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바다에 심긴 나무: 믿음의 역설”

James Chae 2022. 10. 2. 06:14

2022.10.2. 연중 27주일

애가 1:1-6 / 시편 137 / 2디모 1:1-14 / 루가 17:5-10

 

바다에 심긴 나무: 믿음의 역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어떤 말씀을 주님께서 언급하셨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오늘 읽지 않은 17 1-3 말씀은남을 죄짓게 만들지 말라 메시지이고, 그다음은 3-4절에용서 관한 말씀입니다. 남을 시험 들게 말고, 만약 타인이 용서를 구하면 무조건 용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남이 용서를 구하면 번까지는 용서해주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완전수를 사용하여 하루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하십니다. 마태오는 이를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마태 18:22) 기록했습니다. 용서를 구하는 자에게 무한정 자비를 베풀라는 뜻입니다. 남에게 쉽게 상처를 주기도 하고, 받기도 하는 우리들은 남을 용서하는 것이 쉽지 않음을 압니다. 항상 조심하려 해도 아주 사소한 것에 상처를 주고받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남을 용서하려 해도 그게 어디 우리의 힘만으로 되던가요? 마음속에 커다란 불덩어리를 품은 속이 뒤집어지는데, 내게 상처를 입힌 사람을 쉽게 용서할 있던가요? 그래서사도들 주님께 다음과 같이 요청한 것입니다. 

 

“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루가 17:5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상처받지 않기 위해서, 남을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리 힘으로 되지 않고 오직믿음의 으로만 가능함을 말씀을 통해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들은믿음 마치 배터리를 충전하듯이 양적인 것으로 이해했던 같습니다. ‘더하거나 있는 아니라이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서 믿음을 충전해 달라는 것입니다. 성령 충만을 외치는 사람들이 성령을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같은 오류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믿음은이라고 말씀하십니다. , 믿음은많고 적고 문제가 아니라있고 없고 문제입니다. 그래서겨자씨 알만 믿음 있어도 힘을 발휘한다는 뜻입니다. 비록 겨자씨처럼 작은 믿음일지라도 믿음이 있기만 하면하느님의 있습니다. 결과는 어떻습니까? 뽕나무(또는 돌무화과나무) 뽑아서 바다에다 심을 수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나무가 어떻게 물에 심기겠습니까? 그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은 듣는 사람들이 아는 사실입니다. 주님께서는믿음의 지닌역설 이렇게 표현하신 것입니다. 도저히 불가능할 같은 것이 가능함이 되는역설’. 이것이믿음의 입니다.

 

“모든 것은 불가능한 교환에서 출발한다. 세계의 불확실성은 세계가 어디에서도 자신의 등가물을 갖지 못하고 그 어떤 것과도 교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유의 불확실성은 사유가 진리나 실재와 교환되지 않기 때문이다.” 장 보드리야르

 

 

프랑스의 철학자 보드리야르는 세기의 전환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을 이렇게 진단했습니다. 실재 세계에 대응하는 마땅한 등가물이 없는 세상. 그래서 세상은 교환이 불가능한 세상이 됐다고 말합니다. 원인이 있으면 결과가 있던 교환의 시대가 이제는 정확한 교환이 불가능한 시대로 진입했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이확인 가능한 없고, 마치 세계가 근본적인 환상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예전에는 진짜와 가짜로 구분되던 것이 이제는가짜 실재를 대신하는, 가상이 실재 세계를 대신하는시뮬라크르(simulacre)’ 시대라고 말합니다. 실재 세계와 정확하게 일치하는 등가물이 없으니 실재보다 실재 같은시뮬라크르 새로운 교환을 가능하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물물교환의 시대를 지나 화폐교환의 시대를 거쳐 이제는 화폐가 가상의 숫자로 대체되는 시대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현찰이란 양적 가치는 이제 통장에 기록된 숫자의 가치로 대체가 됐습니다. 화폐가 카드로 대체되더니, 이제는 핸드폰의 바코드 또는 QR코드로 대체가 됐습니다. 모든 상거래에는 실제적인 교환은 사라지고 단순한 숫자의 이동만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숫자를 지불하고 음식점에서 음식을 먹지만, 숫자와 음식 간에는 어떠한 등가성도 없습니다. 더욱이 음식점이나 카페에서 직접 대화를 통해 교환을 하던 방식이 이제는키오스크화면을 통해 교환 거래가 이루어지는 세상입니다. 이제 우리는 서비스조차도 실재가 아닌 가상을 통해 얻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 화폐인비트코인 가상의 일상이 가능한메타버스등과 같은시뮬라크르들이 세상의 불가능한 교환을 가능하게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셨지만, 이제 인간은 자신의 등가물로 AI 아바타를 창조하고 메타버스 속에 새로운 가상 세계를 구축해 가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와 같은 현실의 시간을 공유하면서도 공간은 완전히 현실과 다른 가상의 공간으로 진입했습니다. ‘초과 현실 실재를 대체해가고 있습니다. 삶의 역설이 아닐 없습니다.

 

역설(παράδοξος, paradox, 逆說). 

주님께서도 오늘 비유를 통해믿음 지닌 역설을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보다 너무 시대를 앞서가신 것일까요? 주님께서는 교환 불가능함을 통해 교환 가능함을 오히려 언급하고 계십니다. 그것은 보들리야르가 말한시뮬라크르 아닙니다. ‘비유의 과잉이나초과 현실 아닙니다. 나무의 뿌리를 지탱하던 믿음을 통해바다 대체됩니다. 나무는 아니라바다에도 심길 있는 교환 가능성을 획득합니다. 역설적으로 들리는 말이 실제로 오늘날 이루어지기도 했지요. ‘수경재배 벌써 진행되고 있으니 말입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이러한 말씀을 하셨을 때는 이러한 교환이 전혀 가능하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그러니 주님께서는 이를 역설로 표현하신 것입니다. 주님께서는믿음 지닌 힘이 바로 불가능한 교환을 가능한 것으로 만든다는 점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대체시킬 있는 교환 능력. 이것이 믿음이 지닌 힘이라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항상 상식적이고 합리적인 사람보다 소위믿음의 사람때문에 갈등을 겪는 경우가 많습니다. 인과의 법칙이 작동되는 상식의 세계가믿음의 세계속에 사는 사람에게는 적용이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무리해 보이고, 무모해 보이는 것입니다. 서로가 바라보는 삶의 결이 다른 것이지요. 믿음은 항상 세상에서 믿음에 대응하는 정확한 등가물이 없어 고민합니다. 눈에 보이는 , 교환 가능한 것이 믿음에서는 정확하게 적용되지 않습니다. ‘ 대체되는 교환이 가능한 것은 오직믿음의 세계뿐이기 때문입니다. 보드리야르는불가능한 교환시뮬라르크, 가상 세계에서 가능해진 세상에 대해 비판했지만, 기독교의 믿음은 현실의 교환가치를 완전히 전복시키기도 합니다. 제사를 통해, 율법의 준수를 통해 구원에 이르는 길이 있다는 유대교의 주장, 선의 행함이 구원과 등가적 가치로 존중받던 시대에서 주님께서는 그러한 가치를 완전히 전복시키십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의 구원을 행위가 아닌 믿음의 차원으로 대체시킨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 예수님의 비유에서와 마찬가지로 뽕나무가 땅이 아니라 바다에 심기는 것과 같은 교환입니다.

 

사도들은믿음을 더하여 달라고요청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믿음은 있는데 이에 대한 확신이 없다고 생각한 듯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관점에서 그들은 믿음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아직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작은 겨자씨 언급하시면서 정도의 믿음도 그들에게 없음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이미 말씀드린 대로 믿음은많고 적음 아니라있고 없고 문제입니다. 이는 정확하게 성령의 은총과 일치합니다. 믿음은 은사이기 때문입니다. 성령께서 주시는믿음 인간의 의지에서 나오는신념 다릅니다. 믿음은 사랑과 자비 그리고 순종을 근본으로 하지만, 신념은 자기 확신과확증편향’, ‘자기 의로움에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내에서믿음의 사람신념의 사람 서로 충돌하고 갈등하는 것입니다. 

 

오늘 복음서 뒷부분에종의 비유 나오는 것은 너무 적절한 것이라고 교부들은 말합니다. 결국믿음 행위를 견인하지만, 결코 이를 통해 우리가 칭찬받을 것이 없음을 분명히 합니다. 저와 같은 주님의 일을 하는 사람들, 주님의 종임을 고백하는 사람들, 하느님의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경청해야 하는 말입니다. 용서도, 사랑도, 모두 믿음의 힘으로 행하는 것이고, 이는 하느님의 은총의 선물이기 때문에 개인은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당연히 종이 해야 일을 것처럼 칭찬과 보상에 목매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선을 베풀 오른손이 일은 왼손이 모르게 하라 하셨습니다(마태 6:3). 사람들의 인정과 관심을 받고 싶어 하면 결국 사람의 영광을 쫓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부 암브로시우스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자신을 앞자리에 내세워서는 안 됩니다. 은총은 감사할 줄 알아야 하지만 본성을 간과하지 마십시오. 그대가 섬기는 일을 제법 잘했다 하더라도 할 일을 했을 뿐이니 뽐내지 마십시오. 해도 복종하고 달도 명령에 따르고 천사들도 하느님을 섬깁니다.” 암브로시우스

 

 

믿음의 으로 교회에 봉사하고, 사람들을 겸손히 섬기며, 하느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영혼의 탄생을 기뻐하고, 이웃을 사랑으로 감싸주시기 바랍니다. 용서를 구할 사람이 있다면 찾아가 용서를 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남에게 상처를 주지 않도록 매사에 하느님의 겸손을 배우십시오. ‘믿음의 믿으시기 바랍니다. 믿음은 그동안 우리가 살아왔고 익숙하게 여겼던 모든 것을 전복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삶의 모든 것에 새로운 교환을 가능하게 합니다. 육적인 것이 영적인 것으로, 나약한 것이 강한 것으로, 교만한 것이 겸손한 것으로 각각 교환되는 가능성이 믿음으로 열립니다. 그동안 우리가 중요하게 생각했던 모든 교환가치들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달라질 것입니다. 어쩌면 일상 속에서 우리가 생각하던 세상이믿음의 으로 마땅한 등가물을 찾지 못해서 방황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믿음과 현실 사이에서 가치관의 혼란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할 믿음이 가진 힘이 여러분을 지켜줄 것입니다.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는 성령께서 시간 우리에게 믿음의 은사를 허락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전례독서_ 연중27 (다해) 1

 

본기도

신실하신 하느님, 주님은 부족한 종들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믿음을 더하여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 안에 살아계시는 성령의 능력을 믿고, 담대하게 주님을 드러내며 변함없이 주님을 섬기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애가 1:1-6

1   , 그렇듯 붐비던 도성이
.    이렇게 쓸쓸해지다니.
.    예전에는 천하를 시녀처럼 거느리더니,
.    이제는 과부 신세가 되었구나.
.    열방이 여왕처럼 우러르더니
.    이제는 계집종 신세가 되었구나.
2   밤만 되면 서러워 목놓아 울고,
.    흐르는 눈물은 끝이 없구나.
.    사랑을 속삭이던 연인들조차 위로하여 주지 않고
.    벗들마저 원수가 되어 등돌리는구나.
3   유다는 욕보면서 살아오다가
.    끝내 잡혀가 종살이하게 되었구나.
.     나라 나라에 얹혀살자면
.    어디인들 마음 붙일 곳이 있으랴.
.    이리저리 쫓기다가 막다른 골목에 몰려
.    뒷덜미를 잡힌 꼴이 되었구나.
4   시온으로 오가는 길목에는 순례자의 발길이 끊어지고,
.    들리는 것은 통곡 소리뿐이구나.
.    모든 성문은 돌더미로 주저앉고,
.    사제들 입에서는 신음 소리뿐이요,
.    처녀들 입에서는 한숨 소리뿐이구나.
.    , 시온이 이렇게도 처량하게 되다니,
5   야훼께 거스르기만 하던 시온,
.    정녕 죄를 받고 말았구나.
.    시온의 원수들이 득세하여
.    이제 닥치는 대로 어린것들마저 끌어가는구나.
6  수도 시온의 영화는 어디로 갔는가.
.    지도자들은 목장을 잃은 염소처럼 떠돌며
.    원수에게 맥없이 끌려가고 말았구나.

 

 

 

성시_시편 137

1    바빌론 기슭에 앉아
.     시온을 생각하며 눈물 흘렸다.
2    언덕 버드나무 가지 위에 우리 수금 걸어 두었더니
.     우리를 잡아 사람들이 곳에서 노래하라 청하는구나.
3    우리를 끌어 사람들이 기뻐하라 졸라대면서
.   “시온 노래 한가락 불러라하였지만
4    우리 어찌 남의 나라 낯선 땅에서
.     주님의 노래를 부르랴!
5    예루살렘아,내가 너를 잊는다면
.     오른손이 말라 버릴 것이다.
6    생각 기억에서 잊어진다면,
.     만일 너보다 좋아하는 다른 것이 있다면
.     혀가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7    주여, 잊지 마소서.
.     예루살렘이 떨어지던 날에 에돔 사람들이 소리치던
.   “쳐부숴라, 바닥이 드러나게 헐어버려라.”
8    파괴자 바빌론아, 네가 우리에게 입힌 해악을
.     그대로 갚아주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9    어린 것들을 잡아다가
.     바위에 메어치는 사람에게 행운이 있을지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디모 1:1-14

1 하느님의 뜻으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가 바울로는 2 아들같이 사랑하는 디모테오에게 편지를 씁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하는 자에게 생명을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약속을 선포하는 사명을 나에게 맡기셨습니다. 하느님 아버지와 우리 그리스도 예수께서 은총과 자비와 평화를 그대에게 내려주시기를 빕니다.
3 나는 밤낮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나는 조상들과 마찬가지로 깨끗한 양심을 가지고 하느님을 섬깁니다. 4 나는 그대가 눈물을 흘리던 일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에 그대를 만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만나게 되면 기쁨은 더할 나위 없이 것입니다. 5 나는 그대의 거짓 없는 믿음을 생각하고 있습니다. 믿음은 먼저 그대의 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대도 지금 믿음을 간직하고 있다는 것을 나는 확신합니다. 6 그래서 나는 다시 그대를 깨우쳐줍니다. 내가 그대에게 안수했을 때에 하느님께서 그대에게 주신 은총의 선물을 생생하게 간직하시오. 7 하느님께서 주신 성령은 우리에게 비겁한 마음을 주시는 것이 아니라 힘과 사랑과 절제를 주십니다. 8 그러므로 그대가 우리 주님을 해서 증인이 것이나 내가 주님을 위해서 죄수가 것을 부끄러워하지 마시오. 오히려 하느님께서 주시는 능력을 가지고 복음을 전하는 일을 위해서 나와 함께 고난에 참여하시오. 9 하느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고 우리를 부르셔서 당신의 거룩한 백성으로 삼아주셨습니다. 이것은 우리의 공로로 말미암은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계획과 은총으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은총은 천지 창조 이전에 벌써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신 것이며 10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 예수께서 세상에 오심으로써 이제는 분명히 드러난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죽음의 권세를 없애버리시고 복음을 통해서 불멸의 생명을 환하게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11 나는 복음을 위해서 전도자와 사도와 교사로 임명을 받았습니다. 12 그래서 지금 나는 이런 고난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것을 부끄럽게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나는 내가 믿어온 분이 어떤 분이신지 알고 있으며 그분이 내가 맡은 것을 날까지 지켜주실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13 그대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서 얻은 믿음과 사랑을 가지고 나에게서 들은 건전한 말씀을 생활 원칙으로 삼으시오. 14 우리 안에 살아 계신 성령의 도움을 받아서 그대가 맡은 훌륭한 보화를 간직하시오.

 

 

 

복음서_루가 17:5-10

5 사도들이 주님께저희에게 믿음을 더하여 주십시오.” 하니까 6 주님께서는너희에게 겨자씨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다면 뽕나무더러뿌리째 뽑혀서 바다에 그대로 심어져라.’ 하더라도 그대로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7 너희 가운데 누가 농사나 양치는 일을 하는 종을 데리고 있다고 하자.  종이 들에서 돌아오면어서 와서 밥부터 먹어라.’ 하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8 오히려 저녁부터 준비하여라. 그리고 내가 먹고 마실 동안 허리를 동이고 시중을 들고 나서 음식을 먹어라.’ 하지 않겠느냐? 9 종이 명령대로 했다 해서 주인이 고마워해야 이유가 어디 있겠느냐? 10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하고 나서는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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