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2009년 11월 13일 숭실대학교에서 개최된 한국문예연구소 전국학술대회 [한국 기독교 예술을 찾아서]에서 발표된 글입니다.
**이 글은 한국기독교문예 제5집 [한국문학과 예술 The Korean Literature and Arts ] (숭실대학교 한국문예연구소, 서울, 2010)에 등재된 논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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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반성과 과제
채창완(야고보)
국 문 초 록
그 동안 한국에서‘기독교미술’하면 '키치(kitsch)'의 대명사와 같은 존재였다. ‘달력그림’이나 성서의 ‘삽화’같은 그림들, 긴 머리에 수염 난 젊은 서양 청년의 이미지를 닮은‘예수의 초상화’들, 그리고‘십자가’나 ‘비둘기’, ‘성경책’등과 같이 모두가 판에 박은 듯 고루한 기독교적 상징성을 담은 그림들 일색이다. 시각적 이미지가 범람하는 오늘날과 같은 다변하는 멀티미디어 시대에서 기독교미술은 우리에게 신선한 시각적 체험을 보여주기보다 오히려 우리의 시선을 현대가 아닌 어딘지도 모를 아득한 망각의 지점으로 옮겨 놓는다. 그래서 오늘날 기독교미술은 시대착오적이고 진부한 것이 되었다.
그러나 최근 10여 년 간 이 땅에서도 이러한 기독교미술에 대한 편견을 극복하고자 고민하는 많은 작가들과 여러 담론들이 있어왔다. 하지만 이러한 노력들조차도 다른 기독교 전통과의 교류 없이‘개신교’ 내에만 국한되어 있던가, 아니면 ‘보수주의 신앙’이나‘칼빈주의 전통’ 하에 만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이러한 기독교미술의 담론의 편협성은 이제 시작점에 놓인 기독교미술의 미래를 더욱 어둡게 만든다.
필자는 우리의 기독교미술에 대한 담론은 이러한 지엽적이고 편협한 단계에 머무르지 말고, 교회와 사회, 문화 그리고 다양한 학제 간 교류를 통하여 보다 폭넓게 전개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한국’이란 전통적이고 사회적인 콘텍스트 위에‘현대’라는 동시대성을 갖춘 시각적 예술(미술)을, ‘기독교’적인 신학과 미학을 그 사상적 기반으로 해서, 전개하는 것이다. 이를 정리해보면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이 된다. 즉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이다.
여기서 ‘한국’이란, 우리의 전통적 가치, 즉 우리 문화의 전통적 맥을 담보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바로 미술과 신학의 ‘토착화 문제’와 관련된 것이다. 또한‘현대’란, 과거와 다른 동시대성을 말한다. 우리의 기독교미술은 중세의 그것과 달리 오늘날에 소통할 수 있는 양식과 감수성을 지녀야 한다는 의미이다. 또‘미술’에 ‘기독교’를 붙이는 것은 기독교미술이 다른 미술과 달리 ‘사명성’을 지닌 미술이란 의미이다. 그것은 기독교의 지상의 과제인 ‘케리그마 선포’에 대한 것이다. 끝으로 ‘미술’은 ‘시각적 이미지’ 또는 ‘시각적 소통’을 의미한다. 멀티미디어 사회에서는 글이나 문자보다도 시각적 이미지를 통한 소통이 더 중요시된다. 인터넷과 상업디자인, 상품광고들 그리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보는 모든 것들이 시각적 정보를 쏟아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정보’는 ‘문자’ 속이 아니라 이제 ‘이미지’ 속으로 옮겨왔다. ‘미술’이란 장르는 이러한 시각적 소통의 최전선에 놓여 있다. 그래서 오늘날‘미술’이 과거 어느 때보다 더 중요한 시대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현대에 있어서 교회는 ‘케리그마 선포’를, 중세와 유사하게, 또 다시 시각적인 예술에 의존하는 것을 심각하게 고려해봐야 한다.
필자는 21세기에 요구되는 ‘기독교미술’은 이러한 시대적인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여기에서 요청되는 것이 기독교 미학과 신학의 중요성이다. 폴 틸리히(Tillich, Paul)의 ‘신성의 원리와 솔직성의 원리’, 데오 순더마이어(Sundermeier, Theo)의 ‘선포의 동반자로서의 미술’, 유동식의 ‘풍류신학’ 그리고 ‘숭고미’에 대한 중세 ‘이콘의 미학적 신학’ 등은 모두 시각적인 요소로 기독교의 케리그마를 어떻게 풀어내야하는 가에 대한 좋은 이론적 과제가 될 것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은 ‘신성의 원리’와 ‘솔직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교회와 세상의 감수성에 동시에 호소하는 미술이다. 그것은 미적으로 우리의 정서를 담은 ‘풍류’와 ‘멋’을 담보해야 한다. 그리고 그 작품에는 사람들의 영혼에 호소할 수 있는 ‘숭고’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어 나와야 할 것이다.▍
Abstract
“Christian art” in Korea has widely been regarded as something of a kitsch to date: paintings that look like ‘calendar pictures’ or illustrations of the Bible, ‘portraits of Jesus’ which stereotypically depict Jesus as a long hair and bearded Western young man, art works replete with cliché images of Christian symbols such as ‘crucifixes’, ‘doves’, and ‘the Bible’ etc. However, in the fast-changing multimedia era flooded with visual images, such kinds of so-called Christian art seems to divert our views away from this modern era towards somewhere far into a distant past, rather than stimulating us with fresh new visual experiences, which is one of the main reasons for its becoming something of anachronistic cliché.
That being said, the past decade has not been without substantial efforts and discourses amongst Korean Christian artists to overcome such limitation and prejudices. However, even such efforts have not been expanded beyond Protestant communities, i.e. mainly conservative and Calvinian sectors, as they fell short of seeking exchanges with other Christian traditions. Such lopsided discourses are making the prospects of the Christian art, which is now only at its inception, far from being brighter.
Discourses on the Christian art, therefore, should not remain siloed but be developed in a wider social, cultural and inter-disciplinary context: “contemporary” visual art(fine art) based on social and traditional context of “Korea” with “Christian” theology and aesthetics as its theoretical grounds. To sum, it should be “Korean + Contemporary + Christian + Art”, i.e. ‘Korean contemporary Christian art”.
Here, ‘Korean” implies that it should contain traditional values and context of Korean culture, which in turn relates to ‘indigenization” of our art and theology. In addition, “contemporary” means belonging to the present age, differentiated from the past. To put it differently, today’s Christian art should be of style and sensitivity that can appeal to today’s viewers. When the word, “Christian,” is attached in front of “Art”, it means that Christian art, unlike other art, has ‘mandate’ to “declare kerygma”(ultimate mandate of the Christianity). Finally, ‘art’ means ‘visual images’ or ‘visual communication.” In the multimedia society, communication through visual images counts more than those through written media: the Internet, commercials, advertisements, and visual experiences of our daily lives keep pushing endless visual images and people find more and more information in images, rather than in letters. Hence, it is getting more inevitable that fine art, as a genre, should stand at the forefront of such visual communication, which in turn highlights its importance even more. Therefore, in this contemporary society, it is critical for the church to seriously consider leveraging and relying on visual art, just as it did during the Middle Age, in ‘declaring Kerygma’.
As such, ‘Christian art’ in this 21st century needs to meet such demands of this era. To that end, it is very important to find solid theoretical grounds in Christian aesthetics and theology. In this regards, Paul Tillich’s ‘principle of consecration’ and ‘the principle of honesty’, Theo Sundermeier’s ‘arts as a companion for preaching’, Ryu, Dongshik’s ‘Pungryu theology (‘Pungryu’ means ‘taste for the art’ in Korean)’, and ‘aesthetical theology of icons’ related to sublime beauty developed during the Middle Age, etc. can all serve as good platforms in seeking to express kerygma of Christianity through visual images. It is my belief that ‘Korean Christian Art” should be based on the principle of consecration and honesty and appeal to the sensitivities of both the church and the world. At the same time, it should also retain ‘Pungryu’ and ‘Meot’(‘taste/charm/flavor’ in Korean) of Korean aesthetic sentiment, with ‘sublimity’ residing deep inside the works appealing to souls of this era.▍
1.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반성
1)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전개
‘기독교미술’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이미지는 늘 서양 청년이었다. 긴 머리의 ‘서양 청년’이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어루만지는 모습. 세상의 모든 짐을 짊어진 듯한 고통에 일그러진 표정을 한 ‘서양 청년’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모습. 실제 역사적 예수와 그림 속의 ‘서양 청년’이 과연 어떻게 연관성을 갖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았다. 기독교미술에 있어서 예수를 서양인으로 표현하는 것은 너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기 때문이다. 그가 오늘날의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은 그러한 편견적 이미지에 의해 철저히 무시된다. 이러한 예수에 대한 이미지는 오랫동안 ‘기독교미술’에 대해 대중들로 하여금 선입견을 갖게 만든 중요한 원인이었다. 이는 우리 미술계 전반에 드리워진 기독교미술에 대한 편견과 맥을 같이 한다. 이러한 이유로 한국 미술계에서 ‘기독교미술’이라 하면 진부하고도 조악한 수준 낮은 ‘키치kitsch’의 대명사로 늘 취급 받았다. 10년 전 ‘진흥아트홀’이 생길 때만해도 이러한 편견은 너무나 보편적인 것이었다. 그리고 작가들도 결코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공공연히 드러내지 않았고, 같은 기독교인 작가들 조차도 기독교적인 주제로 작업을 하는 작가들을 수준 낮은 작가로 취급하기도 했다.
이러한 편견의 원인은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그 중 하나는 한국현대미술사에서 ‘기독교미술’이 자리할 여지가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기독교미술을 한다고 내세울 만큼의 기독교미술의 양식적·이론적 특징이나 그러한 그림을 수용하고 지원할 사회적·교회적 시스템 조차 전무했었다. 그러한 척박한 상황에서 유독 ‘기독교미술’을 고집했던 사람들은 대부분 ‘교회 달력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뿐이었다. 그 당시에 한국 미술계에 크리스천들이 전혀 없었던 것도 아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의 작품을 기독교 신앙과 별개로 한 개인적인 창작의 영역으로만 여길 뿐 기독교인으로서의 사회적·문화적 책임에는 무관심했다. 한국 미술계에서 ‘한국기독교미술협회’가 있었지만 그 활동은 어디까지나 ‘친목단체’의 활동 수준을 넘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이러한 환경 하에서 기독교미술에 대한 반성과 자신들의 작품에 대한 고민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사회적·문화적 책임을 고민하는 소수의 기독 청년 학생들에 의해 ‘현대기독교미술’이란 담론이 본격화되기 시작했다. 그때는 ‘민중미술’이 커다란 미술계의 담론을 형성하던 80년대였다. 그 당시 활동했던 단체로는 ‘기독미술연구회’가 있었고 80년대 말과 90년대 초에 ‘엑소우시아’를 비롯한 소수 청년작가단체들이 잇달아 산발적으로 생겨났다 사라졌다. 90년대에는 기성작가들이 중심이 된 ‘한국미술인선교회’가 ‘한국기독교미술인협회’와 별도로 활발한 활동을 전개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러한 기독교미술단체들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다른 차원에서 이루어져야 할 것이고, 이 글은 전반적인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을 생각해 보는 것으로 더 깊은 언급은 여기서 생략하겠다. 중요한 것은 새천년 이전의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담론이 교회 ‘밖에서’ 청년 미술 학생들을 중심으로 전개되었다는 것이다.
새천년을 2년 앞두고 진흥아트홀이 서울 신설동에 ‘현대기독교미술’ 전문갤러리로 문을 열었을 때 가장 먼저 넘어야 했던 것은 ‘달력 그림’으로 취급 받던 ‘기독교미술’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었다. ‘기독교미술’에 대한 비판은 기독교 안팎으로 동시에 이루어졌다. 젊은 크리스천 작가들을 초청해서 첫 전시회를 가졌을 때, ‘저런 그림이 어떻게 기독교적이냐’라는 기독교인들의 비판을 받아야 했다. 그들이 비판한 그림은 흔히 ‘비구상’계열의 작품들이었는데, 그들은 예수나 성서와 관련된 이미지를 그림 속에서 볼 수 없다는 이유로 불평했다. 한마디로 추상미술은 이해가 어렵다는 것이다. 또한 기독교 밖으로는 평론가들과 미술언론들로부터 ‘종교집단’ 또는 ‘삼류미술’로 오해 받으며 철저히 무시되었다. 그들에게 ‘기독교미술’은 특정종교에 국한된 현대미술의 변방일 뿐이었다.
그러나 진흥아트홀과 함께 그보다 몇 년 앞서 생긴 ‘빛갤러리’는 2000년대 초 중반에 기독교미술인들의 활동 본거지였다. 이 두 갤러리는 크리스천 청년 작가들과 기성작가들의 왕성한 활동을 지원했고, 그 결과 기독교미술에 대한 담론이 점점 불붙기 시작했다. 그 중 ‘한국미술인선교회’의 활동과 ‘아트미션’, ‘기독미술연구회’의 활동이 가장 두드러졌다. 2007년에는 백석대학교에서 ‘기독교미술학부’가 생겨나기도 했으며, 기독교 사상에 근본을 둔 ‘pm2갤러리’와 ‘세오갤러리’가 각각 생겨나 ‘기독교미술’에 활력을 더했다. 작금에 ‘현대기독교미술’이란 용어가 점점 우리에게 친숙한 용어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러한 노력들 때문이다. 그러나 양적으로 ‘현대기독교미술’에 대한 담론이 다양하게 전개되었지만 질적으로는 이론적 편식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이다. 대부분의 담론이 개신교 내에 국한되어있으며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의 보수성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기독교에 뿌리를 둔 가톨릭이나 동방정교회에 대한 미술적 성찰이나 반성도 드물다. 더욱이 ‘한국적’이라는 토착화에 대한 담론은 전혀 시작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만큼 한국에서의 ‘현대기독교미술’의 담론은 이제 그 시작점에 서있으며 신학적으로는 ‘보수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다. 물론 이러한 비판은 개신교에만 국한된 것이다.
2) 고백과 표현: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특징
진흥아트홀의 10년의 역사가 한국현대기독교미술 발전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에 대한 평가는 차후에 이루어진다고 할지라도, 그 10년의 역사는 현대기독교미술의 토대를 형성하는 과정과 늘 함께했다. 이에 필자는 그 동안 진행되어온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양식적 특징을 진흥아트홀을 중심으로 ‘고백(confession)’과 ‘표현(expression)’[1]으로 정리해보고자 한다.
‘고백’은 말 그대로 그림을 통한 케리그마(kerygma)의 선포와 개인의 신앙적 고백을 담은 작품들에서 나타나는 특징이다. 이러한 작품들은 대개 기독교적인 메시지를 담고자 한다. 모든 표현 기법은 ‘상징적’이다. ‘십자가’, ‘성경책’, ‘기도하는 사람’, ‘ 비둘기’ 등과 같은 기독교적인 상징물과 하나님이 창조하신 자연의 아름다움 등을 주로 표현한다. 작품의 이미지로 의미가 전달이 되지 않을 시에는 작품의 제목으로 이를 보충한다. 예를 들어 장미를 그린 그림에 제목을 ‘찬양’ 또는 ‘찬미’라고 붙이는 식이다. 이러한 작품을 하는 작가들은 대부분 기성세대 중에 많은데 이들은 그림을 단지 신앙고백의 ‘도구’로 간주한다. 그림이 도구이기 때문에 그림보다는 그 안에 담고 있는 ‘메시지’가 더 중요해 진다. 그러나 이들이 간과하고 있는 것은 내용은 늘 형식에 녹아있다는 사실이다. 형식이 부실하면 그 내용조차 부실해진다는 말이다. ‘고백’적 작품들은 늘 ‘형식’적 실험에 있어 현대미술의 흐름과 동떨어져 있다. 그래서 동시대 미술과 소통하기 어려운 단점을 지닌다. 물론 최근에 젊은 작가들을 중심으로 이러한 ‘고백’적 작품에도 형식적 실험이 행해지고 있지만 그 수는 아직 미미하다. ‘고백’적 작품에서처럼 쉽게 그 의미가 파악되는 상징은 더 이상 상징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노골적으로 기독교적인 ‘상징’을 남용함으로 오히려 일반인들에게 반감을 사게 되는 일이 다반사다. 물론 현재 교회 내에서는 오히려 이러한 고백적 작품들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이와 반대로 ‘표현’적 작품들은 일견에 일반 미술과 구분하기 어려운 양식적 한계를 지닌다. ‘표현’적 작품을 하는 작가들의 ‘궁극적 관심’은 인간 ‘심층의 차원’에 있다. 그것은 다른 말로 인간의 실존과 인간이 처한 환경에 집중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인간 실존의 차원에서 기독교적인 물음을 제기하는 것이 표현적 작품들의 특징이다. 이러한 표현적 작품들에서 기독교적인 상징을 찾는 것은 쉽지 않다. 양식적인 측면에서 이들의 작품은 동시대의 미술 양식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림의 주제도 일반적인 경우가 많다. 그래서 교회에서는 이들의 작품에 의문을 제기한다. 어떻게 그것이 기독교미술인가? 그러나 기독교의 ‘궁극적 관심’이 하나님과 인간 실존에 닿아 있는 것이라면 이는 분명히 기독교미술로 정의되어야 할 것이다.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일상과 생각 속에서 녹아나는 케리그마가 그 작품들 심층에 존재한다. 기독교가 지니는 인간 실존에 대한 관심은 결코 교회 내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인간의 심층적 차원에서 모두 연결되어 있다. 그러므로 ‘표현적’ 작품을 기독교미술의 범주에 넣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최근에는 이러한 크리스천 작가들의 활동에 힘을 입어 현대미술의 파괴적이고 해체적인 양식에 실증을 느낀 많은 사람들이 이들의 작품을 선호하기 시작했다. 물론 이들에 대한 인정은 교회에서 보다 일반 미술 시장에서 먼저 이루어지고 있다.
문제는 ‘고백’적 작품들은 일반인들에게 거부감을, 그리고 ‘표현’적 작품들은 기독교인들에게 거부감을 각각 불러일으킨다는 것이다. 이는 ‘고백’적 작품들이 현대미술적 양식에 대한 형식 연구 없이 너무 기독교적인 상징들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상징’들을 사용하는데 과거의 것을 답습하는 차원에만 머문다. 반대로 ‘표현’적 작품은 현대미술적 형식에 대한 성찰과 인간에 대한 깊은 관심을 드러내긴 하지만 그 방식에 있어서 기독교신학적인 성찰이 부족하다. 결국 정리하면 현대기독교미술의 ‘형식과 내용’에 대한 문제로 귀결된다. 기독교적인 ‘내용’을 어떠한 ‘형식’으로 담아내느냐 하는 문제이다. 21세기에 과거의 기독교미술 양식을 그대로 따를 수는 없는 법이다. 그렇다고 현대미술의 양식을 무분별하게 수용하여 이를 추종할 수도 없다. 한 시대의 시대정신과 사람들의 삶을 공통으로 묶는 것이 ‘예술양식’이라면 현대기독교미술도 이러한 이 시대를 대표할 보편적 양식을 도출해 내야만 할 것이다. 획일화된 중세의 미술로 다시 돌아가는 대신 현대와 중세를 연결할 고리를 찾아 현대를 중세의 눈으로, 중세를 현대의 눈으로 재해석할 여지는 남아있다. 왜냐하면 ‘중세’는 기독교미술과 신학 그리고 미학이 절묘하게 결합되었던 시기이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 ‘한국적’이란 수식어를 붙이는 고민도 추가돼야 할 것이다. ‘현대기독교미술’은 분명 ‘한국’이라는 문화적 콘텍스트 속에서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필자는 이러한 방대한 작업 앞에 가장 적은 부분만을 언급하고 있다. 이미 정립된 이론이기 보다 앞으로 계속해서 수정되어 갈 이론이라는 데서 어디까지나 ‘제언(提言)’의 차원에 머문다. 작가는 작가대로 신학자는 신학자대로 미학자는 미학자대로 그리고 미술이론가는 미술이론가대로 각각의 역할과 책임이 분명 있다. 틸리히(Tillich, Paul)가 말한 ‘상관관계적 방법’이 이러한 연구에서 각 분야별 상호 관련성을 찾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2.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과제
1) 현대미술과 교회의 불편한 관계
한국에서의 현대기독교미술이 그 시작점에 서 있다면 우리는 다양한 이론적 가능성들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미술에 ‘기독교’라는 명칭을 사용한다는 것은 기독교의 가치들이 그 안에 반영돼있다는 것이고 또 ‘현대’라는 단어를 붙인다는 것은 ‘중세기독교미술’과 차별된 오늘날의 기독교미술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현대기독교미술’은 기독교적 가치를 오늘날의 미술양식으로 풀어내는 미술이라 정의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현대기독교미술’에 대한 담론은 미술과 신학 그리고 미학을 아우르는 가운데 전개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문제는 ‘한국’이란 말을 사용하는 것이다. 이는 결국 토착화에 대한 논의가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인데, 기독교미술계의 입장에서는 현재 미술에 대해 무지한 한국 교회의 편견을 넘는 것만으로도 벅찬 일이다. 한국 교회들 사이에서도 이러한 ‘토착화’에 대한 논의는 많은 이견들이 있는 상황이다. 이미 한국의 현대미술이 이러한 토착화의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이 되다 보니 외향적으로 서양의 미술양식과 별반 구분이 없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의 것을 현대미술과 접목하는 노력이 아주 없는 것도 아니지만 그만큼 우리 미술은 우리 사회의 현대화와 더불어 너무 많은 우리의 것들을 그냥 지나쳐 왔다. 신학적으로 ‘문화신학’과 ‘풍류신학’에서 예술에 있어서 토착화에 대한 문제를 다루긴 했었지만 이러한 것들이 현대기독교미술의 담론에까지 아직 연결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우리의 신학이 서구의 사상을 답습하는 데서 시작된 것 같이 한국에서의 현대기독교미술 또한 그러한 처지이다.
서구 미술사에 있어서 미술의 가장 큰 후원자는 교회였다. 이는 르네상스 이전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그러했다. 미술과 교회의 결별은 15세기부터 시작해서 18세기 낭만주의를 거치면서 점점 가시화되고 19세기 사실주의를 거치며 탄력을 받다가 현대에 와서는 완전한 결별이 이루어졌다. 오늘날의 작가들은 더 이상 후원을 위해 교회를 바라보지 않는다. 르네상스 때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미술의 새로운 후원자로서 부르주아지가 교회의 ‘바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오늘날 미술은 교회를 위해 헌신하지 않아도 된다. 그래서 현대미술은 윤리적·사회적 구속으로부터 그 만큼 자유로울 수 있는 것이다. 그 결과 교회는 현대미술을 타락한 것으로 규정짓고 멀리했으며, 반면 현대미술은 교회를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는 주체로 규정하여 멀리했다. 현대사회에서 교회와 미술은 서로 상반된 길 위에 서있는 것이다.
이것이 누구의 잘못일까? 현대미술 아니면 교회? 책임은 둘 다에 있다. 르네상스 이후 인본주의와 인문주의의 등장으로 사람들은 더 이상 기독교적 세계관을 통하지 않고 인간 스스로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미술은 교회의 소유에서 벗어나 자본을 제공하는 새로운 계층의 것이 되었다. 교회에서 성서만큼이나 케리그마의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오던 미술은 자연스럽게 그 자리를 ‘성서’와 ‘음악’에 양보해야만 했다. 미술보다 ‘우상숭배’의 혐의가 비교적 적었던 음악은 찬송을 목적으로 교회에서 자신의 자리를 그대로 유지 할 수 있었다. 그래서 음악은 교회의 테두리 안에서 세계적인 거장들을 계속해서 배출해 올 수 있었던 것이다. 반면 미술은 ‘우상숭배’의 혐의 때문에 개신교에서 점점 그 자릴 잃게 되었다. 북유럽에서 렘브란트(Rembrandt, Harmensz van Rijn)와 같은 개신교 출신의 거장을 배출하기도 했지만 이는 미술 전반에 일반화된 현상이 아니었다. 그러나 렘브란트의 그림은 성서의 내용을 충실이 담아내는 ‘삽화적 형식’의 한계를 결코 넘지 못한 아쉬움을 남겼다.
‘성서’와 ‘설교’가 개신교 신앙의 중심 자리에 들어오면서 오랫동안 교회를 괴롭히던 ‘우상숭배’에 대한 두려움도 어느 정도 사라졌다. 그 결과 교회는 시각적 예술에 점점 무뎌지고 오히려 ‘귀’에 의존한 예술을 발전시킬 수밖에 없었다. 개혁신앙이 강하게 강조되면 될수록 이미지는 천박한 대접을 받을 수밖에 없었다. 이런 관점에서 미술이 자본가들을 따라 간 것은 너무나 당연한 결과였는지 모른다. 교회를 대변하던 미술이 오늘날 자본가들을 대변하는 현상은 이러한 관점에서 너무나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리고 오늘날 현대미술은 ‘자본’의 힘이 없이는 결코 불가능한 것이 되었다. 화실에서 캔버스를 앞에 두고 물감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보다 현대미술 작품들은 막대한 작품 제작비가 소요되는 경우가 허다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거대 자본과 미술이 손을 잡을 수밖에 없는 이유이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 개신교 교회가 아무리 시각 예술을 등한시한다 해도 멀티미디어가 발달된 현대에서 ‘이미지’의 영향으로부터 결코 자유로울 수는 없다. 넘쳐나는 이미지의 홍수 속에서 교회도 시각적인 부분의 도입을 서둘러왔지만 그 기초가 전혀 건실하지 못하다. 그래서 교회 내에 이미지의 무분별한 수용으로 인한 병패가 심한 것이다. 그 예로 예배 중에 사용하는 영상기기의 도입을 들 수 있다. 오늘날 개신교 예배를 보면 전면의 커다란 스크린에 설교자의 얼굴을 비추는 것이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대형 스크린으로 제단의 십자가를 가리면서까지 설교 시간에 설교자의 얼굴을 크게 확대해서 봐야 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뒷자리에 앉은 사람들이 목사님의 얼굴을 자세히 볼 수 없어 온전히 예배를 드릴 수 없었던 건지. 아니면 설교자의 일거수일투족뿐만 아니라 얼굴 표정까지도 설교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설교의 효과를 얻기 위해 그런 건지. 어떤 이유에서든 이러한 것은 이미지에 대한 신학적 고찰 없이 무분별하게 시각적 요소를 예배 안에 적용함으로써 생겨난 문제이다. 왜 우리는 예배 중에 설교자의 얼굴 이미지는 허용하면서 미술 작품 하나 교회 벽에 거는 것에 대해서는 망설이고 있는가? 그림이 우상이 될 수 있다면 인간의 얼굴을 담은 사진이나 영상 또한 그럴 여지가 있지 않을까?
신학과 미학의 부재. 이것이 개신교 교회와 현대기독교미술이 지닌 공통된 문제점이다. 이미지는 넘쳐나는데 이를 기독교적으로 적립할 ‘신학적 미학’과 ‘미학적 신학’이 부재한 것이다.[2] 이에 필자는 몇 가지 사항들을 제시하며 향후 전개될 기독교미술의 이론적 과제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2) 신학적 과제
이미지의 과용으로 인한 문제들과 파괴적이고 해체적인 현대미술의 경향을 우리는 어떻게 수용해야 하는가? 이를 해결하는 것은 ‘현대기독교미술’을 위한 전제 조건이 된다. ‘현대미술’에 대한 교회의 편견은 결국 ‘현대기독교미술’에 대한 편견과 같기 때문이다. 오늘날 현대미술 양식을 수용하여 기독교미술의 내일을 준비하는 작가들이 존재하지만 교회는 여전히 그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한다. 과연 현대미술은 우리 교회와 전혀 상관이 없는 존재인가? 한스 로크마커(Rookmaaker, Hans R)처럼 현대미술과 문화를 단순히 ‘문화와 예술의 죽음’[3]으로 치부할 수 밖에 없는 것일까? 현대미술은 ‘회개’할 죄인 취급만 받아야 하는 것일까? 또한 한국의 현대기독교미술에 ‘한국적’인 것이 적용될 여지는 전혀 없는 것일까?
'현대미술과 교회의 재회'는 현대기독교미술의 발전을 위해 반드시 이뤄야 할 과제이다. 이와 관련하여 폴 틸리히(Tillich, Paul)와 테오 순더마이어(Sundermeier, Theo)가 제안한 신학 이론은 매우 긍정적으로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 요약하면 '심층의 차원으로서의 종교', '표현으로서의 예술', '신성의 원리와 솔직성의 원리' 그리고 '선포의 동반자로서의 미술'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논의들은 이미 '문화신학'의 차원에서 한국 신학계에서 심도 있게 다뤄진 내용들이다. 그러나 기독교미술계에서는 이러한 담론들에 대한 언급이 전혀 이뤄지고 있지 않다. 그것은 기독교미술 작가들 대부분이 신학적으로 개혁주의 또는 보수주의 신학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들의 이론은 개신교 교회의 미술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현대기독교미술이 교회 내에서 수용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
ㄱ. 심층의 차원으로서의 종교 : “종교는 모든 곳에, 즉 인간의 정신생활의 모든 기능의 심층 속에 고향을 두고 있다. 종교는 그 모든 것 속에 있는 심층의 차원이다.”[4]종교가 심층의 차원이라면 이는 인간의 “궁극적인 관심(ultimate concern)”[5] 인 것이다. 이러한 인간의 “궁극적 관심”은 창조적인 기능 속에서 나타난다. 현대미술 또한 이러한 심층의 차원을 공유한다. 현대미술이 현대사회에서의 인간 실존의 문제에 깊이 관여하기 때문이다. 기독교는 교회의 울타리 밖의 현대미술에 대하여 이러한 심층의 차원에서의 상호 연관성을 찾아야 할 것이다. 그 공통점은 인간의 실존 문제이다.
ㄴ. 표현으로서의 예술: “표현된다면, 그것은 이미 초월된 것이다.”[6] 표현은 사물과 인간 내면에 존재하는 어떤 것을 드러낸다. 또한 표현은 기독교적 신앙의 ‘고백’과 맥을 같이 한다. ‘회개’가 신앙적 고백 없이 불가능하듯이 드러냄으로 말미암아 숨겨진 모든 것은 빛 가운데로 나온다. 그 숨겨진 어떤 것이 인간의 심층의 차원에 존재하는 것이다. 시대의 모든 양식들은 그 시대의 정신과 인간의 실존 상황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예술가들은 자신이 의식하지 않더라도 그 시대의 양식과 문화적 범주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그의 작품에는 늘 그 시대가 표현되고 있는 것이다. 15C에 성서와 설교가 기독교의 핵심에 들어오게 된 것은 인간의 이성을 중시하는 그 시대의 ‘인문주의적’ 사회 분위기와 결코 무관하지 않다. 인문주의 발전 이전에는 늘 이미지와 말씀은 동등한 지위를 누렸다. 그래서 중세 1천년 동안 이미지는 기독교의 가치를 지키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것이다. 물론 이콘(Icon)은 중세의 시대정신과 신앙을 그대로 반영하여 표현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므로 현대미술은 지금 동시대의 인간의 실존과 시대정신을 그대로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ㄷ. 신성의 원리(principle of consecration)와 솔직성의 원리(principle of honesty)[7] : 교회가 이미지를 사용함으로 미학적 영역과 관련한다. 틸리히는 ‘종교 예술’이란 단어를 사용하여 기독교미술을 정의했다. 교회와 예술가들이 미술이란 이미지를 사용하는 데에는 이러한 두 가지 요소를 잘 조화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신성의 원리’는 교회의 기독교적 가치를 지키는 원리이다. 고백, 선포, 말씀 등 기독교의 기본 원리를 예술 작품이 담보할 때 우리는 이를 기독교미술이라 정의한다. 이는 또한 딕슨(John W. Dixon Jr. )이 말한 ‘교회의 감수성’[8]을 담고 있어야 한다. 모든 교인들이 공통으로 느끼고 인정하는 감수성. 신앙인들의 감수성에 호소하는 예술. “신성의 원리”를 지닌 미술은 그러한 감수성을 또한 지니고 있다. 그러나 미술에 있어서 이러한 “신성의 원리” 만을 강조하게 되면 동시대와 괴리된 이상한 양식이 나올 것이다. 달력 그림과 같은 ‘키치’ 스타일의 기독교미술이 한국에서 탄생한 것은 이러한 이유와 무관하지 않다. 또한 기독교미술은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감수성과 시대정신에도 귀를 기우려야 한다. 이것이 “솔직성의 원리”이다. 작가에게는 자신의 입장과 처지에서 ‘신성의 원리’를 작품에 도입할 권리가 주어져야 한다. 그는 동시대의 사람으로서 그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정신과 삶을 통찰하는 거시적 안목을 또한 지녀야 한다. 그러한 것을 표현하는 원리가 ‘솔직성의 원리’이기 때문이다. 신성의 원리가 이러한 솔직성의 원리에 배치되거나 그 반대 일 때 작가는 고민하게 된다. 신성의 원리를 강조하다 보면 시대와 동떨어진 교조적인 작품이 나오게 될 것이고, 솔직성의 원리를 추구하다 보면 교회의 감수성을 거슬리는 일반 작품과 별반 다르지 않는 작품이 나오게 될 것이다. 결국 동시대의 감수성과 교회의 감수성에 동시에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이 현대기독교미술이 지녀야 할 양식적 특징이 될 것이다.
ㄹ. 선포의 동반자로서의 미술 : 순더마이어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교회가 선포하는 말씀이 더는 들리지 않을 경우, 교회는 그 기초부터 위협받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는 생명을 주는 성서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져야 한다. 그러나 동시에 하나님의 위대한 행동을 볼 수 있는 눈도 가져야 한다. 왜냐하면 그림은 우리의 신앙의 선조들이 말로 할 수 있었던 것보다 더 많이, 마음으로 알고 있었던 것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선포할 수 있는 매체이기 때문이다. 그림이 말씀보다 더 깊고 폭넓은 차원을 포괄할 수 있다.”[9] 틸리히는 또한 “예술이 인간의 문제를 주제로 삼는다면, 예술은 언제나 어느 정도 신학을 포함하고 있다”[10]고 했다. 예술이 동시대 사람들의 삶과 그들의 “심층의 차원”에 뿌리를 두는 한 예술 속에는 기독교와 소통할 통로가 있는 것이다. 인간 실존을 표현한 현대미술은 더더욱 기독교적 맥락을 포함한다. 현대미술 속에 해체되고 파괴된 현대인의 자화상은 성장 중심의 자본주의 사회의 인간 실존의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핀리 에버소울은 현대 미술을 현대 문명의 비극과 상처의 한 표현으로 생각한다. “현대 예술가들이 우리에게 준 우리의 극한 상황의 이미지들과 상징들은 성령의 ‘전도된(inverted)’ 상징들이다.”[11] 그들을 품고 그들에게 기독교적 구원을 선포를 할 수 있는 역할을 기독교미술은 감당해야 한다. 기독교진리의 선포는 말씀과 더불어 ‘이미지’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현대기독교미술에 ‘한국’이란 콘텍스트를 적용하려면 우리의 예술적 뿌리를 찾는 노력 또한 기울여야 할 것이다. 여기에서 주목하고 싶은 것은 우리 한민족의 예술혼의 흐름을 ‘풍류’로 정의한 유동식 박사의 이론이다.
그는 인간의 본질을 “종교-예술적 존재”[12]로 규정한다. “우리의 형상대로”라 함은 삼위일체의 개념이 담긴 것이고, “그리스도는 죄인을 불러 새로운 존재로 재창조하신 예술가요, 성령은 지금도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되게 하시는 예술가시다.”[13] 그러므로 “하나님의 형상”은 예술가를 뜻하고,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예술가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의미이다.[14] 유동식 박사의 예술가에 대한 기독교적 해석은 예술가들에게 큰 힘이 되는 말이다. 이러한 존재론적 설명은 오늘날 예술가들의 사명을 새롭게 한다. “하나님의 형상”에 대한 예술의 존재론을 실존적으로 우리의 상황에 적용한 것이 “풍류”의 개념일 것이다. 유·불·선 삼교의 저변에 흐르는 문화 예술적 혼을 그는 “풍류도”라고 정의한다. “풍류”는 우리말로 ‘멋”이다. 멋은 한국적인 아름다움의 대명사라고 그는 설명한다. 유동식 박사는 ‘풍류’를 설명하는데 삼국사기의 글을 인용한다. “우리나라에는 깊고 오묘한 도가 있는데 이것을 풍류도라 한다... 이는 실로 삼교(유·불·선)를 포함한 것이요, 뭇 사람들을 교화하여 사람 되게 한다.”[15]
유동식 박사의 풍류신학의 핵심 내용은 “멋”, “한”, “삶”에 있다. “멋”은 풍류의 핵심으로 ‘신인합일’과 관련하며 이를 통해 하나님의 능력을 힘입은 창조적 영성이 나오는 것이다. “한”은 초월성을 강조한 것으로 절대적인 하나님과 관련한다. 하나님은 만물의 창조자이시고, 만물의 존재 근원이시다. 이러한 ‘한’의 개념은 무교에서부터 유·불·선을 통틀어 흐르는 개념이다. “삶”은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인간 본연의 모습을 회복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성육신 사건이 우리에게 주어진 것이다.[16] 이는 복음의 핵심과 연관된 것이다. 이러한 “멋”, “한”, “삶”이 조화를 이루는 것이 풍류의 완성이다. 춤과 음악을 즐겼던 우리의 전통 문화는 이러한 풍류의 표현이었다.
필자는 현대기독교미술이 한국에서는 이러한 전통적 가치를 계승하는 선상에 놓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기독교적 가치는 결코 이러한 우리의 전통 개념과 상반되는 것이 아니다. 풍류는 우리 민족의 '궁극적 관심'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차원에서 기독교미술을 한국화적 기법에 접목했던 혜촌 김학수 선생의 노력은 한국기독교미술사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을 것이다. 개신교 신앙에 뿌리를 둔 그의 작업은 복음서 속의 ‘예수 사건’과 우리 기독교의 초창기 역사를 그대로 근대화라는 콘텍스트 속으로 옮겨 놓았다. 그 표현이 너무 직설적이지만, 나름 ‘한국적’인 것에 대한 그의 고민이 엿보인다. 그러나 그의 작품이 복음서와 초기 한국 교회사를 기록하는 '기록화'의 차원을 넘어서지 못한 것과 작품 속의 예수의 모습이 서양 ‘선교사’의 모습과 너무 유사해 보이는 점은 커다란 아쉬움으로 남는다.
3) 미학적 과제
기독교미술에 있어서 미학적 측면만 별도로 말하는 것은 어렵다. 이는 종교예술이 갖는 한계에 의해 늘 종교적 측면 또한 동시에 언급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미학적 신학’ 또는 ‘신학적 미학’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기독교 역사상 미학과 신학이 가장 잘 조화를 이룬 경우가 중세의 이콘미술이다. 이런 의미에서 이콘의 미학적 신학에 대해 살펴보고 이를 현대기독교미학의 차원에서 어떻게 연관성을 찾을지 살펴보는 것은 중요하다. 이는 현대기독교미술에서 이콘의 미학적 신학을 계승할 가능성을 검토해 보는 것이다.
현대 사회의 이미지 과용의 현상은 과거 헬레니즘(Hellenism) 문화와 유사하다. 다양한 이미지가 넘쳐났던 시각적 예술의 전성기였던 헬레니즘 문화의 토양 속에 반 이미지적 성격의 헤브라이즘(Hebraism)에 기반을 둔 기독교가 등장했을 때 그 문화적 충격은 어떠했을까? 초대교회의 입장에서 보면 보편적으로 성행하는 이미지의 사용을 유대교처럼 무조건 거부할 수도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초대교회는 조심스럽게 헬레니즘의 이미지 문화를 헤브라이즘 위에 포개어 놓기 시작했다. 동방정교회에서는 초대 교회의 성 루가(St. Luke)가 이콘화가의 시조였다고 주장한다.[17] 이는 이콘미술의 전통성을 주장하기 위해서 일 것이다. 이콘미술 이전에 카타콤에서 발견되는 기독교적 이미지의 단순성은 분명 헬레니즘적 이미지와는 차별화된 것이었다. 이미지를 사용하되 결코 헬레니즘적 ‘재현’과 ‘모방’에 중점을 두지 않았던 것은 모두 ‘우상숭배금지’의 교리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절묘한 절충에서 탄생한 비잔틴 제국의 이콘은 기독교 신학과 미학의 접목이란 점에서 기독교미술사의 커다란 업적으로 평가되지만, 이는 또한 기독교사에 지을 수 없는 치명적인 상처를 남긴 비잔틴 제국의 두 차례의 ‘이콘파괴논쟁’의 원인이었다. 그 결과 동서 기독교 교회는 각각 분열의 길을 가야만 했다. 그 후 종교개혁 때에도 이미지 논쟁은 여전히 계속되었고 그 불씨는 현대에서도 결코 사라진 것은 아니다.
두 차례의 “이콘파괴논쟁”을 통해 비잔틴 기독교는 이콘의 정당성을 획득하면서 기독교미학의 기초를 다질 수 있었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인간의 손으로 만든 물질로 표현될 수 있는가? 이러한 질문은 결국 기독교의 핵심 사상인 ‘성육신론’과 직결된다. 어떻게 보이지 않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으실 수 있는가? 이는 단성론자(Monophysite)나 네스토리우스파(Nestorianism)와 같은 기독교이단들의 한결 같은 비판이었다. 이러한 비판의 연장선상에서 이콘의 정당성도 위협을 받은 것이다. 거룩하고 초월적인 하나님을 가시적인 형상으로 표현할 수 없다는 것이 ‘이콘파괴론자’들의 주장이다. 이에 대한 이콘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하나님께서 인간이 되셨다는 사실을 묵상할 때에 당신은 그분을 인간의 옷을 입은 분으로 묘사할 수 있다는 것이 명백한 사실이다. 불가시적인 존재가 육체를 입어 가시적인 존재가 될 때, 당신은 그분의 형상을 그릴 수 있을 것이다...”[18] 쉽게 말해서 그 당시에 오늘날과 같은 카메라가 있었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예수님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아 표현할 수 있다는 논리와 같다. 이콘옹호론자들의 주장은 다양한 차원에서 이루어졌지만 그 중 핵심은 바로 ‘성육신론’이다. 성육신 하신 성자하나님은 가시적인 분이므로 그림으로 표현될 수 있다. 그러나 성부하나님과 성령은 비가시적이시기 때문에 이미지로 표현될 수 없다. 또한 그림으로 표현된 예수그리스도의 모습은 결코 존재론적으로 원형의 본질과 동일하지 않다. 형상의 본질과 원형의 본질은 엄연히 다른 것이다. “우리가 숭배하는 것은 형상의 본질이 아니라, 그 형상에 각인되어있는 원형의 형태이다. 왜냐하면 형상의 본질은 숭배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숭배되는 것은 물질이 아니다. 오직 원형이 그 형태와 함께 숭배된다.”[19] 즉 이콘은 그리스도의 원형을 ‘지향’할 뿐 그 자체가 숭배의 대상이 되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는 이콘의 상징성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콘의 정당성과 관련된 ‘교회 전승의 문제’와 ‘예배의 본질에 대한 문제’ 등도 중요한 부분이지만 여기에서는 ‘성육신론’에 초점을 맞춰 설명했다. 이콘은 결국 기독교의 성육신론과 삼위일체론의 형성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이콘 신학의 ‘지향성’은 플로티노스(Plotinos: 204~269)의 미학에 영향을 받았다. ‘일자(一字, the one)’ 와 ‘관조(觀照)’ 그리고 ‘빛’이 그것이다. 플로티노스는 ‘완전한 모습의 미(美)’를 추구했다. 그 ‘미’는 만유의 근원인 ‘일자’에서 ‘유출(emanation)’된 것이다. 이러한 유출은 몇 단계의 과정을 거쳐 하위 단계까지 가는데 이러한 하위 단계에서 ‘일자로의 귀향’을 갈망하게 된다. 인간영혼의 궁극적 목적은 이러한 유출의 단계를 거슬러 올라가 최종적으로 ‘일자와의 합일’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일자에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관조’를 통해 세상의 사물들과 인간 자신을 꿰뚫어 봐야 한다. 그래야 형이상학적인 미의 실재에 다가갈 수 있다. 신은 미의 이데아를 설정하면서 동시에 인간의 영혼 속에 그 이데아의 형상을 또한 심어 놓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관조를 통해 우리 안에 내재된 미의 이데아를 발견하고 절대적 미를 경험할 수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하게 작용하는 것이 ‘빛’이다. 그것은 ‘변화산상’에서 천상의 빛으로 변화된 예수님의 모습에서 발견되는 바로 그 ‘빛’이다. 빛은 이 세상과 초월적 세계를 매개한다. 동시에 본질적으로 아름다운 절대미는 모든 사물에게 확산되며 모든 조화와 광휘의 근본 원인이다.[20] 이러한 ‘빛’은 ‘신의 예지의 유출’이라고 플로티노스는 설명했다. 이는 ‘나는 세상의 빛’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말씀과 일치한다.
이콘이 지향하는 바는 초월적 세계이다. 이콘은 결코 현실 세상의 이미지를 주목하게 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현실 이면의 초월적 세상을 지향하게 한다. 인간이 이콘을 ‘관조’할 때 이콘 저 너머로부터 비춰지는 빛이 있으니 그것이 이콘을 통해 느끼는 ‘은혜’이다. 이를 미학적인 용어로 정의하면 단순히 아름다움을 느끼는 ‘미적 체험’을 넘어서는 ‘숭고’에 대한 경험이다. 변화산에서 예수께서 ‘빛’으로 변화되신 모습을 본 제자들이 경험했던 것이 바로 ‘숭고’의 체험이었다.
‘숭고’는 코스모스적 세계관에 입각한 ‘조화와 통일’에서 드러나는 ‘미’와 다르다. 그것은 ‘형상’적 체험이 아니라 오히려 인간의 삶 속에 녹아있는 ‘질료’적 체험이다. ‘코스모스Cosmos’적인 것이 아닌 ‘카오스Chaos’적이며, 아폴론적이기 보다 디오니소스적이다. 그래서 ‘숭고’는 ‘파토스(Pathos)’와 밀접한 단어이다. ‘탈아(Ekstasis)’와 ‘영감(Enthusiasumus)’, 그리고 ‘카타르시스(Catharsis)’ 등은 모두 ‘숭고’와 관련된 말이다. 현대미술에서는 이러한 ‘숭고’적 체험을 적용해 ‘충격’과 ‘카타르시스’를 효과적으로 사용한다. 빔 델보예(Delvoye,Wim)와 데미안 허스트(Hirst, Damien)는 이러한 좋은 예가 될 것이다. 빔 델보예는 전시장에 인간의 인분을 만드는 기계를 설치하여 실제 인분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작품화함으로 유명해진 작가이다. 또한 데미안 허스트는 동물의 몸을 실제로 반으로 절단하여 그 절단한 단면을 그대로 노출시킨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들의 작품이 처음 전시되었을 때 미술계는 커다란 ‘충격’에 휩싸였다. 관람객들은 불쾌감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나 재미있는 사실은 불가항력적인 불쾌감이 최고조에 이르렀다가 갑자기 사라진 순간, 그 긴장감이 해소되면서 ‘카타르시스’로 인한 ‘쾌’를 느낀다는 것이다. 강한 충격은 또한 강한 카타르시스를 동반한다. 이는 대부분의 전위적인 현대미술 작품들에서 공통으로 발견되는 사실들이다. 그래서 고전적 미를 감상하고자 했던 사람들은 현대미술에서 실망하고 충격을 받게 되는 것이다. 현대미술과 일반대중 간의 괴리감이 바로 여기에 있다.
그러나 이콘의 숭고는 이러한 현대미술적 숭고와 다르다. 또한 롱기누스가 설명한 ‘영감’과 ‘기술’에 근거한 숭고와도 다르다. 또한 칸트가 말한 ‘인간정신의 고양’[21]에 근본을 둔 “수학적 숭고”와 “역학적 숭고”와도 다르다. “수학적 숭고”는 크기와 척도에 관련되고 “역학적 숭고”는 힘과 권력에 관련된다. 쉽게 말해서 “수학적 숭고”는 우리의 오성을 뛰어 넘어 우리의 상상력을 초월하는 어떤 것을 인지하는 우리의 정신능력에 의해 발생하는 숭고이다. “역학적 숭고”는 대자연의 웅장함이나 절대 권력 앞에서 느끼게 되는 ‘두려움과 공포’와 관련된 숭고이다. 이 두 가지 모두 숭고가 발생하는 것은 결국 인간 이성의 위대성을 확인하는 희열[22]로 귀결된다.
그러나 이콘의 숭고는 이러한 모든 것들을 넘어서는 지점에서 발견된다. 숭고는 인간 감정이나 이성이 경험하는 것 이상의 ‘초월적 실재에 대한 체험’에서 주어지는 것이다. 그것은 ‘영적 체험’에 가까운 것이다. 이콘은 여타의 그림적 테크닉을 배제한다. 감동을 일으키기 위한 어떠한 작가의 의도나 기법적 기술도 오히려 절대자를 관조하는 것을 방해할 뿐이다. 그것은 이콘이 지향하는 이콘의 원형에 이르기 위해 방해가 되는 모든 것을 ‘부정’ 또는 거부함으로 얻어진다. 그래서 이콘의 형상들은 입체감이나 원근감을 상실한 평면이다. 헬레니즘의 자연적 재현을 부정하면서 초월적 존재를 지향하는 의도가 여기에 담겨있다. ‘부정의 신학’은 이콘미술에서 헬레니즘적 미술 유산에 대한 ‘부정’의 근거이다. ‘은혜’가 하나님으로부터 절대적으로 우리 인간에게 주어지는 것이듯이 이콘을 통한 ‘절대미’의 체험 또한 ‘주어지는’ 것이지 결코 인간의 의도대로 연출되는 것이 아니다. 이콘의 체험은 늘 우리의 일상적 경험을 뛰어 넘는다. 이콘은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그냥 무의미한 그림조각에 불과하다. 그러나 믿음을 가진 자들에게는 절대적 원형을 상기시키는 귀중한 매개체이다. 그래서 동방정교회 사람들은 성서만큼이나 이콘을 소중히 여긴다. 백 마디의 말로 설명되는 케리그마보다 이콘은 한 순간에 진리를 드러내 보일 수 있다. 그리고 그것은 사실이었다. 대부분 문맹자였던 초기와 중세의 크리스천들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 신앙을 유지할 수 있었던 것은 이미지 덕분이지 결코 말씀이 아니었다. 이미지로 인한 중세의 병패는 기독교역사의 어두운 부분이지만 이콘은 예수님 사후에 천년 동안 기독교 신학과 신앙을 지탱하는 중심기둥이었다. 종교개혁은 이미지에서 성서로의 전환을 가져왔지만, 말씀이 담긴 성서 자체도 잉크로 인쇄된 ‘문자 이미지’라는 사실을 간과했다. 하나님의 말씀은 ‘문자’나 ‘이미지’ 모두에 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자주 망각하는 것 같다.
3. 성서에서 이미지로
보는 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 성서에는 “보지 않고 믿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으면서도 예수님 스스로가 변화산에서 변모된 모습을 직접 제자들에게 보이시기도 하셨다. 그리고 성육신론에 근거하여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는’ 성자하나님으로 우리에게 오신 것은 하나님이 가시적인 이미지로 직접 자신을 드러낸 ‘사건’이었다. 그리고 사람은 하나님의 ‘이미지’대로 만들어진 피조물이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 지는 한마디로 답을 내리기 쉽지 않다. 성서에도 이 둘의 중요성은 교차되어 기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그림이든 활자로 인쇄된 성서이든 모두 ‘가시적 이미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시각 예술의 ‘해체성’과 ‘파괴성’은 인간 세상의 모든 가치들을 해체시켜 버리고 있다. 하나님의 형상인 인간의 몸을 구성하는 ‘육’은 한갓 고깃덩이로 취급을 받는다. 이성이 빠진 인간은 동물과 동일한 ‘육’을 공유하는 단백질 덩어리일 뿐이다. 그래서 자본주의 사회는 인간보다 자본이란 물질에 더 가치를 두는지 모른다. 과히 폭력적이라 할 만한 현대시각예술의 도전 앞에 ‘현대기독교미술’과 한국교회는 과연 어떠한 자세를 취해야 할까? 이에 시각적 예술의 선두에 서있는 현대기독교미술의 각성이 요구되는 것이다.
이를 위한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의 과제는 광범위하게 우리 앞에 놓여있다. 필자가 제시한 과제는 현대기독교미술에 신학적•미학적 이론의 정립이 필요함을 강조한 것이다. 이는 개혁주의 신학일변도로 흐르는 현재의 현대기독교미술 담론을 보다 넓은 지평으로 확대해보고자 한 것이다. 틸리히와 순더마이어 그리고 유동식 교수의 이론은 이러한 문제에 있어 커다란 영감을 준다. 그리고 이콘의 ‘숭고미’는 현대기독교미술에서 요구되는 양식적 요소로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할 문제이다. 필자가 생각하는 현대기독교미술은 ‘신성의 원리’와 ‘솔직성의 원리’에 기반을 두고 교회와 세상의 감수성에 동시에 호소하는 미술이다. 그리고 그 작품에는 사람들의 영혼에 호소할 수 있는 ‘숭고’가 깊숙한 곳에서부터 배어 나와야 한다.
이제 ‘한국현대기독교미술’을 구성하는 “한국+현대+기독교+미술”에 대한 전반적인 언급을 마친다. 이 네 가지가 아직 상호 적절한 교류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되고 있지만, 이는 향후 한국에서의 현대기독교미술의 과제를 분명하게 보여준다. 앞으로 보다 다양한 분야 간의 ‘상관관계적’ 연구도 추가되어야 할 것이고, 이러한 연구에 교회의 적극적인 관심과 참여가 필수적이라 사료된다.
[1] ‘표현’은 제 1차 세계 대전 이후의 ‘표현주의(expressionism)’의 양식적 특징과 거리가 멀다. 인간 정신의 심층적 차원과 인간 내면의 표현에 집중하는 것은 물론, 인간 삶의 주변의 일상적인 것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요소들을 표현적 소재로 삼기 때문이다.
[2] “신학적 미학(theological aesthetics)” 과 “미학적 신학(aesthetic theology)” : 리차드 빌라데서(Viladesau, Richard)는 다음과 같이 이 두 가지 용어를 정의한다. “좁은 의미에서의 신학적 미학이 감정과 상상력, 아름다움, 예술과 같은 미학적 차원들에 있어서 계시의 신학적 가능성을 고찰하는 데 집중한다면, 미학적 신학은 하나님, 종교, 신학과 같은 주제들이 어떻게 미학적 요소들과 스타일들을 사용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한 고찰로서 정의된다.” [손호현, “역자 서문”, 신학적 미학, 리차드 빌라데서 저, 손호현 역 (서울: 한국신학연구소, 2001), p. 15]
[3] 한스 로크마커(Rookmaaker, Hans R.),현대 예술과 문화의 죽음, 김유리 역 (서울: IVP, 1993).
[4] 폴 틸리히(Tillich, Paul), 문화의 신학, 김경수 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1), p. 17.
[5] 폴 틸리히, 조직신학, 유장환 역 (서울: 한들출판사, 2001), p. 27.
[6] 폴 틸리히, 종교적 의미의 예술적 표현, 20세기 기독교와 예술, 김문환 편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p.138
[7] 폴 틸리히, “종교적 의미의 예술적 표현”, 20세기 기독교와 예술, 김문화 편역(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pp.125~126.
[8] 존 W. 딕슨 2세, “교회의 감수성과 예술가의 감수성” , 20세기 기독교와 예술, 김문환 편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p.71
[9] 채수일, “엮어 옮긴이 해제”, in Sundermeier, Theo., 미술과 신학, 채수일 역(오산: 한신대학교출판부, 2007), p.22
[10] 채수일, “엮어 옮긴이 해제”, 미술과 신학, p.30.
[11] 핀리 에버소울, “인간의 극한성과 현대 예술가”, 20세기 기독교와 예술, 김문화 편역 (서울: 대한기독교서회, 1974), pp. 156~186 참조
[12] 유동식, 종교와 예술의 뒤안길에서 (서울:한들출판사,2002), p.19. ; 유동식, 한국문화와 풍류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2), p.84.
[13] 유동식, 한국문화와 풍류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2), p.84.
[14] 유동식, 한국문화와 풍류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2), pp.83~92 ; 유동식, 종교와 예술의 뒤안길에서 (서울:한들출판사,2002), pp.15~23
[15] 유동식, 종교와 예술의 뒤안길에서 (서울:한들출판사,2002), pp.127~129.
[16] 유동식, 한국문화와 풍류신학 (서울: 한들출판사, 2002), pp.63~68
[17] Hans. Belting, ‘Likeness and Presence’, p.57 재인용[이덕형, 비잔틴, 빛의 모자이크,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6, p.395, 참조.]
[18] John of Damascus, Divine Image, 1.8, 16; 또한 2.5
[19] Theodore the Studite, Icon 3.C.2
[20] 이덕형, 비잔틴, 빛의 모자이크. (서울: 성균관대학교출판부, 2006), P.321.
[21] 안성찬, 숭고의 미학-파괴와 혁신의 문화적 동력.(서울:유로서적,2004), pp. 136~137. ; 먼로 C. 비어슬리(Beardsley, Monroe C.), 미학사, 이성훈·안원현 역(서울: 도서출판 이론과실천, 1999),p.254.
[22] 안성찬, 숭고의 미학..., pp.14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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