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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도의 조건

James Chae 2022. 6. 26. 07:03

 

2022.6.26. 연중 13주일

열왕하 2:1-2, 6-15 / 시편 77:1-2, 11-20 / 갈라 5:1, 13-25 / 루가 9:51-62

 

제자도의 조건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복음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예루살렘 상경기 시작 부분입니다. 이는 루가복음 9장에서 19 27절까지 장장 10장에 걸쳐 기록되었으며예루살렘 입성전까지의 이야기들을 담은 것입니다. 특히 루가복음 9 이전에는 이적과 치병사화가 중심이라면, 9 이후예루살렘 상경기에는 비유와 설교 그리고 논쟁 사화 등이 중심입니다. 이런 차원에서 루가복음 9장은 매우 중요한 전환점을 보여줍니다. 굵직한 주제들이 9 속에 모두 들어 있습니다. 12제자를 파송한 이야기, 오병이어 이야기,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번의 수난 예고, 주님의 변모 사건, 제자도의 조건 등입니다. 그리스도, 십자가,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모든 암시, 예수의 정체에 대한 모든 암시가 9장에서 다뤄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특이한 점은 예수의 갈릴래아 활동 시작에도 갈릴래아 사람들에게 배척당하는 이야기가 나오는데, 오늘 9장에서도 예수는 본인이 지나려고 했던 사마리아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합니다. 사마리아인들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려 했던그리심산(제리짐산 Mt. Gerizim)’ 예배의 중심으로 생각했기 때문에그리심산 아닌예루살렘으로 예수가 간다는 말에 그를 배척한 것입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복음서에는 심지어 이방의 게라사에서도돼지 집단 익사 사건 의해 이방인들에게도 배척을 당하신 일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리고 그는 앞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후에도 그곳의 지도자들과 유대인들에게 배척을 당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루가가 보는 고난의 종의 모습이고, 그는 그러한 배척당함을 통해 배척당하는 사람들의 친구이시고, 구원자 이심을 강조한 것입니다. 소외받는 자들에게 관심이 깊었던 루가다운 편집입니다. 

 

오늘 복음서는 제자의 조건에 대한상황어 구성되어 있습니다. 첫째와 둘째 상황어는 마태오도 똑같이 기록하고 있어 출처는예수어록입니다. 셋째 상황어는 루가의 특수자료이지만, 문장 구조가 첫째 상황어와 유사하여예수 어록으로 추측됩니다. 루가는 상황어 셋을일흔 제자 파견 이야기바로 직전에 배치함으로써 앞으로 예루살렘까지 전개될 그리스도께서 가시는 길과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길이 유사함을 말함으로써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도의 길이 얼마나 어려운지를 강조한 것입니다.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들은 이를 살펴 신중할 필요가 있음을 강조합니다.

 

주님께서 우리 모두를 부르신 것은 단순히 그리스도를 신봉하는 그리스도인을 만들기 위함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를 단순한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뜻과 삶을 따르는 제자로 부르신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소명(사명, vocation)’이라 부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것은칭의 의한의화때문입니다. 이것은 전적으로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거합니다. 그러나의화 주님의 부르심의 시작일 뿐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이후에는성화소명으로 다시 우리를 부르십니다. 이것이 바로제자도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주님께서는아버지 장례 치르지 말고, ‘가족에게 작별 인사 하지 말며, 곧바로 주님을 따르는 것이 제자도임을 강조하십니다. 제자도에 들어선 사람은 결코 뒤를 돌아보면 된다는 것입니다. 그만큼하느님 나라 위한 제자도는 긴박성을 요청합니다. 저는 오늘하느님 나라의 긴박성이라는 관점보다는 여기에 언급된 부류의 제자들을 통해 가지 유형의 제자도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제자도에 임하는 우리 자신의반면교사 삼기 위함입니다.

 

번째 제자는 주님께서 어디를 가시든 따라가겠다는신념 가득한제자입니다. 이에 주님께서는 거처 없이 떠도는 자신의 상황을 그에게 환기시켜주시며 제자도의 길이 얼마나 고달프고 외로운 일인지를 설명하십니다. 우리는 상황어에서 주님께서 부르지도 않았는데 본인의 신념에 따라 자의적으로 주님을 따라나선 제자 유형을 발견합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뜻보다는 자기의 의지와 결정이 우선입니다. 자기의 내적 필요를 중히 여기는 자이지요. 자기가 먼저 나서서 주님의 말씀과 가르침을 듣고 따라나선 것입니다. 이런 자발성과 적극성은 좋지만, 이런 부류의 사람은 가지를 망각합니다. 그는 자신의 신념을 주님의 뜻보다 중히 여기기 때문에 주님의 뜻과 의도를 살피는 데는 무딥니다. 그는 주님께서 원하시는지 아닌지를 살피기에 앞서 어디든지 함께하려 하기 때문에 주님의 사적인 시간과 기도의 시간조차 방해합니다. 자기가 원하는 대로, 자기가 필요한 대로 주님을 따르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과 타인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자기의 시간, 자기의 노력, 자기의 신념이 다른 모든 것보다 중요합니다. 그는 주님을 따라다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따라다닙니다. 모든 상황을 자신의 뜻과 계획대로 조정하려는 사람입니다. 자신의 신념에 맞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님 곁을 떠날 사람입니다. 예수의 십자가 사건 도망을 제자들 중에 이런 부류의 제자들이 있었을 겁니다.

 

자신의 신념을 믿음보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결코 주님의 제자가 없습니다. 신념을 믿음으로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런 사람들의 특징은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다는 점입니다. 자신의 시간, 자신의 , 자신의 신념이 모든 일의 척도가 되고 중심이 됩니다. 그래서 남들이 자신의 신념과 계획에 반하는 행동을 하면 그들을 설득하려 하고, 만약 설득이 먹히지 않으면 그들을 외면합니다. 모든 관계의 중심은 하느님이나 타인에 대한 배려가 아니라 오직 자기입니다. 모든 세상이 자기를 중심으로 움직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입니다. 부지런하고 자기 일에 충실하지만, 관계성의 배려는 조금도 찾아볼 없습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의 계획과 시간보다 앞서 움직이려 합니다. 기도하고 응답을 기다리기보다는 자신 경험과 능력을 믿고 판단하며 움직입니다. 그래서 일이 한창 진행된 후에는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도 이상 멈출 수도 없는 지경에 이르고 맙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믿는 사람의 경우가 이러합니다. 이는 주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믿는 자기의 신념을 믿는 자입니다.

 

번째 상황어에서 주님께서는 아버지의 장례조차 금지하십니다. 장례가 아무리 중요해도 하느님 나라보다 긴급한 사안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번째 유형의 제자를 만납니다. 경우는 주님께서 제자를 먼저 부르신 케이스입니다. 그러나 자기 가족에 대한 의무와 사회적 책임을 중요하게 생각해서 주님을 따르는 것을 주저하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일과 자기의 일이 충돌할 자기의 일과 주변을 먼저 챙기는 사람입니다. 자기에게 당면한 일과 관계성이 우선이고 주님과의 관계는 그다음입니다. 이런 사람은 자기의 일과 사회적 관계성에 성실하고 충실합니다. 그러나 자기 일과 사회적 관계에 몰입한 나머지 주님의 일을 하기에 시간이 부족합니다. 주님의 일과 주님과의 관계성을 자신의 삶의 중심에 두지 못합니다.  부지런하고 열성적이고 자기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지만, 하느님 나라의 일을 위해 시간을 내기에 인색한 사람입니다. 자신이 이루어 놓은 일이 중요하고 자신의 관계에서 오는 책임감이 먼저 앞섭니다. 그러나 하느님의 일은 뒷전인 사람의 전형입니다. 하느님이 먼저가 아니라 자신의 일이 먼저입니다.

 

번째 상황어는 가족에게 작별 인사를 하는 것조차 금지당한다는 내용입니다. 하느님의 나라가 그만큼 시급하다는 메시지가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상황어에서 등장하는 사람은 주님을 따르는 먼저 조건을 내세우는 사람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사람은 주님을 따르겠다고 자기가 먼저 주님께 왔지만, 이내 조건을 먼저 제시합니다. 조건 없이 주님을 따르기 어려운 케이스입니다. 이런 사람은 하느님의 일에 자신의 조건을 앞세웁니다. 예를 들어 무엇 무엇을 하면 뭐뭐를 하겠다는 식입니다. 주님께서 이것을 해주시면, 제가 이것을 주님께 해드리겠습니다.라고 조건을 다는 사람입니다. 이런 사람은 주님께 먼저 서원을 합니다. 그러나 서원한 것에 대해 주님께 조건을 내세우며 행동합니다. 제게 이런 복을 주시면 제가 이것을 하겠습니다. 그러다가 조건이 충족되지 않으면 언제든지 주님을 떠날 사람입니다. 먼저 주님께 왔지만, 조건에 따라 언제든 주님을  배반할 사람입니다. 아마도 가리옷 사람 유다가 이런 유형의 사람이 아니었나 생각됩니다. 이렇게 조건을 세우다 보면 조건 없이는 결코 아무것도 없는 사람이 됩니다. 그의 믿음과 헌신은 조건에 대한 반응일 뿐입니다. 

 

자신의 신념이 믿음보다 앞서는 사람’, ‘자기 일과 사회적 관계성을 하느님 일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 ‘믿음에 조건을 내세우는 사람

 

우리는 과연 어떤 제자에 속하는지요? 이러한 부류의 제자 유형은 모두 온전히 주님께 자신을 내어놓지 않은 사람들의 전형입니다. 주님께서 12명의 제자를 부르셨을 그들 모두즉시’ ‘조건 없이응답했다는 기록을 보면 제자는 스승이 명령하면 즉시 순종하는 것이 기본입니다. 이것이 주님께서 말씀하시는제자도 핵심입니다. 사람 사람의 관계가 아니라 하느님 인간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께서 명령하시면 인간은 순종합니다. 이것이 인간과 하느님 관계의 기본입니다. 조건도, 자신의 신념도, 자신의 상황도 주님의 소명 앞에서는 통하지 않습니다. 끊임없이 조건을 내세우고, 자기의 일을 주장하는 사람은 결국쟁기를 잡고 뒤를 돌아보는 사람입니다. 이러한 사람은 하느님의 나라에 적합하지 없다고 주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곳조차 없다.”라는 말에는 제자도의 애환과 어려움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길은 외롭고 쓸쓸하고 쉼이 없는 어려운 길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긴박성이 제자도의 소명을 비장하게 만듭니다. 제자도에 들어선 사람들은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아야 하고, 그동안 자신에게 익숙했던 모든 자신의 일과 관계성을 새롭게 재정립해야만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자도에 들어설 없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언급하신 대로 길이 외롭고 쓸쓸하고 어려운 일임에는 틀림없지만, 길은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처럼 마지막에는 하느님 나라의 영광이 있습니다. 십자가는 끝이 아니라 하느님 구원 사역의 시작이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의 영광은 그리스도의자기 비움, 케노시스 κένωσις’ 의해 추동되고 부활에 의해 확증됩니다. 제자도는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에게 주어지는 영광은 우리의 상상력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의 제자도를 따랐던 많은 사람들에 의해 우리 기독교는 오늘까지도 일을 이어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도 빛이 없는 어두운 곳에서, 남들의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제자도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기에 우리가, 우리 교회가, 우리 기독교가 그나마 모양으로라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주님의 희생 위에, 그리고 제자도를 걸었던 많은 사람들의 희생 위에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여전히 지금도 길을 함께 사람들을 부르시고 계신 것입니다. 그것은 결코 사제나 수도사들에게만 주어진 소명이 아닙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제자도로 부르십니다. 그러나 응답하고 순종하는 사람은 극소수입니다. 그래서 부르심은 모두에게 공평하지만, 이에 대한 순종은 각각 다릅니다. 각자의 상급이 다르고 각자의 영광이 분명 다릅니다. 해와 달과 별의 영광이 다르고, 바다와 강과 샘물의 영광이 다르며, 산과 나무, 화초의 영광이 다릅니다. 양과 염소는 마지막 때에 구분이 됩니다. 우리는 과연 제자도의 부르심에 응답할 있는지요? 답은 우리 모두 각자의 자유 의지에 달려 있습니다. 성령께서 여러분의 귀와 마음을 열어주시어 각자에게 주어진 소명을 발견하게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소명 가운데 성령께서 힘을 주셔서 자기 비움과 사랑으로 하느님과 이웃을 섬기는 성숙한 제자들이 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 교회가 주님의 제자도를 실천하는 교회로 성장해가길 간절히 희망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 연중13 (다해) 1

 

본기도

하느님, 우리 마음을 비추시고 우리 영혼에 생기를 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힘을 주시어 주님을 찾고 사랑하게 하시며, 완전한 자유를 주시는 주님을 더욱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열왕하 2:1-2, 6-15

1 야훼께서 엘리야를 회오리바람에 태워 하늘로 데려가실 때가 되어 엘리야가 길갈을 떠나는데, 엘리사가 따라 나섰다. 그러자 2 엘리야가 엘리사에게자네는 여기 남아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대로 베델로 가야겠네.” 하고 말하였다. 엘리사는결코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람은 함께 베델로 내려갔다. … 6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자네는 여기에 머물러 있게. 나는 야훼의 분부를 따라 요르단으로 가야겠네.” 그러나 그가 대답하였다. “결코 됩니다. 스승님께서 돌아가시기라도 한다면 모를까, 절대로 스승님과 헤어질 수는 없습니다.”
그리하여 사람이 같이 길을 가는데, 7 예언자 수련생 오십 명이 뒤를 따라가다가 사람이 요르단에 이르러 걸음을 멈추는 것을 멀찍이 서서 보고 있었다. 8 엘리야가 겉옷을 벗어 말아가지고 그것으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사람은 마른 땅을 밟고 강을 건넜다. 9 강을 건너면서 엘리야가 엘리사에게 물었다. “야훼께서 이제 나를 데려가실 터인데, 내가 자네를 두고 떠나기 전에 무엇을 해주면 좋겠는가? 말해 보게.” 엘리사가 청하였다. “스승님, 남기실 영검에서 몫을 물려주십시오.” 말을 듣고 10 엘리야가 말하였다. “자네는 아주 어려운 청을 하는군. 내가 떠나는 것을 자네가 본다면 소원대로 되겠지만, 보지 못한다면 그렇게 것일세.” 11 그들이 말을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길을 가는데, 난데없이 불말이 불수레를 끌고 그들 사이로 나타나는 것이었다. 동시에 사람 사이는 떨어지면서 엘리야는 회오리바람 속에 휩싸여 하늘로 올라갔다. 12 엘리사는 광경을 쳐다보면서 외쳤다. “나의 아버지, 나의 아버지! 이스라엘을 지키던 병거여, 기병이여…” 엘리야가 다시 보이지 않게 되자, 엘리사는 자기의 겉옷을 조각으로 찢어버렸다. 13 그리고는 엘리야가 떨어뜨린 겉옷을 집어 들고 되돌아와 요르단 가에 서서 14 엘리야의 겉옷으로 물을 쳤으나 물이 갈라지지 않았다. 그래서엘리야의 하느님 야훼여, 어디 계십니까?” 하면서 물을 치자 물이 좌우로 갈라졌다. 그리하여 엘리사가 강을 건너는데 15 예리고에서 예언자 수련생들이 멀리서 광경을 보고 말했다. “엘리야의 영검이 엘리사에게 내렸구나.” 그러면서 엘리사 앞으로 나와 땅에 엎드려 절하였다.

 

 

성시_ 시편 77:1-2, 11-20

1    내가 소리로 하느님께 부르짖으니
.     부르짖는 소리를 들으소서.
2    답답할 때에 주님을 찾으며,
.     밤새도록 손을 치켜들고 기도합니다.
.     영혼은 위로마저 마다합니다.
11  그러나 주께서 하신 일을 내가 어찌 잊으리이까?
.     옛날 당신의 기적들을 회상하며,
12  주님의 행적을 하나하나 되뇌고
.     장하신 일들을 깊이 되새깁니다.
13  하느님, 당신의 길은 거룩하시오니
.     하느님만큼 높은 신이 어디 있으리이까?
14  당신께서는 기적을 베푸시는 하느님
.     크신 힘을 만방에 알리셨습니다.
15  당신의 백성, 야곱과 요셉의 후손들을
.     당신 팔을 펴시어 속량하셨습니다.
16  하느님, 바다가 당신을 뵙고는 되돌아서고
.     깊은 구렁마저도 뒤틀렸습니다.
17  구름이 비를 뿌리고, 하늘에서 천둥소리 진동하며
.     화살같은 번갯불이 비오듯 쏟아집니다.
18  천둥소리 휘몰아치고 번개가 번쩍, 세상을 비출 적에
.     땅이 흔들흔들 었습니다.
19  바다를 밟고 다니시고, 대해를 건너질러 달리셨건만
.     아무도 발자취 몰랐습니다.
20  주님은 양떼처럼 당신 백성을
.     모세와 아론의 손을 빌어 인도하셨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갈라 5:1, 13-25

1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해방시켜 주셔서 우리는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러니 마음을 굳게 먹고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마십시오. …
13
형제 여러분, 하느님께서는 자유를 주시려고 여러분을 부르셨습니다. 그러나 자유를 여러분의 육정을 만족시키는 기회로 삼지 마십시오. 오히려 여러분은 사랑으로 서로 종이 되십시오. 14 모든 율법은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여라. 레위 19:18하신 한마디 말씀으로 요약됩니다. 15 그러나 여러분이 서로 물어 뜯고 삼키고 하면 피차 멸망할 터이니 조심하십시오.
16
말을 들으십시오. 육체의 욕정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께서 이끄시는 대로 살아가십시오. 17 육체의 욕망은 성령을 거스르고 성령께서 원하시는 것은 육정을 거스릅니다. 둘은 서로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여러분은 자기가 원하는 일을 없게 됩니다. 18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습니다. 19 육정이 빚어내는 일은 명백합니다. 음행, 추행, 방탕, 20 우상 숭배, 마술, 원수 맺는 , 싸움, 시기, 분노, 이기심, 분열, 당파심, 21 질투, 술주정,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 밖에 그와 비슷한 것들입니다. 내가 전에도 경고한 있지만 지금 또다시 경고합니다. 이런 짓을 일삼는 자들은 결코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지 못할 것입니다.
22 ¶
성령께서 맺어주시는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23 온유, 그리고 절제입니다. 이것을 금하는 법은 없습니다. 24 그리스도 예수에게 속한 사람들은 육체를 정욕과 욕망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은 사람들입니다. 25 성령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으니 우리는 성령의 지도를 따라서 살아가야 합니다.

 

 

복음서_ 루가 9:51-62

51 예수께서 하늘에 오르실 날이 가까워지자 예루살렘에 가시기로 마음을 정하시고 52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셨다. 그들은 길을 떠나 사마리아 사람들의 마을로 들어가 예수를 맞이할 준비를 하려고 하였으나 53 마을 사람들은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가신다는 말을 듣고는 예수를 맞아들이지 않았다. 54 이것을 제자 야고보와 요한이주님, [(어떤 사본에엘리야가 것처럼(2열왕 1:10, 12)] 저희가 하늘에서 불을 내리게 하여 그들을 불살라 버릴까요?” 하고 물었으나 55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고 나서 [“(어떤 사본에) 너희가 어떠한 영에 속해 있는 모르고 있다. 사람의 아들이 것은 사람을 멸망시키려는 것이 아니라 구원하려는 것이다.” 하시고는56 일행과 함께 다른 마을로 가셨다.
57
예수의 일행이 길을 가고 있을 어떤 사람이 예수께저는 선생님께서 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가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58 그러나 예수께서는여우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 59 다른 사람에게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는선생님, 먼저 집에 가서 아버지 장례를 치르게 해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60 예수께서는죽은 자들의 장례는 죽은 자들에게 맡겨두고 너는 가서 하느님 나라의 소식을 전하여라.” 하셨다. 61 사람은선생님, 저는 선생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집에 가서 식구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게 해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62 예수께서는쟁기를 잡고 뒤를 자꾸 돌아다보는 사람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 하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