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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발(emergance)과 에피파니”_2025.1.5. 다해_공현대축일(성탄2주일)

James Chae 2025. 1. 5. 05:37

 

2025.1.5. 다해_공현대축일(성탄2주일)

이사 60:1-6 / 시편 72:1-7, 10-14 / 에페 3:1-12 / 마태 2:1-12

 

창발(emergance) 에피파니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이전 단계에서는 없던 성질이 단계에서 갑자기 나타나는 현상을창발(創發), 또는 발현(發現)”이라 합니다. 영어로는 emergance라고 하지요. 이렇게 용어 설명으로 설교를 시작하는 것은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와 연관이 깊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창발성은 과학적 실험과 관측에서도 일어나는 현상이고, 사회학적으로 생물학적으로도 종종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물론 이렇게 창발이 발생하면 절대로 이전 단계로 환원이 불가능하다는 것이 현상의 특징입니다. 실험과 관측이란 좁은 프레임을 가진 과학으로는 이러한 설명이 더욱 불가능합니다. 진화론에 따르면 원숭이가 인간으로 진화되는 이러한 창발이 여러 발현된 것으로 예측됩니다. 그러나 결코 인간이 다시 원숭이로 돌아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개인 개인이 자발적으로 촛불을 들고 모인 결과 거대한 권력을 무너뜨린 촛불 혁명도 이러한 창발적 사회현상의 하나입니다. 거기에는 어떠한 조직된 힘이나 계획, 예측 가능한 구조적 힘이 전혀 관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개인의 힘은 미약하지만 자발적으로 모인 개인의 힘은 이렇게 창발적 힘을 발휘하여 결과를 전혀 예측하기가 힘듭니다. 마리의 개미는 혼자 집을 지을 없지만 수많은 개미가 함께하면 매우 조직적으로 개미집이 완성됩니다. 안에는 온도와 습도를 조절하는 공조시스템뿐만 아니라 여왕개미의 애벌레들을 위한 먹이 사육장까지 갖춘다고 합니다. 이러한 현상은 마리의 개미에게는 전혀 가능할 같지 않고 예측할 수도 없는 특성입니다.

 

이러한 창발, 이머전스와 비슷한 현상을 신학적으로는에피파니(epiphany)”라고 부릅니다. 에피파니는 신적인 혹은 초자연적인 것의 출현, 현시(顯示), 강림(降臨) 등과 관련된 말입니다. 절대로 불가능할 같은 일이 실제로 일어난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처녀가 정상적인 성관계도 없이 아이를 임신한 사건도 그렇고, 보이지 않는 존재인 신이 인간의 육신을 입었다는 것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엉뚱하고 신화적인 이야기가 우리 그리스도교의 탄생과 관계한다고 하니 실증론자들이나 실용주의자들에게는 무척 견디기 힘든 이야기가 아닐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야기를 단순히 창조신화처럼 문학적 서사로 종교 창시자에 대한 일종의 신화로 취급합니다. 어쩌면 설명할 없고 입증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에 그렇게 생각하는 것이 오히려 그들의 이성과 합치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은 아무리 가린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닙니다. 가려서 사라질 것은 진실이 아닙니다. 진실은 진실 자체로 힘이 있고 생명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루가복음 8 18절은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감추어둔 것은 나타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져서 세상에 드러나게 마련이다.” 루가 8:18

 

진실의 힘은 바로 그러한 것입니다. 초대 교부들이 많은 그리스도교 이단자들의 합리적인 공격에도 성육신론을 고수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사실 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이야기보다 이슬람교처럼 단지 예수가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선지자였다고 말하는 것이 훨씬 쉬웠을 겁니다. 예수는 하느님의 선지자였고, 그분은 하느님께 영적으로 입양되신 분이셨다고 주장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고 이성적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아리우스주의나 네스토리우스주의의 주장은 성육신론을 주장하는 교부들에 의해 이단으로 치부됐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기독교는 합리주의와 이성주의, 실증주의를 거부하고 처음부터 이런 모험을 감행했을까?라는 질문을 있습니다. 그것도 로마의 사형틀에서 반란자로 처형된 가난한 나자렛 출신 예수에 대해서 이토록 비상식적인 신화로 그의 신원을 설명했을까요? 가난한 역사의 예수를 미화시킬 것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이런 무리수를 뒀을까요? 미혼모는 당시 유대법에 따라 죽어 마땅한 죄인이었는데 그러한  죄인의 자식임을 오히려 자랑하는듯한 출생의 이야기는 더욱 초대 그리스도교를 사회로부터 고립시킬 있었던 시도였습니다. 어쩌면 마르코복음처럼 예수의 시작을 권위 있는 세례자 요한의 세례부터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수모를 피하는 길이었을 겁니다. 복음에 대한 최초의 기록자인 사도 바울로조차 예수의 탄생에 대해서는 침묵을 했으니 말입니다.

 

여기에는 믿음이 가진 아이러니가 존재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아이러니를신비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매우 논리적이지도 실증적이지도 않다는 것이 사실입니다. 믿음은 매우 개인적이고, 매우 경험적이며, 매우 감각적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보편성을 지니기가 정말 힘듭니다. 누군가 하늘에서 UFO 봤다고 이야기해도 우리는 사진 없이 사람의 말을 믿기 힘든 법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에 대한 경험이 다양한 사람들의 체험을 통해 공유된다면 그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가 됩니다. 집단 체면이나 집단 망상증이 아니라면, 그러한 현상은 앞에서 말씀드린 창발현상과 관련됩니다. 예측불가능한, 관측불가능한 , 처음에는 없었던 값이 결과적으로 갑자기 발생한 것입니다. 그러한 초대 그리스도인들의 집단적 창발현상 경험에 대한 기록이 사도행전에 나와있습니다. 오순절에 예수의 제자들이 모여 기도할 성령께서 임하시어 모두가 다른 나라 말로 이야기한 사건 말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예수님께서 명의 제자들과 변화산에 오르셨을 때도 목격됐습니다. 그리고 그분께서 세례자 요한의 세례를 받을 때도 목격됐습니다. 초월적인 현상이 실제 세계에발현 것입니다. 이를 우리는에피파니(공현)”라고 부릅니다. 그것은 보이지 않는 신적 세계가 현상의 세계에 빛으로 드러난 것을 의미합니다. 빛으로 나타난 것은 우리 눈으로 있는 것입니다. 아기 예수의 탄생이야기는 그래서 동방에서부터 별과 빛과 관련된 이야기를 하는 것입니다. 초월적인 것에 대한 인간 언어의 표현 한계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빛이라 부릅니다. 그리고 빛이 발현된 사건이 바로 에피파니입니다. 우리가 공현절을 에피파니라 부르는 이유입니다. 

 

많은 교부들이 신앙의 여정에서 이러한 신의 발현의 체험을 하지 않았다면 우리 그리스도교는 성육신 교리를 확립할 없었을 겁니다. 믿음이란 확증불가능하고 입증불가능하지만 개인에게는 매우 구체적이고 거부할 없는 체험과 인식으로 각인됩니다. 사도 바울로의 회심의 체험은 그를 그리스도교 박해자에서 그리스도교 전도자로 바꿔놓았습니다. 성적 타락과 마니교에 빠져 있던 아우구스티누스는 그의 회심 체험을 통해 그리스도교 최대의 변증론자가 됐습니다. 이렇게 에피파니를 경험한 사람들은 자신들의 믿음을 현실 속에서 신앙적 삶을 통해 증거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가시적 행동을 통해 증명한 사람들입니다. 이것이 믿음과 신앙의 신비입니다. 세상에서는 이해될 없는 역설을 담고 있는 진리의 출현. 가장 연약하고 의존적인 존재로 많고 험악한 세상에 하느님이 인간의 몸으로 던져졌습니다. 그는 너무나 연약하여 쉽게 꺼질 있는 등불처럼, 쉽게 깨질 있는 와인잔처럼 가장 부서지기 쉬운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자신의 어머니에게 완전히 의존적인 아기의 모습으로 말입니다. 그분의 절대 의존적인 모습은 정확하게 하느님 앞에 우리 인간 존재를 반영합니다. 아무리 똑똑하고 많은 것을 가진 우리들도 하느님 앞에서는 완전히 갓난아기처럼 깨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라는 . 그래서 우리는 하느님 앞에 나아가면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게 됩니다. “성부여 의지 없어서 앞에 옵니다.”라는 성가의 고백을 그냥 무시할 없는 이유입니다. 이러한 회심의 체험을 거부하는 사람은 절대로 그리스도인이 없습니다. 자신이 산산이 부서지지 않고 그리스도인이 있다는 생각을 한다면 그것은 정말 대단한 착각입니다. 성육신으로 오신 예수님은 먼저 부서질 있는 연약성의 완전체이셨습니다. 그런 아기를 헤롯은 죽이려 했습니다. 가장 연약한 존재를 짓밟는 것이 세상의 권력이고 습성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깨지기 쉬운 연약한 존재를 결코 부수지 않으시는 분이십니다. 세상의 권력과 하느님의 은총은 서로 상충됩니다. 이것이 성육신 사건에 담긴 하느님의 자비의 속성입니다. 이사야 42 3절은 다음과 같이 노래합니다.

 

“갈대가 부러졌다 하여 잘라버리지 아니하고, 심지가 깜박거린다 하여 등불을 꺼버리지 아니하며…” 이사 42:3

 

하느님은 자비로우신 분이십니다. 그분의 자비를 경험한 사람은 그분 앞에 자신을 완전히 내어 던질 있습니다. 그것은 깨지기 쉬운 아기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이 자신을 성모께 완전히 의존한 것과 같은 순종이고 순명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에 자신을 하느님의 의지에 전적으로 의존하십니다. 마태오복음 26 39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소서.” 마태 26:39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전적인 자기 비움과 순종의 고백입니다. 예수님조차 하느님 앞에서 완전히 자신을 부수는 체험을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에피파니에는 이러한 하느님의 현현에 대한 영광과 환희만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이성과 합리성, 실증적 경험이 철저히 깨지는 고통 또한 수반되는 것입니다. 아마도 변화산의 제자들과 예수의 탄생을 알현했던 동방박사들은 분명 이러한 경험을 체험했을 것입니다. 믿음의 경험에는 고통도 동시에 수반되는 법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하느님의 에피파니를 경험하고 사흘 동안 눈이 멀어 먹지도 마시지도 않았다고 사도행전 9장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흘은 정확하게 예수께서 부활하신 시간과 같습니다. 숫자 3 하느님의 뜻의 완전함을 뜻합니다. 사도 바울로가 자신의 믿음의 경험을 객관화하는 걸린 시간은 3일입니다. 아나니아가 찾아와 그를 위해 안수하고 기도할 때까지 말입니다. 그리스도교 체험의 보편성은 이러한 과정을 통해 확보된 것입니다. 개인의 믿음과 체험이 다른 사람에 의해 확증되고 결국 교회의 승인을 받는 프로세스로 말입니다. 그래서 개인의 체험은 공동체의 체험이 되고, 결국에는 교회의 체험이 되면서 역사성을 확보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 안으로 편입된 사건은 결국 역사 자체가 증인 역할을 하게 됩니다. 결과 그리스도교의 2 년의 역사는 이러한 에피파니를 증언하는 역사의 흐름이라고 말할 있습니다. 그러한 흐름의 물결에 자신을 내어 맡기며 믿음의 강을 따라 흘러가는 것은 결국 개인의 문제로 남습니다. 이러한 교회의 고백은 분명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아기 예수와 함께 시작한 2025년은 우리의 믿음에 이러한 에피파니의 체험이 극대화되는 해가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우리가 그분을 대면할 먼저 깨어질 준비를 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겸손과 완전한 투항 없이 그리스도의 빛을 우리 안에 품기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의 선택이 결국 여러분을 진리의 길로 인도할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반드시 수확을 얻을 것입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은총이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1.6. 공현대축일

 

본기도

영원하신 하느님, 동방박사를 별빛으로 인도하시어 아기 예수를 경배하게 하셨나이다. 비오니, 세상 모든 나라를 빛으로 인도하시어 인류가 하느님의 영광 안에서 있도록 이끌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이사 60:1-6

1    일어나 비추어라. 너의 빛이 왔다.
.     야훼의 영광이 너를 비춘다.
2     땅이 아직 어둠에 덮여,
.     민족들은 암흑에 싸여 있는데
.     야훼께서 너만은 비추신다.
.     위에서만은 영광을 나타내신다.
3    민족들이 너의 빛을 보고 모여들며
.     제왕들이 솟아오르는 너의 광채에 끌려오는구나.
4    머리를 들고 사방을 둘러보아라.
.     모두 너에게 모여오고 있지 않느냐?
.     너의 아들들이 데서 오고,
.     너의 딸들도 품에 안겨온다.
5    이것을 보는 얼굴에 웃음의 꽃이 피리라.
.     너의 가슴은 벅차 올라 부풀리라.
.     바다의 보물이 너에게로 흘러오고
.     민족의 재물이 너에게로 밀려오리라.
6     낙타떼가 너의 땅을 뒤덮고
.     미디안과 에바의 낙타들이 우글거리리라.
.     사람들이 세바에서 찾아오리라.
.     금과 향료를 싣고
.     야훼를 높이 찬양하며 찾아오리라.

 

 

 

성시_시편 72:1-7, 10-14

1    하느님, 임금에게
.     올바른 통치력을 주시고,
.     임금의 아들에게
.     정직한 마음을 주소서.
2    당신의 백성에게 공정한 판결을 내리고
.     약한 자의 권리를 세워 주게 하소서.
3    임금이 의를 이루면
.     높은 산들이 백성에게 평화를 안겨주고
.     언덕들이 정의를 가져다주리라.
4    백성을 억압하는 자들을 쳐부수고
.     약한 자들의 권리를 세워 주며
.     빈민들을 구하게 하소서.
5    해와 달이 닳도록
.     그의 왕조 오래오래
.     만세를 누리게 하소서.
6    풀밭에 내리는 단비처럼,
.     땅에 쏟아지는 소나기처럼
.     은덕 만인에게 내리리니
7    정의가 꽃피는 그의 날에
.     달이 닳도록 평화 넘치리라.
10  다르싯과 섬나라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고
.     세바와 스바의 왕들이 예물을 바치며,
11  만왕이 앞에 엎드리고
.     만백성이 그를 섬기게 되리라.
12  그는 하소연하는 빈민을 건져주고
.     도움 받을 없는 약자를 구해주며,
13  약하고 가난한 자들을 불쌍히 여기고
.     가난에 시든 자들을 살려주며
14  억울한 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겨
.     억압과 폭력에서 목숨 건져주리이다.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에페 3:1-12

1 그러므로 이방인 여러분들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포로가 바울로는 하느님께 기도 드립니다. 2 하느님께서 나에게 은총을 베풀어 여러분의 일꾼으로 삼으신 것을 여러분도 알고 있습니다. 3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심오한 계획을 나에게 계시해 주셨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내가 앞서 간단히 적은 있으므로 4 그것을 읽으면 여러분은 내가 그리스도에 관한 심오한 계획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을 있을 것입니다. 5 지금은 하느님께서 성령의 힘을 빌려 심오한 계획을 당신의 거룩한 사도들과 예언하는 사람들에게 나타내 보이셨지만 전에는 지금처럼 인간에게 알려주시지 않았었습니다. 6 심오한 계획이란 이방인들도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살면서 유다인들과 함께 하느님의 축복을 받고 몸의 지체가 되어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함께 받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7 나는 하느님께서 거저 주신 은총을 받고 속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어 복음을 전하는 일꾼이 되었습니다. 8 나는 모든 성도들 중에서 가장 보잘것없는 사람입니다. 아니 그보다도 못한 사람입니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은총을 주셔서 헤아릴 없이 풍요하신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이방인들에게 전하게 하셨고 9 만물의 창조주이신 하느님께서 과거에 감추고 계시던 심오한 계획을 어떻게 실현하시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분명히 알려주게 하셨습니다. 10 이렇게 되어 결국 하늘에 있는 권세의 천신들과 세력의 천신들까지도 교회를 통하여 하느님의 무궁무진한 지혜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11 모든 것은 우리 그리스도 예수를 내세워 이루시려고 작정하신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입니다. 12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분과 함께 살게 되어 확신을 가지고 서슴지 않고 하느님께 나아갈 수가 있습니다.

 

 

 

복음서_마태 2:1-12

1 예수께서 헤로데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나셨는데 때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2유다인의 왕으로 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에게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3 말을 듣고 헤로데 왕이 당황한 것은 물론, 예루살렘이 온통 술렁거렸다. 4 왕은 백성의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을 모아놓고 그리스도께서 나실 곳이 어디냐고 물었다. 5 그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유다 베들레헴입니다. 예언서의 기록을 보면,

6   ‘유다의 베들레헴아,
.    
너는 결코 유다의 땅에서 가장 작은 고을이 아니다.
.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    
영도자가 너에게서 나리라.’
.
    미가 5:1

하였습니다.”

7 때에 헤로데가 동방에서 박사들을 몰래 불러 별이 나타난 때를 정확히 알아보고 8 그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가서 아기를 찾아보시오. 나도 가서 경배할 터이니 찾거든 알려주시오.” 하고 부탁하였다. 9 왕의 부탁을 듣고 박사들은 길을 떠났다. 동방에서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마침내 아기가 있는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10 이를 보고 그들은 대단히 기뻐하면서 11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엎드려 경배하였다. 그리고 보물 상자를 열어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12 박사들은 꿈에 헤로데에게로 돌아가지 말라는 하느님의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나라에 돌아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