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신학이야기

새로운 신이해

James Chae 2011. 9. 8. 03:04


새로운 신이해

한스 큉의 신은 존재하는가_pp.189~270 요약정리

 


채창완



데카르트 이후, 역설적이지만, 근대에 이루어진 사상사의 발전은 인간으로 하여금 신에 관해서 그 어느 때보다 더 많은 생각을 하게 해주었다. 우리가 신을 편드는 편에 서든, 아니면 그 반대 편에 서든 우리는 근대의 신이해에 입각하여 신문제를 생각 봐야 한다. 그 결정이 어떤 것이든 현실감 있는 결정이 될 것임에 틀림없다.

 

I. 세계 안에 있는 하느님

-계몽주의의 한계와 헤겔의 입장

역사상 인간의 이성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면서 인류는 인간 이성의 자유로 말미암아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나갈 수 있다는 믿음을 가졌던 것 같다. 그러나 민족주의가 대두되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과 프랑스혁명을 거치며 인간의 잔혹성은 그 밑을 들어내고 인간은 다시금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돌아봐야 했다. 인간의 감정, 종교, 미신에 대해 새로운 해석이 시도되고 자연과 분리되었던 인간이 다시 자연에 대한 경외감을 갖기 시작했다. 자고로 계몽주의는 그 위기에 봉착했으며 낭만주의가 서서히 등장하기 시작했다. 헤겔은 이 변화의 소용돌이의 한 가운데 서있었다.

헤겔은 계몽주의의 한계를 깨닫고 합리주의에 반대하며 지적 계몽은 사람들을 더 명민하게 만들지만 더 선하게 만들지는 않는다……어느 도덕책도, 여하한 지적 계몽도 인간에게서 사악한 경향이 분출됨을 예방하지 못하고 그것이 만연함을 막지 못했다 라고 했다. 헤겔은 비이성적 전통을 바라지 않았고, 그 점에서는 분명히 계몽주의에 속했지만 전통 없는 이성을 바라지 않았으므로 이 면에서는 계몽주의를 넘어선다. 종교는 필요했고 헤겔은 당시 종교에 대해 매우 비판적 태도를 갖고 있었지만 근대 계몽된 사회에서 종교를 쇄신할 목적을 갖고 있었다. 그에게 종교는 민간종교가 되어야 하고 그 민간종교는 세계 이성에 근거한다 그러나 상상, 마음 그리고 심미적 감각도 만족을 못한 채로 남겨져서는 안 된다고 했다. 여기서 이성과 인간 내면의 감정이 만나는 것이다. 이것은 이성과 심미적 감각의 일치를 강조한 루소의 영향으로 볼 수 있다.

 

-내재하는 신 (범신론이 아닌 만유신론)

신이 세계 안에 있고 세계는 신 안에 있다는 스피노자의 범신론의 영향도 받았지만 그는 범신론자는 아니었다. 헤겔이 경험 세계를 신성화하지 않는 이상, 유한자들이 무한자에게 단순하게 흡수되어버리는 식으로, 만유를 신으로 만든 것은 아니다. 넓은 의미의 만유신론(pan-en-theism)을 헤겔에게 적용할 수 있다. 모든 존재가 신안에 이루는 생명의 합일, 즉 생명, 사랑, 만유를 포괄하는 정시의 분화된 통일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즉 대립자로서의 신이 아니라 만유를 포괄하는 신성을 강조한다. 여기서 통일이라는 사변적 원리가 발견되고, 이는 정신일원론(mind-monism)이라고 하는데, 일자(一者)이면서 만유를 포괄하는 신적- 정신을 내다보고 있는 것이다. 이 통일은 무한자와 유한자의 통일, 신적인 것의 통일, 신적인 것과 인간적인 것의 통일, 생명과 정신 그리고 신성까지도 하나되는 통일을 말한다. 또 헤겔은 모든 생물의 모순성으로부터 변증법을 이끌어낸다. 대립자들 안에서 일어나는 변증법적 논리 사고와 변증법적 실재 사건을 보며, 그 대립자들이 새로운 무엇을 생성해낸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므로 변증법은 동시에 사유의 방법이자, 체계적 서술의 형식이며, 존재의 형이상학적, 실재적 과정이고, 모든 생명의 영원한 도래이다. 이러한 체계적, 보편적 돌파구를 헤겔은 그의 선배인 피히테로부터 발견했다.

 

-무신론이 아닌 탈무신론

근대철학은 유한자의 절대성이라는 근본 원리를 공통으로 소유하고 있다. 유한자와 무한자의 절대 반립, 실재와 이념, 감각적인 것과 초감각적인 것 사이의 절대 반립을 원리로 삼는다. 결과적으로 진정 실재적이고 절대적인 것은 전적으로 이 세상 밖에 있는 것으로 보게 된다. 칸트와 야코비 그리고 피히테에게서까지 보이는 이 이원론적 갈등이야말로 신의 죽음이라는 근대적인 근본 감각의 배경을 이룬다.

헤겔은 근대 무신론을 철저하게 검토했고 신이 죽었다(Gott ist tot)는 진술은 정통 신학적 배경에서 나온 경건한 글귀라기보다는 잔혹한 역사적 체험, 한없는 고통을 가리킨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이원론에 날카롭게 반발했고 데카르트주의는 외연과 사유의 분리, 세계 기계와 세계 위에 있는 정신의 분리- 사실상 이러한 이원론의 철학적 표현이었을 뿐이며, 정치적, 종교적 혁명은 그 외형적 측면에 불과한 것이라고 여겼다.

헤겔은 근대 무신론을 탈무신론적인 것으로 간주하였다. 주관, 객관의 분리를 반대해서 사유와 존재의 통일을 전제하고 실현하려고 시도하였으나 다만 주관의 측면에서 그렇게 하였다. 만약 유한자와 무한자 사이의 통합이 순수하게 주관적인 통일이라면 피히테의 무한자의 철학이라는 것도 실은 유한자의 철학만큼이나 절대자의 철학에 가까운 것이 된다. 여기서 만약 인간 주관이 절대화된다면, 자칫 허무주의로 귀착될 수도 있다. 그러므로 단순히 주관적 통일이 아닌, 유한자와 무한자의 실재적 통일이 달성되어야 한다. 이 말은 신 안에서, 절대자 안에서의 통일을 가리킨다. 신적인 절대자 안에서의 통일은 합리주의-이신론식으로 유한자와 무한자를 병치시키는 것으로는 안되고 유한자를 무한자 속으로의 만유신론적 지양을 보전함으로써 이루어진다.

결과적으로 헤겔에 있어서 신의 죽음은 끝장이 아니다. 헤겔은 그리스도교 무신론의 복음을 선포한 것이 아니라, 무신론에 대한 그리스도교적 지양(止揚)을 선포한 것이라고 말해야 한다. 무신론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할 것이 아니라 탈무신론적으로 신을 믿는다고 해야 한다.

 

-신의 수위성(首位性)

헤겔은 철학에서 신의 수위성을 주장한다. 현시점에서 철학의 일차적인 관심사는, 즉 말하자면 신을 다시 한번 절대적으로 첫 자리에 모셔다 놓는 일이다. 너무나 오랫동안 신은 유한성과 나란히놓여 있었거나 아니면 절대적 유한성에서 출발하는 어떤 요청으로서 맨 끝에 놓여 있었는데, 이제야말로 신을 만유의 유일한 근거로서, 존재와 인식의 유일한 원리로서, 철학의 정점에 모셔다 놓는 일이다.

그러나 경직된 수학적 체계가 아니라 생동하고 변증법적 보편 체계 속에서, 모든 개체는 전체, 신적 절대정신 자체의 획일적이고 변증법적 발전의 한 계기로 이해되었다. 절대정신은 주체와 객체의 통일, 존재와 사유의 통일, 실재와 이념의 통일을 표상한다. 그리하여 헤겔은 신의 생명 과정을 서술코자 시도한다. 세속에로의 신의 자기 외화과정(자연의 철학), 세속성을 통해서 정신에 의한 자기 각성의 완전한 성취가 그것이다.(정신의 철학) 그러나 여기서 신개념의 소외(疏外) 위험이 들어 나고 헤겔은 역사를 그의 사유에 도입함으로써 그 돌파구를 찾는다.

 

 

II. 역사 안에 있는 하느님

 

-역사적 변증법

헤겔은 무신론과 범신론 사이의 난점은, 신 자신의 생명, 정신성(Lebendigkeit)을 더 진지하게 고찰한다면 극복되리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변증법적으로 이해한 절대정신의 관점으로 보는 것이 중요하다. 헤겔은 신이 역사를 거쳐서 가고 이 역사 속에서 당신을 계시하는 가운데, 본래의 신이 되어가는 것으로 파악하여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정신현상에 관한 학문은 다양한 형식으로 드러나는 정신의 발현에 관한 과학으로 그 결정적인 형태로 이해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자연의식 안의 절대지식을 어떻게 감지해내는가? 영혼의 도정은 심리학적으로나 교육학적으로 해설되는 것이 아니라 철학적이고 역사적으로 이해돼야 한다. 개체의식의 이 교육적 과정은 동시적으로 절대정신 자체가 세계 역사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자체를 발현하는 방식이기도 하다. 이 정신 현상학의 근본 배경은 절대지식과 인간지식이 원래 분리된 무엇이 아니고 아직 해명되지 않은, 어떤 통일 속에 연관되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인간의식은 절대자를 감지하게 되고, 절대자는 인간의식 속에서 자체를 감지하게 된다.

철학자는 실재가 결여된 사변적 구성에 몰두해서는 안되고 철학적 관찰 바라보다, 사변하다-을 통해 실재가 역사를 통해서 자기에게 드러나는 그대로 묘사하고, 자신의 풍부한 사유를 총동원하여 자기가 체험하는 그대로를 서술해야 한다. 의식은 세계를 통해 알려지고, 그와 동시에 세계는 의식을 통해서 알려진다. 세계에 관한 경험(Er-fahrung)은 의식에 관한 회고(Er-innering)로부터 얻어진다. 이 경험은 하이데거가 밝힌 것처럼 멀리까지 도달하고 내면으로 향하는 정신의 움직임인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개별 주체로부터 출발하는 헤겔의 방법론이 주관주의적 개인주의를 의미하지는 않는다고 해야겠다.) 회고적이고 멀리 도달하는 이 경험은 초기의 방법적의심에서도 고갈되지 않고 의심 속에 상주한다. 그 의심으로부터 생동하는 반립(反立)운동 중에 끊임없이 새로운 변증법적 지양이 진척된다. 이는 Aufheben이란 용어로 정의되는데 이 용어의 삼중의미를 헤겔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절대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진리라는 것은 부단히 폐기되어야 한다. 그러나 폐기됨으로써 동시에, 상대적 운동으로서, 새로이 채택되어야 하고, 더 고차원의 통일로 고양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진리의 긍정, 그것이 부정으로 선회하고, 그 다음에는 긍정과 부정 양자를 초월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일상적 언어로 표현한다면 그렇다!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결국 그렇다!가 된다. 그리하여 인간의식이 신적 절대자의 활력을 공유하기에 이르고, 절대자라는 것은 공허나 견고한 실체가 아니라 주체요 정신이며, 그 자체는 온갖 모순들을 통해 생명을 갖고 움직인다.

또한 헤겔의 주장에 의하면, 이성은 필연적으로 시간 속에 드러나고 발현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리하여 현상학은 이제 정신의 발현의 역사로 이해케 되고 이것이 더 나은 이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것은 단지 정신의 심리적 운동을 거론하는 문제가 아니라, 논리적, 우주적, 사회정치적, 세계사적, 심지어는 종교적인 운동이 문제되고 결국에는 모두가 철학적 운동으로 귀결됨이 분명해진다.

앞서 언급한 신개념의 소외, 고립의 문제가 여기서 해결된다. 신의 이 새로운 실재와 세계의 이 새로운 실재를 가리켜 헤겔은 새로운 세계 안의 신존재(Gott-in-der-Wel-Sein)요 새로운 신 안의 세계 존재(Welt-in-Gott-Sein)라고 정의했다. 어떻게 해서 신이 세계인가와 또한 그러면서도 신이 단순히 세계이기만 하지 않은지를 밝힌 것인데, 그렇게 함으로써 세계는 비신적이면서도 신의 외부형태로 머물러 있게 된다. 역사는 절대자나 신이 자기를 실현해 가는 과정이라 판단한 헤겔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헤겔에 있어서 자아 존립의 장()은 국가와 역사가 되는 것이다.

 

-헤겔의 변신론(辯申論)

헤겔은 역사를 통해 변신론(辯申論)을 전개한다. 세계 역사는 세계가 섭리에 의하여 지배되고 있으며세계 사건들은 신적인 섭리에 의해서 통솔되고 있다고 했으며 세계사의 사건들은 신의 영광을 위한 것이고, 그 사건들이 정신에 의해서 지배되고 있다고 보는 것으로도 우리는 신에게 영광을 바치는 것이다. 그러니까 세계사는 지상에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의 실현이다. 형상과 물상, 국가들, 심지어 세계사의 위대한 인물들도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그들은 새로운 공간을 마련키 위하여 사라지지 않으면 안 된다. 신적 정신은 앞으로 전지하며, 그러면서도 자기가 쓰러뜨리는 모든 것을 가능한 최선의 형태로 그 새로운 공간에 보전한다. 시간의 매 순간에는 절대정신이 영원의 충만을 그대로 간직한 채 현존하고 있으며, 그렇다면 매 시간은 곧 시간의 완벽한 종료이기도 하다. 매 시간은 그 나름의 선한 측면을 띠고 있다. 만유를 회복하는 세계정신의 은혜로운 순간이 곧 카이로스이기 때문이다. 순수한 비관주의가 세계정신의 낙관주의로 승화되고 변모된다.

 

[한스 큉의 결론- 계몽된 사람이면서 경건한 인간? ]

계몽주의와 프랑스 혁명의 격변기에 이러한 헤겔이 이룩한 과업은, 지성적인 솔직함을 갖고서 인간이면서 그리스도인이 되고, 계몽된 사람이면서 경건한 인간이 되며, 전통과 진보에 함께 뿌리를 둔 사람이 되고 싶어하던 사람들에게 엄청난 감명을 주었다. 그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심상화시켰으며, 철학적으로도 지탱되고 마지막 세부까지도 사유가 되는, 신앙과 계몽의 근대적인 정신분열 대신에 철학과 신학의 분화된 통일을 이루었다. 그리스도 사건은 경건주의 정신에 의해서 개인적인 신심의 대상으로 축소되어서도 안되고 제도교회를 위하여 신학적으로 전유될 무엇도 아니고, 전체로 본 인류에게 의미를 갖는 사건, 정신의 세계적 사건으로 간주되어야 한다. 이는 추상적 범신론으로 범속화되어서는 안되며, 신의 죽음의 신학에 의해서 그려져야만 한다. 역사 한가운데서 신에 의해서 고통스럽고도 승리를 통해 극복됨으로써 신과 인간을 구체적으로 정당화하는 시각에서 보아야 한다.

 



[참고문헌]

한스 큉, 신은 존재하는가, 성염 역, 분도출판사, 2001, 서울   pp.189~27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