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6.1.11 가해_주님의 세례 축일(연중1주일)
이사 42:1-9 / 시편 29 / 사도 10:34-43 / 마태 3:13-17
“세례의 사효성(Ex Opere Operato)”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오늘은 성탄절기의 마지막인 “주님의 세례 축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세례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이 세례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한 입교식으로 단순히 이해합니다. 그래서 예전보다 철저한 교리 공부나 개인의 신앙적 결단으로 세례받기보다 입교의 통과의례 정도로 생각하는 경항이 큽니다. 제가 세례 후보자에게 최소한 12주간의 세례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고 말하면 대부분의 세례 후보자들은 당황하곤 합니다. 특히 유아세례에 대해서는 부모의 신앙이 무척 중요한데, 대부분 세례받는 부모가 교육받는 것을 힘들어합니다. 단지 자신의 자녀에게 좋은 것을 주고 싶은 부모의 마음이 신앙적 고백보다 더 크게 작용하는 듯합니다. 그래서 재세례파 사람들은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고 있지요. 그리고 세례와 견진의 차이도 헷갈려 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세례에 대해 우리는 입교 때 있었던 일로 치부하며 그 귀중함을 쉽게 잊어가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조금 지루하더라도 세례의 의미에 대해 가장 기본적인 부분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역사적으로 세례자 요한의 세례는 어디에서 기원하는 걸까요? 예수께서도 그의 세례를 받았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 질문은 세례의 기원에 대한 중요한 출발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교리 공부를 받지 않은 분들도 최소한 세례가 물과 관계하니 뭔지 모르지만, 사람을 깨끗하게 하는 어떤 것이다. 정도는 아시는 것같습니다. 어떤 학자들은 세례자 요한이 쿰란 공동체와 관계가 깊다고 생각하여 요한의 세례를 쿰란공동체의 정결례와 유사한 것으로 말하기도 합니다. 그들은 그 근거로 쿰란공동체가 활동했던 지역과 세례자 요한이 세례를 준 지역이 매우 근접하다는 이유를 듭니다. 베뢰아의 베다니, 여리고 남동쪽의 카드슬라 등이 그러한 장소입니다. 그곳은 요한의 세례 장소로부터 무척 가까우며 요단강의 유속도 완만한 곳이기 때문에 세례를 베풀기에 가장 좋은 장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요한의 세례는 쿰란공동체처럼 계속 반복되는 정결례가 아니라 단 한 번 시행되는 회개의 세례였다는 점이 큰 차이입니다. 그래서 학자들은 요한의 세례를 기원전 1세기에 유행했던 종말묵시사상에서 찾습니다. 사도 바울로도 고린도전서 10장 1절과 2절에서 언급했듯이, 이스라엘 공동체가 출애굽을 하면서 모세의 인도를 받아 홍해를 건넌 사건과 하느님의 구름의 인도를 받은 사건에 비유하여 이스라엘 공동체가 광야에서 세례받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의 신앙 내면에 있던 생각으로 이스라엘은 종말에 다시 한번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침례받을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이는 정확하게 에제키엘 예언자의 예언에 근거한 것입니다.
“내가 너희를 뭇 민족 가운데서 데려내오고 모든 나라에서 모아 고국으로 데려다가 정화수를 끼얹어 너희의 모든 부정을 깨끗이 씻어주리라. 온갖 우상을 섬기는 중에 묻었던 때를 깨끗이 씻어주고 새 마음을 넣어주며 새 기운을 불어넣어 주리라. 너희 몸에서 돌처럼 굳은 마음을 도려내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넣어주리라.” 에제 36:24~26
세례자 요한은 이러한 맥락에서 종말의 때에 이스라엘 백성의 정결 의식을 베푸는 것이 자신의 사명이라 생각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이러한 생각은 정확하게 마태오복음 3장 7절과 루가복음 3장 7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요한은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사두가이파 사람들 그리고 세례받으러 온 사람들을 향해 징벌에 대한 메시지를 발하면서 회개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회개하여 세례받고 구원을 얻으라는 메시지입니다. 이러한 요한의 회개와 각성 운동은 대중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습니다.
이와 같은 요한의 세례 운동 가운데서, 오늘 우리가 읽은 복음서대로, 예수께서도 그의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예수께서 하느님의 아들이신데 왜 요한에게서 세례받으셨을까요? 이 질문은 초기 교회에도 그리고 오늘날에도 계속되는 질문입니다.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지니신 성육신 하신 예수께서 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으셔야 했을까요? 예수도 우리처럼 회개할 죄가 많으셨던 걸까요? 예수께서 요한의 세례를 받으셨다는 점은 4 복음서 사가들도 부인할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기 때문에 이에 대한 기록은 매우 공들여 작성됐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자칫 잘못하면 예수와 세례자 요한의 권위가 뒤죽박죽될 위험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의 신발 끈조차도 풀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이야기는 초기 교회의 삽입구일 가능성이 매우 큽니다. 어떤 혹자는 예수께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은 것은 케노시스(κένωσις), 즉 자기 비움, 겸손의 행위라고도 말합니다. 물론 그러한 이유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이미 앞에서 말씀드렸듯이, 요한의 세례가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종말에 받을 정결 의식이라는 종말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면 이를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에제키엘의 예언의 실현을 세례자 요한으로부터 보셨고, 그 자신 또한 이스라엘 공동체의 일원이심을 세례받으심을 통해 드러내신 것입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하느님의 종말의 회개 선포와 구원의 역사가 온전히 계시가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진술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세례의 가장 큰 의미는 단순히 입교식이 아니라 바로 “개인의 회개”에 방점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례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던 시절 광야에서 구름과 물로 세례의 정결 의식을 치른 것처럼, 종말의 때에 모든 사람의 회개를 촉구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회개의 정결 예식을 통해 원가지인 이스라엘에 접붙임 받은 새로운 이스라엘 백성인 우리 그리스도인도 하느님의 백성으로 편입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20세기 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는 세례를 매우 엄격하게 다룬 것으로 유명합니다. 그는 세례를 “성령의 세례”와 “물세례”로 구분하여 성령의 세례는 “은총”이고, 물세례는 “그리스도인의 임무”로 봤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유로운 결단”이 반영된 철저한 회개가 함께하는 물세례를 받으면, 하느님의 성령세례가 그다음에 은총으로 주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개인의 자발적 믿음의 고백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래서 칼 바르트는 유아세례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생각을 하고 있었습니다. 유아세례에는 인간의 “자유로운 결단”이 결여되고, 세례의 “순종적 특징”과 “응답적 특징”이 가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유아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신앙적 의지를 표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칼 바르트는 은총을 강조하면서도 세례가 지닌 “사효성(事效性, Ex opere Operato)”을 인정하지 않은 게 아닌가 저는 생각합니다. 여기에서 세례의 효력에 관한 사효성 문제가 대두됩니다. 그것은 세례받는 자의 신앙의 상태와 세례 주는 자의 영적인 상태가 세례의 효력에 영향을 끼치는가? 아닌가? 라는 질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세례에서 세례받는 사람의 믿음이 세례의 효력을 좌우할까요? 아니면 사람보다는 세례 자체가 갖는 성사적 효력이 더 중요할까요? 개인의 자발적인 신앙의 결단이 수반되지 않는 세례 성사는 유효할까요? 아니면 무효일까요? 세례받으실 때의 여러분의 믿음의 상태를 한번 돌이켜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은 믿음이 충만하여 회개의 고백을 철저히 하신 후에 세례받으셨나요? 아니면 통과의례적인 입교 예식으로써 세례받으셨나요? 세례받으실 때 여러분의 상태와 믿음의 정도는 어떠했나요? “사효성”은 하느님께서 주신 성사 자체에 은총의 효력이 있어서 성사를 베푸는 사람의 상태나 성사를 받는 사람의 상태에 효력이 좌우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사효성”은 교회의 전통적인 7성사의 효력과 관련된 신학적 용어입니다. 그리스도 전통은 세례가 사효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성사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효성은 현대신학과 현대교회에서 세례에 관해, 특히 유아세례에 관해 매우 열린 생각으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인간의 어떠한 행위나 믿음의 고백보다도 성사 자체가 지닌 사효성은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존합니다. 이것이 “Sola Gratia (솔라 그라시아), 오직 은총으로”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성령께서도 연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모르는 우리를 대신해서 말로 다 할 수 없을 만큼 깊이 탄식하시며 하느님께 간구해 주십니다.” 로마 8:26
세례는 성령에 의해 그리스도의 인격 안으로 우리가 침잠되는 것으로, 세례는 인간의 의지보다 앞서는 완전한 하느님의 은총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는 성령의 역사이기 때문입니다. 세례 후보자의 현재의 믿음이 비록 적을지라도, 그 세례를 받은 사람은 이미 하느님의 인격 안으로 들어온 사람입니다. 최소한 세례를 받은 사람은 지금은 믿음이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언젠가는 “자발적인 믿음의 결단”을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는 세례를 받지 않은 자와는 전혀 다른 출발점에 서는 것입니다. 그래서 유아세례는 철저히 미래를 향해 열린 가능성을 가지고 부모의 믿음에 근거하여 베푸는 것입니다. 세례가 지닌 성사적 효력은 결코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효력이 나타납니다. 이것이 세례의 사효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년 이렇게 주님의 세례 축일에 우리의 세례를 되돌아보게 됩니다. 우리의 세례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에 의해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러나 늘 성령께서는 우리의 자유로운 동의와 순종을 촉구하십니다. 그것이 의무 사항은 아니지만 최소한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우리의 응답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세례 언약 갱신” 기도를 드릴 것입니다. 한 줄 한 줄 우리의 고백을 하느님께 드릴 때마다, 그 고백에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정성이 담겨 온전한 울림으로 하느님께 올려드리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가 처음 세례받았을 때는 아직 영적으로 어려서 그 모든 고백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세레받을 수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성장한 그리스도인으로서 성인다운 자발적 동의를 드릴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이를 우리는 “세례 언약 갱신”이라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세례 언약 갱신은 부활밤 예식 때, 그리고 견진성사 때 하게 됩니다. 그리고 오늘 주님의 세례 축일에 세례 후보자가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없으므로 대신 우리 자신의 세례 언약을 갱신하는 것으로 대신하고자 합니다. 세례는 우리의 옛사람이 죽고 완전히 새로운 인격으로 주님과 합하는 예식입니다. 세례로 말미암아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된 것처럼 세례 언약 갱신을 통해 우리는 우리의 성숙한 고백을 자발적으로 하느님께 올려드립니다. 이를 통해 2026년 여러분의 삶이 세례의 축복으로 가득하여 날마다 새로운 활기와 생명이 넘쳐나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주님의 세례 / 연중1주 (가해)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예수께서 요르단 강가에서 세례 받으실 때에 성령을 보내시고 사랑하는 아들이라 말씀하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세례의 언약을 굳게 지키며 하느님의 자녀로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또는
사랑의 하느님, 의로우신 성자께서는 이 세상을 구원하러 오시어 우리 죄인들과 같이 세례를 받으셨나이다. 비오니,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도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다시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42:1-9
.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 그는 내가 믿어주는 자,
⋅ 마음에 들어 뽑아 세운 나의 종이다.
⋅ 그는 나의 영을 받아
⋅ 뭇 민족에게 바른 인생길을 펴주리라.
2 그는 소리치거나 고함을 지르지 않아
⋅ 밖에서 그의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3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 성실하게 바른 인생길만 펴리라.
4 그는 기가 꺾여 용기를 잃는 일 없이
⋅ 끝까지 바른 인생길을 세상에 펴리라.
⋅ 바닷가에 사는 주민들도 그의 가르침을 기다린다.”
5 하늘을 창조하여 펼치시고
⋅ 땅을 밟아 늘이시고 온갖 싹이 돋게 하신 하느님,
⋅ 그 위에 사는 백성에게 입김을 넣어주시고
⋅ 거기 움직이는 것들에게 숨결을 주시는
⋅ 하느님 야훼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6 “나 야훼가 너를 부른다.
⋅ 정의를 세우라고 너를 부른다.
⋅ 내가 너의 손을 잡아 지켜주고
⋅ 너를 세워 인류와 계약을 맺으니
⋅ 너는 만국의 빛이 되어라.
7 소경들의 눈을 열어주고
⋅ 감옥에 묶여 있는 이들을 풀어주고
⋅ 캄캄한 영창 속에 갇혀 있는 이들을 놓아주어라.
8 나는 야훼다. 이것이 내 이름이다.
⋅ 내가 받을 영광을 뉘게 돌리랴?
⋅ 내가 받을 찬양을 어떤 우상에게 돌리랴?
9 전에 말한 일들은 이미 이루어졌다.
⋅ 이제 새로 될 일을 내가 미리 알려준다.
⋅ 싹도 트기 전에 너희의 귀에 들려준다.”
성시_시편 29
1 하느님을 모시는 자들아,
. 주님께 돌려 드려라. ◯
. 영광과 권능을
. 주님께 돌려 드려라.
2 그 이름이 지니는 영광
. 주님께 돌려 드려라. ◯
. 거룩한 빛 두르신
. 주님께 머리를 조아려라.
3 주님의 목소리가
. 바다 위에 울려 퍼진다. ◯
. 영광의 하느님께서
. 천둥소리로 말씀하신다.
4 주께서 바닷물 위에 나타나신다.
. 그 목소리는 힘차시고 ◯
. 그 목소리는 장엄하시다.
5 주님의 목소리에 송백이 쩌개지고 ◯
. 레바논의 송백이 갈라진다.
6 레바논산이 송아지처럼 뛰고 ◯
. 시룐산이 들송아지처럼 뛰게 하신다.
7,8 주님의 목소리에 불꽃이 튕기고,
. 광야가 흔들거린다. ◯
. 주 앞에서 카데스 광야가 흔들린다.
9 주님의 목소리에,
. 상수리나무들이 뒤틀리고 ◯
. 숲들은 벌거숭이가 된다.
. 모두 주님의 성전에 모여 ◯
. 한결같이 그 영광을 기린다.
10 주께서 거센 물결 위에
. 옥좌를 잡으시고 ◯
. 영원히
. 왕위를 차지하셨다.
11 주님의 백성들아,
. 그에게서 새 힘을 얻고 ◯
. 복을 받아 평화를 누리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사도 10:34-43
34 베드로는 이렇게 말을 시작하였다. “나는 하느님께서 사람을 차별대우하지 않으시고 35 당신을 두려워하며 올바르게 사는 사람이면 어느 나라 사람이든지 다 받아주신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36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당신의 말씀을 전해 주셨는데 그것은 만민의 주 예수 그리스도를 시켜 선포하신 평화의 복음입니다. 37 이것은 여러분도 알다시피 요한이 세례를 선포한 이래 갈릴래아에서 비롯하여 온 유다 지방에 걸쳐서 일어났던 38 나자렛 예수에 관한 일들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에게 성령과 능력을 부어주시고 그분과 함께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분은 두루 다니시며 좋은 일을 해주시고 악마에게 짓눌린 사람들을 모두 고쳐주셨습니다. 39 우리는 예수께서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서 행하신 모든 일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십자가에 달아 죽였지만 40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다시 살리시고 우리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 41 그분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증인으로 미리 택하신 우리에게 나타나셨습니다. 그분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뒤에 우리는 그분과 함께 먹기도 하고 마시기도 하였습니다. 42 그분은 우리에게 하느님께서 자기를 산 이들과 죽은 이들의 심판자로 정하셨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선포하고 증언하라고 분부하셨습니다. 43 모든 예언자들도 이 예수를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그분의 이름으로 죄를 용서받을 수 있다고 증언하였습니다.”
복음서_마태 3:13-17
13 그 즈음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를 떠나 요르단 강으로 요한을 찾아오셨다. 14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어떻게 선생님께서 제게 오십니까?” 하며 굳이 사양하였다. 15 예수께서 요한에게 “지금은 내가 하자는 대로 하여라. 우리가 이렇게 해야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모든 일이 이루어진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은 예수께서 하자 하시는 대로 하였다. 16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시자 홀연히 하늘이 열리고 하느님의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당신 위에 내려오시는 것이 보였다. 17 그 때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들려왔다.
.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
. 시편 2:7, 창세 22:2, 이사 42:1
주의 세례 축일은 공현일 후 연중시기의 첫 주일로, 1월 7일에서 13일 사이에 있습니다. 공현일이 주일이면 주의 세례 축일은 월요일로 옮겨서 지킬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