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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몸의 가시”_2024.7.7. 나해_연중14주일

James Chae 2024. 7. 7. 06:59

 

2024.7.7. 나해_연중14주일

사무한 1:1, 17-27 / 시편 130 / 2고린 8:7-15 / 마르 5:21-43

 

 

몸의 가시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낫고 있는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이미 태어나면서 부모로부터 그러한 부와 권력을 물려받은 사람들은 일반 사람들보다 출발점이 앞서 있습니다. 남들이 걸음으로 걸어가야 거리를 그들은 걸음에 갑니다. “흙수저, “금수저 하는수저계급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는 것은 부모의 영향력이 자식의 성공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그러니 사람들은 자신은 비록흙수저이지만, 자녀들 만은 교육을 통해 신분 상승 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선호하는 이유입니다. 그러나 최근의 자료들을 보면 서울에 있는 인기 대학의 인기 학과 학생의 30% 이상이금수저출신이란 자료도 있습니다. “수저계급론 교육에서부터 더욱 고착화되는 현상입니다. “개천에서 난다라는 말은 오늘날 점점 쉽지 않겠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사회의 구조는 마치 피라미드처럼 위로 올라가면 갈수록 소수의 사람들을 위한 자리만 있습니다. 그러니 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지요. 가난한 나라일수록 교육을 통한 신분 상승의 열망 때문에 교육열이 매우 높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입니다. 좋은 자리는 적은데 높이 오르고자 하는 사람은 너무나 많습니다. 남보다 부유하고, 남보다 존경받는 삶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자신의 생존을 위해 타자를 짓밟습니다. 약육강식이 지배하는 정글이나 우리 사회나 전혀 다를 것이 없습니다. 특히 한국 사람들은 지고는 사는 근성 때문에 더욱 경쟁이 치열합니다. 어디 경쟁심뿐이겠습니까? 우리 모두는 자존심이란 허황된 자만을 훈장처럼 가슴에 달고 다니며 자신의 치부가 남에게 드러나기를 꺼립니다. 남에게 자신의 약점이 드러나는 것은 남들과의 경쟁에서 지는 것만큼 수치가 아닐 없습니다. 그러나 자존심이란 허영스러운 욕망은 자기 스스로는 느끼지만, 다른 사람들에 의해서는 발견되는 특징이 있습니다. , 남들은 아는데 자신만 모르는 꼴입니다. 마치 꽃을 귀에 꽂고 가슴을 두드리며 자신의 아름다움을 뽐내는 침팬지처럼, 우리는 모두 자신의 자존심이란 꽃에 집착하여 자신의 본모습을 때가 많습니다. 자신의 본모습보다 우리는 귀에 꽂은 꽃이 자기를 드러내 준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자존심 같은 꽃을 누군가 건드리면 너무 쉽게 분노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는 비교심리 속에서 자기 자신조차도 제대로 기회를 얻지 못합니다. 남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기 위해 자신의 치부를 가리는 너무나 많은 시간과 노력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일 바쁘고 시간에 쫓기며 바쁜지도 모르면서 경쟁 사회 속에서 날마다파김치처럼 몸과 마음이 무너져 내립니다. 

 

그러나 우리는 오늘 자신의 치명적 치부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만천하에 드러내는 사도 바울로의 진솔한 고백을 봅니다. 오늘 읽은 부분은 소아시아의 에페소에서 사도 바울로가 고린토 교회에 보낸 번째 편지입니다. “눈물의 편지라는 별칭이 붙어 있는 서간은 고린토 후서 10장에서 13장에 해당됩니다. 고린토 교회의 문제에 대한 답변과 함께 예루살렘 교회에 보낼 성금 모금을 독려하고자 티도 편에 보낸 고린토 전서를 고린토 교회는 거부했습니다. 아마도 거짓 전도자들의 꾐에 빠져서 그랬을 겁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로의 사도직의 권위를 의심하게 됐습니다. 이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를 직접 방문을 합니다. 그의 번째 방문입니다. 그러나 고린토 교회는 거짓 전도자에 동조해서 사도 바울로를 홀대했고 심한 모욕감을 안겼습니다. 자신이 개척한 교회에서 외면당한 바울로의 심정은 어떠했겠습니까? 그래서 그는 에페소로 다시 돌아와서 고린토 후서 9~13장의눈물의 편지 써서 티도 편에 다시 보낸 것입니다. 눈물의 편지에서 그는 자신의 사도성을 적극적으로 설명하면서 자기 방어를 합니다. 자기 자랑을 잘하지 않던 사도 바울로의 처절한 투쟁이 여기에서 읽힙니다. 그래서 그는 오늘 읽은 편지에서 자신의 영적 체험에 대해 3인칭을 써서 겸손하게 자신의 영적 은총의 경험을 우회적으로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도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자들에게 그는셋째 하늘 까지 다녀온 체험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영적 체험으로 자신이 교만해지지 않도록 아주 조심스럽게 3인칭을 사용하여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가 사도로서 체험한 영적 은총이 어디셋째 하늘뿐이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많은 체험을 마다하고 오히려 자신이 가진 가장 치명적인 치부를 드러내기를 원했습니다. 그것은 그가 그토록 없애버리기 원했던 치부, 몸의 가시였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도성을 주장하는데 아이러니하게도 그의가시 드러낸 것입니다. 진실은 때론 부끄러울 수도 있지만, 힘은 우리가 상상하는 이상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언급한 몸의 가시 σκόλοψ τῇ σαρκί” 무엇이었는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동방교회의 4 교부 하나이고 설교의 달인이라황금 이라는 별칭으로 불리던 교부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는 가시가 사도 바울로를 박해했던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바울로의 전도 사역을 악착같이 반대했던 사람, 구리 세공장 알렉산드로(2디모 4:14), 부활이 이미 지나갔다고 주장했던 히메내오와 필레도(2디모 2:17) 등입니다. 모두 사도 바울로를 끈질기게 괴롭혔던 적수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가시육체, σάρξ 사르크스 관련된 것을 보면 적수들 뿐만 아니라 그의 육신의 고질병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는 중의적으로 해석이 가능합니다. 학자들은 그가 부활한 예수를 다메섹 도상에서 만났을 그의 눈건강이 치명타를 입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영적인 눈을 얻는 대신 육적인 눈의 건강을 잃었습니다. 눈에 고름이 나고 눈곱이 끼며 눈을 껌벅껌벅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해 보십시오. 그는 한없이 초라한 외모로 비쳤음에 틀림없습니다. 율법도악성 피부병 환자와 고름을 흘리는 사람 부정하다고 규정했습니다. (민수 5:2) 율법은 병이 모두 사람의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 그의 외모와 말의 어눌함 때문에 거짓 전도자들은 그를 업신여기고 공격했을 겁니다. 그들은 사도 바울로보다 외모와 말이 수려했고 능숙한 말솜씨로 사람을 현혹시켰을 겁니다. 그러니 그리스 지식에 충만했던 부유한 고린토 교인들은 사도 바울로의 내면을 보지 못하고 거짓 전도자들의 외모와 현란한 말솜씨에 금방 현혹되고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가 고린도 전서 4 20절에서하느님 나라의 능력은 말이 아니라 능력에 있다라고 외친 이유입니다. 

 

육신의 때문이든, 아니면 그를 괴롭혔던 적수들 때문이든 간에 가시 평생 사도 바울로에게는 발의 차꼬같이 그를 괴롭혔던 것만은 분명합니다. 고통이 얼마나 심했던지 그는 번이나 주님께 이를 제거해 주십사 기도했습니다. ‘ 완전수입니다. 번이 아니라 기도가 충분하고 완전할 정도로기도의 임계점 다다를 때까지 기도했다는 뜻입니다. 그러나 그는 가시와 씨름하는 과정에서 가시가 결국 자신에게 유익이었음을 나중에 깨닫게 됩니다. 자신의 치부와 부끄러움이 오히려 하느님 안에서 자랑이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의 치부를 통해 하느님의 귀중한 진리를 알게 됩니다.

 

“내 권능은 약한 자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 2 고린 12:9 b

 

 

그는 가시로부터 은혜가 족하다는자족하는 마음과 겸손함을 배웠고, 약함을 통해 역사하시는 하느님의 권능 또한 체험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2 고린 12:9 c

 

 

이와 같이 그가 고린토 교인들에게 사도로서의 권위의 증거로 내세운 것은셋째 하늘 경험도, 부활한 예수를 만난 자랑도, 병고침의 은사도, 기적 행함의 은사도, 자신의 업적도, 성서에 대한 지식도, 자신의 출신과 신분에 대한 자랑도 아니었습니다. 그는 오히려 자신의 가장 숨기고 싶은 치부였던가시, 치료할 없는 가시를, 남들이 흉볼 있는 자신의 단점을 적극적으로 드러내면서 자신의 사도직을 옹호하고 있습니다. 그의 진심이 통한 때문일까요. 고린토 교회는 티토로부터 눈물의 편지 받고 거짓 전도자를 쫓아냈으며 회개하고 사도 바울로와 간절히 다시 화해하기를 바랐다고 성서는 기록합니다. 기쁨에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후서 1장에서 9장까지화해의 편지 보낸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가 자신의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자신의 사도성을 옹호했던 것은 그가 단지 사도로서의 자신의 신분과 자존심을 지키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사도성이 도전받는 순간 자신이 전한 복음의 진실성조차 의심받을 있음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이 사도임을 주장한 것이 아니라 사도로서 자신이 전한 복음이 진실됨을 주장한 것입니다. 자신이 거짓말하는 사람이 아님을 말하기 위해 그는 자신의 숨기고 싶은 치부를 솔직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인지 그가 정확하게 기록하지 않은 것은 그의 편지를 받는 고린토 교인들이 이미 가시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가 편지를 고린토에 보낼 그것을 현대에 있는 우리도 읽을 줄은 미처 몰랐을 겁니다. 아마 그것을 생각했다면 사도 바울로는 우리를 위해서 가시 무엇이었는지 분명히 밝혔을 겁니다. 그러니 우리에게는 가시가 무엇인지 영원히 비밀로 남지만 그것이 그의 숨기고 싶은 치부였음은 확실합니다. 복음의 열정에 불타는 사도 바울로는 이렇게 자신의 치부조차도 복음사역을 위해 숨김없이 드러낸 것입니다.

 

고린토 전서와 고린토 후서를 읽고 묵상하면, 행간에 숨은 긴장감들 때문에 가슴이 미어질 정도로 진한 감동을 느낍니다. 사도 바울로나 고린토 교회 교인들이나 모두가 정말 하느님 앞에 진지함을 가지고 있었구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소중히 여겼고, 자신들의 잘못을 빨리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모두 하느님 앞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쉽게 유혹도 받았지만, 쉽게 뉘우칠 줄도 알았습니다. 그들은 모두 회개 , 메타노이아 μετάνοια 의미를 정확하게 알았습니다. 인간이 죄와 유혹에 쉽게 빠질 있는 개연성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그것을 깨달았을 때는 빨리 방향을 수정할 있는 용기와 유연성. 그것은 바로 겸손으로 가능한 것입니다. 자신의 자존심을 내려놓고, 자신의 치부조차도 자랑할 있는 진실된 사도 바울로의 고백과 같이, 우리의 치부를 하느님 앞에 솔직히 내려놓고 우리의 자존심이라는 허영을 버릴 우리도 사도 바울로의 겸손을 조금이나마 배울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도 처음부터 그렇게 겸손하지 않았음이 오히려 위로가 됩니다. 사도 바울로 같은대사도조차도 자신의 치부를 치료해 달라고 하느님께 끝까지 매달렸다는 사실이 제게 위안을 줍니다. ‘대사도 그렇게 기도했다면 우리도 우리의 치부를 위해, 그것을 없애달라고 하느님께 먼저 기도해야 것입니다. 그가 기도의 임계점까지 충분하게 기도했던 것을 상기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했다고 기도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주님께서 기도 응답을 주실 때까지가 기도의 임계점입니다. 지치지 않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우리의 기도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기도 응답의 임계점 다다를 때까지 우리는 기도할 뿐입니다. 주님께서 그것을 치료해 주시든, 아니면 은혜가 그것으로 족하다라고 말씀하시든 충분한 기도는 임계점에서 반드시 응답됩니다.

 

우리는 6 중순부터 시작해서 8 말까지 우리 교우들을 힘들게 하는 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하계 특별 기도 기간] 설정하고 계속해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어제 토요일까지가 “14 기도였습니다. 우리는 포기하지 않고 8 말까지 기도할 예정입니다. 몸이 아픈 교우들을 위해, 정신과 마음이 아픈 교우들을 위해, 경제적으로 힘든 교우들을 위해 우리의 기도가 임계점에 다다를 때까지 기도할 것입니다. 몸의 아픔이나 경제적 고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커다란 치부이며 약점입니다. 우리에게 그러한 치부를 극복할 힘을 주시기를 우리는 기도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몫이고 응답은 하느님의 몫입니다. 그분의 때에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 각자에게 응답해 주실 겁니다. 사도 바울로가 믿었던 하느님이나 우리가 믿는 하느님은 모두 분이십니다. 사도 바울로에게 말씀하셨던 하느님을 우리는 믿고 신뢰합니다. 이러한 기도를 통해 우리 교회가 선한 방향으로 성장하고 하느님의 몸으로서의 기능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연중14 (나해) 1

 

본기도

하느님,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욱 좋은 것을 베풀어주시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가장 좋은 선물인 성령을 내리시어 항상 주님의 자녀로서 풍성한 삶을 살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무하 5:1-5, 9-10

이스라엘 여러 족속이 모두 헤브론으로 다윗을 찾아와 아뢰었다. “우리는 임금님과 골육입니다. 2 전에 사울이 우리의 왕이었을 때에도 우리 이스라엘을 거느리고 출전하신 것은 임금님이었습니다. 야훼께서도 임금님께너는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로서 이스라엘의 영도자가 되라.’ 하지 않으셨습니까?” 3 이리하여 다윗 왕은 헤브론으로 찾아온 이스라엘의 모든 장로들을 맞아 야훼 앞에서 조약을 맺었고, 그들은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았다.
4
다윗은 나이 삼십에 왕위에 올라 사십 년을 다스렸다. 5 헤브론에서 개월 동안 유다를 다스렸고, 예루살렘에서는 삼십삼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
5:1-3, 6-10 대해서는 1역대 11:1-9 참조.

 

 

 

성시_시편 48

1    하느님의 거룩한 ,
.     도성 안에서
.     그지없이 찬미받으실 주님,
.     크시고 크시어라.
2    아름다운 봉우리는 세상의 즐거움이며
.     북녘 시온산은 대왕의 도성이니,
3    하느님께서 몸소 성에 계시며,
.     스스로 성채이심을 밝히셨다.
4,5 왕들이 무리지어 밀려 왔다가도
.     보자마자 겁에 질려
.     혼비백산 뿔뿔이 도망쳤다.
6,7 해산하는 여인처럼
.     떨리는 걷잡지를 못하였고,
.     동풍에 휘말리어 깨지는
.     다르싯의 배와도 같았다.
8    우리 하느님의 도성,
.     만군의 하느님의 도성에 보니
.     과연 듣던대로 성을 영원토록 굳게 세우셨다.
9    하느님, 우리가 당신의 성전에서
.     당신의 사랑을 되새깁니다.
10  주여, 당신의 이름에 어울리게
.     주님을 찬양하는 소리 끝까지 들립니다.
.     당신의 하시는 일은 오로지 옳사오니,
11  당신의 공정하신 심판을 시온산은 기뻐하고
.     유다의 성읍들은 즐거워합니다.
12  시온성을 돌고 돌며
.     성의 망대들을 헤아려 보아라.
13   성벽 익히 보고,
.     성루 유심히 보았다가
.     후손들에게 일러 주어라.
14이렇듯이 하느님은 영원히 우리의 하느님이시며,
.     영원히 우리를 인도 하시리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고린 12:2-10

2 내가 아는 그리스도 교인 하나가 십사 전에 셋째 하늘까지 붙들려 올라 일이 있었습니다. -몸째 올라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모릅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알고 계십니다.- 3 나는 사람을 압니다. -몸째 올라 갔는지 몸을 떠나서 올라갔는지 나는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아십니다.- 4 그는 낙원으로 붙들려 올라가서 사람의 말로는 표현할 없는 이상한 말을 들었습니다. 5 나는 이런 사람을 자랑하려고 하며 자신에 관해서는 나의 약점 밖에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6 내가 다른 것도 자랑할 마음이 있어서 자랑한다 하더라도 사실대로만 말할 것이기 때문에 내가 어리석은 사람이 까닭은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내게서 보고 듣고 이상으로 나를 평가하게 될까 나는 자랑을 그만하겠습니다. 7 내가 굉장한 계시를 받았다 해서 잔뜩 교만해질까봐 하느님께서 몸에 가시로 찌르는 같은 병을 하나 주셨습니다. 그것은 사탄의 하수인으로서 나를 줄곧 괴롭혀 왔습니다. 그래서 나는 교만에 빠지지 않게 되었습니다. 8 나는 고통이 내게서 떠나게 해주시기를 주님께 번이나 간청하였습니다. 9 그러나 주님께서는너는 이미 은총을 충분히 받았다. 권능은 약한 안에서 완전히 드러난다.하고 번번이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게 머무르도록 하려고 더없이 기쁜 마음으로 나의 약점을 자랑하려고 합니다. 10 나는 그리스도를 위해서 약해지는 것을 만족하게 여기며, 모욕과 빈곤과 박해와 곤궁을 달게 받습니다. 그것은 내가 약해졌을 오히려 나는 강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서_마르 6:1-13

1 예수께서 곳을 떠나 제자들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셨다. 2 안식일이 되어 회당에서 가르치시자 많은 사람이 말씀을 듣고 놀라며 사람이 어떤 지혜를 받았기에 저런 기적들을 행하는 것일까? 그런 모든 것이 어디서 생겨났을까? 3 사람은 목수가 아닌가? 어머니는 마리아요, 형제들은 야고보, 요셉, 유다, 시몬이 아닌가? 그의 누이들도 우리와 같이 여기 살고 있지 않은가?” 하면서 좀처럼 예수를 믿으려 하지 않았다. 4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서나 존경을 받는 예언자라도 자기 고향과 친척과 집안에서만은 존경을 받지 못한다.” 5 예수께서는 거기서 병자 사람에게만 손을 얹어 고쳐주셨을 , 다른 기적은 행하실 없었다. 6 그리고 그들에게 믿음이 없는 것을 보시고 이상하게 여기셨다.
뒤에 예수께서는 여러 촌락으로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시다가 7 열두 자를 불러 더러운 악령을 제어하는 권세를 주시고 둘씩 짝지어 파견하셨다. 8 그리고 여행하는 지팡이 외에는 아무것도 지니지 말라고 하시며 먹을 것이나 자루도 가지지 말고 전대에 돈도 지니지 말며 9 신발은 신고 있는 것을 그대로 신고 속옷은 벌씩 껴입지 말라고 분부하셨다. 10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디서 누구의 집에 들어가든지 고장을 떠나기까지 집에 머물러 있어라. 11 그러나 너희를 환영하지 않거나 너희의 말을 듣지 않는 고장이 있거든 곳을 떠나면서 그들에게 경고하는 표시로 너희의 발에서 먼지를 털어버려라.” 12 말씀을 듣고 열두 제자는 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고 가르치며 13 마귀들을 많이 쫓아내고 수많은 병자들에게 기름을 발라 병을 고쳐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