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 ‘그럼에도 불구하고’ 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James Chae 2022. 7. 3. 06:55

 

 

2022.7.3. 맥추감사주일 / 연중 14주일

신명 8:1-4 / 시편 119:33-48 / 히브 11:32-40 / 마태 6: 25-34

 

“ ‘그럼에도 불구하고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사제, Artist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된다. 너희는 하느님과 재물을 아울러 섬길 수 없다.” (마태 6:24)

 

맥추감사주일 성서정과에는 방금 읽은 부분이 빠져 있지만, 사실 오늘 읽은 복음서는 제가 방금 읽어드린 마태오복음 6 24절에 대한 추가 설명과 결론 부분입니다. 그래서 오늘 복음서 말씀은 “διά”라는 헬라어 전치사로 시작합니다.  디아 전치사로 사용할 ‘~ 통하여, ~사이에, ~때문에라는 뜻입니다. 앞에 나온 것이 원인이 되어 뒤에 나오는 결론을 도출합니다. “하느님이냐 아니면 마몬 숭배냐 하는 인간 실존적 결단 우리 일상의먹고 입는 문제 직접적으로 연관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몬(Mammon)’ 아람어로재물또는 뜻합니다. 이것은 예수님께부름을 받은 사람들 누구를  섬기고 무엇을 지향해야 하는지를 분명하게 말씀해주십니다. 주님께서 선포하신하느님의 나라 장소적인 개념이 아니라, “하느님의 통치 관련된 말씀이라는 것을 일전에 말씀드렸습니다. “통치에는순종 요구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느님의 통치 너무 추상적으로, 관념적으로 이해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느님의 통치 간단히 말해 하느님께 순종하여하느님의 따른다는 말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하느님의 라고 있습니다. 마태오복음은 복음서 중에, 디카이오쉬네(δικαιοσύνη )’ 가장 강조한 복음서입니다. 그러나 우리는하느님의 표현한 율법에 대해 이상하게도 거부반응이 많은 같습니다.  칼뱅이 외친 “Sola Fide (오직 믿음으로), Sola Gratia (오직 은혜로)” 대한 잘못된 교회의 가르침 때문일까요? 믿음의 문제를 인간 감정이나 심리적인 차원에 한정 짓는 경향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뜻이 믿음으로 말미암는의화 넘어 적극적인 실천을 강조한성화소명 까지 이어짐을 간과해서는 됩니다마태오복음에 의하면, 주님께서 비판하신 것은 율법 자체가 아니라율법의 본질’, ‘율법의 정신 떠난종교적 형식주의신앙적 가식입니다. 주님께서는 모든 율법의 정신을사랑의 이중 계명”(마태 22:37~39, 마르 12:30~31, 루가 10:25~28, 신명 25:5 비교)으로 정리해주신 있습니다. 이것이 히브리성서의 율법과 예언자들의 가르침의 핵심 요약이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리스도인이 이러한사랑의 이중 계명 통하여하느님의 준수하면 그는이미하느님의 나라 안에 들어선 것입니다. 물론 하느님의 나라는아직완성되지 않은 종말에 완성될 하느님의 나라입니다. 그러나 예수의 가르침으로 시작된 하느님의 나라는하느님의 법을 준수함으로 세대에서이미시작된 하느님의 나라이기도합니다. 마태오의 관점에서 보면하느님의 실천하지 않는 사람은 세대에서 아직하느님의 나라 발을 내딛지 못한 것입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의 하느님을 사랑하여라. 또 둘째 가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여라.’ 한 것이다. 이 두 계명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마르 12:30~31) 

 

사랑의 이중 계명에서 주님의 뜻은 너무나 자명합니다. 이를 어렵게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해석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말씀을 이해하기 위해, 말씀에 담긴 주님의 뜻을 분석하기 위해, 신학적 연구와 해석학적 논쟁으로 시간을 낭비할 필요조차도 없습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 너무나 자명하여 이해하는 특별한 지능이 필요한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말씀대로 살기 힘들기 때문에 말씀에 대한상황 논리 제시함으로 다양한 논의들과 해석들을 쏟아 내고 있습니다.  마디로 실천하기 싫은 핑계일 뿐입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 오직 행함으로 뜻이 명확히 드러납니다. 행함과 순종 없이는하느님의 그분의 절대 깨닫지 못합니다. 관념과 이론은 어디까지나 율법처럼 사도 바울로가 말했던후견인”(갈라 3:23-25) 불과합니다. 우리가 실천할 정도로 성숙해지면 우리는 이상 우리를 지도할후견인 필요하지 않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한 자의 선제 조건으로 어떤 주인을 섬길 것인지 결단을 촉구하십니다. 인간에게 가장 절실한 음식과 의복 문제를대비 논법 사용하여 설명하십니다.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사람, ‘사랑의 이중 계명 지키는 사람은 절대로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길 없습니다. 돈은 마몬이라는 우상이기 때문입니다. 대신 하느님의 창조의 섭리에 근거하여공중의 새들도하느님께서 먹이신다는 점을 강조하십니다. 그러나 사실 돈이 근본이 되는자본주의 시대 살아가는 우리로서는 이러한 말씀을 읽을 심각하게 고민이 됩니다. 없이 어떻게 살라는 말일까? 그러나 주님께서는 없이 살라는 것이 아니라 분명히 돈을 섬기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실존에서 우선순위를 어디에 것인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아시고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이미) 알고 계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예수님 시대는 자본주의 시대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특별히 돈에 대한 경계를 말씀하신 것은 매우 특이합니다. 그렇다면 만약 세대에 주님께서 오신다면 돈에 허덕이는 우리의 모습을 보고 과연 무슨 말씀을 하시겠습니까?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디모 6:10)

 

돈은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이 많은 자나 적은 자나 없이 인간에게염려걱정 가져다줍니다. 돈이 인간을 편리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편리는 잠시뿐이고 돈은 항상 근심과 걱정을 동반합니다. 이것이 마몬이 가진 힘입니다. 마몬은 우리의염려와 걱정 통해 권세를 누립니다. 저보다 상대적으로 돈이 많은 사람들도 걱정을 하는 모습을 봅니다. 인간은 돈이 없어도, 돈이 많아도 항상 걱정을 합니다. 돈의 많고 적음의 기준이 매우 추상적이고 개인마다 각양각색이라 만족의 기준을 설정하기가 도저히 불가능합니다. 인간의 소유욕은 결코 자족하는 법을 모릅니다. 걱정과 근심은 소유의 결핍에서 오는 것입니다. 그래서결핍 인간에게걱정과 불안 안깁니다. 걱정은 인간 보편적 죄성에 뿌리를 둡니다. 그리고 죄의 권세는 사망 , 죽음입니다. 그러므로 소유의 결핍은 걱정을 낳고, 걱정은 죄를 낳으며, 죄는 사망을 낳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마몬 대한 경계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걱정하지 마라

오늘 주님께서는 이러한 우리에게걱정하지 마라라고 번을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우리에게걱정 없애주신다고 결코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걱정은 있는 것임을 전제로 말씀하셨습니다. 걱정은 너희와 함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너희는 걱정하지 마라!” 하십니다. 음식과 의복 대한 염려와 걱정은 인간에게 당연한 것이라고 창세기는 언급하고 있습니다. “너는 죽도록 고생해야 먹고 살리라. 들에서 나는 곡식을 먹어야 터인데, 땅은 가시덤불과 엉겅퀴를 내리라.” (창세 3:17~18) 땅은 이미 실낙원 저주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실존은 먹고사는 문제에 허덕이는 것입니다. 실낙원을 당한 인간의 실존 자체가고통 자체입니다. 그래서 석가모니는 오랜 수련 끝에 깨달은 것이 인생은 괴로움 가득한()’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먹고 입는 문제에 대한 결핍 때문에 그러한 것들에 집중하고 얽매이다 보면 오히려 우리 인간이걱정 휘말려 멸망에 이를 것을 주님께서는 알고 계셨습니다. 하느님의 창조 섭리에 역행하는염려와 걱정 버리고 이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회복될 새로운 하느님의 형상을 덧입은 존재로 거듭나라는 메시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인생에게 당연히 찾아오는 근심 걱정을 없애기 위해 기도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대신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의 의를간절히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는 우리의 기도의 방향성과 인생의 지향성이 어디를 향해야 하는지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달을 보라고 하면 가리키는 손가락을 보면서 실제 달은 보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래서 문제가 발생하면 문제 자체만 바라보고 매달리다 낭패를 당하기 일쑤입니다. 먹고 입는 문제도 그러합니다. 필요한 것에 대한 결핍에 주목하다 보면 결국에는 결핍에 직면하고 마는 것입니다. 오늘 신명기 말씀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신명 8:3)

 

 

신명기 말씀은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깨달을 때까지고생시키시고 굶기셨다라고 기록합니다. 광야에서 굶주림에 지친 이스라엘 사람들을 더욱 사지로 몰아넣으셨습니다. 마치 강철을 만들기 위해 철을 가장 뜨거운 불로 단련을 하듯이 말입니다. 이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단련시키시는시험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한계 상황에 다다랐을 그들에게만나 허락하셨습니다. 만나 바로 하느님의 말씀이라고 신명기는 말합니다. 하느님의 말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라고 요한복음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결국 인간은 그리스도를 먹고사는 것이지 먹어 없어질 빵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를 오늘 복음서 말씀에 대입하면 돈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말씀으로 사는 것입니다. 주님의 관점에서 먹고 입는 것은아디아포라(adiaphora, ἀδιάφορα)’일뿐입니다. 부차적인 것입니다. 본질적인 것은 오직 살아 있는 생명의 빵입니다. 주님께서는 요한복음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요한 6:35)

 

이것은 심리적인, 관념론적인 발언이 아닙니다. 이것이하느님 나라의 실재라고 요한복음은 강조하고 있습니다. 생명의 빵은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고, 생명을 주는 빵입니다. 빵을 먹는 자는하느님 나라 속한 사람이 됩니다. 먹고 입는 문제가 가득한 세대 이미 사탄의 지배 아래 있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강한 자들이, 소수의 자본가들이 세상의 주인 노릇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몬도 자기에게 충성을 다하는 자에게 세상의 안락을 약속합니다. 유혹은 광야에서 받은 예수님의 시험만큼 치명적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마치 물고기가 낚시 찌를 덥석 물듯이 번번이 이러한 유혹에 현혹됩니다. 저것만 있으면 내가 행복할 텐데돈이 만큼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해결될 텐데저걸 가지면 근심 걱정이 없어질 텐데그래서 사람들은 끊임없이 인생 역전을 꿈꾸며 복권에 매달리기도 하고, 주식과 비트코인, 부동산 투기 등에 모든 것을 겁니다.

 

먹고 입는 것에 대한 걱정은 분명 실재합니다. 연약한 인간의 실존에 근본적으로 주어진 결핍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먹고 입는 것에 대한 소유에 집착하는 것입니다. 많이 가지려 하는 것은 그것이 결핍할 때에 대한 두려움과 걱정 때문입니다. 결국 먹고 마시고 입는 것에 대한 염려와 걱정, 두려움은 인간에게 소유의 축적을 가르쳤지만, 나눔에 대한 부분은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걱정을 없애기 위해 함께 노력하기보다 남보다 많은 소유로 두려움을 이기는 편을 인간은 선호했던 같습니다. 

 

오늘 우리는 해의 반을 마감하며 감사의 조건들을 생각하는 시간을 가지고 있습니다. 농경 사회는 아니지만 교회가 아직도맥추감사주일 봉헌하는 것은 우리의 감사의 조건들이 눈에 보이는 물질에 있는 것이 아니라하느님의 나라 우리가 편입되었음에 있음을 확인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나라안에 이미 편입된 사람은 이상 세대 관계하지 않습니다. ‘ 세대 살면서도오는 세대 종말에 완성될하느님의 나라 현재에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그것이 가능함이 바로염려와 걱정’, 특히 돈에 대한염려와 걱정에서 자유로울 때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자유는 오직하느님의 ’, ‘사랑의 이중 계명대로 실천하는 사람에게 주어진 자유입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많은 감사의 조건 우리 안에 그러한하느님의 싹이 트고 자라는 것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섬기고 나눈 것이 더욱 풍성해짐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성당으로 말미암아 주님의 풍성하심을 한번 경험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도와주고 우리를 지지해주신 많은 분들에게도 또한 감사해야 합니다. ‘사랑의 이중 계명 나눔의 실천에서 힘이 드러남을 우리는 경험하고 느꼈습니다. 오늘의 우리가, 오늘의 우리 교회가 있도록 도와주신 주님과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립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전례독서_ 맥추감사주일

 

본기도

전능하시고 은혜로우신 하느님, 계절에 따라 우리에게 땅의 소출을 주시니 감사하나이다. 비오니, 우리의 삶이 어려울 때에는 변함없는 주님의 은혜를 신뢰하게 하시고, 풍요로울 때에는 힘겨웠던 시절을 돌아보고 가난한 이들을 기억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신명 8:1-4

너희는 내가 오늘 명하는 모든 계명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그래야 너희는 행복하게 살며 번성할 것이고 야훼께서 너희의 선조들에게 주겠다고 맹세하신 땅에 들어가 땅을 차지할 것이다. 2 너희는 지난 사십 년간 광야에서 너희 하느님 야훼께서 어떻게 너희를 인도해 주셨던가 더듬어 생각해 보아라. 하느님께서 너희를 고생시킨 것은 너희가 당신의 계명을 지킬 것인지 아닌지 시련을 주어 시험해 보려고 하신 것이다. 3 하느님께서는 너희를 고생시키시고 굶기시다가 너희가 일찍이 몰랐고 너희 선조들도 몰랐던 만나를 먹여주셨다. 이는 사람이 빵만으로는 살지 못하고 야훼의 입에서 떨어지는 말씀을 따라야 산다는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시려는 것이었다. 4 지난 사십 동안 너희 몸에 걸친 옷이 떨어진 일이 없었고, 발이 부르튼 일도 없었다.

 

 

 

성시_ 시편 119:33-48

33  주여,
.     당신의 뜻을 따라 사는 길을 가르치소서.
.     그대로 지켜 상급을 받으려 하옵니다.
34  당신 법을 깨우쳐주시고
.     
따라 살게 하소서.
.     마음을 쏟아 지키리이다.
35  나의 기쁨은 당신의 계명에 있사오니
.     
길을 따라 곧장 살게 하소서.
36   마음을 잇속에 기울이지 않고
.     당신의 언약으로 기울게 하소서.
37  헛된 것에서 나의 눈을 돌리시고
.     당신의 길을 걸어 생명 얻게 하소서.
38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주신 약속을
.     당신의 종에게 지켜주소서.
39  당신의 결정은 은혜로우시니,
.      몸서리치는 모욕에서 건져주소서.
40  당신의 계명을 나는 갈망하였으니,
.     정의를 세우시어 몸을 살려주소서.
41  주여, 당신 사랑을 나에게 베푸시고
     약속하신 당신의 구원을 내려주소서.
42  당신 말씀 굳이 믿고
     나를 모욕하는 자들에게 응수하리이다.
43  당신의 결정에 희망을 두오니
     진리의 말씀이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44  당신의 법을 언제나 길이길이
     끝까지 지키리이다.
45  당신의 계명을 애써 지켰으니
      딛는 발걸음 자유롭게 하소서.
46  임금들 앞에서 당신의 언약을 선포할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으리이다.
47  당신의 계명은 나의 기쁨
     그것을 나는 사랑하옵니다.
48  당신 계명 내가 사랑하기에 쌍수 들어 반기고
     당신 뜻을 언제나 나는 묵상합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히브 11:32-40

32 ¶ 내가 무슨 말을 하겠습니까? 기드온, 바락, 삼손, 옙타, 다윗, 사무엘, 그리고 예언자들의 이야기를 일일이 하자면 시간이 모자랄 것입니다. 33 그들은 믿음을 가지고 여러 나라를 정복하였고 정의를 실천하였고 약속해 주신 것을 받았고 사자의 입을 막았으며 34 맹렬한 불을 껐고 칼날을 피하였고 약했지만 강해졌고 전쟁에서 용맹을 떨쳤고 외국 군대를 물리쳤습니다. 35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돌아오는 식구들을 만난 여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서 나은 생명을 누리려고 석방도 거부하고 고문을 달게 받았습니다. 36 어떤 이들은 조롱을 받고 채찍으로 얻어맞고 심지어는 결박을 당하여 감옥에 갇히기까지 하였습니다. 37 돌에 맞아 죽고 톱질을 당하고 칼에 맞아 죽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양과 염소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돌아다녔으며 가난과 고난과 학대를 겪기도 했습니다. 38 이런 사람들에게는 세상이 만한 곳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광야와 산과 동굴과 땅굴로 헤매며 다녔습니다.
39 사람들은 모두 믿음이 있었기 때문에 하느님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약속된 것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40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좋은 것을 마련해 두셨기 때문에 그들은 우리를 제쳐놓고는 결코 완성에 이르지는 못하게 되어 있었던 것입니다.

 

 

 

 

복음서_ 마태 6:25-34

25 그러므로 나는 분명히 말한다. 너희는 무엇을 먹고 마시며 살아갈까, 몸에는 무엇을 걸칠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목숨이 음식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몸이 옷보다 소중하지 않느냐? 26 공중의 새들을 보아라. 그것들은 씨를 뿌리거나 거두거나 곳간에 모아들이지 않아도 하늘에 계신 너희의 아버지께서 먹여주신다. 너희는 새보다 훨씬 귀하지 않느냐? 27 너희 가운데 누가 걱정한다고 목숨을 시간인들 늘일 있겠느냐? 28 너희는 어찌하여 걱정을 하느냐? 들꽃이 어떻게 자라는가 살펴보아라. 그것들은 수고도 하지 않고 길쌈도 하지 않는다. 29 그러나 온갖 영화를 누린 솔로몬도 송이만큼 화려하게 차려 입지 못하였다. 30 너희는 어찌하여 그렇게도 믿음이 약하냐? 오늘 피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질 들꽃도 하느님께서 이처럼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야 얼마나 입히시겠느냐? 31 그러므로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고 걱정하지 마라. 32 이런 것들은 모두 이방인들이 찾는 것이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것을 알고 계신다. 33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하느님께서 의롭게 여기시는 구하여라. 그러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것이다. 34 그러므로 내일 일은 걱정하지 마라. 내일 걱정은 내일에 맡겨라. 하루의 괴로움은 날에 겪는 것만으로 족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