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1.1. 다해_거룩한 이름 예수 축일
민수 6:22-27 / 시편 8 / 갈라 4:4-7 또는 필립 2:5-11 / 루가 2:15-2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한 해의 시작을 우리 전례력은 이름과 관련된 말씀으로 시작을 합니다. 존재에게 붙여진 이름은 단순한 호칭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호칭에는 별명도 있을 수 있고, 감옥의 죄수들처럼 번호로도 호칭은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이름은 곧 그 존재를 드러냅니다. 존재들 간에 다름과 차이를 나타내고 한 존재를 존재이게 하는 것이 이름입니다. 이름을 가진 존재가 누구인지, 어떤 인격인지, 어떤 일을 하는 사람인지 등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이름은 존재 간의 관계를 형성하기도 합니다. 존재 간의 관계를 형성한다는 말은 상호 길들여짐의 뜻입니다. 이는 [어린 왕자]에서 사막의 여우가 왕자에게 한 말입니다. 이름은 이렇게 존재와 존재 간에 차이와 다름을 형성하고 서로가 서로에게 길들여짐에 관여합니다. 상대를 이름으로 부를 때 서로는 특별한 관계를 갖게 되기 때문입니다.
특히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름을 한 사람의 운명과 연관 지어 생사화복과 관련된다고 생각해서 ‘작명소’에서 특별히 돈을 주고 이름을 짓기도 합니다. 이름과 그 사람의 사주가 조화를 이룰 때 그 사람의 운명도 결정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당시의 로마제국도 참 복잡한 이름 체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름이 곧 이름을 가진 존재의 권위와 직결되기 때문입니다.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Gaius Julius Caesar Octavianus)라는 복잡한 이름은 로마의 초대 황제의 이름입니다. 태어날 때의 그의 이름은 가이우스 옥타비우스 투리누스(Gaius Octavius Thurinus)였습니다. 여기에서 호칭은 “가이우스”입니다. 두 번째 나오는 “옥타비우스”는 물론 가문의 이름입니다. 이름의 세 번째 부분인 “투리누스”는 이름을 가진 사람의 신체적 특징을 뜻하는데 정확한 의미는 밝혀진 바가 없다고 합니다. 그는 율리우스 카이사르에게 입양된 후에 “가이우스 율리우스 카이사르 옥타비아누스”라는 이름을 갖게 됩니다. 그리고 황제가 된 이후의 이름은 "임페라토르 카이사르 디비(디위) 필리우스 아우구스투스(Imperator Caesar Divi Filius Augustus)”입니다. "신의 아들이자 존엄한 사령관 카이사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에는 황제라는 의미의 “임페라토르 카이사르”와 “신의 아들”을 뜻하는 “디비 필리우스”, 그리고 로마원로원이 그에게 준 이름 “아우구스투스, 즉 존엄자”라는 이름이 덧붙여졌습니다. 이로써 그의 이름에 황제의 권위와 신의 아들이라는 권위, 그리고 로마의 최고 존엄자로서의 권위가 더해집니다. 한 존재의 이름이 이렇게 복잡한 것은 그의 이름이 곧 그 존재의 모든 것을 담는 권위의 표징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예수”라는 이름은 우리말의 음역이고 헬라어로는 “예수스”, 히브리어로는 “여호수아(Jehoshua)”입니다. 여호수아는 야훼를 뜻하는 “여”라는 접두어와 구원을 뜻하는 “호세아”가 합쳐진 이름입니다. 즉 “야훼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역사적 예수의 실제 이름은 “나자렛 예수”였습니다. 이는 “느티나무골의 복순이”라는 이름처럼 “나자렛 출신의 예수”라는 뜻입니다. 유대인들은 이름에 성이 없고 예수님 당시에 예수라는 이름이 흔했기 때문에 다른 예수와 구분하기 위해 지명을 붙인 것입니다. 출신 좋은 집안에서는 보통 부친이나 조상의 이름을 붙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의 아들 야곱”과 같이 말입니다. 이와 같이 “나자렛 예수”, “마리아의 예수” 등은 예수의 출신을 나타내는 지극히 평범한 이름입니다. 이를 우리는 역사의 예수 이름이라 부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이는 역사의 예수 이름이 아니라 카리스마, 즉 신앙의 이름이며 신앙의 고백적 이름입니다. 이는 사도 바울로와 초대 교회가 주로 고백했던 주님의 이름입니다. 로마 사람들은 황제를 주님으로 불렀고,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느님을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는 “예수”를 주님으로 불렀습니다. 이는 역사의 예수에 신앙적 의미와 믿음의 고백이 더해진 것입니다. 로마나 이스라엘 사람들의 관점에서 이는 반역이고 불경스러운 것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예수는 주님이시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또 하느님께서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셨다는 것을 마음으로 믿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로마 10:9
사도 바울로는 “주님”을 구원과 부활과 연결을 시킵니다. 사도 바울로에게는 “나자렛 예수”라는 역사적 예수보다 부활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는 주님으로서의 예수가 더 중요했습니다. “그리스도”라는 호칭에 대해서는 모두가 잘 아시는 대로 이스라엘의 “메시아”와 같은 의미의 헬라어입니다. “기름 부은 자”라는 뜻으로 왕이나 권위 있는 자들에게 사용되던 이름입니다. 종말론적인 메시아 대망 사상 속에서 이 메시아는 “구원자”라는 의미를 가지게 됩니다. 요한복음 1장 41절을 보면 안드레아가 나자렛 예수를 처음 만난 후에 그의 형제 베드로에게 예수를 “메시아”라고 소개를 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구원자 메시아가 지금 나타났다고 믿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구약이 예언한 대로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주님이 곧 나자렛 예수이시다는 고백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이란 호칭에는 그분이 우리의 생사화복의 모든 주권을 가지신 분이시라는 고백도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동시에 그를 주님이라 부르는 사람들의 순종과 순명의 의미 또한 담겨 있습니다.
“예수”
이미 우리가 살펴본 대로 그분은 날 때부터 운명적인 이름을 부여받으신 분이십니다. “구원자”란 운명적 이름이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 이름이 그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일까요? 아니면 그의 운명이 그에게 그런 이름을 부여하게 한 것일까요? 어떤 것이든 그분의 이름은 그분의 존재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이름이 이렇게 운명과 맞닿은 사람이 있을까요? 그래서 우리 교회는 구원자이신 그분의 이름을 “거룩하고 숭고하다”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이 이름을 가지신 “나자렛 예수”는 이미 2천 년 전에 존재하셨다 죽으셨지만, 이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분의 부활 이후로 영원히 우리에게 주어진 주님의 이름이 된 것입니다. 신앙적 고백과 카리스마가 담긴 이 이름을 우리는 오늘 거룩하다고 그분의 이름을 칭송합니다. 그 이름에 영광을 돌리며 그 이름이 우리의 “구원의 표지”이고, 우리 “순종의 고백”이며, “우리의 사명”을 담은 이름임을 고백합니다. 여기서 “구원의 표지”라 함은 사도 바울로가 고백한 대로 그분은 부활하셨으므로 모든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 처한 사람들에게 부활과 구원의 약속의 표징이 되셨다는 뜻입니다. “순종의 고백”이라 함은 그분을 우리가 주님이라 부름으로써 그분께 우리의 운명과 삶을 모두 바친다는 순명의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의 사명”이라 함은 그분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심을 세상에 널리 선포할 임무가 우리에게 부여됐음을 뜻합니다. 그래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은 그분에 대한 우리 개인과 교회의 신앙적 고백과 순종과 헌신, 그리고 사명을 모두 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우리 모두도 각자의 고유한 이름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부모님들은 우리의 이름을 지으실 때 분명 우리가 좋은 운명을 살라고 귀한 이름을 주셨을 겁니다. 우리는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에 이제 “그리스도인”이라는 이름이 덧붙여졌습니다. 이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란 뜻을 넘어 우리의 존재가 그분과 맞닿아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교인들을 당시의 사람들은 그리스도인이라 불렀습니다. 이는 예수를 추종하는 사람들에 대한 조롱과 비난의 의미였지만, 이제 그 이름은 우리 이름에 각인된 운명과도 같은 영광의 이름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제외하고 우리의 이름 만으로 우리의 존재를 설명하기 어렵습니다. 우리의 이름에 그림자처럼 달라붙어 있는 그리스도인이란 칭호가 우리에게 부담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이 되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라는 우리의 고백처럼 우리 각 개인이 우리 교회가 그 이름에 합당한 삶을 살아내기를 기도합니다. 2024년을 보내고 2025년 새로운 한 해를 맞이하며 이제 우리 이름에 붙여진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을 우리도 운명처럼 붙들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한 이름을 통해 부여된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이 우리 각자의 이름과 조화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025년,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란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부끄럽지 않은 성숙한 주님의 일꾼으로 성장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 이름이 가진 아름다움과 축복과 영광이 여러분의 삶 속에서도 밝고 환하게 꽃을 피우길 바랍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1.1. 거룩한 이름 예수
본기도
영원하신 성부여, 사람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성자께서는 우리 구원의 표지로 예수라는 이름을 받으셨나이다. 비오니, 우리를 위하여 율법에 순종하신 성자께서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게 하시고 주님이 세상의 구원자임을 선포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민수 6:22-27
22 야훼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23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런 말로 복을 빌어주라고 하여라. 24 ‘야훼께서 너희에게 복을 내리시며 너희를 지켜주시고, 25 야훼께서 웃으시며 너희를 귀엽게 보아주시고, 26 야훼께서 너희를 고이 보시어 평화를 주시기를 빈다.’ 27 그들이 이렇게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 이름으로 복을 빌어주면 내가 이 백성에게 복을 내리리라.”
성시_시편 8
1 하느님, 우리의 주여! ◯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주님의 영광 기리는 노래, 하늘 높이 퍼집니다. ◯
. 어린이, 젖먹이들도 노래합니다.
2 이로써 원수들과 반역자들을 꺾으시고 ◯
. 당신께 맞서는 자들을 무색케 하셨습니다.
3 당신의 작품, 손수 만드신 저 하늘과 ◯
. 달아 놓으신 달과 별들을 우러러 보면
4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생각해 주시며 ◯
.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보살펴 주십니까?
5 그를 하느님 다음가는 자리에 앉히시고 ◯
. 존귀와 영광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6 손수 만드신 만물을 다스리게 하시고 ◯
. 모든 것을 발밑에 거느리게 하셨습니다.
7 크고 작은 온갖 가축과 ◯
. 들에서 뛰노는 짐승들 하며
8 공중의 새와 바다의 고기
. 물길 따라 두루 다니는 물고기들을 ◯
. 통틀어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9 하느님, 우리의 주여! ◯
. 주님의 이름 온 세상에 어찌 이리 크십니까?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갈라 4:4-7 또는 필립 2:5-11
갈라 4:4-7
4 그러나 때가 찼을 때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들을 보내시어 여자의 몸에서 나게 하시고 율법의 지배를 받게 하시어 5 율법의 지배를 받고 사는 사람을 구원해 내시고 또 우리에게 당신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셨습니다. 6 이제 여러분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으므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속에 당신의 아들의 성령을 보내주셨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하느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7 그러므로 여러분은 이제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주신 상속자인 것입니다.
필립 2:5-11
5 여러분은 그리스도 예수께서 지니셨던 마음을 여러분의 마음으로 간직하십시오.
6 그리스도 예수는 하느님과 본질이 같은 분이셨지만
. 굳이 하느님과 동등한 존재가 되려 하지 않으시고
7 오히려 당신의 것을 다 내어놓고
. 종의 신분을 취하셔서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 되셨습니다.
. 이렇게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
8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셨습니다.
9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그분을 높이 올리시고
.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셨습니다.
10 그래서 하늘과 땅 위와 땅 아래에 있는 모든 것이
. 예수의 이름을 받들어 무릎을 꿇고
11 모두가 입을 모아 예수 그리스도가 주님이시라 찬미하며
. 하느님 아버지를 찬양하게 되었습니다.
10절 – 이사 45:23 참조
복음서_루가 2:15-21
15 천사들이 목자들을 떠나 하늘로 돌아간 뒤에 목자들은 서로 “어서 베들레헴으로 가서 주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신 그 사실을 보자.” 하면서 16 곧 달려가 보았더니 마리아와 요셉이 있었고 과연 그 아기는 구유에 누워 있었다. 17 아기를 본 목자들이 사람들에게 아기에 관하여 들은 말을 이야기하였더니 18 목자들의 말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그 일을 신기하게 생각하였다. 19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 깊이 새겨 오래 간직하였다. 20 목자들은 자기들이 듣고 보고 한 것이 천사들에게 들은 바와 같았기 때문에 하느님의 영광을 찬양하며 돌아갔다.
21 여드레째 되는 날은 아기에게 할례를 베푸는 날이었다. 그 날이 되자 아기가 잉태되기 전에 천사가 일러준 대로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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