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 ‘온전한’ 그리스도인” (사랑의 이중 계명 1)

James Chae 2022. 7. 10. 06:38

2022.7.10. 연중 15주일

아모 7:7-17 / 시편 82 / 골로 1:1-14 / 루가 10:25-37

 

“ ‘온전한그리스도인” (사랑의 이중 계명 1)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사제, Artist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 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 주고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의 권리를 찾아 주며,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풀어 주어라.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어라.” (시편 82:2-4)

 

지난주 설교에서사랑의 이중 계명 대해 잠깐 언급을 했었는데, 오늘 말씀이 이에 대한 말씀입니다. 말씀에 대한 해석을 루가는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마르타와 마리아 이야기둘로 나눠 기록했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사랑의 이중 계명 번째 말씀에 대한 해석으로 우리 이웃과의 관계성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다음 말씀인마리아와 마르타이야기사랑의 이중 계명 번째 말씀에 해당하는 해석입니다. 하느님을 어떻게궁극적 관심 가지고 사랑하는지에 대한 해석입니다. 루가의 치밀한 해석과 편집이 아닐 없습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 마태오와 마르코, 루가 복음서가 모두 전하고 있습니다. 루가는 마르코복음(12:28-34) 예수어록(마태오복음 22:34-40) 참고하고, 자신이 수집한 자료인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추가하여 새롭게 편집을 것입니다. 루가복음은 다른 복음서와 가지 차이점을 보여줍니다. 차이점을 연구하고 묵상하면 주님의 말씀을 해석한 루가의 신학을 엿볼 있습니다. 

 

번째 차이점은 다음과 같은 말을 추가한 데서 드러납니다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겠습니까?”  여기서무슨 일을 해야라는 질문의 요지를 통해 루가가 다른 복음서보다 더욱행위 강조하고 있음을 있습니다. 이는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라는칭의론과는 전혀 다른 느낌으로 우리에게 다가옵니다. 윤리적인 실천이 없는 한국 교회의 왜곡된칭의론 공허한 외침 말입니다. 사실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을 살펴보면 칭의 대한 선포 이후에 반드시그리스도의 통치에 순종하는 강조하고 있다는 점을 우리는 쉽게 간과합니다.  사도 바울로의 복음은 칭의에 대해서 말하면서 동시에 하느님의 통치 아래 있는 그리스도인의 행함의 의무에 대해서도 똑같은 비중으로 말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서로 남의 짐을 져주십시오. 그래서 그리스도의 법을 이루십시오.” (갈라 6:2)

 

여기에서그리스도의 무엇입니까? 바로 예수님께서 언급하신사랑의 이중 계명입니다. 이것이하느님의 임을 설명드릴 필요가 없을 겁니다. 

 

이제 번째 차이점을 살펴보겠습니다. 

루가가 삽입한예수의 속을 떠보려고라는 기록은시험하다, 에크페이라죠 ἐκπειράζω” 헬라어 현재분사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사용된 동사는 루가복음 4 12절에서예수 광야 유혹 이야기에도 사용된 단어입니다. 같은 예수어록을 참고한 마태오는 단어 대신시험이라는 뜻의페이라조 πειράζω” 사용했습니다. 루가는 단순한 테스트, 시험이 아니라 “to test thoroughly 철저히 시험하는, 철저히 검사하는”, 유혹 가까운 뜻의에크페이라조 사용했습니다. 마디로 율법교사는 예수님을 시험에 빠트리기 위해 유혹을 했다는 뜻입니다. 물론 원본에 가까운 것은 마태오 복음일 겁니다. 이것이  루가복음이 마르코와 예수어록과 다른 번째 차이점입니다. 루가복음은 율법교사가 예수를 찾아온 것은 예수를유혹하기 위한 것이라고 밝힙니다. 선한 의도가 전혀 없습니다. 그는 예수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시험해보려고 미끼를 던져 유혹한 것입니다. 예수에게 수치를 안기고 싶었을 겁니다. 자신이 예수보다 율법에 대한 지식과 해석에 뛰어남을 과시하고 잘난 척을 하고 싶었던 겁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에게 제차 자신의 의를 드러내기 위하여누가 저의 이웃입니까?”라는 번째 질문으로 도전을 합니다. 루가가 편집을 통해 우리에게 말하려는 의도는 분명합니다. ‘영생, 영원한 생명 얻기 위해서는 율법에 대한 지식이나 해석, 종교적 행위보다사랑의 이중 계명대로 실천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영생 단순히 시간적으로 영원한 생명을 산다는 뜻이 아니라하느님의 뜻을 살아내는 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루가의 관점에서 오늘 말씀을 살펴보길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율법교사의 의도를 충분히 간파하셨습니다.  율법교사는 자신의 지식을 자랑하며 신명기 6 5 말씀과 레위기 19 18 말씀을 인용하여 주님의 질문에 답변을 합니다. 마르코는 예수께서 율법교사를 칭찬했다고 기록했지만, 루가는 그러지 않았습니다. 루가의 설정은 율법교사의 위선을 드러내는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는 그가 율법서를 통달한 사람이지만, 그가 말씀대로 실천하는 사람이 아님을 아셨습니다. 그래서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있다.”라고 하셨습니다. 말에 자신의 본심을 간파당하여 자존심이 상한 그는 다시 제차 주님께 도전적인 질문을 합니다.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둘의 대화를 묵상해보면, 사이에서 팽팽한 긴장감이 느껴집니다. 율법교사의 말에는 율법서의 지식으로 예수를 누르려 의도가 분명히 들어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율법의 지식과 해석에 대한 논쟁을 회피하시며 오히려 그에게 율법의 문자가 아닌 율법의 정신과 그것에 대한 실천을 강조하십니다. 오늘 이야기의 결론은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라는 주님의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번이나 실천과 행함을 강조하십니다. 율법의 지식에는 밝았지만 이웃을 사랑하지 않은 율법교사는 이로써 논쟁에서 참패를 당합니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구절은 이야기를 통해 루가가 말하고자 하는 핵심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루가는 예수님이 가르친영생 바로하느님의 뜻대로 행하는 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루가에게 믿음과 행함은 하나입니다. 행함은 믿음을 보여주고, 믿음은 행함으로써 심리적 차원이 아닌 실제적인 차원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아무리 같은 사제도, 아무리 교회 봉사를 열심히 하는레위인같은 사람도강도 만난 사람 도와주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고 합니다. “강도 만난 사람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할 있는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유대교에서사제레위인 하느님을 가장 지근거리에서 섬기는 사람들이었고, 율법에 대한 지식과 해석에 해박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오늘 무슨 이유 때문에강도 만난 사람 외면했는지 따지고 연구할 이유가 없습니다. 루가는 이를 생략했습니다. 루가는 그들의 개인 사정을 전혀 고려하지 않았습니다. 개인의 사정이 어떠하든 그들은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 외면했습니다. ‘사제레위인들은 오늘날로 말하면 같은 종교인이나 종교에 헌신적인 사람들이라 있습니다. 소위 말해 교회 봉사와 활동에 적극적인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루가는 이러한 사람들에게 오늘 경종을 울리고 있는 것입니다.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1 사무 15:22) 사무엘의 말처럼 예수님의 뜻은이웃에 대한 사랑이 제사보다 낫다 것입니다. 이것이 루가가선한 사마리아인 이야기 덧붙인 이유입니다.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 돕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긴박성만큼 우선하는 것이다.라는 메시지입니다. 우리의 이웃은 바로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렇게 말씀을 해석하고 나니선한 사마리아인 되는 , ‘사랑의 이중 계명 지키며 사는 것이 정말 힘들다는 생각에 이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1주일을 바쁘게 살다가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교회에 출석하는 성실한 기독교인입니다. 그러나 정말 우리는하느님의 , ‘그분의 주님께서 말씀하신이웃 위해 실천하는온전한 그리스도인인지는 우리 자신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저는 사제이고 종교인이지만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함량 미달인 자신을 봅니다. 루가의 관점과 사도 바울로의 가르침에 비추어보면 아직 한없이 부족한종교인단계에 머물러 있습니다. ‘종교인단계에서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소망하지만, 쉽지가 않습니다. 그래서  온전한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정말 어렵다는 생각을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되는 얼마나 어려운 길인지 저에게 알려준 교회는 없었습니다. 오직 믿으면 된다고, 무조건 감정적 동의로아멘 하면 된다고 가르치는 교회들 뿐이었습니다.  도움이 필요한 이웃을 외면하면서도 교회 출석만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것이 제가 성공회로 오기 이전에 배운기독교였습니다. 행위나 공로가 아닌 믿음으로 구원받으니 율법에서 자유로워지라고 배웠습니다. 행위나 실천보다는 믿음이 중요하다고 배웠습니다. 그러나 정말 그렇습니까? 사람들을 기독교인으로 만드는 것이 이웃 사랑의 실천의 전부라면 우리는 복음을 완전히 잘못 이해한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유대인에게 차별받는사마리아인 통해 진정한 이웃과 하느님 사랑을 가르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절대선한 사마리아인 하느님의 약속을 가진 유대인으로 만들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건 주님의 관심사가 아닙니다. 주님께서는선한 사마리아인 하느님이 기뻐하시는이웃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거기에는 인종도, 종교도, 차별도 없이 오직이웃을 사랑한 사람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에게도 그와 같은 사람이 되라고 하셨지 절대 교회 다니는 교인이 되라고 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아직까지도온전한 그리스도인 되는 방법을 전혀 배우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이미 우리가 주님 안에서 어른이 되었어야 하는데, 아직도 감정적 위로와 마음의 평화만 쫓는 어린 교인으로 머물러 있습니다. 그렇습니다온전한 그리스도인 된다는 것은 매우 어렵습니다. 불편을 감수해야 하고, 노력을 기울여야 하고, 시간을 쪼개서 내야 하고, 금전적 손해도 감당해야 합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되는 것은 마디로자기희생과 자기 손해 전제되기 때문입니다. 시대의 관점에서 보면 정신 나간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발도 내디디려 하지 않습니다. 그냥 교회에 출석하는 것으로도 최선을 다했다고 자기 자신을 애써 위로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우리는강도 만난 사람의 이웃 아니고, 예수님의 친구도 아닙니다. 이것이 오늘 루가가 전한 복음의 핵심입니다. 

 

오늘선한 사마리아인 결코 한가한 사람이 아니었을 겁니다. 사제와 레위인을 단순히 나쁜 사람들이라고 호도할 필요도 없습니다. 그들도 우리처럼 자기 일로 바쁜 사람들이었고, 자신의 일에 성실한 사람들이었을 겁니다. 남을 돕는 일에 시간과 여유가 없는 우리 현대인과 전혀 다를 없는 사람들일 겁니다. 어쩌면 우리는선한 사마리아인 되기보다 위로받고 돌봄을 받는강도 만난 사람 차라리 되고 싶은지 모르겠습니다. 그만큼 우리는 마치강도 만난 사람처럼세상으로부터 상처받고, 지쳐있으며, 위로에 갈급하고, 타인의 인정에 목말라합니다. 그래서 타인의 일에 무심해지는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우리 현대인들은 이웃에 대한 개념을 점점 상실해가고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위기는 여러 군데서 감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미래의 교회는 더욱 비어갈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리고 미래의 기독교는 현재 우리가 거리를 두는 통일교나 여호와증인처럼 일반인들에게 특이한 종교로 여겨질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만큼 기독교가 대중으로부터 보편성과 신뢰성을 잃는다는 의미입니다. 그러한 시기가 온다고 많은 교회 연구 지표들이 일관되게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우리 자신의 정체성과 복음을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값싼 복음, 값싼 은총, 값싼 위로 아니라온전한 복음, 온전한 은총으로 훈련받은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회복할 필요가 있습니다. ‘회복' 아니라 어쩌면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문제는정체성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자신이 진정 누구인지 아는 데서 시작해야 합니다. 자신이강도 만난 사람인지 아니면선한 사마리아인인지 정체를 분명히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내가선한 사마리아인 거리가 삶을 살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남으로부터 도움을 받아야 하는강도 만난 처지에 머무는 것입니다. 치료가 끝났는데도 아직 여관 안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지요. ‘하느님의 나라 위해 발짝도 걸음을 내딛지 못한 겁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정체성 칭의와 믿음이 행함으로 연결될 새롭게 만들어지는인격'입니다. 인격' 삼위일체 하느님의 관계성 속에서 드러난관계성으로서의 인격입니다. 그것이 사도 바울로가 말한친교로서의 교회’, ‘에클레시아 ἐκκλεσία’로서의 교회입니다. 서로 다른 인격들이 모여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하나의 인격을 만들어가는 교회. 이것이온전한 복음으로 살아내는 교회의 모습일 것입니다. 너무 추상적이고 이상적으로 들리시나요? 그러나 이것이하느님 나라의 실재라고 복음서는 한결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온전한 그리스도인 되기’. 우리 각자가, 우리 교회 공동체가 그러한 그리스도인들로 성장해가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15 (다해) 1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주님께 부르짖는 자녀들의 기도를 인자로이 들으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가 마땅히 해야 바를 알게 하시고, 또한 일을 실천할 힘과 은총을 내려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아모 7:7-17

7 야훼께서 나에게 다시 보여주신 광경은 이런 것이었다. 누군가 돌담 옆에 다림줄을 대어보고 있었다. 8 야훼께서 나에게 물으셨다. “아모스야, 무엇이 보이느냐?” 내가 다림줄이 보인다고 대답하자,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 이제 다림줄을 백성 이스라엘 한가운데 드리웠다. 이상 이스라엘을 용서할 없다. 9 이사악의 산당은 쑥밭이 되고 이스라엘의 성소들은 폐허가 되리라. 나는 칼을 들어 여로보암의 나라를 치리라.”
10 베델의 사제 아마지야가 이스라엘 여로보암에게 사람을 보내 보고하였다. “아모스라는 자가 우리 이스라엘 한가운데 들어와 임금님께 반란을 일으키려고 합니다. 그자는 나라를 망칠 소리만 하고 있습니다. 11 임금님께서는 칼에 맞아 돌아가시겠고,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혀 포로의 신세가 되어 땅을 떠나리라고 떠들어댑니다.”
12 그리고 나서 아마지야는 아모스에게 말하였다. “ 선견자야, 당장 여기를 떠나 유다 나라로 사라져라. 거기 가서나 예언자 노릇을 하며 밥을 벌어 먹어라. 13 다시는 하느님을 팔아 베델에서 입을 열지 마라. 여기는 왕의 성소요 왕실 성전이다.”
14 아모스가 아마지야에게 대답했다. “나는 본시 예언자가 아니다. 예언자의 무리에 어울린 적도 없는 사람이다. 나는 목자요 돌무화과를 가꾸는 농부다. 15 나는 양떼를 몰고 다니다가 야훼께 잡힌 사람이다. 당신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가서 말을 전하라고 하시는 야훼의 분부를 받고 왔을 뿐이다16 그러니 너는 이제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너는 나더러 하느님을 팔아 너희 이스라엘 백성과, 이사악의 가문을 치지 말라고 하지만, 17 바로 때문에 야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신다.
.    아내는 바로 성읍에서 몸을 팔고
.      아들딸은 칼에 맞아 쓰러지며
.      농토는 남이 측량하여 나눠가지고
.     너는 사로잡혀간 더러운 땅에서 죽겠고
.     이스라엘 백성은 사로잡혀
.     고국을 등지고 떠나가게 되리라.’”

 

 

 

성시_ 시편 82

1    하느님께서 군왕들을 모으시고
.      가운데 서시어 재판하신다.
2  언제까지 너희는 불공평한 재판을 하려는가?
.     
언제까지 악인에게 편들려는가?
3    
약한 자와 고아를 보살펴 주고
.     
없는 이와 구차한 이들의 권리를 찾아 주며,
4    
가난한 자와 약자들을 풀어 주어라.
.     
악인의 손에서 구해주어라.”
5  “그러나 그들은 분별력이 없고 깨닫지도 못하여
.     어둠 속을 헤매고만 있으니 세상은 뿌리째 흔들린다.
6    나의 선고를 들어라. 너희가 비록 신이라 말하고
.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이라 칭하고 있지만,
7    너희는 보통 인간처럼 죽겠고
.     여느 군주처럼 넘어지리라.”
8    하느님이여, 일어나시어 세상을 재판하소서.
.     만백성이 당신의 것이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골로 1:1-14

1 하느님의 뜻을 따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바울로와 우리 형제 디모테오가 2 골로사이에 있는 성도들, 성실하게 그리스도를 믿는 교우들에게 편지를 씁니다. 우리 아버지 하느님께서 여러분에게 은총과 평화를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3 우리는 여러분을 위해서 언제나 기도하고 때마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4 그것은 여러분이 그리스도 예수를 믿고 모든 성도에게 사랑을 보여주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기 때문입니다. 5 믿음과 사랑은 여러분을 위해서 하늘에 마련해 두신 축복에 대한 희망에서 나온 것입니다. 희망에 대해서는 여러분이 진리의 말씀 복음을 받아들였을 때에 이미 들은 있습니다. 6 복음은 여러분에게 전해져서 여러분이 하느님의 은총의 말씀을 듣고 참뜻을 깨닫게 되면서부터 열매를 맺으며 퍼져 나갔습니다. 사실 복음은 세계에서 열매를 맺으며 널리 퍼져 나가고 있습니다. 7 복음을 여러분에게 가르쳐준 사람은 우리의 사랑하는 동료 에바프라였습니다. 그는 우리를 대신해서 그리스도를 위하여 충실히 일한 일꾼이며, 8 여러분이 성령을 통해서 사랑의 생활을 하고 있다는 소식을 우리에게 전해 사람입니다.
9 우리는 소식을 들은 날부터 여러분을 위하여 끊임없이 하느님께 기도해왔습니다. 우리는 여러분이 성령께서 주시는 모든 지혜와 판단력으로 하느님의 뜻을 충분히 깨닫게 되기를 빌어왔습니다. 10 우리는 여러분이 주님께서 원하시는 생활을 함으로써 언제나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온갖 좋은 일을 행하여 열매를 맺으며 하느님을 더욱 알게 되기를 바랍니다. 11 우리는 여러분이 하느님의 영광스러운 권능으로부터 오는 온갖 힘을 받아 강하여져서 모든 일을 참고 견딜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기쁜 마음으로 12 아버지께 감사를 드릴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아버지께서는 성도들이 광명의 나라에서 받을 상속에 참여할 자격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3 아버지께서는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시어 당신의 사랑하시는 아들의 나라로 옮겨주셨습니다. 14 우리는 아들로 말미암아 죄를 용서받고 속박에서 풀려났습니다.

 

 

 

복음서_ 루가 10:25-37

25 어떤 율법교사가 일어서서 예수의 속을 떠보려고선생님, 제가 무슨 일을 해야 영원한 생명을 얻을 있겠습니까?하고 물었다. 26 예수께서는율법서에 무엇이라고 적혀 있으며 너는 그것을 어떻게 읽었느냐?” 하고 반문하셨다. 27 “‘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님이신 하느님을 사랑하여라(신명 6:5). 그리고 이웃을 몸같이 사랑하여라(레위 19:18).’ 하였습니다.” 대답에 28 예수께서는옳은 대답이다. 그대로 실천하여라. 그러면 있다.하고 말씀하셨다. 29 그러나 율법교사는 짐짓 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고 그러면 누가 저의 이웃입니까?” 하고 물었다. 30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예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들을 만났다. 강도들은 사람이 가진 것을 모조리 빼앗고 마구 두들겨서 반쯤 죽여놓고 갔다. 31 마침 사제가 바로 길로 내려가다가 사람을 보고는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2 레위 사람도 거기까지 왔다가 사람을 보고 피해서 지나가 버렸다. 33 그런데 길을 가던 어떤 사마리아 사람은 그의 옆을 지나다가 그를 보고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34 가까이 가서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싸매어 주고는 자기 나귀에 태워 여관으로 데려가서 간호해 주었다. 35 다음날 자기 주머니에서 데나리온을 꺼내어 여관 주인에게 주면서 사람을 돌보아 주시오. 비용이 들면 돌아오는 길에 갚아드리겠소.’ 하며 부탁하고 떠났다. 36 , 그러면 사람 중에서 강도를 만난 사람의 이웃이 되어준 사람은 누구였다고 생각하느냐?” 37 율법교사가 사람에게 사랑을 베푼 사람입니다.하고 대답하자 예수께서는 너도 가서 그렇게 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