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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과 색으로 본 미술 (1)

James Chae 2011. 9. 3. 18:49

 

 

 

으로 본 미술(1)

 

 

채창완

 

 

 

어떤 것의 본질을 파악하고 분석하는 데 이분법적인 접근이 위험성은 있지만 매우 편리할 경우가 많다. 미술에 있어서도 미술을 으로 분류하여 설명하게 되면 미술을 이해하는 데 한결 쉽다. 다만 미술이 단순히 이러한 분류에 의해 정의되어지지 않는다는 점을 미리 염두에 둔다면, 잠시 미술을 형과 색으로 나누어 살펴보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을 것이다. 실제로 미술사에서 에 대한 논쟁이 16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있었다. 파리 왕립 아카데미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루베니스트(Rubenist)’푸생주의자(Poussiniste)’들의 논쟁이 그것인데 최종적으로 의 중요성을 강조한 루베니스트들이 승리를 했지만, 결코 미술에 있어서 중 어느 것이 더 우월하냐라는 논쟁은 결코 간단히 끝날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미술작품은 분명히 이 두 가지 요소를 모두 필요로 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두 편에 걸쳐 미술의 중요한 두 기둥인 으로 본 미술에 대하여 소개하고자 한다. 먼저 으로 본 미술이다.

 

 

 

 

 

 

 

 

그림1_푸생(Nicolas Poussin). 사비니 여인들의 약탈The Rape of the Sabine Women. 1636~37년 경. 캔버스에 유채, 154.4x209.8cm.

 

 

전통 한국화에서는 전문작가들이 그린 채색화보다 먹으로만 그린 선비들의 수묵화를 더 우위에 두었다. 검은 먹으로 표현된 이란 소묘적 요소가 보다 더 정신적이고 지적인 영역에 가깝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수묵화의 경향과 유사하게 유럽미술에 있어서도 보다 더 중시했던 푸생주의자들은 모두 이상적인 이데아의 최고의 미를 추구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대부분 플라톤주의자들로서 단순히 자연을 모방하는 차원을 넘어 자연 이면에 존재하는 영원 불변하는 이상적인 미를 좋아했다. 그 미는 인간이 추구하는 최고의 과 맞닿아 있다. 그 결과 시각을 현혹시키고 감정에 호소하는 색보다는 선묘를 더 선호하고, 조각 같은 입체감과 수학적 비례를 좋아했으며, 그리고 개별적이고 특수한 것 보다는 보편성을 더 추구했다. 이러한 경향은 이탈리아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는데, 그 시작은 그리스 · 로마 미술에 뿌리를 두고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고전주의를 거치며 전 유럽에 유행했다. 이들에게 있어서 은 어디까지나 을 보조해 주는 역할 이상이 아니다. ‘은 정신의 집중을 산란하게 하고 인간의 감정에 호소하며 눈을 즐겁게 해주지만 은 인간의 정신을 높은 차원에 까지 이끌어 줄 수 있다고 생각했다. 절대적인 것은 불변하며 확고한 비례와 균형을 갖는다. 자연은 이러한 이데아 세계의 그림자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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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2_폴 세잔(Paul Cezanne).. 사과가 있는 정물. 1879~82. 캔버스에 유채, 43.5x54cm.

 

 

 

이러한 푸생주의자들의 생각은 그리스 · 로마 미술에서 현대미술에 이르기까지 유럽미술의 거대한 맥을 형성해 왔다. 실제로 오늘날에도 작가들의 성향을 보면 형태적인 요소를 강조하는 작가들은 논리적이고 이성적이며, 계획적이고 구조적이다. 이와 반대로 을 강조하는 작가들은 즉흥적이고 역동적이며, 감정적이고 시적인 경향이 강하다. 17세기 유럽고전주의의 대가 푸생(Nicolas Poussin:1594~1665)의 작품과 현대미술의 세잔(Paul Cezanne:1839~1906), 그리고 피카소(Pablo Picasso:1881~1973)의 작품 등을 배교해보면 모두가 공통적으로 보다는 에 공을 더 들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물론 그렇다 해서 이 작가들이 을 등한시 했다는 의미는 전혀 아니다. 푸생의 경우도 색을 중요하게 생각해 다양한 색을 실제로 사용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그들이 도달하고자 했던 종착점은 모두 이상적인 형을 창출해내는 것이다. 어떤 것에도 흐트러지지 않고 변형되지 않는 절대적인 미. 그들은 회화에 있어서 완전한 것을 찾으려 했다. 푸생의 작품에서 보이는 견고한 신체라인과 균형과 비례, 세잔의 절대적인 형태와 구성실험, 그리고 피카소의 형태해체를 통한 형의 재결합 등은 모두 이러한 형의 이데아를 추구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림3_파블로 피카소(Pablo Picasso). 앙브루아즈 볼라르의 초상Portrait of Ambroise Vollard. 1910. 캔버스에 유채, 92x65cm.

 

 

을 추구하는 자들은 형태에 대한 끊임없는 실험을 계속한다. 형의 해체와 결합을 반복하기도 하고, 아니면 그리지 않고 직접 사물을 작품에 채용하기도 한다. 움직이는 으로 인간의 몸을 사용하여 직접 퍼포먼스를 통해 을 표현하기도 한다. 어떤 형태실험이든 간에 이들의 종착점은 자연의 모방이 아니라 절대적인 세계에 대한 모방이다. 절대적인 미에 대한 이들의 신뢰는 그들의 이성에 대한 신뢰와도 연결된다. 이성은 이데아의 세계와 연결되는 중요한 통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술은 결코 선이나 정신으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곳에는 이라는 중요한 미적 기재 또한 필요로 한다. 이점은 다음 편에서 살펴보겠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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