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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_시공간의 미학적 의미

James Chae 2011. 9. 3. 16:04

 

 

 

 

사이”: 시공간의 미학적 의미

 

 

채창완

 

시공간은 물리적 실체인가 아니면 우리 인간이 인위적으로 생각해낸 추상적 개념인가? 고전물리학의 대부인 뉴턴(Newton,, Sir Isaac)은 시공간이 절대불변의 실체라고 생각했었다. 그에게서 공간은 이 우주에서 절대적 위치를 차지하는 하나의 불변의 기준이었고, 또한 시간은 다른 것에 의존하거나 외부의 어떤 기준으로부터 상관 받지 않고 항상 일정한 속도로 흐르는 절대적인 것이었다. 그러나 이에 반해 오랜 동안 뉴턴의 권위에 감히 반기를 들 수는 없었어도 많은 사람들이 시공간의 절대성에 의문을 가져왔었다. 이러한 생각이 결정적으로 꽃을 피게 된 것은 뉴턴 이후 200년이 지난 후에나 가능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바로 아인슈타인에 의해서였다.

 

그는 시간과 공간이 절대적이지 않고 서로 무관하지도 않다고 했다. 또 그것은 관찰자의 운동상태에 따라 달리 보이며 서로 긴밀하게 연관되었다. 즉 시공간은 한 객체의 부분적 특성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이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라는 무대가 물리적인 절대 기준을 가진 것이 아니라 상대성에 의해 지배되는 세계라는 것이다. 물론 우리 인간이 이 지구상에서 살아가는 데에는 뉴턴의 운동법칙이 절대적으로 적용되지만 우주라는 넓은 개념의 시공간을 생각한다면 우리는 아인슈타인의 이론에 의존할 수 밖에 없다. 시공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변한 것이 없지만 변한 것은 결국 우리 인간의 시공간에 대한 개념이다.

 

 

 

 

그림1 – 살바도르 달리, 기억의 지속 The Persistence of Memory , 캔버스에 유채, 1931

 

 

그렇다면 가시적인 것에 의존하는 미술에서는 이러한 비가시적인 시간과 공간이 어떻게 이미지화되고 있을까? 먼저 달리(Dali, Salvador)기억의 지속이라는 작품을 보자. 그에게 시간은 기억의 지속과 연관된다. 진정한 시간적 실체는 인간의 초현실적 상상 속에도 존재한다. 그것은 꿈 속에서도 지속되는 기억과 유사하다. 그는 기억을 시간과 동일시했다. 그리고 그 시간을 물리적인 시계로 형상화하여 보거나 느낄 수 있는 시각적 이미지로 승화시켰다. 흘러내리는 시계의 모습은 시간의 흐름을 상징한다. 그러나 그것은 과거에서 미래로 일정하게 흐르는 시간이 아니다. 그의 시간은 어떠한 시점도 방향성도 지시하고 있지 않다. 그것은 마치 우리가 꿈 속의 시간이나 기억을 특정한 때로 상정할 수 없는 것과 같다. 시간은 흘러내리는 시계와 같이 흐느적거린다. 그 흐느적거림은 절대적인 시간의 흐름을 사라지게 하면서 시간의 잔상만을 남긴다. 시간이 기억될 수 있다면 기억하는 주체는 사람이 아니라 시간자체일 것이다. 물질이 아닌 시간은 살아있는 유기체로서 초현실에서는 하나의 존재이다. ‘기억의 지속이 가능한 것은 이와 같이 현실과 초현실을 넘나드는 시간의 순환적 구조에 의해서일 것이다.

 

 

 

 

 그림2 – 루치오 폰타나, 녹색 타원 개념 Green Oval Concept , 1963

 

 

또한 루치오 폰타나(Fontana, Lucio) 2차원의 평면에 공간을 창조했다. 2차원의 세계와 3차원의 세계가 한 곳에 존재하게 한 것이다. 생각 속에서만 가능했을 법한 것이 그에 의해 이미지화 되었다. 평면의 캔버스에 구멍을 뚫는 행위에 의해 자연스럽게 공간이 생겨난 것이다. 애초에 캔버스의 앞면과 뒷면은 2차원적 평면으로 단절되어 실제로 공간이 존재하지 않았었다. 그는 앞면과 뒷면을 소통케 하는 구멍을 통해 3차원의 공간을 창조해낸 것이다. 그렇게 함으로써 그는 공간을 실제로 존재하는 것으로 이미지화 했다. 그것은 앞면과 뒷면 사이의 공간이다.

 

만질 수도 느낄 수도 없는 시공간을 이렇게 눈에 보이는 실체로 드러나게 하는 작가들의 천재성은 가히 놀랄 만 하다. 이들의 작품을 통해 우리는 다소나마 절대적인 위치를 잃어버린 시공간에 대한 향수를 이미지로 느낄 수 있다. 생각해보라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면 우리는 이 거대한 우주에서 과연 어디에 기준을 두고 살아야 하는가! 지구가 돈다고 했을 때 과거의 사람들이 느꼈을 현기증을 오늘날의 사람들 또한 느끼고 있다. 현대물리학의 도움으로 시공간이 상대적이라는 것을 깨달았지만 절대적 기준이 사라진 현대인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다. 새로운 시공간적 기준 만들기. 이 세상에서 라는 존재가 차지하고 있는 시공간의 위치 찾기. 4차원적 시공간. 결국 현대에 있어서 우리 인간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상관관계적으로 시공간을 다시 정의해야 할 것이다. 기준은 결국 이다. 나침반의 바늘은 북극과 남극이 아니라 이제 각각의 라는 존재들을 향하고 있다. 그러면서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 사람과 생태계라는 밀접한 관계성 속에 사이라는 시공간이 자연스럽게 형성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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