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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과 풍속화

James Chae 2011. 9. 3. 18:40

 

 

 

마을과 풍속화

 

채창완

 

처음에 인간은 혼자서 살 수 없었기에 서로 모여 살기 시작했을 것이다. 사람이 혼자 있는 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도 좋지 않았다고 성서는 말한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는 늘 사이()’라는 공간이 존재해왔다. 그래야 사람은 비로서 사회적 존재인 인간(人間)’이 되기 때문이다. ‘마을은 이러한 사람과 사람을 잇는 공간이면서 사람을 사회적 존재로 만드는 기초 단위이다. 전통적으로 우리의 마을은 공동의 문화와 규율, 풍속이 있었고 생존을 위한 공동의 경제활동이 있었다. ‘품앗이’, ‘두레’, ‘라는 말도 마을의 공동체적 의미와 관련된다. 도시화되고 산업화된 오늘날에는 마을이라는 생활공동체적 의미가 많이 퇴색되었지만 그러한 마을에 대한 정서마저 우리의 마음 속에서 사라진 것은 아닌 듯하다. ‘풍속화가 여전히 대중에게 사랑 받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그림1_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 ‘농부의 결혼잔치’. 1565년경. 판넬에 유채, 114x162.5cm.

 

 

 

우리가 흔히 풍속화라 부르는 그림들은 하나같이 사람들의 생활을 중심 테마로 삼는다. 그 속에는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들의 모습이 그대로 담겨있어, 그 그림을 그렸던 작가의 동시대 사람들의 생활상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그리고 풍속화들은 모두가 마을이라는 생활공동체를 그 배경으로 한다. 브뢰겔(Pieter Bruegel the Elder)농부의 결혼 잔치나 김홍도의 씨름이란 작품도 이러한 마을이란 콘텍스트 속에 위치한다. 풍속화 속의 사람들은 그들이 처한 삶의 열악한 조건에도 불구하고 늘 삶의 기쁨을 우리에게 보여준다. 위엄과 중후함을 강조한 귀족이나 양반들을 그린 그림에서 느껴지는 딱딱함은 전혀 찾아 보기 어렵다. 역동적이면서도 격이 없는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가 드러난다. 자랑하거나 누구를 압도하고자 하지도 않는다. 그리고 풍속화 속의 사람들은 누구 하나 개인으로 존재하지 않고 놀이또는 잔치속에서 하나로 융합되어 보인다.

 

 

 

 

 

그림2_김홍도. ‘씨름’.  28x24cm, 국립중앙박물관소장

 

 

오늘날 우리가 공연장에서나 볼 수 있는 민속 음악이나 춤은 모두 이러한 마을 잔치속에서 자연 발생한 것이다. 풍악, 풍물, 마당극 등과 같은 것들이 대표적일 것이다. 그것들은 모두 흙을 기반으로 하는 육체 노동에 삶을 의지해야 하는 생활공동체의 유산이다. 오늘날에는 공연이란 형식을 빌려 우리에게 전해지지만 마을이란 배경이 없는 그러한 예술은 왠지 박제된 것 같다. 우리가 공연장에서 멜로디리듬만으로도 충분히 흥겨울 수 있다면 과거의 마을 잔치에서는 실제로 어떠했을까? 마을 주민들 하나 하나의 삶을 전체로 묶어 내고, 삶의 고통을 상쇄시키며, ‘을 통한 새로운 에너지를 충전하게 하는 이러한 공동체 문화가 가능했던 것도 마을이 있었기 때문이다.  

 

풍속화는 이러한 마을의 전통적 모습을 우리에게 생생하게 보여준다. 풍속화를 통해 우리가 느끼는 향수도 우리의 내면에 잠재해 있는 이러한 생활공동체적 삶에 대한 동경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오늘날 마을은 우리에게 전혀 새로운 의미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 ‘지구촌이나 생태계라는 말은 마을이란 생활공동체의 또 다른 현대적 표현이다. 사람과 사람, 인간과 자연이 결코 분리되어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생활공동체를 이룬다는 의미에서 이는 마을의 전통적 개념과 일치한다. 우리가 풍속화를 감상할 때 그 속에 동화될 수 있는 여지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 속의 주인공들은 과거의 사람들이면서도 바로 현재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0세기 개인주의 시대를 거쳐 인류는 새로운 생활공동체를 찾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개인이 소외되지 않으면서 인간과 생태계가 함께 공존하며 살아가는 생활공동체. 그러한 유토피아는 이미 우리의 마을이란 개념 속에 선재해있다. 그리고 풍속화는 그러한 것에 대한 긍정으로 우리 앞에 제시되어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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