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기독교1494호<2002.12.29>
검정의 미학
화가 겸 큐레이터 채창완
이성숙 기자/ 주간 기독교 sara26@cnews.or.kr
안경 너머로 보이는 눈빛이 선량한, 동안(童顔)인 그는 서른 여섯이라 했다. 첫 개인전을 인도에서 가졌다는 이력이 마음을 설레게 한 채창완 씨. 진흥아트홀 큐레이터로 일하면서 화가로서의 작품 활동도 열심히 하고 있는 그를 찾아가는 내내 왠지 모를 흥분에 휩싸였다. 인도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는 때라 인도 얘기를 좀더 생생하게 들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Jacob-Going out #55_oil on canvas
전통과 서구의 접점, 그 안에서 찾아낸 검정
94년 추계예술대학을 졸업하고 그 해 가을 인도로 갈 때만 해도 그는 그림을 접을 생각이었다. 단기 선교 여행을 다녀온 후 선교에 대한 열정으로 충만했던 그가, 신학을 공부하러 간 그 곳에서 다시 그림을 시작하게 될 줄 누가 알았으랴. 힌두교적인 베이스가 없이는 자신의 존재를 생각할 수 조차 없다는 인도.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을 못살게 구는 단체가 있을 정도로 기독교에 대해서는 배타적이지만, 뿌리 깊은 문화 전통으로 인해 그림으로 다가가는 것은 오히려 쉽다는 것. 비쥬얼 언어인 그림으로 풍성한 메시지를 전할 수 있다는 게 생각이 미친 그는 다시금 그림을 공부하기로 작정했다.
Jacob-Going out #40_oil on canvas
인도에서의 그림 공부는 그에게 우리 전통을 다시 생각하는 계기가 되었다. 서양화와 우리 그림이 확연히 구분되는 것과는 달리 전통과 서양화가 적절한 지점에서 조화를 이루는 인도 북부의 화풍에서 실마리를 찾은 것이다. 인도 유학의 경험은 그에게 자연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마음을 심어 주었다. 해질녘의 어슴푸레한 자연의 풍광은 오래도록 그의 가슴에 남아 그의 그림을 지배했다. 이는 색과 형태의 단순화로 나타난다.
Jacob-Going out #41_oil on canvas
그림은 색이 극도로 제한된다. 채색화도 있지만 수묵화가 주를 이루는 한국화에서 우리 선조들은 왜 먹을 주로 썼을까. 처음에는 청,홍,적,백,흑 다섯 가지 색을 쓰다가 차츰색을 줄여 지즘은 검정만 쓰고 있다. 어떤 이는 검정 일색인 그의 그림을 두고 너무 어둡다고 한다. 하지만 검정에 대한 그의 생각은 다르다.
Jacob-Going out #42_oil on canvas
“검정은 검정만이 아니에요. 검정은 여러색의 혼합이라는 사실을 검정만 쓰면서 체득하게 되었죠. 아무리 써도 질리지가 않아요. 참 신기하죠? 감성을 고스란히 담아낼 수 있는 색깔도 검정이라는 것을 알게 됐으니 말이에요”
그는 검정이 결코 어두운 색이 아니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그림은 칙칙한 느낌을 주지 않는다. 오히려 밝다. 색감은 화가가 그 색깔을 쓸 때의 심리상태에 더 많이 좌우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Jacob-Going out #43_oil on canvas
“검정이 주는 느낌은 내게 환상적이다. 모든 색과 빛을 흡수해 버리는 그 포용력은 무한한 깊이감을 느끼게 한다. 묵직하고 조용하며 내재된 세계를 상상하게 만든다. 자기 자신을 주장하는 것 같지 않으면서도 강한 자기 주장이 담긴 색이다. 그 검정물감을 화면에서 휴지로 지워내면서 얻어지는 하얀 색은 검정색과 조화를 이루며 화면 안에 또 다른 깊이감을 창조한다. 그 깊이감이 우리 전통회화의 그것과 비견될 수는 없다고 해도 나로서는 작은 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다.(그의 홈페이지 www.cwchae.pe.kr에서) ”
Jacob-Going out #44_oil on canvas
<야곱의 외출>
예수를 안 지 10여 년. 그 동안의 자신을 돌아보는 작업을 그는 지금 하고 있다. 작은 에피소드들을 모아 하나의 의미를 담아 내고 이 작품들로 내년 4월에 <야곱의 외출> 전시회를 가질 계획인 것이다. 낮에는 큐레이터로 근무하면서 퇴근 후에 작업하는 것이 체력적으로 버겁다. 하지만 지난 세월을 정리하는 의미로 시작한 이 작업에 그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 ‘외출’은 귀가를 전제로 한 단어다. 하나님의 품 안에서 잠시 떠나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돌아가야 할 곳, 그 곳은 바로 하나님 곁이다.
<야곱의 외출>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장의 단계를 거쳐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가 될 듯하다. 퇴근 후 작업장이 있는 마석에 가서 2시까지 작업하고 집에 돌아가 서너 시간 수면을 취하는, 일의 연속이지만 추억에 대해 생각하다가 까맣게 칠한 바탕을 닦아내면서 그려넣는 그림들은 피로를 말끔히 씻어준다.
1월까지 작가로서의 작품 작업을 매듭짓고 2월부터는 작품 전시를 담당하는 큐레이터 역할을 할 거라고 한다. 작가가 자신의 작품을 큐레이팅하는 일이 언뜻 더 쉬울 것 같은데 오히려 부담감은 더한가 보다.
“사람들의 시선이 예사롭지 않아요. 그래서 더욱 신경이 쓰이구요.”…..(중략)
큐레이터는 요리해 놓은 음식을 그릇에 담아 식탁에 차리는 일을 하는 것과 같다고 말하는 그. 화가로서 큐레이터를 곀하고 있는 그의 작업이 기독미술을 일반인들이 쉽게 다가설 수 있게 하는 데 일조할 수 있으리라. 벌써부터 내년 4월이 기다려진다. <야곱의 외출>은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올까.
Jacob-Going out #45_oil on canv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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