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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느님을 등진 사람”_2025.3.30. 다해_사순4주일

James Chae 2025. 3. 30. 06:10

2025.3.30. 다해_사순4주일

여호 5:9-12 / 시편 32 / 2고린 5:16-21 / 루가 15:1-3, 11-32

 

하느님을 등진 사람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복음서 말씀은 모두가 아는 돌아온 탕자의 이야기입니다. 아버지의 뜻을 어기고 방탕한 삶을 살던 작은아들이 종국에는 뉘우치고 아버지의 품으로 돌아와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고대 근동 반전드라마 형식의 이야기입니다. 물론 이야기는 루가가 채집한 특수 자료로 다른 복음서에는 없는 내용입니다. 다른 복음사가보다 루가는 예수사건을하느님의 구원 사건으로 사람입니다. 그는 이러한 반전 드라마의 형식을 통해하느님의 구원 무엇인지를 말하고자 했습니다. 이야기는 죄가 무엇인지, 회개가 무엇인지, 그리고 사함이 무엇인지, 마지막으로 하느님의 자비가 어떠한 것인지를 우리에게 포괄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내용은 그리스도교의 가장 핵심적인 내용이라 세례나 견진 교리 공부 시간에 반드시 배워야 하는 필수 내용입니다. 그리고 설교에서 자주 언급되는 말이라 아마도 교회를 다니지 않는 사람도 죄와 회개에 대한 내용을 종종 들어 알고 있을 겁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을 죄인이라고 인식하지 않고 살고 있는 같습니다. 특히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회개를 해서 구원받았다는 개념이 주는 위안과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 구원받았으니 앞으로 살면서 소소하게 저지르는 잘못들을 회개하며 살면 된다고 단순하게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말 그럴까요?

 

성서가 말하는 죄는, 지난 주일 설교에서도 말씀드린 대로, “라는 단수로 사용할 때와죄들이라는 복수로 사용할 의미가 각각 다릅니다. 단수의 한마디로하느님을 등진 상태 설명할 사용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방향이 아닌 반대편으로 돌아선 인간의 실존을 뜻합니다. 복수인죄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모든 법률적, 관습적, 윤리적 조항들을 어긴 죄를 말할 사용됩니다. 오늘 이야기에서 작은 아들은 성서가 말하는 모든 죄를 범한 사람입니다. 아버지에게 등을 돌린 방탕하게 자신의 삶을 망가뜨리며 다양한죄들 저질렀습니다. 그렇다고 형사법적인 죄를 저지른 것은 아닌듯합니다. 그러나 그의 중에 가장 죄는 아버지의 뜻을 거스른입니다. 그리고 그다음에 따라온죄들 결과로 나타난 것이라 있습니다. 루가는 이렇게하느님을 등진 상태 모든 죄의 시작이고 뿌리이며 결과 인간이 직면하게 죄들과의 조우에서 허우적거리는 인간의 실존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루가 15:16

 

인간의 실존이 바닥을 치면 자신의 존엄까지도 상실하는 상태에 이릅니다. 그는 허기 때문에 결국 사람의 음식과 동물의 음식도 구분하지 못하는 아사 상태에 이릅니다. 그러나 그것조차도 그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이 없어 완벽한 고립과 소외 속에 놓입니다. 이것이하느님을 등진 사람 직면하게 되는 인간 실존이라고 루가는 말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는 상태, 절체절명의 상태, 더이상 숨을 수도 없을 정도로 정신과 마음이 무너진 상태, 고독과 소외 속에 완전히 혼자 버려진 듯한 느낌의 상태. 원인과 이유도 모른 나락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 바로 그때 인간은 인간으로서 자신의 실존을 처음으로 자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오랜 수행 끝에고타마 싯다르타 세상의 본질이()”라고 깨달았으며, 진정한 구원은 세상과의 인연과 집착을 끊고 끝없이 반복되는 윤회에서 해방되는 것이라 했던 것입니다. 하느님 없는 인간의 실존은 정말 녹록지가 않습니다. 

 

“그제야 제정신이 든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그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루가 15:17

 

그제야 제정신이 이라고 의역된 말은에르코마이 ἔρχομαι” 입니다. 이는가다또는오다라는 의미로 장소에서 다른 장소로 물리적 이동을 설명하는 사용하는 단어입니다. 여기에서는 자신의 처지를 정확하게 자각한 상태를 말합니다.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여 모든 삶의 실재를 잃어버린 상태에서 깨닫는 자각. 이러한 자각이 바로회개 μετάνοια 메타노이아 전조가 됩니다. 이는뉘우침과 반성 단계입니다. 이러한 자각이 있고 뒤에 구체적인 삶의 변화를 불러오는  행동으로 이어지는데, 이것이 바로 성서가 말하는 진정한회개 프로세스입니다. “회개 그래서 명사로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회개하다라는 동사로 사용될 의미가 명확해집니다. 하느님을 등졌으니 이제 다시 하느님께로 돌아서야 합니다. 탕자는 순간 돌아갈 , “아버지의 생각한 것입니다. 생각이 여기까지 이르면 본격적인 회개의 과정이 시작됩니다. 그동안의 삶과 습관을 버리고 완전히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 삶의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우상숭배에 빠져 있던 수메르 문명의 갈대아 우르를 떠나 하느님께서 지시한 땅으로 아브라함을 불러내신 것입니다. 회개는 시간, 장소, 방향, 습관, 문화, 생각 등에 대한 완전한 전환을 뜻합니다. 하나를 선택하면 다른 하나는 포기해야 하는 과정입니다. 아브라함이 정들었던 아비 친척들, 친구들, 생활 기반을 완전히 버리고 야훼의 명령에 순종한 것처럼, 우리 주님께서도 제자들에게 가족과 모든 세상과의 인연을 끊고 자신을 따르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회개의 표징입니다. 탕자는 돼지우리에서 이제아버지의 으로 방향을 전환했습니다. 그러나 순간 탕자는 아직아버지의 자비 대한 확신은 없었던 같습니다. 그는 자신이 아버지의 집에서 품꾼으로 사는 것이 지금의 상황보다는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아버지에게 등을 돌린 순간 아버지와 절연했기 때문에 그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신의 신분을 주장할 염치도 없었습니다. 고난과 환란은 이렇게 사람을 비참하게도 만들지만, 또한 사람을 사람 되게 만들고, 겸손하게도 만듭니다. 그것이 자기 비하의 늪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상태는 하느님의 자비를 경험하는 선재 조건이 됩니다. 이야기의 결말은 여러분도 아시니 이상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그러나 이야기에서 우리는하느님을 등진 사람 하나 발견할 있습니다. 그것은 첫째 아들입니다. 그는 아버지를 등진 동생이 돌아왔는데 그를 환대해 아버지에 대해 오히려 분노합니다. 먼저 그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그는 아버지에게 ‘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해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한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한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다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그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루가 15:29-30

 

아버지는 큰아들이 집으로 들어오는 것을 머뭇거리며 투덜거리고 있을 작은 아들에게 뛰어나갔던 것처럼 그에게 뛰어가서 그를 맞이하고 위로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아버지를 향해 그동안 쌓아왔던 불만을 모두 털어놓습니다. 자기 자신과 동생의 처지를 비교한 것이지요. 그도 동생처럼 아버지를 떠나 자유롭게 살고 싶은 마음이 없었겠습니까? 그는 아버지의 말을 번도 어긴 적이 없을 정도로 순종적이었고, 아버지의 돈을 낭비할 정도로 살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순종적으로 살았지만, 그는 아버지께서 자신을 위해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마리 잡아주지 않았다고 투정합니다. 마디로 자신의 헌신에 대한 보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큰아들같이 순종적인 성실한 사람이라면 그런 불평을 만합니다. 이에 대한 아버지의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이 말을 듣고 아버지는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모두 네 것이 아니냐?” 루가 15:31

 

작은 아들은 아버지의 뜻에 반해서 아버지를 등지고 떠났지만, 큰아들은 아버지를 떠나지는 않았지만, 또한 아버지를 등진 사람이었음을 말에서 찾을 있습니다. 그는 이미 아버지의 것을 상속받은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미 아버지의 풍부한 돌봄과 사랑 가운데 살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떤 존재이고, 자신에게 주어진 축복이 무엇인지 전혀 모른 , 마치삯꾼처럼, “처럼 살았던 것입니다. 그는 이미 풍부한 아버지의 유산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것을 어떻게 풍성하게 사용하는 법을 전혀 몰랐습니다. 자신이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었으면서도 그는 아버지의 사랑을 전혀 느낀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빛을 등지고 자신의 어둠을 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도 동생 못지않게하느님을 등진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둘의 차이가 있다면, 동생은 등을 돌리고 완전히 죄악 속으로 떠나갔지만, 형은 아버지를 등지고 아버지에게서 벗어날 자신도 없으면서 자신이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를 보며 것입니다. 그의 아버지는 그를 항상 바라봤지만, 아버지를 등진 큰아들은 그러한 아버지의 따뜻한 시선을 절대로 느낄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삯꾼처럼 아버지의 눈치만 보면서 조심조심 위축되어 살았습니다. 선을 베풀지도, 악을 행하지도 않는 어중간한 상태. 이러한 상태 또한하느님을 등진 사람 특징입니다. 덥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신앙을 가진 요한계시록의라오디게아 교회 경우와 같습니다. (묵시 3:14-22) 교회는 나오는데 뜨겁지도 않고 차갑지도 않은 상태가 유지되면 바로 이런 큰아들과 같은 상태가 됩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도 적당한 거리를 설정하여 친해지지도 않고 나빠지지도 않는 거리를 모두 설정합니다. 그러니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러니 아무런 열매도 없습니다. 문제도 없으니, 갈등도 없고, 갈등이 없으니 모두가 서로에게 무심해집니다. 이것 또한하느님을 등진큰아들과 같은 상태입니다.

 

큰아들과 같은 상태에 빠지면 하느님의 풍성한 축복이 무엇인지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이미 우리가 가진자유 풍족하게 누릴 없을뿐더러, 하느님 눈치 보느라, 다른 사람 의식하느라 진정한 자유를 누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풍성한 하느님 나라의 자산과 축복이 이미 우리의 것이지만 그것을 남과 나눌 수도 없습니다. 은혜를 받고 축복을 받아도 간증을 함께 나누며 기뻐할 사람이 주변에 없습니다. 그러니 양을 잡아 친구들과 먹고 즐기는 것조차도 스스로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당하면 모두 숨기기 급급합니다. 함께 기도해 사람을 찾는 것조차 어렵습니다. 어려운 일을 나누면 남에게 자신의 처지를 판단 받는 같아 싫어합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기쁜 일이 생겨도 남과 나누기가 어렵습니다. 혹시나 시기나 질투가 들어올까 그것도 자제를 합니다. 그러니 살다 보면 사람들이 분명 어려운 일도 당하기도 하고, 기쁜 일도 만나기도 하는데 아무도 그것을 다른 사람과 나누려 하지 않습니다. 그러니 모두 각자도생입니다. 교회 공동체를 등지고 혼자 독방에서 기도합니다. 혼자 끙끙 앓고, 혼자 무거운 짐을 짊어집니다. 사실 이런 관점에서 둘째 아들보다 첫째 아들이 심각한 상태하고 말할 있습니다. 그래서 렘브란트가 그린돌아온 탕자그림을 보면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포옹을 받으며 밝은 가운데 있습니다. 그러나 첫째 아들은 빛에서 벗어나 그림자 속에 희미하게 오른편 있는 것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둘째 아들은 자신이 죄인인 것을 인식하고 과감하게 회개하고 돌아섰지만, 첫째 아들은 어떻게 됐는지 오늘 말씀은 침묵합니다. 이것은 이야기를 전한 루가공동체나 오늘날 교회에 대한 하느님의 메시지입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첫째 아들이나 둘째 아들처럼 부류로 나눌 있습니다. 이러한 구분은 각자의 선택에 따라 결정됩니다. 그렇다고 루가가 우리더러 둘째 아들처럼 방탕하게 살다가 하느님께 돌아오라는 메시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루가는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의대자대비하심을 알리려 것입니다. 자비를 우리가 믿는다면 첫째 아들처럼 이상 자신의 그림자만 바라보지않고 이제 밝은 빛이신 하느님께로 걸음 나아오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자비의 풍성함을 느끼지 못하고 산다면, 우리 또한 첫째 아들처럼하느님을 등진 사람들입니다. 빛을 등지면 보이는 것은 자신에 의해 드리워진 어두운 그림자뿐입니다. 자비의 빛이 밝으면 밝을수록 어둠의 그림자는 더욱 선명해집니다. 그러니 자신의 어둠의 그림자에 현혹되지 마시고 이제 밝은 빛이신 하느님께로 돌아서시기를 바랍니다. 그분의 풍성한 자비의 빛을 여러분의 얼굴에 받으며 한없는 자비의 심연 속에 빠져 보시기 바랍니다. 햇살보다 포근한 주님의 사랑의 품에 말입니다. 이러한 축복이 사순절 기간 우리 모두에게 함께하시길 기도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아멘. 

 


전례독서_사순4 (다해)

 

본기도

자애로우신 하느님, 죄인의 회개를 기다리시며, 통회하는 사람들을 기쁘게 받아주시나이다. 비오니, 주님께 돌아온 우리가 함께 성찬을 나눌 때에, 우리의 상한 영혼을 치유하시고 기쁨으로 채워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하느님이신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여호 5:9-12

9 야훼께서 여호수아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오늘 너희에게서 이집트인들의 수모를 벗겼다.” 그리하여 이름을 지금까지 길갈이라고 한다.
10
이스라엘 백성들은 길갈에 진을 쳤다. 그리고 십사일 저녁때에 예리고 평야에서 과월절을 지켰다. 11 과월절 다음날 그들은 땅의 소출을 맛보았다. 바로 그들은 누룩 떡과 볶은 곡식을 먹었던 것이다. 12 그들이 땅의 소출을 먹은 다음날 만나가 멎었다. 후로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만나가 내리지 않았다. 그들은 당년에 가나안 땅에서 나는 것을 먹었다.
9, ‘길갈 히브리어로굴리다, 벗기다라는 뜻인 갈랄과 발음이 비슷합니다.

 

 

 

성시_시편 32

1    복되어라, 거역한 용서받고
.     죄의 허물 벗겨진 이여,
2    복되어라, 주께서 잘못을 묻지 아니 하시고
.      마음에 거짓이 없는 이여.
3    , 주님께 아뢰지 않으려 했더니
.     온종일 신음 속에 뼈만 녹아나고
4    밤낮으로 당신 손이 나를 짓누르시니
.      몸은 여름 가뭄에 시들듯
.     진액이 말라버렸습니다.
5    그리하여 당신께 죄를 고백하고
.      잘못을 감추지 않았습니다.
주여, 죄를 고백합니다하고 아뢰었더니,
.      잘못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6    당신을 굳게 믿는 어려운 때에
.     당신께 기도 하리이다.
  고난이 물결처럼 밀어 닥쳐도,
.     그에게는 미치지 못하리이다.
7    당신은 나의 은신처,
.     내가 곤경에 빠졌을 건져주시어
.     구원의 노래 속에 묻히게 하셨습니다.
8    나는 너를 가르쳐 길을 배우게 하고
.     너를 눈여겨보며 이끌어주시리라.
9    부디 철없는 말이나 노새처럼 되지 마라.
.     재갈이나 굴레라야 그들을 휘어잡는다.
10  악인들에게는 고통도 많겠으나
.     주님을 믿는 이는
.     한결같은 사랑 속에 싸이리라.
11  의인들아, 기뻐하여라.
.     주님께 감사하며 즐거워하여라.
.     마음이 바른 사람들아, 모두 기뻐뛰어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2고린 5:16-21

16 그러므로 우리는 이제부터 아무도 세속적인 표준으로 판단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전에는 우리가 세속적인 표준으로 그리스도를 이해하였지만 이제는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17 누구든지 그리스도를 믿으면 사람이 됩니다. 낡은 것은 사라지고 새것이 나타났습니다. 18 이것은 모두 하느님께로부터 왔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내세워 우리를 당신과 화해하게 해주셨고 사람들을 당신과 화해시키는 임무를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19 하느님께서는 인간의 죄를 묻지 않으시고 그리스도를 내세워 인간과 화해하셨습니다. 그리고 화해의 이치를 우리에게 맡겨 전하게 하셨습니다. 20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로서 그분을 대신하여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하느님과 화해하십시 . 이것은 결국 하느님께서 우리를 시켜 호소하시는 말씀입니다. 21 우리를 위해서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죄있는 분으로 여기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느님께로부터 무죄 선언을 받게 되었습니다.

 

 

 

 

복음서_루가 15:1-3, 11-32

1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의 말씀을 들으려고 모여들었다. 2 이것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율법학자들은 사람은 죄인들을 환영하고 그들과 함께 음식까지 나누고 있구나!” 하며 못마땅해 하였다. 3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셨다.
11어떤 사람이 아들을 두었는데 12 작은 아들이 아버지에게 몫으로 돌아올 재산을 달라고 청하였다. 그래서 아버지는 재산을 갈라 아들에게 나누어주었다. 13 며칠 뒤에 작은 아들은 자기 재산을 거두어가지고 고장으로 떠나갔다. 거기서 재산을 마구 뿌리며 방탕한 생활을 하였다. 14 그러다가 돈이 떨어졌는데 마침 고장에 심한 흉년까지 들어서 그는 알거지가 되고 말았다. 15 하는 없이 그는 고장에 사는 어떤 사람의 집에 가서 더부살이를 하게 되었는데 주인은 그를 농장으로 보내어 돼지를 치게 하였다. 16 그는 하도 배가 고파서 돼지가 먹는 쥐엄나무 열매로라도 배를 채워보려고 했으나 그에게 먹을 것을 주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17 그제야 제정신이 그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아버지 집에는 양식이 많아서 많은 일꾼들이 먹고도 남는데 나는 여기서 굶어 죽게 되었구나! 18 어서 아버지께 돌아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19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격이 없으니 저를 품꾼으로라도 써주십시오 하고 사정해 보리라.’ 20 마침내 그는 거기를 떠나 자기 아버지 집으로 발길을 돌렸다. 집으로 돌아오는 아들을 멀리서 아버지는 측은한 생각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 21 그러자 아들은아버지, 저는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이제 저는 감히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자격이 없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2 그렇지만 아버지는 하인들을 불러어서 제일 좋은 옷을 꺼내어 입히고 가락지를 끼우고 신을 신겨주어라. 23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내다 잡아라. 먹고 즐기자! 24 죽었던 아들이 다시 살아왔다. 잃었던 아들을 다시 찾았다.’ 하고 말했다. 그래서 성대한 잔치가 벌어졌다.
25 ¶ 밭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다가 가까이에서 음악 소리와 춤추며 떠드는 소리를 듣고 26 하인 하나를 불러 어떻게 일이냐고 물었다. 27 하인이아우님이 돌아왔습니다. 그분이 무사히 돌아오셨다고 주인께서 살진 송아지를 잡게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8 큰아들은 화가 나서 집에 들어가려 하지 않았다. 그래서 아버지가 나와서 달랬으나 29 그는 아버지에게아버지, 저는 이렇게 여러 동안 아버지를 위해서 종이나 다름없이 일을 하며 아버지의 명령을 어긴 일이 번도 없었습니다. 그런데도 저에게는 친구들과 즐기라고 염소 새끼 마리 주지 않으시더니 30 창녀들한테 빠져서 아버지의 재산을 날려버린 동생이 돌아오니까 아이를 위해서는 살진 송아지까지 잡아주시다니요!’ 하고 투덜거렸다. 31 말을 듣고 아버지는얘야, 너는 나와 함께 있고 것이 모두 것이 아니냐? 32 그런데 동생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왔으니 잃었던 사람을 되찾은 셈이다. 그러니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겠느냐?’ 하고 말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