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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물과 확증편향”

James Chae 2022. 9. 25. 06:46

2022.9.25. 연중 26주일

예레 32:1-3, 6-15 / 시편 91:1-6, 14-16 / 1디모 6:6-19 / 루가 16:19-31

 

재물과 확증편향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우리는 지난주에 이어 오늘도 루가복음 16장을 전례독서로 묵상합니다. 특히 오늘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루가복음 16 전체의 주제에 집중해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이해하는 중심이 되는 말씀을 먼저 읽어 드리겠습니다. 지난주에 읽었던 본문 하나입니다.

 

"한 종이 두 주인을 섬길 수는 없다. 한 편을 미워하고 다른 편을 사랑하거나 또는 한 편을 존중하고 다른 편을 업신여기게 마련이다. 하느님과 재물을 함께 섬길 수는 없다.” 돈을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이 모든 말씀을 듣고 예수를 비웃었다. (루가 16: 13-14)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오늘 말씀은하느님과 재물을 동시에 섬길 없다.” 주제와 재물은 인간을 구원하기보다는 오히려 멸망으로 이끌 있다는 메시지를 동시에 담고 있습니다. 물론 말씀은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루가의 특수자료입니다. 거지 라자로 이야기와 유사한 이야기는 이미 이집트 문헌과 예루살렘 탈무드에도 나온다고 합니다. 루가가 이러한 자료들을 참조했는지 확실하지 않지만, 오늘 이야기는 루가복음 기자의 관점과 정확하게 일치합니다. 가난한 자들에게 특별한 관심을 보이는 루가복음의 전체적 특징에 어울립니다.

 

유대인들은 물질의 풍요함이 하느님의 축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반대로 가난과 질병은 하느님을 제대로 섬기지 못한 죄의 결과라고 여겼지요. 욥기에서 욥의 친구들이 욥을 비난했던 근거도 바로 이러한 관점이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욥의 부유함과 신앙의 가식을 증명하고 그가 죄인임을 밝히고자 논쟁을 시작했던 것입니다. 그들의 관점에서 욥이 재산과 가족을 잃고 몸에 병까지 상황은 정확하게 욥의 때문인 것입니다. 그래서 물질이 하느님의 축복의 결과라고 주장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코웃음을 것입니다. 루가복음 16 14절에돈을 좋아하는이란 말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φιλάργυρος 필라르구로스 오늘 읽은 디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편지 6 10절에도 같은 단어가 명사형으로 사용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1디모 6:10a)

 

 

그러나 돈이 하느님의 축복이라 믿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결국 하느님과 돈을 동시에 섬기는 오류에 빠진 것입니다. 그들의 비웃음에 주님께서는 거지 라자로 이야기로 이러한 바리사이파 사람들을 비판하신 것입니다.

 

부자의 이름을 감추는 대신라자로 이름을 루가가 정확하게 밝힌 이유는 간단합니다. ‘라자로 뜻은 히브리어 아자르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하느님이 도우신다 뜻입니다. 거지이고, 병이 라자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관점에는 하느님에게 버림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름을 통해 그가 오히려 하느님의 도우심을 받는 가난한 자임을 루가는 명시한 것입니다. ‘πτωχός 프토코스, 가난한 사람하느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라고 루가복음 6 20절은 말하고 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는 라자로라는 이름을 밝힌 것은 그의 이름이 하늘에 기록되었기 때문이고, 부자가 무명인 것은 그렇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습니다. 말인즉 물질의 소유는 하느님의 축복이나 구원의 은총과 전혀 관계가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부자가 잘못한 것은 그의 부유함이나 사치스러움 보다는 그가 자선을 베풀지 않은 것에 방점이 있습니다. 그는 부자였지만, 자비와 사랑을 버렸기 때문에 벌을 받은 것입니다. 라자로는 그가 주는 음식을 먹은 것이 아니라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 연명했습니다. 그리고 심지어 그는 자신의 상처를 핥는 개조차도 쫓을 없을 정도로 치명적인 상태에 놓여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자는 그에게 전혀 동정심조차 갖지 않았습니다. 그의 사정이 하도 딱하여 사람들이 보다 못해 그를 주인의 눈에 띄는 대문간에 옮겨다 놓았지만, 부자는 그러한 라자로를 무시했습니다. 이러한 부자는 돈만 좋아하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대한 정확한 메타포입니다. 이야기의 뜻을 간파하고 그들은 더욱 분노했을 겁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1디모 6:10b)

 

 

디모테오에게 보낸 사도 바울로의 충고도 정확하게 이러한 점을 지적합니다. 하느님을 따르는 대신 돈을 따르다 보면 결국길을 잃고 신앙을 떠난다 점입니다. 그래서 돈은만악의 뿌리 것입니다. 80,90년대 한국의 경제 성장기에 돈과 하느님의 축복을 동일시했던 한국 교회의 현재의 몰락은 정확하게 이러한 점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경제성장과 교회성장을 동일시했던 한국교회는 코로나 사태와 경제 침체로 현재 극심한 위기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을 열심히 믿는대도 경제적 어려움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교인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물질적 축복의 메시지는 빛이 퇴색되어 버렸습니다. 불황의 시대에 물질적 축복만을 말하다 보면 결국 한국교회는 돈을 사랑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처럼자승자박 놓이게 것입니다. 하느님의 축복이 눈에 보이는 것과 관련이 없음을 주장하기에는 한국교회는 이미 진리로부터 너무 멀리 떠나온 것이 아닌가 생각됩니다.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큰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루가 16:26)

 

루가는 오늘 이야기에서 사후 세계를 구체적인 공간으로 표상화했습니다. 라자로는아브라함의 있었고, 부자는불꽃 있었습니다. 그리고 사이에는 구렁텅이 가로놓여 서로 오갈 수도 없다고 했습니다.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 놓인 심연입니다. 물론 말씀은 종말의 때를 상정한 말씀입니다. 마지막 추수 때에는 알곡과 쭉쟁이가 분명하게 나뉠 것이라고 성서는 말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진리는 현재에는 모호하고 진리와 비진리가 혼재해 있는 듯하지만, 그때에는 모든 것이 명확해질 겁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우리가 지금은 거울에 비추어보듯이 희미하게 보지만 그때에 가서는 얼굴을 맞대고 볼 것입니다. 지금은 내가 불완전하게 알 뿐이지만 그때에 가서는 하느님께서 나를 아시듯이 나도 완전하게 알게 될 것입니다. (1 고린 13:12)

 

 

루가는 사후 세계에 대한 구체적인 표상을 통해 진리와 비진리 사이에서 우리의 결단을 촉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지막에 부자의 요청은 모두 거부됐습니다. 만약 부활한 사람이 찾아가서 자신의 가족들에게 말하면 믿을 것이라고 그는 주장했지만, 이미 모세와 예언자들을 통해 하느님의 말씀은 선포됐다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말씀의 보편성을 다음과 같이 말한 있습니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관해서 알 만한 것은 하느님께서 밝히 보여주셨기 때문에 너무나도 명백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당신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사람들이 무슨 핑계를 대겠습니까? (로마 1: 19-20)

 

 

하느님께서 이미 하느님의 능력과 신성을 깨달을 있도록 모든 피조물들에게 이를 주셨다고 바울로는 선포합니다. 다만 우리 인간이 그러한 것에 관심을 두지 않는 것이 문제이고, 보고 듣고도 믿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조차 믿으려 하지 않는데, 하물며 눈에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겠습니까? 우리는 우리가 믿고 싶은 것만 믿고,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듣고 싶은 것만 듣고 싶어 합니다. 이러한 성향은 물론 예수님 시대에도 있었지만, 과잉 정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타나는 특징이 아닐까 생각됩니다. 오늘 우리는 어리석은 부자에게 이러한 성향을 발견할 있습니다. 이를 우리는확증편향이라고 부릅니다. ‘확증편향 자신의 경향과 주장에 일치하는 정보는 쉽게 취하면서 다른 것에 대해서는 거부하는 심리적 기재입니다. 이러한 경향이 심화되면 자신이 진리이고 다른 것은 모두 비진리가 됩니다. 자신이 보고 깨닫고 경험한 것만 진리로 여기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재가 종교나 정치와 결합될 가장 치명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사이비 종교단체와 파시즘과 같은 정치체가 만들어지는 것이 바로 이러한 성향 때문입니다. 이는 이미 우리가 욥기를 통해서도 깨닫는 바입니다. 거의 죽음 직전에 몰린 욥을 한쪽으로 몰아세우는 4명의 친구들의 공격은 정말 무섭고 치명적입니다. 거기에는 자비도 사랑도 없습니다. 오직 혐오와 비난뿐입니다. 욥이 죄인으로 낙인이 찍혀야만 끝이 나는 전쟁과도 같은 논쟁입니다. 현재 한국의 정치판도 예외가 아닌 듯합니다. 자신의 이익과 생각에 반하면 모두를 적으로 여기는 성향 말입니다. 자비가 실종된 오늘날 우리의 모습입니다. 

 

이런 상태에 빠진 사람들은 설사 죽은 가족이 부활하여 그들에게 다시 돌아와도 의심을 멈출 없습니다. 넷플릭스 영화메시아 등장하는 이스라엘 정보기관 베트요원인아비람 미국 CIA 요원인에바 이러한 확증편향의 전형을 보여주는 캐릭터입니다. 아마도 하느님께서 그들 눈앞에 실제로 출현해도 그들은 하느님조차 거부할 것입니다. 오늘 부자나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믿고 따르는 화려한맘몬이라는 표상을 확증적으로 믿기 때문에 고난 받고, 십자가에서 초라한 죄인의 모습으로 죽으신 예수를 그들의 하느님이라고 전혀 생각할 없었습니다. 그들의 메시아는 부유하고, 학식 있으며, 위엄 있고, 다윗왕처럼 권위 있는 분이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박을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루가 16:31)

 

오늘 이야기의 결론입니다. 이미 물질적 욕망에 사로잡혀 있고, 확증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은 것을 믿습니다. 돈이 만물의 척도라고 생각하는 사람들, 학벌과 출신성분이 성공을 이끈다고 확신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축복이 세상의 출세와 동일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러한확증편향 빠진 사람들에게 우리 교회는 과연 무슨 메시지를 전해야 할까요? 아마도 그들은 우리 기독교를 향해 오히려 우리가 종교적 확증편향에 빠졌다고 우리를 공격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실천하지 않는다면 그들의 주장은 신빙성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아직 우리에게 자비에 대한 갈망과 사랑에 대한 희망이 남아 있고, ‘함께구원받을 우리의 형제자매들에 대한 애정이 남아 있다면 우리는 그래도확증편향 빠진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믿음 안에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영의 분별에는 항상 사랑과 자비가 기준이 됩니다. 

 

오늘 이야기 속의 부자와 그의 가족들은 돈이면 된다는확증편향 빠져있었습니다. 살아생전에 남에게 도움을 전혀 적도 없던 사람이 죽은 후에는 아브라함에게 요청하길 라자로에게시켜서물을 찍어 자신에게 갖다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는 남을 부리는 익숙했던 사람입니다. 그는 죽어서도 라자로를 부리듯 합니다. 부자의 영혼은 저승에서도 깨달음에 이르지 못한 것이지요. 더욱더 그가 괘씸한 것은 살아생전에 자신의 집에서 그토록 버림받고 천대받던 라자로를 자신들의 가족들을 살리는 일에 이용하려 것입니다. 라자로를 무시하고 이용하려는 그의 태도는 죽어서도 변함이 없습니다. 무서운 사람입니다. 종교적 편향성에 치우쳐 있던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습을 우리는 부자에게서 발견합니다. 자비와 사랑이 없는 확증은 믿음이 아닙니다. 믿음은 은사이고 그것은 오직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입니다. 그래서 우리 기독교는 자신이 하느님을 믿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셨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물질적 축복이 하느님의 축복이 아니라 믿음이 하느님의 축복인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은 험한 세상에서 우리의 완고한 편향성을 깨부수며, 우리의 닫힌 마음, 굳은 생각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습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주시는 믿음이고 그분의 능력이십니다. 우리가 아직 사랑할 있고, 타자들에게 자비로운 마음을 가질 있다면, 우리 안에 역사하는 믿음의 힘은 우리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을 변화시키고도 남을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의 축복이 항상 우리와 함께하시길 기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26 (다해) 1

 

본기도

하느님, 주님은 주님을 찾는 이에게 빛을 비추어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가 주님의 뜻을 따라 모든 의심을 버리고 구원에 이르는 좁은 길을 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 예레 32:1-3, 6-15

1 유다 시드키야 십년에 야훼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셨다. 해는 느부갓네살 십팔년으로서 2 그가 마침 예루살렘을 포위하고 있을 때였다. 예언자 예레미야는 유다 궁궐 근위대의 안에 갇혀 있었다. 3 유다 시드키야가 이렇게 책망하면서 예레미야를 가두었던 것이다.

6 야훼의 말씀이 갇혀 있는 나에게 내렸다. 7살룸의 아들 하나멜이 너의 사촌이 아니냐? 그가 와서 너에게 아나돗에 있는 밭을 권리가 있다 하고 그것을 사라고 것이다.” 8 그러는데 야훼의 말씀대로, 사촌 하나멜이 근위대 안으로 나를 찾아와 베냐민 지방 아나돗에 있는 밭을 권리가 나에게 있다면서 그것을 사라는 것이었다.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그것이 야훼의 뜻임을 알았다. 9 그래서 아나돗에 사는 사촌의 밭을 십칠 세겔을 주고 사기로 하고 10 문서를 만들어 봉한 다음 도장을 찍고 증인 앞에서 은을 저울에 달아 주었다. 11 나는 법규에 따라 봉인된 매매계약서와 봉인하지 않은 부본을 받아, 12 사촌 하나멜과, 매매계약서에 서명한 증인과 근위대 안에 사는 모든 유다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증서를 마아세야의 손자이자 네리야의 아들인 바룩에게 넘겼다. 13 그리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바룩에게 이렇게 명하였다. 14이스라엘의 하느님이신 만군의 야훼께서 하신 말씀을 따라, 너는 봉인된 매매계약서와 봉인하지 않은 부본을 받아서 오랫동안 옹기그릇에 넣어두어라. 15 곳에 있는 집과 밭과 포도원을 다시 팔고 사게 되리라고 이스라엘의 하느님 만군의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성시_ 시편 91:1-6, 14-16

1    지존하신 분의 거처에 몸을 숨기고
.     전능하신 분의 그늘 아래 머무는 사람아,
2    주께서 피난처시요, 요새이시며
.     네가 의지하는 하느님이라고 말하여라.
3    그분이 너를 사냥하는 자의 덫과
.     죽을 병에서 건져주시어,
4    당신 날개를 덮어 아래 숨겨주시리라.
.     그의 진실하심이 너의 갑옷이 되고 방패가 되신다.
5    밤에 덮치는 무서운
.     낮에 날아드는 화살을 두려워 마라.
6    밤중에 퍼지는 염병도
.     한낮에 쏘다니는 재앙도 두려워 마라.
14“나에게 부르짖는 자를 내가 건져주며
.     나의 이름을 아는 자를 내가 높여주리라.
15  나를 부르는 자에게 대답해 주고,
     환난 중에 그와 함께 있으리니
.     나는 그를 건져주고 높여주리라.
16  그로 하여금 마음껏 오래 살게 하고
.     나의 구원을 그에게 보여주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 1디모 6:6-19

6 물론 자기가 갖고 있는 것으로 만족할 아는 사람에게는 종교가 크게 유익합니다. 7 우리는 아무것도 세상에 가지고 것이 없으며 아무것도 가지고 없습니다. 8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그것으로 만족하시오. 9 부자가 되려고 애쓰는 사람은 유혹에 빠지고 올가미에 걸리고 어리석고도 해로운 온갖 욕심에 사로잡혀서 파멸의 구렁텅이에 떨어지게 됩니다. 10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따라다니다가 길을 잃고 신앙을 떠나서 결국 격심한 고통을 겪은 사람들도 있습니다.

11 하느님의 일꾼인 그대는 이런 것들을 멀리하고 정의와 경건과 믿음과 사랑과 인내와 온유를 추구하시오. 12 믿음의 싸움을 싸워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시오. 하느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그대를 부르셨고 그대는 많은 증인들 앞에서 훌륭하게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 13 만물에게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 앞에서와 본티오 빌라도에게 당당하게 증언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나는 그대에게 명령합니다. 14 우리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그대가 맡은 사명을 나무랄 없이 온전히 수행하시오. 15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께서 친히 정하신 때에 나타나실 것입니다. 하느님은 오직 분이시고 복되신 주권자이시며 중의 왕이시고 군주 중의 군주이십니다. 16 그분은 홀로 불멸하시고 사람이 가까이 없는 가운데 계시며 사람이 일찍이 일이 없고 수도 없는 분이십니다. 영예와 권세가 영원히 그분에게 있기를 빕니다. 아멘.

17 세상에서 부자로 사는 사람들에게 명령하시오. 교만해지지 말며 믿을 없는 부귀에 희망을 두지 말고 오히려 하느님께 희망을 두라고 이르시오. 하느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셔서 즐기게 해주시는 분이십니다. 18 착한 일을 하며 선행을 풍부히 쌓고, 있는 것을 남에게 아낌없이 베풀고 기꺼이 나누어주라고 하시오. 19 그렇게 해서 자신들의 미래를 위하여 든든한 기초를 쌓아 참된 생명을 얻을 있게 하라고 이르시오.

 

 

 

복음서_ 루가 16:19-31

19 예전에 부자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화사하고 값진 옷을 입고 날마다 즐겁고 호화로운 생활을 하였다. 20 대문간에는 사람들이 들어다 놓은 라자로라는 거지가 종기 투성이의 몸으로 앉아 21 부자의 식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주린 배를 채우려고 했다. 더구나 개들까지 몰려와서 그의 종기를 핥았다. 22 얼마 뒤에 거지는 죽어서 천사들의 인도를 받아 아브라함의 품에 안기게 되었고 부자는 죽어서 땅에 묻히게 되었다. 23 부자가 죽음의 세계에서 고통을 받다가 눈을 들어보니 멀리 떨어진 곳에서 아브라함이 라자로를 품에 안고 있었다. 24 그래서 그는 소리를 질러아브라함 할아버지, 저를 불쌍히 보시고 라자로를 보내어 손가락으로 물을 찍어 혀를 축이게 해주십시오. 저는 불꽃 속에서 심한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하고 애원하자 25 아브라함은얘야, 너는 살아 있을 동안에 온갖 복을 누렸지만 라자로는 불행이란 불행을 겪지 않았느냐? 그래서 지금 그는 여기에서 위안을 받고 너는 거기에서 고통을 받는 것이다. 26 또한 너희와 우리 사이에는 구렁텅이가 가로놓여 있어서 여기에서 너희에게 건너가려 해도 가지 못하고 거기에서 우리에게 건너오지도 못한다.’ 하고 대답하였다. 27 그래도 부자는 애원하였다. ‘그렇다면 할아버지, 제발 소원입니다. 라자로를 아버지 집으로 보내주십시오. 28 저에게 다섯 형제가 있는데 그를 보내어 그들만이라도 고통스러운 곳에 오지 않도록 경고해 주십시오.’ 29 그러나 아브라함은 형제들에게는 모세와 예언자들이 있으니 그들의 말을 들으면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부자는 다시아브라함 할아버지, 그것만으로는 됩니다. 그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사람이 찾아가야만 회개할 것입니다.’ 하고 호소하였다. 31 그러자 아브라함은그들이 모세와 예언자들의 말도 듣지 않는다면 어떤 사람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 해도 믿지 않을 것이다.’ 하고 대답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