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4 5

“엠마오로 가는 길: 부활의 아날로지”_2026. 4. 19.가해_부활 제3주일_강론

2026. 4. 19.가해_부활 제3주일사도 2:14상, 36-41 / 시편 116:1-4, 12-19 / 1베드 1:17-23 / 루가 24:13-35 “엠마오로 가는 길: 부활의 아날로지”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예수야말로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으로 굳게 믿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랐던 제자들의 절망과 허무감에 대해 지난 주일에 말씀을 나눴습니다. 오늘은 막달라 마리아의 빈 무덤 소식을 들었던 제자 중 두 사람이 예루살렘을 떠나 엠마오로 가고 있습니다. 엠마오는 예루살렘에서 약 12km 정도 떨어진 곳입니다. 보통 사람의 걸음으로 약 3시간 정도 걸리는 가까운 곳입니다. 루가는 그 한 제자의 이름을 “글레오파”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다른 한 제자의 이름은 익명입니..

글모음/설교문 2026.04.19

“허무주의와 부활 그리고 인식의 대전환”_2026. 4. 12.가해_부활 제2주일 강론

2026. 4. 12.가해_부활 제2주일사도 2:14상, 22-32 / 시편 16 / 1베드 1:3-9 / 요한 20:19-31 “허무주의와 부활 그리고 인식의 대전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예수의 죽음은 제자들에게 당혹감과 두려움, 실망과 좌절을 안긴 사건이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신들의 소망을 걸었고, 그분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분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마르코 기자는 제자들이 예수의 수난 예언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고 기록했습니다. 이 말은 제자들이 자신의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 운동에 가담했지만, 각각 자신의 개인적 이유와 소망에 사로잡혀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그들은 예수와 동고동락하며 그분의 말과 행위가 일치함을 직접 목격했습니다. 그분은 말씀하신 대로 신분을 넘어 ..

글모음/설교문 2026.04.12

“두 번의 돌아섬”_2026. 4. 5.가해_부활대축일_강론

2026. 4. 5.가해_부활대축일예레 31:1-6 / 시편 118:1-2, 14-24 / 사도 10:34-43 / 요한 20:1-18 “두 번의 돌아섬”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요한복음은 “빈 무덤 이야기”와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현현 체험을 한 데 묶어 하나의 이야기로 기록했습니다. 물론 빈 무덤 이야기는 마르코 복음에 기초합니다. 복음서는 모두 막달라 마리아의 부활 현현 체험을 기록했는데, 그 디테일에서 조금씩 차이가 납니다. 마태오는 처음에 천사가 여인들에게 부활 소식을 전했다고 합니다. 그런 후에 예수께서 등장하셨고, 여인들이 그 발 앞에 경배했다고 합니다. 루가는 “눈부신 옷을 입은 두 사람”이 등장하여 부활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정체는 밝히지 않습니다. 오늘..

글모음/설교문 2026.04.05

“생명이신 하느님, 구원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부활하신 하느님”_2026.4.4. 가해_부활밤예식_강론

2026.4.4. 가해_부활밤예식로마 6:3-11 / 시편 114 / 마태 28:1~10 “생명이신 하느님, 구원하시는 하느님 그리고 부활하신 하느님”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마르코 복음은 원래 막달라 마리아와 두 여인이 함께 예수의 빈 무덤을 발견하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 뒤에 나오는 이야기는 나중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마르코 사가는 빈무덤 사화 외에 부활 이야기에 침묵합니다. 마르코 복음 이후에 나온 마태오와 루가복음은 마르코 복음의 구성에 자신들의 추가 자료를 첨부하여 부활 증언에 관한 많은 이야기를 전합니다. 루가는 마르코처럼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여자들의 빈무덤 이야기를 전하고,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 이야기”를 첨부합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나타나..

글모음/설교문 2026.04.04

“당신의 사람들을 위한 사랑” _2026.4.2. 가해_성목요일

2026.4.2. 가해_성목요일출애 12:1-4(5-10), 11-14 / 시편 116:1-2, 12-19 / 1고린 11:23-26 / 요한 13:1-17, 31하-35 “당신의 사람들을 위한 사랑”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진주산청교회 교부들도, 교회 전통도 모두 가리옷 사람 유다를 악의적으로 묘사하고 있어, 우리는 주님의 수난 이야기를 읽을 때마다 늘 유다에 대해 편견으로 읽습니다. 그리고 그 편견 속에는 “나는 가리옷 사람 유다와 다르다”라는 일종의 안도감도 있는 듯합니다. 마치 우리는 제자들 편에 서 있고, 유다는 멸망 받을 편에 서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과연 그럴까요? 우리가 이러한 편견을 버리고, 그 당시의 장면을 객관적으로 연출하는 영화감독이나 작가처럼 상상한다면, 우..

글모음/설교문 2026.04.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