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품_paintings/Jacob-Going out 2003

야곱의 外出 2003_오의석

James Chae 2011. 12. 16. 02:02

 




 

     

外      出 


오의석(조각가/대구 가톨릭대 교수)




   외출이란 나들이, 곧 집 밖으로 잠시 나가는 것입니다. 서양화가 채창완은 아담과 하와의 실낙원을 인간 최초의 외출로 보면서 인류의 역사는 그렇게 떠남으로 시작된 것이며 그들의 외로움과 두려움은 긴 꼬리를 물며 오늘에까지 이른다고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 오랜 외출의 역사 중에서 한 인물 야곱을 작품의 주제로 선택합니다.  


 

채창완(James C.W.Chae)_야곱의 외출 #79, acrylic on clock, 23cm, 2002  



 

 작품 <야곱의 외출 #79>는 지난 봄 작가의 개인전 전시장 한편 구석 높은 벽면에 걸려 있던 작품입니다. 동그란 벽시계를 작품에 이용한 것으로 시계의 자판은 작가의 대부분 그림처럼 검정 아크릴로 덮여 있으며 일부는 지워져 있습니다. 2, 3, 7 등, 몇 개의 숫자들만이 제 위치를 떠나 스크래치 되어 있고, 사다리 혹은 철길을 연상케 하는 종횡의 교차선 구조 몇 개가 눈에 뜨입니다. 이 어두운 혼돈의 자판 위에서 초침은 부지런히 움직이고 있습니다. 마치 야곱의 외출 시간을 재면서 기록하고 있는 듯이 말입니다. 


  작가가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은 돌아갈 길이 마련되어 있음에도 여전히 떠나 있는 사람들의 심정입니다. 내적 공허와 외로움과의 싸움이 세상과 자신의 화실 안에서 계속되고 있음을 봅니다. 검게 칠한 캔버스를 지워감으로서 드러내는 형상들은 외출한 세상의 어둠 속에서 만난 것들입니다. 작가의 일기이자 에피소드와도 같은 이미지들은 작은 쪽 그림이 되어 집합을 이룸으로써 <야곱의 외출> 연작 전체를 한편의 대서사시처럼 묶어 놓고 있습니다.


  ‘그런 밤에도 시간은 흘러갔다’는 작가의 고백에 비추어 볼 때,  작가의 외출처럼 우리 모두의 외출에도 끝이 있을 것입니다. <야곱의 외출 #79>는 그 때를 기다리며 어둠과 혼돈의 시간을 견디고 있는 작품인지도 모릅니다. 그렇다면 언젠가 작가의 검정 화면들이 밝아지고 그림 속의 물체들이 또렷해지는 외출의 끝 날을 기대해도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