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를 꿈꾼다(김형국)'을 읽고서
서로 다르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가 될 수 있다!
채야고보 / 2017.10.17
“안디옥 교회에 선지자들과 교사들이 있으니 곧 바나바와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과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분봉왕 헤롯의 젖동생 마나엔과 및 사울이라.” 사도행전 13:1
1. 너무도 다양한 사람들이 모인 안디옥 교회
안디옥 교회는 “저렇게 다른데도 오히려 하나가 되어 위대한 일을 할 수 있다.”
이름 | 출신 | 인종 | 사회적 계층 | 특기사항 |
바나바 | 구브로(행4:36) | 유대인 | 중류 이상 | 예루살렘 교회 출신 |
시므온 | 북아프리카 | 1.흑인(니게르-느그로?) 해방된 노예? 2. 구레네 사람 시몬(예수의 십자가를 진 사람) |
알 수 없다/해방된 노예? | |
루기오 | 구레네(행11:20) | 헬라인, 또는 헬라화된 유대인 | ||
마나엔 | 예루살렘/유대인 | 유대인(혼혈?) | 권력의 측근 | 교회를 핍박하던 사람의 측근 |
사울 | 다소 | 헬라파 유대인 | 많은 교육을 받은 사람 | 과거의 핍박자 |
이렇게 다양한 차이를 지닌 자들이 차이를 극복하고 한 팀을 이뤘다. 어떻게 그것이 가능했을까?
2. 안디옥 교회는 어떤 곳인가?
안디옥 교회는 구브로와 구레네 출신 몇 사람으로 시작한 교회였다. 그러나 차츰 성장하여 이곳은 순교의 중심지가 되었다. 이곳은 안디옥 학파의 본산이다. 안디옥 학파는 성경을 역사적이고 문법적으로 해석했고, 알렉산드리아 학파는 성경을 풍유적으로 해석했다. (성 바질, 요한 크리소스톰, 데오도르 등) 이곳은 주후 390년 쯤에는 도시 거의가 기독교화 됐다.
3. 하나됨을 위한 일반적인 조언
우리의 인생에서 우리 마음고생의 대부분은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우리는 사람 때문에 상처받기도 하지만 또한 사람 때문에 위로를 받고 살아갈 힘을 얻는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은 결코 관계성을 떠나 살 수가 없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남과 조화를 이루며 살 것인가?
사람들은 하나됨을 위하여 다음과 같은 조언을 한다. 1)서로에게 예의를 갖춰라, 2) 지연, 혈연에 의지해라 3)공통의 비전제시(사명제시). 그러나 이렇게 한다고 과연 공동체가 하나가 되는 것 일까? 저자는 이러한 일반적인 처방이 아닌 안디옥 교회의 예를 통해 우리에게 두 가지를 제언한다.
4. 안디옥 교회가 주는 교훈
1) 주님의 팬클럽이 되자!
안디옥 교회의 비결은 “주”에 있었다. 즉 “주님의 팬클럽”이 되야한다는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주님을 섬긴다’는 것을 가장 잘 표현해 줄 수 있는 사회적 현상, 그것이 ‘팬클럽’이다.” 누군가의 팬클럽은 그 누군가를 위해 모든 것을 한다. 이와같이 안디옥 교회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였다. 주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그의 종이 되길 원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공통의 주’가 누구인지 분명히 알았다.
서로의 차이는 주님에 의해 조정되었다. 하느님은 단지 ‘개념’이 아니다. 종교적인 ‘상징’도 아니다. “하느님은 구체적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시는 분이다.” 그분은 공동체가 어떤 가치를 추구해야 하는지 우리에게 가르쳐주신다.
교회 내에서 갈등이 생기는 것은 누군가가 주인 행세를 하기 때문이다. 교회의 주인은 한 분 뿐 이어야 하는데, 모두가 주인행세를 하면 곤란해진다. 하느님의 시각이 아닌 각자의 시각을 주장함으로써 결국 교회에는 갈등과 분열로 치닫게 되는 것이다.
2) 서로 다른 우리가 함께 있는 것은 다 뜻이 있다.
공동체의 목적은 무엇인가? 왜 이렇게 다양한 사람들이 한 공동체에 모였는가? 왜 우리는 매 주일 모여 예배를 드리는 걸까? 나들목 교회의 공통의 비젼은 “ 하느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여기 와서 진실한 공동체에 속하게 되고 그들이 정상적이고 균형 있게 성장해 하느님이 세상을 변화시키는 그 변혁, 안팎의 변혁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위해 왜 서로 다른 사람이 모였을까? 자신에게 맞는 사람들로 그 일을 하면되지 않을까? 서로의 다름에 집중하기 보다 하느님께서 서로 다른 사람들을 함께 묵어주신 뜻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그 뜻을 이루기 위해 어떻게 같이 일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도 동시에 하게 된다. 생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떻게 자기 몫을 다해서 우리 팀이 제대로 된 일을 할 수 있을까?라고 생각의 전환을 하자.” 자기의 방법만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다른 사람의 방식을 ‘공동의 뜻’을 위해 조화해 낼 수 있을까를 고민하는 것이다. “ 이렇게 다른 우리를 향하신 하느님의 뜻이 무엇일까? 우리를 통하여 하느님이 하시려고 하는 궁극적인 뜻은 무엇일까?” 이와 같이 하나의 분명한 목적이 있다면, 여러 다른 사람이 모일수록 그 공동체는 풍성해 질 수 있다.
예수는 우리의 지휘자 되신다. 모든 다른 사람들이 한 분이신 주님 만 바라본다면 우리는 훌륭한 소리를 낼 수 있을 것이다. 비록 우리는 연주를 잘 못하고 관계에 어설프지만, 그분의 뜻을 찾고 그분을 섬기면서 서로를 알아가고 하느님의 뜻을 위해 협력하게 된다면 우린 다르면서도 하나되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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