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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 신앙

2022.10.30. 모든 성인의 날 / 연중31주일 다니 7:1-3, 15-18 / 시편 149 / 에페 1:11-23 / 루가 6:20-31 “성인 신앙”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삶과 죽음. 삶의 고통만큼이나 인류는 끊임없이 죽음에 대한 공포와 씨름해왔습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함께 지내던 가족이 싸늘한 육신만 남기고 의식이 사라질 때, 사람들은 공포와 슬픔에 전율했습니다. 죽음 이후의 세계에 대해 모르기에, 죽음의 정체를 모르기에 더욱 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극복하고 정복하려 했습니다. 인간의 삶이 유한하다는 것. 죽음 이후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소통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많은 학자들은 이러한 한계의 깨달음 속에서 종교가 싹트기 시작했다고 말합니다. 종교..

글모음/설교문 2022.10.30

겸손한 기도

2022.10.23. 연중30주일 요엘 2:23-3:5 / 시편 65 / 2디모 4:6-8, 16-18 / 루가 18:9-14 “겸손한 기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지난주에 우리는 ‘끈질긴 기도’에 대해 생각해봤습니다. 오늘은 이어서 ‘겸손한 기도’에 대해 루가복음은 말하고 있습니다. 루가는 ‘기도’에 관해서는 다른 복음사가보다 매우 구체적인 경험과 개념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씀 중 ‘끈질긴 기도’와 ‘겸손한 기도’를 연속해서 편집함으로 참다운 기도에 대해 정리를 했습니다. 물론 오늘 본문도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루가의 특수자료입니다. 루가가 이 두 전승을 이어서 배치를 한 것은‘끈질긴 기도’가 빠질 수 있는 위험과 유혹을 ‘겸손한 기도’로 ..

글모음/설교문 2022.10.30

복음 전도

2022.10.18. 연중 29주 화요일 / 성 루가 축일 (성직자 연피정 여는 예배 설교) 이사 35:3-6 / 시편 147:1-7 / 2디모 4:5-17 / 루가 10:1-9 “복음 전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본문은 루가복음에만 나오는 ‘루가의 특수 자료’입니다. 공동 복음서가 공통적으로 기록한 ‘열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를 루가는 루가복음 9장에 배치하고, 오늘 10장에서는 ‘일흔두 제자의 파견’ 이야기를 덧붙입니다. 성 베다는 각각의 파견 이야기를 ‘열두 제자의 파견’은 주교직의 사명을 명시한 것이고, ‘일흔두 제자의 파견’은 우리와 같은 ‘평사제’의 사명에 대해 말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주교직의 사명’이든 ‘평사제의 사명’이든 이 두 이야기에는 세 가지..

글모음/설교문 2022.10.30

끈질긴 기도

2022.10.16. 연중 29주일 예레 31:27-34 / 시편 119:97-104 / 2디모 3:14-4:5 / 루가 18:1-8 “끈질긴 기도”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본문은 두 가지 관점에 따라 제목이 달라질 수 있는 본문입니다. 끈질기게 졸라대는 과부에게 초점을 맞추면 “끈질긴 과부의 비유”가 되고, 하느님도 사람도 두려워 않는 재판관에게 초점을 맞추면 “불의한 재판관의 비유”가 됩니다. 원래 이 이야기는 2절에서 6절까지가 원래 전승 자료입니다. ‘끈질긴 기도’에 대해 언급한 1절과 ‘사람의 아들의 재림’에 대해 언급한 8절은 아마도 루가가 덧붙인 것으로 보입니다. ‘끈질긴 기도’에 대한 말씀은 루가복음 11장에도 기록되어 있습니다. 루가는 ‘하느님 나라의..

글모음/설교문 2022.10.30

“바다에 심긴 나무: 믿음의 역설”

2022.10.2. 연중 27주일 애가 1:1-6 / 시편 137 / 2디모 1:1-14 / 루가 17:5-10 “바다에 심긴 나무: 믿음의 역설” 채야고보 신부 / 대한성공회 제주우정교회, Artist 오늘 읽은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앞에 어떤 말씀을 주님께서 언급하셨는지를 먼저 살펴야 합니다. 오늘 읽지 않은 17장 1-3절 말씀은 ‘남을 죄짓게 만들지 말라’는 메시지이고, 그다음은 3-4절에 ‘용서’에 관한 말씀입니다. 남을 시험 들게 말고, 만약 타인이 용서를 구하면 무조건 용서하라는 메시지입니다.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남이 용서를 구하면 세 번까지는 용서해주라 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완전수를 사용하여 하루 일곱 번이라도 용서해주라고 하십니다. 마태오는 이를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

글모음/설교문 2022.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