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3.16. 다해_사순2주일
창세 15:1-2, 17-18 / 시편 27 / 필립 3:17-35 / 루가 13:31-35
“십자가의 원수 대 하늘의 시민”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필립 3:18
이 놀라운 사도 바울로의 말은 아마도 이 서신을 받은 당시의 필립비교회나 오늘날의 교회에 커다란 경종을 울리는 말이 아닐 수 없습니다. 사순절이 되어 자기 성찰의 시간을 갖게 되는 이 시기에 이러한 말씀이 제게도 다른 때보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그래서 저 자신에게 먼저 질문한 것이 “나는 십자가의 원수인가?”라는 질문입니다. 사도 바울로가 이 말을 한 뉘앙스를 살펴보면 이 십자가의 원수가 된 사람들은 자신들이 십자가의 원수가 된 사실도 모르고 살고 있다는 것을 전제한 말입니다. 물론 사도 바울로는 이 “십자가의 원수”들에 대해 매우 심한 표현을 섬슴지 않았습니다. 필립비서 3장 2절에는 “개들을 조심하십시오”라고 하며 그들을 “개”라고 불렀으며, “악한들”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또 3장 3절에는 “잘라 베는 자”라고 표현합니다. 참 모욕적인 표현입니다. 아마도 이들은 문맥상 할례를 주장하는 “유대계 그리스도 수구파 사람들”일 겁니다. 그들에 대해 이토록 잔인한 표현을 쓰는 것은 그만큼 그들의 공격과 유혹이 매우 치명적이었기 때문일 겁니다. 그래서 다른 순진한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이 현혹되지 않도록 이런 극단적 표현을 쓴 것 같습니다.
“개”라는 표현은 유대인들이 이방인을 욕할 때 사용하는 표현이고, “잘라 베는 자”란 할례를 강조하는 사람들을 비웃는 말입니다. 참된 할례는 마음에 하는 것이지 인간의 표피를 잘라낸다고 믿음이 생기는 것은 아니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합니다. 할례는 영적인 것이 진짜 할례이지 육적인 것은 단지 형식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자신들이 “선별되고 거룩하다”는 것을 늘 전제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같은 주님을 모시는 그리스도인이면서도 자신들이 이방인들과 구별되는 유대인인 것을 자랑으로 하고 싶은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우리 기독교에서도 여전히 반복되는 현상입니다. 믿음과 신앙에는 연륜(年輪)이란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간혹 자신이 교회를 몇 년 다녔고, 성공회 신자로 몇 년이며, 자신은 성공회 “진골” 또는 “성골”이라고 자랑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사람의 인생과 인품에는 연륜이 있지만, 신앙에는 결코 연륜이 작동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망각한 것이지요. 주님께서도 마태오복음 20장 26절에 “꼴찌가 첫째가 되고 첫째가 꼴찌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믿음에는 연륜도 시간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현재 믿음의 상태와 자세이고, 신앙생활의 형식이 아니라 그 내용이며, 그것은 사람의 인품과 인격을 통해 드러납니다. 신앙생활을 오래했는데도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인품과 인격을 갖추지 못했다면 그것은 모두 헛것입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필립비 교회의 수구파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할례를 주장하는 사람들처럼 외적인 것, 형식적인 것, 남들에게 보여지는 것, 남들의 칭찬과 인정을 받는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입니다. 진정한 신앙은 인격과 영적인 성화에서 구체적으로 체화되어 드러나게 마련입니다. 이를 사도 바울로는 몸이 아니라 영에 할례를 받는 것이라 표현합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이 자기 자신을 설명합니다.
“영적으로 하느님께 예배드리고 그리스도 예수를 자랑하며 세속적인 것에 의지하지 않는 우리야말로 진정한 할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필립 3:3
사도 바울로는 이어서 세속적으로 자신도 자랑할 것이 많다고 하면서 자신의 세속적인 자랑 리스트를 기록합니다. 나중에 필립비서를 꼭 찾아 읽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그는 빌립비서 3장 7절에 이러한 자랑들을 “그리스도를 위해서 장해물로 여겼다.”라고 말합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다른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긴 것입니다. 세속적 자랑이 모두 그에게는 “쓰레기”일 뿐입니다. 눈에 보이는 것을 자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입니다.
사실 교회는 루가복음 6장 32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의인”들이 모인 곳이 아니라 “죄인”들이 모이는 곳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탈도 많고 소란스러운 법입니다. 필립비 교회처럼 수구파도 있고, 진보도 있고, 부자도, 가난한 자도, 착한 사람도, 악한 사람도 모두 있는 곳입니다. 가라지와 쭉정이도 있고, 알곡도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이 다르듯이 사람의 인품과 인격도 천차만별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너도 죄인, 나도 죄인, 우리 모두 죄인입니다. 죄인끼리 서로 누가 죄가 더 큰가를 다투는 것처럼 어리석은 짓이 없습니다. 영화를 보니 감옥에서는 살인자와 유괴범과 사기꾼이 각각 다른 대우를 받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나오는 모든 사람은 하느님 앞에 똑같은 죄인입니다. 하느님 앞에서 죄는 경중에 관계없이 죄는 죄일 뿐입니다. 살인자나 거짓말하는 자나 모두 똑같은 죄인이란 이름을 갖습니다. 사기 치는 사람이나, 고리대금업 하는 사람이나, 강도나 다 똑같습니다. 하느님 앞에서 우리는 아무도 자신이 의롭다 할 사람이 없다는 사실.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판단하지 말아야 합니다. 서로의 허물을 보면, 바로 자신의 허물을 보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서로의 부족한 것을 보면, 자신의 부족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결국 서로가 서로를 비난하면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는 격이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지만, 그리스도의 핏값으로 죄를 용서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렇게 서로를 비난하는 사람들이 오늘 사도 바울로가 말하는 “십자가의 원수”입니다.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 필립 3:19
이들의 특징은 간단하게 영분별이 됩니다. 남보다 “자기 뱃속을 하느님 삼는 자”입니다. 수치를 모르며, 자신이 옳고 남들은 다 잘못됐다고 생각하는 자들입니다. 그리고 세속적인 명예와 자신의 감정, 자신의 느낌, 자신의 자존심에만 신경 쓰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는 남에 대한 배려가 전혀 없습니다. 자신이 아프면 남도 아플 것이라는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사도 바울로는 이런 사람들의 최후는 “멸망뿐이다.”라고 말합니다. 하느님께 버림을 받는다는 뜻입니다. 자신이 염소인데도, 양이라고 생각하는 사람. 자신이 가라지 역할을 하면서도 자신이 알곡이라 착각하는 사람.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는데(마태 6:3-4), 선행과 봉사를 남들이 다 알아주기를 바라는 사람. 이미 그들은 사람들의 칭찬으로 천상의 복이 다 소멸된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필립 3:20
사도 바울로는 자신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을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자”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비록 이 현세에서는 별 볼 일 없어 보이지만, 이미 하늘의 시민권을 따놓은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비천한 몸이 그리스도처럼 “영광스러운 몸”으로 변화될 것을 사모하는 사람들입니다. 육적인 것을 쫓아 사는 사람들의 시민권은 이 땅이지만, 영적인 삶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부활하여 승천하신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들입니다. 하늘의 시민권을 확보한 사람들에게 이 땅은 단지 나그넷길일 뿐입니다. 그래서 모든 것이 그들에게는 “잠정적”입니다. 영원한 것은 오직 하느님의 나라와 영생뿐입니다. “영광스러운 몸”이라는 표현에서 “몸”은 헬라어로 “사르크스 σάρξ”가 아니라 “소마 σῶμα”입니다. 이는 인간의 육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몸 모두를 포함하는 개념입니다. 즉 전 존재적으로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처럼 변화될 우리의 몸입니다. 그러한 은총으로 “하늘의 시민권”을 받은 사람이 어떠한 삶을 살아야 하는지를 사도 바울로는 오늘 말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로는 고린도전서 4장 16절에서 “나를 본받으십시오”라고 감히 말했습니다. 이런 자신감은 자신의 전 존재를 하느님께 온전히 봉헌한 사람이니 가능한 말일 겁니다. 그러나 우리도 힘들지만, 그러한 방향으로 나아가려 노력하는 것, 그러기 위해 하느님의 성령의 도움을 의지하는 것. 이것이 우리 그리스도인의 삶의 의미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사셨고, 사도 바울로가 그렇게 사셨다면, 우리도 그렇게 살려고 노력하는 게 당연합니다. 우리가 방향을 잘 잡아서 육적인 것, 가시적인 것, 만질 수 있는 것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볼 수 없는 것, 만질 수 없는 것, 소유할 수 없는 것들을 향해 나아간다면 반드시 성령께서 우리의 연약한 부분을 도와주실 줄 믿습니다. 하늘 시민권을 가진 자로서의 자부심은 바로 이러한 작은 노력에서 시작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하느님께서 비록 우리가 죄인이지만, 우리를 의롭게 여겨주시기 때문입니다. 하늘 시민권을 이미 받은 우리들이 이렇게 전 존재적으로 성장해 나가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전례독서_사순2주 (다해)
본기도
신실하신 하느님, 믿음으로 순종하는 이들을 약속의 땅으로 이끌어주시나이다. 구하오니, 우리가 주님의 약속을 굳게 믿고 순종하여 선한 열매를 맺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함께 한 분 하느님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나이다. 아멘.
1독서_창세 15:1-12, 17-18
1 이런 일들이 있은 뒤에 야훼께서 아브람에게 환상으로 나타나시어 말씀하셨다.
. “무서워하지 말아라, 아브람아,
. 나는 방패가 되어 너를 지켜주며,
. 매우 큰 상을 너에게 내리리라.”
2 그러자 아브람이 말씀 드렸다. “야훼 나의 주여, 나는 자식이 없는 몸입니다. 가문의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다마스쿠스 사람 엘리에젤밖에 없는데, 나에게 무엇을 주신다는 말씀입니까? 3 나를 보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나에게 자식 하나도 점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내 대를 이을 사람이라고는 내 집의 이 종밖에는 없지 않습니까?” 아브람이 이렇게 여쭙자, 4 야훼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대를 이을 사람은 그가 아니다. 장차 네 몸에서 날 네 친아들이 네 대를 이을 것이다.” 5 그리고는 그를 밖으로 데리고 나가시어 말씀하셨다. “하늘을 쳐다보아라. 셀 수 있거든 저 별들을 세어보아라. 네 자손이 저렇게 많이 불어날 것이다.” 6 그가 야훼를 믿으니, 야훼께서 이를 갸륵하게 여기시어, 7 이렇게 말씀하 셨다. “나는 이 땅을 너에게 주어 차지하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낸 야훼다.” 8 아브람이 “내가 이 땅을 차지하게 되리라는 것을 무엇으로 알 수가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9 야훼께서 말씀하셨다. “삼 년 된 암소와 삼 년 된 암염소와 삼 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 집비둘기를 한 마리씩 나에게 바쳐라.” 10 그는 이 모든 것을 잡아다가 반으로 쪼개고 그 쪼갠 것을 짝을 맞추어 마주놓았다. 그러나 날짐승만은 쪼개지 않았다. 11 솔개들이 그 잡아놓은 짐승들 위에 날아오면, 아브람은 이를 쫓고 있었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이 신비경에 빠져들어 심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데, …
17 해가 져서 캄캄해지자, 연기 뿜는 가마가 나타나고 활활 타는 횃불이 쪼개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가는 것이었다. 18 그 날 야훼께서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개울에서 큰 강 유프라테스에 이르는 이 땅을 네 후손에게 준다. …”
성시_시편 27
1 주께서는 나의 빛,
. 내 구원이시니, ◯
.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오.
. 주께서 내 생명의 피난처시니 ◯
. 나 누구를 무서워하리오.
2 나를 잡아먹으려고 달려드는 악한 무리들 ◯
. 나의 원수, 나의 적들, 휘청거리고 쓰러지리라.
3 그 군대 진을 치고 에워쌀지라도 ◯
. 나는 조금도 두렵지 아니하리라.
. 군대를 몰아 달려들지라도 ◯
. 오히려 나는 그 가운데 마음 든든하리니
4 주님께 청하는 단 하나 나의 소원은 ◯
. 한평생 주님의 성전에 사는 그것뿐.
. 아침마다 그 성전에서 눈을 뜨고 ◯
. 주님을 뵙는 그것만이 나의 낙이라.
5 나 어려운 일 당할 때마다
. 당신 초막에 숨겨 주시고, ◯
. 당신의 장막 그윽히 감춰 주시며
. 바위 위에 올려 높이시리라.
6 에워싼 저 원수들을 내려다보며,
. 그 장막에서 제물 바치고 환성 올리고 ◯
. 노래하며 주님께 찬양하리라.
7 주여, 나의 부르짖는 소리를 들어 주소서. ◯
. 불쌍히 여기시어 대답하소서.
8 “나를 찾으라” 말씀하셨으니
. 내 마음 그대로 아뢰옵니다. ◯
. 주여, 이제는 당신을 뵙게 하소서.
9 그동안 이 종을 도와 주셨으니, ◯
. 당신의 얼굴을 숨기지 마소서.
. 내 구원자이신 하느님,
. 진노하지 마시고 물리치지 마소서. ◯
. 이 몸을 저버리지 말아 주소서.
10 내 부모가 나를 버릴지라도 ◯
. 주께서는 나를 거두어 주실 것입니다.
11 주여, 당신의 길을 가르쳐 주소서. ◯
. 원수들이 지키고 있으니,
. 안전한 길로 인도하소서.
12 원수들이 독기를 뿜으며
. 거짓 증언하러 일어났으니 ◯
. 이 몸을 그들의 밥이 되지 않게 하소서.
13 그러나 나는 살아 생전 이 땅 위에서 ◯
. 주님의 은덕을 입으리라 믿습니다.
14 주님을 기다려라.
. 마음 굳게 먹고 용기를 내어라. ◯
. 주님만을 기다려라.
⦿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
. 처음과 같이 지금도 그리고 영원히, 아멘.
2독서_필립 3:17-4:1
17 형제 여러분, 나를 본받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과 같이 우리를 모범으로 삼고 따르는 사람들을 눈여겨보십시오.
18 내가 벌써 여러 번 여러분에게 일러준 것을 지금 또 눈물을 흘리며 말하는 바이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가 되어 살고 있습니다. 19 그들의 최후는 멸망뿐입니다. 그들은 자기네 뱃속을 하느님으로 삼고 자기네 수치를 오히려 자랑으로 생각하며 세상 일에만 마음을 쓰는 자들입니다. 20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시민입니다. 우리는 거기에서 오실 구세주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21 그리스도께서는 만물을 당신께 복종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오셔서 우리의 비천한 몸을 당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은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실 것입니다.
4:1 그러므로 내가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형제 여러분,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주님을 믿으며 굳세게 살아가십시오.
복음서_루가 13:31-35
31 바로 그 때에 몇몇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께 가까이 와서 “어서 이 곳을 떠나시오. 헤로데가 당신을 죽이려고 합니다.” 하고 말하자 32 예수께서는 “그 여우에게 가서 ‘오늘과 내일은 내가 마귀를 쫓아내며 병을 고쳐주고 사흘째 되는 날이면 내 일을 마친다.’ 하고 전하여라. 33 오늘도 내일도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내 길을 가야 한다. 예언자가 예루살렘 아닌 다른 곳에서야 죽을 수 있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34 “예루살렘아! 예루살렘아! 너는 예언자들을 죽이고 하느님께서 보내신 사람들을 돌로 치는구나! 암탉이 병아리를 날개 아래 모으듯이 내가 몇 번이나 네 자녀들을 모으려 했던가! 그러나 너는 응하지 않았다. 35 너희 성전은 하느님께 버림을 받을 것이다(예레 22:5).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찬미받으소서! 시편 118:26’ 하고 너희가 말할 날이 올 때까지 너희는 정녕 나를 다시 보지 못하리라.”
'글모음 > 설교문' 카테고리의 다른 글
“하느님을 등진 사람”_2025.3.30. 다해_사순4주일 (0) | 2025.03.30 |
---|---|
“죄와 회개”_2025.3.23. 다해_사순3주일 (0) | 2025.03.23 |
“마음의 자리, 유혹의 자리”_2025.3.9. 다해_사순1주일 (0) | 2025.03.09 |
“위선과 회개”_2025.3.5. 다해_재의 수요일 감사성찬례 설교문 (0) | 2025.03.05 |
“사악한 보물 창고”_2025.3.2. 다해_연중8주일_설교문 (0) | 2025.03.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