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9.21.화. 나해_추석별세기념성찬례 (1부: 오전8시30분 / 2부: 오전11시)
사도 성 마태오(복음사가)
요엘 2: 21-24, 26 / 시편 104:13-15 / 1요한 3:17-18 / 마태 25:34-40
‘순환적 축복’
채야고보 신부 / 성공회 제주한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시편 말씀을 다시 한번 읽겠습니다.
높은 궁궐에서 산 위에 물을 쏟으시니 온 땅이 손수 내신 열매로 한껏 배부릅니다.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사람이 농사지어 땅에서 양식을 얻도록 곡식을 또한 가꾸셨습니다.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내시고 얼굴에 윤기 내는 기름도 내시고 힘을 돋우어주는 양식도 내셨습니다. (시편 104: 13-15)
오늘 전례독서 말씀은 크게 두 가지 메시지를 각각 보여주고 있습니다. 1독서와 시편은 추수로 말미암은 추석의 풍성한 축복을 전하고 있고, 2독서와 복음 말씀은 가난한 사람들과 축복을 나누라는 ‘자비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전례독서가 절묘하게 축복과 나눔을 동시에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축복과 나눔. 결국 이 둘은 나뉠 수 없는 관계에 있음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에게 축복이란 무엇인가? 생각해봅니다.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메시지의 핵심은 늘 축복보다도 나눔과 자비의 실천에 무게 중심이 있었던 점을 생각해본다면 주님께서 그리스도인에게 베푸시는 축복은 결국 나눔을 전제로 한다는 점을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복음서 말씀은 최후의 심판 날을 상정하고 있습니다. 오늘 읽지 않은 앞부분 31절-33절은 심판 날에 사람의 아들께서 심판주로 오셔서 보좌에 앉으시고 ‘모든 민족들’을 그 앞에 불러놓고 오른편에 양을, 왼편에는 염소를 각각 구분하여 세우고 심판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모든 민족들’은 헬라어로 ‘ἔθνος 에트노스’라 합니다. 비그리스도인이나 그리스도인 모두를 포함하는 인류 전체를 뜻합니다. 아무도 예외는 없습니다. 그리고 오른편에 있는 양들에게 말씀하신 부분이 오늘 읽은 복음서 말씀입니다. 양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평생을 남을 돕고 섬기고 자선을 베풀었습니다. 누가 보든 안 보든 그들은 상관없이 남을 섬겼고, 자신의 가진 것을 나눠줬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자비가 그들의 삶이 되었기에 자신들이 선행을 하는 줄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살았습니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마태 25:37-38)
양무리에 속한 사람들은 삶과 자비실천이 완전히 일치하는 삶을 살은 것입니다. 미리 머리로 생각하기 전에 몸이 늘 남에게 자비를 먼저 베푼 것이지요. 생각하고 제고 따지지 않았고 망설이지도 않았습니다.
마태오복음은 일관되게 주님의 자비실천 메시지를 특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5장의 산상수훈에서 시작하여 복음서 전반에 걸쳐 너무 많은 곳에서 발견되는 주제입니다. 두 가지만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말씀들입니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내가 바라는 것은 동물을 잡아 나에게 바치는 제사가 아니라 이웃에게 베푸는 자선이다.' (마태 9:13)
이러한 자비 행위에 대한 강조는 마태오복음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은 최후 심판의 기준으로 이러한 ‘자비실천’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아들의 최후 심판의 기준은 개인의 신앙도, 기도와 예배도, 봉헌과 제물도 아닌 바로 ‘자비실천’에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합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의 가치의 핵심이 자비와 사랑임을 다시 한번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사도 바울로는 로마서에서 그대로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을 하도록 하십시오.” (로마 12: 17)
사도 바울로가 언급한 “모든 사람이 다 좋게 여기는 일”은 바로 ‘자비실천’입니다. ‘자비’는 늘 행위로 드러나고 표현됩니다.
모든 사람들, 믿는 자들이나 믿지 않는 자들이나 모두가 한 해의 풍성한 결실에 감사하고 조상들을 기리는 시점에서 이러한 말씀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로 다가오는 것일까요? 그것은 풍성함 속에서든, 절망적인 상황에서든 인간 보편적 진리인 사랑과 자비를 어떤 가치보다 앞에 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아닐까요? 분명 누군가는 한 해의 풍요가 자신의 노력의 산물이라고 생각하고 남과 나누기에 인색한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또 누군가는 올 한 해가 너무 힘들어 이 추석이 전혀 달갑지 않은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러한 불균형으로 오는 문제를 우리 교회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사랑과 자비로 극복하자는 것입니다. 많이 받은 자는 그 축복을 그렇지 않은 자와 나누고, 또 많이 받지 못한 자는 나눔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 풍성해지는 그러한 ‘순환적 축복’의 명절이 되길 하느님께서 바라시는 것입니다. 축복이 순환적이 될 때 그것은 모든 사람이 누리는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 추석에 우리에게 주시는 하느님의 말씀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코로나 때문에 가족들도 마음껏 만나지 못하고, 경제적 침체로 모두 힘든 상황에서 명절을 맞이했지만, 모든 사람들 속에 담겨 있는 보편적 진리인 ‘사랑과 자비’를 그래도 조금은 생각하고 실천할 수 있는 그러한 명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간에, 형제간에 그리고 우리 교우들 간에 서로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고,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고 안아주며 다시 일어서자는 다짐을 하는 그러한 명절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어려운 시기이지만 위안이 되는 다음 시편 말씀을 읽어 드리면서 설교를 마칩니다. 평안한 명절 보내시길 바랍니다.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느님,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당신께 이 몸을 숨기렵니다. 이 태풍이 지나기까지 당신의 날갯짓 그 속에 이 몸을 숨기렵니다.” (시편 57: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추석별세기념성찬례 전례독서
요엘 2:21-24, 26
21 흙아, 두려워 마라.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야훼께서 큰일을 이루셨다. 22 짐승들아, 두려워 마라. 들판의 목장은 푸르렀고 나무들엔 열매가 열렸다. 무화과나무와 포도덩굴에 열매가 주렁주렁 달렸다. 23 시온의 자녀들아, 야훼 너희 하느님께 감사하여 기뻐 뛰어라. 너희 하느님께서 가을비를 흠뻑 주시고 겨울비도 내려주시고 봄비도 전처럼 내려주시리니, 24 타작 마당에는 곡식이 그득그득 쌓이고 독마다 포도주와 기름이 넘치리라.
26 이제 너희는 한껏 배불리 먹으며 너희 하느님 야훼를 찬양하리라. 너희에게 놀라운 일을 이루어준 이 하느님을 찬양하리라. 내 백성은 언제까지나 당당하리라.
시편 104:13-15
13 높은 궁궐에서 산 위에 물을 쏟으시니 온 땅이 손수 내신 열매로 한껏 배부릅니다. 14 짐승들이 먹을 풀을 기르시고 사람이 농사지어 땅에서 양식을 얻도록 곡식을 또한 가꾸셨습니다. 15 사람의 마음을 즐겁게 하는 포도주도 내시고 얼굴에 윤기 내는 기름도 내시고 힘을 돋우어주는 양식도 내셨습니다.
1요한 3:17-18
17 누구든지 세상의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의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마음의 문을 닫고 그를 동정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그에게 하느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겠습니까? 18 사랑하는 자녀들이여, 우리는 말로나 혀 끝으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실하게 사랑합시다.
마태 25:34-40
34 그 때에 그 임금은 자기 오른편에 있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할 것이다. '너희는 내 아버지의 복을 받은 사람들이니 와서 세상 창조 때부터 너희를 위하여 준비한 이 나라를 차지하여라. 35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에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말랐을 때에 마실 것을 주었으며 나그네 되었을 때에 따뜻하게 맞이하였다. 36 또 헐벗었을 때에 입을 것을 주었으며 병들었을 때에 돌보아 주었고 감옥에 갇혔을 때에 찾아주었다.' 37 이 말을 듣고 의인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주님, 저희가 언제 주님께서 주리신 것을 보고 잡수실 것을 드렸으며 목마르신 것을 보고 마실 것을 드렸습니까? 38 또 언제 주님께서 나그네 되신 것을 보고 따뜻이 맞아들였으며 헐벗으신 것을 보고 입을 것을 드렸으며, 39 언제 주님께서 병드셨거나 감옥에 갇히신 것을 보고 저희가 찾아가 뵈었습니까?' 40 그러면 임금은 '분명히 말한다.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 중에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 하고 말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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