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6.23. 나해_연중12주일
사무상 17: 32-49 / 시편 9:9-20 / 2고린 6:1-13 / 마르 4:35-41
“지금이 바로 구원의 날”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사도 바울로는 고린도후서 10-13장까지 “눈물의 편지”를 써보낸 후에 고린토로부터 기쁜 소식을 듣습니다. 고린토 교회가 회개를 하고 사도 바울로와 화해하길 간절히 바란다는 전갈이었습니다. 이에 1장부터 9장까지 그는 “화해의 편지”를 써서 보냅니다. 어떤 이유에서 C서간과 D서간의 순서가 바뀌었는지 확실치 않지만, 고린토후서는 10-13장 “눈물의 편지”를 먼저 읽고, 1-9장 “화해의 편지”를 읽으면 그 의미가 더 잘 다가옵니다.
사도 바울로는 구원의 현재성에 대해 오늘 우리에게 말하고 있습니다. 구원받은 사람답게 현재를 살기 위해 그는 그리스도인의 처신 방법을 제시합니다. 한 마디로 “구원의 현재”를 사는 사람은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살지 않고 우리를 위해 죽었다가 다시 일으키심을 받은 주님을 위해 산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예시로 그는 사도직을 수행한 자기 자신과 동역자들의 예를 3절에서 10절까지 설명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사도 바울로가 자신을 자랑하려고 한 말이 아님을 우리는 압니다. 그 자신이 사도직을 수행한 것은, 첫째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의 자발적 실천이었고, 두번째는 “성령과 꾸밈없는 사랑,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을 의지한 결과라고 밝힙니다. 하나는 자기의 자유의지를 선한 방향으로 고양시킨 결과이고, 다른 하나는 전적으로 하느님의 능력에 의존한 것입니다. 인간의 노력과 하느님의 은총이 결합하여 협력하여 선을 이룬 것입니다.
그는 은총을 기다리며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겸손과 사랑의 실천을 가르치면서 또한 본인이 행동으로 그렇게 실천했습니다. 말만 앞서는 사람이 아니라 말과 행동이 함께 움직인 것입니다. 그가 환란과 역경과 궁핍을 이겨낸 것은 바로 이 두 가지가 결합되어 일궈낸 역사였습니다. 말과 지식이 넘쳐나서 서로 파벌을 만들고 다투기만 했던 고린토 교회에 그는 헌신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에 기대는 겸손도 동시에 가르친 것입니다.
순결, 지식, 끈기, 착한 마음.
이러한 마음은 사도직을 맡은 자에게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디 사도에게만 요구되는 덕목이겠습니까? 이는 모든 “그리스도의 봉사자”들에게 요구되는 덕목입니다. 순결한 마음이 먼저이고, 그 위에 하느님을 아는 지식이 더해집니다. 그리고 끈기와 인내는 순결한 지식에 의해 가능하고, 그러한 인내 가운데 선한 마음으로 사람들에게 친절을 베풀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순결은 사욕이나 사념에 휩쓸리지 않고 하느님 앞에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입니다. 하느님을 위해 헌신하지만 그 헌신이 물질적 축복이나 세속적 명예를 얻기 위함이 아닙니다. 사도 바울로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린토 교인들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사도직으로서 당연히 요구할 수 있는 권리를 그들에게 주장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텐트를 치는 일을 직접하며 자신의 생계도 책임을 졌습니다. 사도로서 당연히 받을 대우를 내려놓고 겸손을 택했습니다. 그런 그를 거짓 전도자들은 그가 사도직의 권위가 없어서 그렇다고 이간질을 했습니다. 오늘 사도 바울로가 자신의 사도직에 대한 고충들을 이야기 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 이해될 수 있습니다. 그는 환대보다 천대를 더 많이 받았던 인물입니다. 어떤 학자는 그가 그리스도의 빛을 본 순간 부활하신 예수를 믿게된 것과 동시에 그의 눈의 건강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그가 오랫동안 고치길 기도했던 고질병이 “안질”이었을 가능을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눈병으로 그의 외모는 형편없고 권위도 없어 보였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속사람은 그러한 것에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그는 말에 어눌한 대신 글에 뛰어났습니다. 그러니 거짓 전도자들은 그의 초라한 겉사람의 모양만을 보고 그의 권위를 얕잡아본 것입니다.
그런 그가 자신은 “구원의 현재”를 살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구원의 날이면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현재에 집중할 수 있습니다. 현재는 악한 길에서 돌아서 하느님의 자비로 나아갈 때입니다. 현재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비로 우리를 기다리시는 때입니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그때에는” 그 자비가 진노로 바뀔 것입니다. 그때에는 인간의 생각과 말과 행위 등이 철저히 하느님 앞에서 심판을 받을 때입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로는 지금이 바로 구원의 때이고, 자비의 때임을 강조한 것입니다. 이러한 마음으로 마치 오늘이 세상의 마지막 날인 것처럼 진지하게 오늘을 살아내기. 그러한 현재가 하루 하루 쌓이다보면 언젠가 주님의 날이 현재에 도래함은 당연합니다. 하느님께는 하루가 천 년같고, 천 년이 하루같습니다. 하느님은 늘 살아 있는 자의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은 “영원한 현재”에 존재하십니다. 이 말은 하느님께서 순차적으로 흘러가는 시간의 연속성 속에 종속되지 않으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모든 시간의 근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은 시작과 끝이십니다. 시간조차 그분에게서 온 것입니다. 모든 것은 그분에게서 시작되고 그분에게서 마무리 됩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미래에 이루어질 어떤 사건이 아니라 항상 현재의 사건이 됩니다. 내일이란 시간은 오늘의 관점에서 아직 오지 않은 시간일 뿐입니다. 없는 것은 현재 있는 것보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지금 현재가 바로 생명에게 가장 합당한 때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고자 하면 내일이 아니라 오늘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읽고자 한다면 오늘 읽으시기 바랍니다. 선행을 베풀고자 한다면 바로 오늘 선행을 베푸시기 바랍니다. 말보다 행위가 더 앞서는 사람은 그러해야 합니다.
“고린토의 교우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다 말하였고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2 고린 6:11
이제 사도 바울로는 자신의 속마음을 허심탄회하게 고린토 교인들에게 말했다고 말합니다. 구원의 현재를 사는 사람답게 옹졸한 마음을 버리고 넓고 아량있는 마음을 가지라고 권면합니다. 바울로에 대해 그간 고린토 교인들이 가졌던 앙금을 털어버리고 넓은 마음을 가지고 자신과 완전히 화해하자고 제안합니다. 자기 자랑같지만 사도 바울로는 고린토 교회에 있을 때 정말 넓은 마음으로 그들에게 아량을 베풀었던 것같습니다. 자기 자랑을 하지 않는 사도 바울로가 사도직을 수행했던 자신을 이렇게 적극적으로 변호하는 것을 보면 고린토 교인들의 상태가 어떠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화해 또한 현재형이기에 상호 넓은 마음으로 서로를 품어주자고 말합니다. 이를 그는 부모가 자녀에게 타이르듯 권면한다고 말합니다.
이런 목자를 둔 고린토 교회는 참 행복한 교회라는 생각이 듭니다. 아직도 속이 좁아 겉사람에 사로잡혀 있는 제 자신에게도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도 바울로의 발톱의 때만큼 만이라도 그분을 닮고 싶다는 마음이 듭니다. 예수을 닮는다는 것은 저로서 생각도 못하지만, 그래도 인간인 사도 바울로는 저의 푯대로 삼고 싶습니다. 그러므로 부족한 저를 위해서도 여러분에게 기도를 부탁을 드립니다. 저도 넓고 깊은 아량 있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 제가 넓어지고 깊어지고 높아지는 만큼 여러분 또한 고린토 교인들처럼 좋은 목자를 얻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기도가 저를 만들 것이고, 저는 여러분을 위해 기도함으로써 서로가 기도 가운데 함께 세워갈 수 있을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2 고린 6:1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말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의 은총을 받은 사람이 오히려 선행과 자비행에 인색해진 것을 경고한 것입니다. 한마디로 은총을 자기 자신만을 위한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에게 경고한 것입니다. 열 사람의 나병환자가 치료를 받았지만, 예수님께 감사한 사람은 오직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간절할 때는 하느님께 간곡히 매달리다가 문제가 해결되면 금방 잊어버리는 자들이 이러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큰 은총은 물론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런데 자신은 그 은총을 받았는데 남에게 그것을 나눠주는 데는 주저합니다. 종교의 자유가 있고, 자유의지가 있으니 우리는 너무나 구원의 은총을 남에게 강권하는 데 주저합니다. 물론 믿지 않는 사람들도 그러한 강요를 받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러나 그들의 거부와 별도로 우리에게 복음의 사명은 은총에 대한 당연한 의무입니다. 그래서 여기에 지혜가 필요합니다. 복음은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으로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너희도 이와 같이 너희의 빛을 사람들 앞에 비추어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찬양하게 하여라.” 마태 5:16
우리 안에 그리스도의 빛이 있기 때문에 그 빛은 우리의 행실을 통해 사람들에게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그것이 “착한 행실”이라고 마태오 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은총을 받았으면 당연히 “착한 행실”과 “자비행”이 따라야 합니다. 우리가 거져 받았으니 우리도 거져 베풀어야 합니다. 주위를 살펴보면 여러분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경제 사정이 안 좋을 때는 더욱 그러합니다. 이웃이 물질적으로, 또는 건강의 문제로 아파하면 함께 그 고통을 나누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이 하지 않는 길입니다. 하느님께 “배은망덕한 사람”이란 말을 들을 수는 없지 않습니까?
“지금이 구원의 날”이며, 지금이 바로 “착한 행실”을 베풀 때입니다. 우리가 주일에만 잠깐 서로를 만나기 때문에 서로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지 못하지만, 어려운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아픔과 어려움을 혼자서 감내하고 있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환하게 웃고 있지만 속은 타들어가는 아픔을 느끼는 사람들이 넘쳐납니다. 구원은 우리가 죄에서 해방되어 의로워지는 것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모든 어그러진 것들,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서 무너진 것들을 다시 세우는 것입니다. 우리의 건강도, 우리의 경제적 사정도, 우리의 자녀 문제도… 우리 인간 실존에서 발생되는 모든 어그러진 것들을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로 세우는 것 또한 현재적 구원의 의미입니다. 이것이 하느님의 나라의 현재성이고, 하느님의 통치가 우리의 일상 속에도 미친다는 것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말한 “정의의 무기”는 곧 “의로움의 무기”입니다. 오른손에는 의로움의 “기쁨”이, 왼손에는 의로움을 세우는 “아픔”이 동시에 있습니다. 잘라낼 것은 반드시 잘라내야 합니다. 도려낼 것은 반드시 도려내야 남은 것들도 온전해 집니다. 우리의 욕망, 욕심, 시기, 질투, 의심, 미움, 다툼, 이기심 등은 왼손에 든 의로움의 무기로 완전히 잘라 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른손에 든 의로움의 무기로 우리의 실존을 기쁨과 감사로 채워가시길 빕니다. 그러면 우리는 구원의 미래를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미래만 바라보는 사람들이 아니라, 현재에서 하느님의 구원의 기쁨을 맛보는 사람들이 될 것입니다. 두려워 마십시오. 주님께서 함께하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받은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아가시기 바랍니다.”(에페 4:1)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연중12주일 (나해) 1
본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주님은 우리를 온갖 유혹과 위험에서 보호하시나이다. 비오니, 우리에게 굳센 믿음을 주시어 모든 절망과 두려움에서 지켜주시고 인도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사무상 17:32-49
32 다윗이 사울에게 말하였다. “저자 때문에 상심하지 마십시오. 소인이 나가 저 불레셋 놈과 싸우겠습니다.” 33 그러나 사울은 다윗을 말리며 말했다. “네가 나가 저 불레셋 놈과 싸우다니, 어림도 없는 일이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싸움으로 몸을 단련해 온 자인데, 너는 아직 나이 어린 소년이 아니냐?”
34 그러나 다윗은 굽히지 않았다. “소인은 아버지의 양을 쳐왔습니다. 사자나 곰이 나타나 양 새끼를 한 마리라도 물어가면 35 소인은 한사코 뒤쫓아가서 그 놈을 쳐 그 아가리에서 양 새끼를 빼내곤 했습니다. 그놈이 돌아서서 덤벼들면 턱수염을 휘어잡고 때려죽였습니다. 36 소인은 이렇게 사자도 죽이고 곰도 죽였습니다. 저 불레셋의 오랑캐놈도 그렇게 해치우겠습니다.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 거느리시는 이 군대에게 욕지거리를 퍼붓는 자를 어찌 그냥 내버려두겠습니까?” 37 계속해서 다윗이 말하였다. “사자와 곰으로부터 소인을 살려내신 야훼께서 저 불레셋 놈에게서도 소인을 살려내실 것입니다.” 그제야 사울이 다윗에게 허락을 내렸다. “그러면 나가거라. 야훼께서 너와 함께 하시기를 빈다.”
38 사울은 자기 군복을 다윗에게 입힌 다음, 머리에는 놋투구를 씌워주고 몸에는 갑옷을 입혔다. 39 그리고 자기 칼을 다윗의 군복에 채워주었다. 그러나 다윗은 이런 것을 입어본 일이 없었으므로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다윗은 사울에게 “이런 것은 입어본 적이 없습니다. 이래 가지고는 몸을 제대로 움직일 수가 없습니다.” 하고는 그것을 모두 벗어버렸다. 40 그리고 다윗은 자기의 막대기를 집어 들고 개울가에서 자갈 다섯 개를 골라 목동 주머니에 넣은 다음 돌팔매 끈을 가지고 그 불레셋 장수 쪽으로 걸어갔다. 41 불레셋 장수도 방패 당번을 앞세우고 한 걸음 한 걸음 다윗에게 다가왔다. 42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건너다보고 볼이 붉은 잘생긴 어린아이라는 것을 알고는 우습게 여겨, 43 “막대기는 왜 가지고 나왔느냐? 내가 개란 말이냐?” 하고는 자기 신의 이름을 부르며 다윗을 저주하였다. 44 그리고 불레셋 장수는 다윗을 을러메었다. “어서 나오너라. 네 살점을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마.” 45 그러나 다윗은 불레셋 장수에게 이렇게 응수하였다. “네가 칼을 차고 창과 표창을 잡고 나왔다만, 나는 만군의 야훼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네가 욕지거리를 퍼붓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느님의 이름을 믿고 나왔다. 46 오늘 야훼께서 너를 내 손아귀에 넣어주셨다. 나야말로 네놈을 쳐서 목을 떨어뜨리고 네 시체와 불레셋 전군의 시체를 하늘의 새와 들짐승의 밥으로 만들어주리라. 그리하여 이스라엘이 모시는 하느님이 어떤 분이신지 천하에 알리리라. 47 여기 모인 모든 사람은 이제 야훼께서는 칼이나 창 따위를 써서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리라. 야훼께서 몸소 싸우시어 네놈들을 우리 손에 넘겨주실 것이다.”
48 불레셋 장수가 한 걸음 한 걸음 다가오자, 다윗은 재빨리 대열에서 벗어나 뛰쳐나가다가 49 주머니에서 돌 하나를 꺼내어 팔매질을 하여 그 불레셋 장수의 이마를 맞혔다. 돌이 이마에 박히자 그는 땅바닥에 쓰러졌다.
성시_시편 9:9-20
9 주여,
. 억울한 자의 요새 되시고 ◯
. 곤궁할 때 몸 담을 성채 되소서.
10 주여,
. 당신을 찾는 자를 아니 버리시기에, ◯
. 당신 이름 받드는 자 그 품에 안깁니다.
11 시온에 계시는 주님께 찬미하여라. ◯
. 그 하신 일들 만민에게 모두 알려라.
12 무죄한 피를 갚으시는 분께서
. 그들을 잊지 아니하시고 ◯
. 불쌍한 이의 울부짖음을
. 모르는 체하지 않으신다.
13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 원수들에게 당하는 이 억울함을 살피시며, ◯
. 죽음의 문턱에서 나를 끌어내소서.
14 구해주신 그 일을 한껏 기뻐하며
. 아끼시는 이 수도 시온의 성문에서 ◯
. 끝없이 당신을 찬양하리라.
15 저 민족들은 저희가 판 구덩이에 빠지고 ◯
. 저희가 친 덫에 걸리리라.
16 주께서 공정한 재판으로 그 모습을 드러내시고 ◯
. 악한 자는 자기가 한 일로 걸려들리라.
17 하느님을 저버린 저 민족들,
. 죽음의 나라로 물러가거라. ◯
. 악인들아, 너희도 물러가라.
18 가난한 사람, 아주 잊혀지지 아니하고 ◯
. 억눌린 자의 희망, 영영 헛되지 아니하리라.
19 주여! 일어나소서. 사람이 우쭐대지 못하게 하소서. ◯
. 저 민족들로 하여금 당신 앞에서 심판받게 하소서.
20 주여! 저 민족들을 혼내 주시고 ◯
. 스스로 사람에 지나지 않음을 깨닫게 하소서.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고린 6:1-13
1 우리는 하느님과 함께 일하는 사람으로서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여러분이 받은 하느님의 은총을 헛되게 하지 마십시오.
2 하느님께서는,
. “너에게 자비를 베풀 만한 때에
. 네 말을 들어주었고
. 너를 구원해야 할 날에 너를 도와주었다.”
. 이사 49:8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이 바로 그 자비의 때이며 오늘이 바로 구원의 날입니다. 3 우리가 하는 전도 사업이 비난을 받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사람들의 비위를 상하게 하는 일은 조금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4 우리는 무슨 일에나 하느님의 일꾼으로서 일할 따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환난과 궁핍과 역경도 잘 참아냈고 5 매질과 옥살이와 폭동을 잘 겪어냈으며 심한 노동을 하고 잠을 못 자고 굶주리면서도 그 고통을 잘 견디어냈습니다. 6 우리는 순결과 지식과 끈기와 착한 마음을 가지고 성령의 도우심과 꾸밈없는 사랑과 7 진리의 말씀과 하느님의 능력으로 살고 있습니다. 두 손에는 정의의 무기를 들고 8 영광을 받거나 수치를 당하거나 비난을 받거나 칭찬을 받거나 언제든지 하느님의 일꾼답게 살아갑니다. 우리는 속이는 자 같으나 진실하고 9 이름 없는 자 같으나 유명하고 죽은 것 같으나 이렇게 살아 있습니다. 또 아무리 심한 벌을 받아도 죽지 않으며 10 슬픔을 당해도 늘 기뻐하고 가난하지만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만들고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지만 사실은 모든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11 고린토의 교우 여러분, 나는 여러분에게 숨김없이 다 말하였고 내 마음은 여러분에게 활짝 열려 있습니다. 12 여러분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이 옹색한 것이 아니라 여러분이 자기 마음을 스스로 옹색하게 만들었습니다. 13 나는 여러분을 내 자녀처럼 생각하고 말합니다. 여러분도 우리와 같이 마음을 활짝 여십시오.
복음서_마르 4:35-41
35 그 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 하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둔 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 가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40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41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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