으로 돌아갔습니다. 좌우도 살피지 않고 앞만 보고 가다가 그만 어린 예수를 뒤에 빠트리고 말았습니다. 정신없이 살다 보면 이런 일은 다반사겠지요. 우리도 정신없이 살다 보면 자신의 예수님을 빠트린지도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갈 있습니다. 그러다 인생에 커다란 장벽이 생기면 그제야 잠시 멈춰서 지나온 길을 돌아보게 되지요. 잠시 멈춰야만 있는 것이 분명히 존재합니다. 주님은 아버지의 항상 계셨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것이 장소적인 의미만 뜻하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성부이신 하느님 안에 계셨습니다. 그분은 한시도 하느님을 빠트리고 사신 적이 없으신 분입니다. 그것을 예수의 부모가 깨닫지 못했기에 그들은 허둥대며 예수를 찾은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를 잃어버리면 마리아와 요셉처럼 허둥댈 있습니다.

 

우리는 전례력의 시작을 대림절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 성탄절과 함께 아기 예수님을 우리 안에 모시고 새로운 해를 시작하려 합니다. 우리는 아기 예수님이 성장하셨듯이 우리도 동안 점점 성장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용서와 감사 넘친다면 그러한 성장은 우리 모두의 성장이 것입니다. 너무 앞만 보고 달려서 뒤에 예수님을 빠트리고 가는 일이 없도록 모두가 말을 인디언처럼 잠깐 멈춰 서서 뒤를 돌아보는 시간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멈출 모르고 앞만 보고 달려가는 것은 우리 현대인의 병입니다. 그래서 멈춤은 영어의 ‘stop’ 아니라 ‘pause’입니다. ‘일시 정지이지요. 이러한일시정지 우리는피정이라 부릅니다. ‘피정 우리의 일상 시간에 거룩함을 초대하는 시간의 성사입니다. 우리가 아기 예수님과 함께 가운데 성장하기 위해서는 잠시라도 일상 가운데 멈춰서 우리 자신을 돌아보는피정의 시간 필요합니다. 각자가 해는 그러한 피정의 시간을 자신의 가운데 만드시면서 바쁘시더라도 조금은 여유를 가지며감사와 용서 덕목으로 성장해갔으면 좋겠습니다.  새로운 시작은 설렘을 주지만, 또한 두려움도 함께하는 법입니다. 우리가 성탄절을 아기 예수와 더불어 성장하는 계기로 삼기 위해 우리는 우리와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의 은총이 간절히 필요합니다. 하느님이 함께하시면 두려움은 이상 우리를 괴롭히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의 성장은 주님의 뜻이고, 이를 위한 우리의 간절함은 주님을 향한 우리의 기도가 것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다해) 성탄 1 주일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어 진리의 빛을 밝혀주셨나이다. 비오니, 믿음 안에서 가족인 우리가 빛을 따라 새로운 생명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사무상 2:18-20, 26

18 어린 나이에 야훼를 모시게 사무엘은 몸에 모시 에봇을 입고 지냈다. 19 그의 어머니는 매년 주년제를 드리러 남편과 함께 올라올 때마다 작은 두루마기 벌을 지어다가 아들에게 주었다. 20 그러면 엘리는 엘카나 부부에게야훼께서 맡기로 하신 아이 대신으로 부인 몸에서 후손이 나게 해주십시오.” 하고 복을 빌어주었고 축복을 받고 그들은 자기네 고장으로 돌아가곤 하였다. 21 야훼께서 한나에게 은덕을 베푸셔서 한나는 삼남 이녀를 두게 되었다. 그러는 동안 어린 사무엘은 야훼 앞에서 자라났다.
26 한편 어린 사무엘은 야훼와 사람들에게 귀염을 받으며 무럭무럭 자랐다.

 

 

시편 148

1    알렐루야!
.     하늘에서 주님을 찬양하여라.
.     높은 데서 찬양하여라.
2    그의 천사들 모두 찬양하여라.
.     그의 군대를 모두 찬양하여라.
3    해와 달아 찬양하고
.     반짝이는 별들아, 모두 찬양하여라.
4    하늘 위의 하늘들,
.     하늘 위에 있는 물들아, 찬양하여라.
5    주님의 명령으로 생겨났으니,
.     그의 이름 찬양하여라.
6    지정해 주신 자리, 길이 지키어라.
.     내리신 법은 어기지 못한다.
7    땅에서도 주님을 찬양하여라.
.     물고기도 깊은 바다도,
8    번개와 우박, 눈과 안개도,
.     당신 말씀대로 몰아치는 된바람도,
9     저산 모든 언덕도,
.     과일나무와 모든 송백도,
10  들짐승들과 가축들도
.     기는 짐승과 나는 새들도,
11  세상 임금들과 모든 추장들도
.     고관들과 세상의 모든 재판관들도
12  총각 처녀 없이
.     늙은이 어린이 모두 함께
13  주님의 이름을 찬양하여라.
.     홀로 한없이 높으시고
.     하늘 위에 위엄 떨치신다.
14  당신 백성의 영광을 드높여 주셔서,
.     당신을 가까이 모신 백성,
.     이스라엘 후손들, 알렐루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골로 3:12-17

12 여러분은 하느님께서 뽑아주신 사람들이고 하느님의 성도들이며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백성들입니다. 그러니 따뜻한 동정심과 친절한 마음과 겸손과 온유와 인내로 마음을 새롭게 하여 13 서로 도와주고 피차에 불평할 일이 있더라도 서로 용서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여러분을 용서하신 것처럼 여러분도 서로 용서해야 합니다. 14 그뿐만 아니라 사랑을 실천하십시오. 사랑은 모든 것을 하나로 묶어 완전하게 합니다. 15 그리스도의 평화가 여러분의 마음을 다스리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러려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아 몸이 것입니다. 항상 감사하는 마음으로 사십시오. 16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부한 생명력으로 여러분 안에 살아 있기를 빕니다. 여러분은 모든 지혜를 다하여 서로 가르치고 충고하십시오. 그리고 성시와 찬송가와 영가를 부르며 감사 넘치는 진정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찬양하십시오. 17 여러분은 무슨 말이나 무슨 일이나 모두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분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십시오.

 

 

루가 2:41-52

41 해마다 과월절이 되면 예수의 부모는 명절을 지내러 예루살렘으로 가곤 하였는데 42 예수가 열두 살이 되던 해에도 예년과 마찬가지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43 그런데 명절의 기간이 끝나 집으로 돌아올 때에 어린 예수는 예루살렘에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런 줄도 모르고 그의 부모는 44 아들이 일행 중에 끼여 있으려니 하고 하룻길을 갔다. 그제야 생각이 나서 친척들과 친지들 가운데서 찾아보았으나 45 보이지 않으므로 줄곧 찾아 헤매면서 예루살렘까지 되돌아갔다. 46 사흘 만에 성전에서 그를 찾아냈는데 거기서 예수는 학자들과 한자리에 앉아 그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묻기도 하는 중이었다. 47 그리고 듣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그의 지능과 대답하는 품에 경탄하고 있었다. 48 그의 부모는 그를 보고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예수를 보고얘야, 이렇게 우리를 애태우느냐? 너를 찾느라고 아버지와 내가 얼마나 고생했는지 모른다.” 하고 말하였다. 49 그러자 예수는, 나를 찾으셨습니까? 내가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줄을 모르셨습니까?” 하고 대답하였다. 50 그러나 부모는 아들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하였다.
51
예수는 부모를 따라 나자렛으로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살았다. 어머니는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52 예수는 몸과 지혜가 날로 자라면서 하느님과 사람의 총애를 더욱 많이 받게 되었다(사무상 2: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