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끈질긴 기도

James Chae 2022. 10. 30. 06:54

2022.10.16. 연중 29주일

예레 31:27-34 / 시편 119:97-104 / 2디모 3:14-4:5 / 루가 18:1-8

 

끈질긴 기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본문은 가지 관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질 있는 본문입니다. 끈질기게 졸라대는 과부에게 초점을 맞추면끈질긴 과부의 비유 되고, 하느님도 사람도 두려워 않는 재판관에게 초점을 맞추면불의한 재판관의 비유 됩니다. 원래 이야기는 2절에서 6절까지가 원래 전승 자료입니다. ‘끈질긴 기도 대해 언급한 1절과사람의 아들의 재림 대해 언급한 8절은 아마도 루가가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끈질긴 기도 대한 말씀은 루가복음 11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가는하느님 나라의 도래사람의 아들의 먼저 언급한 후에 오늘 이야기를 배치했습니다. 의도는 분명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날로 늘어나는 핍박과 고난 속에 놓인 교회들을 위로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불의한 재판관조차도 끈질기게 기도하는 과부의 청을 들어주는데 하물며 정의로우신 하느님께서 마지막 날에 신자들을 외면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7절에하느님의 택한 백성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다 표현은 정확하게 과부와 당시 교회를 일치시킨 표현인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루가가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나름 어떻게 해석했는지를 있습니다. 루가는 기도보다끈질긴 기도 강조하고 있습니다. 교부 아우구스티누스도 이를 이런 관점에서 해석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권하시는 것은 긴 기도가 아니라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다. 길게 기도하는 것을 그분은 경계하셨다.” 아우구스티누스

 

사람들은 많은 말을 하면 주님께서 들어주실 알지만, 주님께서는 마태오복음 6 7-8절에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분은 우리가 청하기도 전에 무엇이 필요한지를 알고 계시기때문입니다. 그러면 이렇게 말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신데 하려 기도를 합니까? 옳은 말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역설적으로 기도할 이유를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항구적이고 지속적인 기도는 믿음에서 비롯되고, 결국에는 끈질긴 기도 기도하는 사람을 하느님 앞에 온전한 사람으로 세워가기 때문입니다. 

 

루가의 관점에서 박해의 시대에 배교를 피하고 믿음을 지키는 길은 오직 기도밖에 없습니다. 믿음이 없으면 기도할 없고, 기도하지 않으면 믿음도 세워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성령의 은사이지만, ‘지속적, 항구적이란 표현에서 인간의 의지 또한 반영됨을 있습니다. 어쩌다 한번 오래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방울 방울 지속적으로 바위 위에 떨어지는 물방울이 결국에는 바위에 구멍을 내는 것처럼, 기도는지속적이고규칙적이며항구적으로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인간의 실존에 들러붙어 있는 아픔과 고통처럼, 그리스도인의 실존에서 결코 떼려야 없는 운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기도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일주일에 교회에 와서 기도하는 . 식사 기도나 잠자기 전에 하는 기도. 이러한 기도도 기도이지만, ‘끈질긴 기도 인간의 삶을 관통하는, 인간의 운명을 넘어서는, 지난하지만, 확실한신앙의 임에 틀림없습니다. 

 

불의한 재판관과 끈질긴 과부.

고집이 만만치 않지만, 결국 누가 이겼습니까? 끈질긴 사람이 이겼습니다. 악의 끈질김 보다 끈질긴 간절함이 결국에는 악을 이겼습니다. 악은 자신이 낚은 대상을 정말 끈질기게 붙듭니다. 악이 그렇게 끈질기다면 선은 그보다 더욱 끈질겨야 하지 않을까요? 교부 시리아의 에프렘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습니다.

 

“끈질김이 두 나뭇가지를 변화시켜 제 본성에 어울리지 않는 달콤한 열매를 맺게 했습니다.” 시리아인 에프렘

 

 

끈질긴 기도 이러한변화의 있습니다. ‘끈질긴 기도 열매 맺지 못하는 나무에 열매를 맺게 합니다. 우리의 기도는 하느님 앞에서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그러므로끈질긴 기도 우리의희망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희망 우리의 기도가 세상에 사는 비록 응답되지 않더라도 언젠가는, 아니 세상의 종말에는 모든 것이 정의로 응답될 것을 믿게 합니다. 믿음 없이희망 가질 없고, ‘희망없이 믿음은 가질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끈질김속에서믿음과 소망과 사랑 발견하게 되는 것입니다. ‘간절함끈질김 사랑 없이는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도 믿음과 소망과 사랑이 세상 끝까지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결국 사랑은 모든 것을 견디게 하고, 모든 것을 인내하게 하며, 모든 것을 바라게 하고, 모든 것을 극복합니다. 사랑이 있기에 우리는 그분께 기도하고 그분의 사랑을 기대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러한 사랑을 가지고 있지는 않습니다. 모두가 그러한 희망을 말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렇게 기도하지 않습니다. 모두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도 마지막 때에 이러한 현상을 미리 예언하셨습니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과연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루가 18:8

 

 

마지막 때에 기도하는 믿음은 사라질 것입니다. 그때까지 인내하고 기도하는 사람만이 희망을 품을 있고 좌절하지 않습니다. 사랑이 메마르고, 믿음이 사라져서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는 시대. 교회 안에서조차도 서로가 서로를 믿지 못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는 시대. 아마도 이러한 시대는 루가 복음이 쓰인 시대에도 그랬지만, 오늘날은 더욱 그러한 경향이 두드러지는 같습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기도하지 않기에 우리는 서로가 서로를 너무 모르게 것입니다. 그래서 각자도생의 길을 힘겹게 외롭게 걷고 있는 것입니다. 조금만 관심을 갖고 서로를 위해 기도한다면 지금의 상황은 훨씬 긍정적으로 보일 겁니다. 자본주의의 전략은 약육강식, 각자도생이 아니던가요? 능력 있는 사람은 살아남고, 능력 없는 사람은 도태되는 세상. 이제 인간이 AI 로봇, 아바타에 의해 대체되고, 인간의 노동력이 도태되는 세상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세상이 올까?라고 생각하지만, 우리 손에 있는 핸드폰의 10 전을 생각하면 섬뜩할 정도로 기술 발전의 속도는 빠릅니다. 기술 발전의 속도를 우리 기도가 도저히 따라잡을 없을 지경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삶에 짓눌리면서도 기도하지 않습니다. 주일에 드리는 기도, 식사 기도만으로도 우리는 벌써 지쳐버린 것일까요? ‘세상의 자녀들이 저희끼리 거래하는 데는 빛의 자녀들보다 영리하다’(루가 16:8) 성경의 말씀은 그래서 옳습니다. 우리 교회가 세상의 변화를 따라가기 바쁜 것은 시대를 관통하는 성령의 역사를 깨닫는 기도가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과거에 성령의 역사에 예민함으로 시대를 앞질러 왔던 기독교가 이제 시대에 가장 도태되고 있는 아닌가 생각됩니다. 젊은 사람들은 누가 요즘 교회에 나갑니까?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물줄기를 바꾸기에 우리는 정말 역부족일까요? 

 

이민진의 소설파친코 일부를 잠깐 읽어드리겠습니다.

 

“그래도 사람들은 자신이 행운아일 거라는 희망을 품고 게임을 계속한다. 어떻게 성공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에게 화를 내겠는가. 에쓰코는 이 중요한 면에서 실패했다. 아이들에게 희망을 가지라고, 이길지 모른다는 터무니없는 일말의 가능성이라도 믿어보라고 가르치지 않았다. 파친코는 바보 같은 게임이지만, 인생은 그렇지 않았다.” (이민진의 소설 ‘파친코’에서)

 

희망

그렇습니다. 희망 없는 세상에서, 사람들은 희망을 가지고 복권을 사고, 파친코를 하면서 잡을 없는 일확천금의 희망을, 인생역전의 희망을 가집니다. 일주일에 번씩 복권으로 희망을 갖고 좌절도 경험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자신의 전체를 놓고는 희망을 가지지 않습니다. 소설에서 일본인 에쓰코는 자신의 자녀들에게 번도희망을 가지라고가르치지 않았습니다. 인생이 아무리 힘들어도 살아 만한 가치가 있다는 점을 그녀는 자녀들에게 가르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소설은 그녀의 하나 인생을 절망적으로 그립니다. 염세주의자 같은 비관이 그녀의 삶을 지배하여 희망을 전혀 가질 없게 했습니다. 

 

인생역전이 정말 돈만으로 가능한가요? 자신의 삶을 통해 말고는 성취할 것이 없는 것처럼 우리는 행동하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인생에서 무엇이 중요한지 모두가 망각한 것처럼 생각하고 행동합니다. 일본인도 아니고 한국인도 아닌 재일 한국인들은 일본에 살면서도 영원한 이방인들입니다. 귀화하지 않는 영원히 북한이나 남한의 여권을 소지해야 합니다. 그들은 어떠한 제도권 안에 있는 사업체를 갖기도, 안정된 직장에 취업하기도 어렵고, 대도시에 부동산을 소유하는 것도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그들이 유일하게 합법적으로 돈을 많이 벌기 위해 선택한 사업이 바로파친코입니다. 일본 사회에서 가장 소외된 사람들인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인들에게 희망을 파는파친코사업을 한다는 아이러니. 해방 후에 그것 외에 재일 한국인 신분으로 부자가 되는 길은 그들에게 많지 않았다고 합니다. 소설파친코 요행을 바라는파친코이야기가 아니라, 인생 자체에 희망을 가족의 이야기입니다. 주인공선자 가족들은 끝까지 가족에 대한 신뢰를 잃지 않았고, 남들이 자신들을 뭐라고 그러든, 끝까지 주어진 삶을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고생이 끝나겠지라는 것이 그들의 유일한 희망이었습니다. 그것을 놓는 순간, 그들은 모두 일본 사회에서 공중분해되어 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일반적인삶의 자리 허락되지 않았던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버티게 것은 역설적이게도 자체에 대한 희망이었습니다. 제가 보기에는 일본은 절대 변할 같지 않지만, 그들은 그래도 끝까지 희망을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지탱하는 희망이 무엇이든, 희망에는 우리 대한민국이 전혀 도움을 주고 있지 않은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우리의 땅이 있고, 우리의 국적이 있고, 우리의 말이 있고, 우리의 주권이 있는, 이곳 대한민국에서 살고 있는 우리는 재일 한국인들 보다 복을 받은 것일까요? 여기에서는 아무도 우리를 한국인이라고 무시하지 않습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우리는 자신의 국적이나 민족적 정체성으로 고민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자신이 원하면 뭐든지 기회를 가질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재일 한국인들보다 희망에 대한 수치가 너무 낮은 같습니다. 더욱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만으로 희망을 가질만한대도 자꾸 좌절하고 조급해합니다. 복권과 같은 요행에 희망을 걸기보다, 우리 자신의 삶에 희망을 거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한 것에 희망을 거시기 바랍니다. 절대로 변할 같지 않은 우리의 삶도 희망의 빛을 잃지 않는다면 반드시 끝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십시오. 희망하는 것이 있다면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절망하기에 우리는 너무 많은 하느님의 약속을 이미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직 서로를 위해 기도할 힘이 있다면,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이웃을 위해, 자기 가족을 위해 기도할 힘이 조금 남아 있다면, 우리는 희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삶은 희망 없이 무의미하게 흘려보내기에는 너무나 아름답습니다. ‘끈질긴 기도 희망을 찾는 여정 가운데 있는 우리 모두에게 하느님의 은총이 함께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

 


 

전례독서_연중29 (다해) 1

 

 

본기도

하느님, 주님께서는 믿는 사람들을 언제나 보살피시고 지켜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로 하여금 땅에 하느님의 정의와 평화가 이루어지기까지 끊임없이 기도하며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예레 31:27-34

27 앞으로 이런 날이 오리라.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이스라엘 가문과 유다 가문을 사람이나 짐승 없이 씨를 뿌려 농사짓듯이 불어나게 하리라. 28 이전에는 자나깨나 백성을 뽑고 부수고 허물고 멸하고 해치기만 하였으나, 그만큼 이제는 눈을 똑바로 뜨고 세우며 심어주리라.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29  날이 오면,
.    ‘아비가 포도를 먹으면,
.     아들의 이가 시큼해진다.’
라는 말을 하지 않게 되리라. 30 죽을 사람은 죄지은 사람이다. 이가 시큼해  사람은 포도를 먹은 사람이다. 31 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 32 계약은  백성의 조상들의 손을 잡아 이집트에서 데려내오던 때에 맺은 것과는 같지 않다. 나는 그들을 것으로 삼았지만, 그들은 나와 맺은 계약을 깨뜨리고 말았다. 귀담아들어라. 33 내가 이스라엘 가문과 맺을 계약이란 그들의 가슴에 새겨줄 법을 말한다. 내가 분명히 말해 둔다. 마음에 법을 새겨주어,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백성이 것이다. 34 내가 그들의 잘못을 다시는 기억하지 아니하고 죄를 용서하여 주리니, 다시는 이웃이나 동기끼리 서로 깨우쳐주며 야훼의 심정을 알아드리자고 하지 않아도 것이며높은 사람이나 낮은 사람이나 마음을 모르는 사람이 없으리라. 이는 말이라, 어김이 없다.”

 

 

 

성시_시편 119:97-104

97    당신의 법이 너무나도사랑스러워
.       자나 깨나 나는 말씀을 되새깁니다.
98    당신은 내편이 되시어 계명을 내게 주시고
.       원수들보다 지혜롭게 만드십니다.
99    당신의 언약을 되새김으로
.       나의 모든 스승보다도 현명해지리이다.
100  당신의 법령들을 지킴으로
.       원로들보다도 슬기로워지리이다.
101  온갖 나쁜 길에서 발길을 돌리리니
.       당신의 말씀대로 살기위 함입니다.
102  당신의 결정 거역하지 않으리니
.       당신께서 친히 가르쳐주시기 때문이옵니다.
103  당신 약속의 말씀은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        입에는 꿀보다도 답니다.
104  내가 모든 거짓된 길을 역겨워하오니,
.       당신의 법령을 깨우쳐 슬기를 얻었기 때문이옵니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디모 3:14-4:5

14 그대는 그대가 배워서 굳게 믿고 있는 진리를 지켜 나가시오. 그대는 어떤 사람들에게서 진리를 배웠는지 알고 있습니다. 15 그대도 기억하다시피 그대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익혀왔습니다. 성경은 그리스도 예수를 믿음으로써 구원을 얻는 지혜를 그대에게 있는 것입니다. 16 성경은 전부가 하느님의 계시로 이루어진 책으로서 진리를 가르치고 잘못을 책망하고 허물을 고쳐주고 올바르게 사는 훈련을 시키는 유익한 책입니다. 17 책으로 하느님의 일꾼은 모든 선한 일을 있는 자격과 준비를 갖추게 됩니다.

4:1 나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고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 그대에게 엄숙히 명령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께서 다시 나타나실 것과 군림하실 것을 믿고 그대에게 당부합니다. 2 하느님의 말씀을 전파하시오.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히 전하고 끝까지 참고 가르치면서 사람들을 책망하고 훈계하고 격려하시오. 3 사람들이 건전한 가르침을 듣기 싫어할 때가 것입니다. 때에 그들은 자기네 귀를 만족시키기 위해서 마음에 맞는 교사들을 끌어들일 것입니다. 4 그리고 진리에는 귀를 기울이지 않고 꾸며낸 이야기에 마음을 것입니다. 5 그러나 그대는 언제나 정신을 차리고 고난을 견디어내며 복음 전하는 일에 힘을 다하여 그대의 사명을 완수하시오.

 

 

 

복음서_루가 18:1-8

1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제나 기도하고 용기를 잃지 말아야 한다 이렇게 비유를 들어 가르치셨다. 

 

2 어떤 도시에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재판관이 있었다. 3 도시에는 어떤 과부가 있었는데 여자는 그를 찾아가서저에게 억울한 일을 사람이 있습니다.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십시오.’ 하고 졸라댔다. 4 오랫동안 여자의 청을 들어주지 않던 재판관도 결국나는 하느님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도 거들떠보지 않는 사람이지만 5 과부가 너무도 성가시게 구니 소원대로 판결해 주어야지.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꾸만 찾아와서 견디게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6 주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셨다. “ 고약한 재판관의 말을 새겨 들어라. 7 하느님께서 택하신 백성이 밤낮 부르짖는데도 올바르게 판결해 주지 않으시고 오랫동안 그대로 내버려두실 같으냐? 

 

8 사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 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렇지만 사람의 아들이 때에 과연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있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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