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모음/설교문

하느님 앞에 선 개인(개별자 또는 단독자)

James Chae 2021. 1. 17. 22:41

Esau selling his birthright to Jacob  by  Matthias Stom , 1640s   (By Benjamin West - BJU Museum and Gallery, Public Domain, https://commons.wikimedia.org/w/index.php?curid=2921145)

 

 

2020.7.12. 가해_연중15주일_감사성찬례

창세25:19-34_시편119:105-112_로마8:1-11_마태13:1-9,18-23

 

 

 

하느님 앞에 선 개인(개별자 또는 단독자)

 

 

채야고보 신부 (artist / 성공회 사제)

 

 

오늘 창세기에서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이 드디어 이스라엘 역사 무대에 등장하는 날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기자는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라는 문구로 시작합니다. 주인공이 아브라함에서 이사악으로 바뀐 거죠.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제이사악의 하느님 됩니다. 그러나 창세기 기자는 이사악의 이야기 보다, 곧바로 그의 쌍둥이 자손인 에사오와 야곱이 어떻게 각각하느님 앞에 개인으로 서게 되는 지를 기록합니다. 

 

하느님의 전권을 가진 이스라엘의새로운 율사로서 예수님에 대한 소개를 마태오복음서 10장까지 기록한 마태오는 이제세례자 요한 대한 언급을 함으로써 사실상 본격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가 시작되었음을 선포합니다. 그러나 세례자 요한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았던 것과는 반대로 이스라엘의새로운 율사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배척을 당합니다. 이러한 기록들이 11장에서 12장에 걸쳐 기록되어 있습니다. ‘산상설교 율법의 정신을 설파하시고, 병자와 마귀 들린 자들을 고쳐주시면서 하느님의 권능을 보여주었지만, 이스라엘 사람들은 오히려 그를 배척합니다. 배척 뒤에 오늘의 복음 말씀인비유설교 마태오복음 13장에 나옵니다. 비유설교의 핵심은너희는 듣고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고, 보고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리라.”(마태 13:14)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이스라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메시아로, “이스라엘의 새로운 율사 받아들이지 못한 이유입니다.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사도 바울로는 이에 대해 명확하게 말합니다.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로마 8:5)

육신의 사람은 육신의 일을 성령의 사람은 성령의 일을 도모한다고. 이스라엘의 상속권은 야훼로부터 오는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일보다도 자신의 능력과 육신의 일을 먼저 생각했던 에사오에 대해 창세기 기자는 다음과 같이 기록합니다. 

 

이렇게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창세 25:34)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말은 우리의 일상에서도 너무나 쉽게 접하는 말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아니면대수롭지 않게여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신뢰를 쌓기가 어렵습니다. 우리가대수롭지 않게여겨 버리는 쓰레기들, “대수롭지 않게여겨 어기는 약속들, “대수롭지 않게내뱉은 말들……사실 우리를 힘들게 하고, 모든 관계를 어렵게 하는 일들은 아마 대수롭지 않게여기는 기인합니다.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을 결코 허투루 하지 않습니다. “대수롭지 않게 히브리어로 와이베즈way·yi·ḇez, 영어로는 despised 사용합니다. 이는 단순히 우리말대수롭지 않게보다는경멸하다. 멸시하다라는 뜻입니다. 하느님의 상속권, 하느님의 일을 에사오는 경멸했던 것입니다. 

 

말의 뜻을 정확히 알았던 사도 바울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로마 8:7) 얼마나 무서운 말입니까? 육신의 일을 구하는 자는 단순한 불순종을 넘어하느님과 원수지간 된다는 것입니다. 에사오는 결국 하느님의 일을 경히 여긴 사람의 전형이 됩니다. 뿌리는 비유의 말씀처럼 이런 사람의 마음 밭에 뿌려진 복음은 결코 뿌리도 내리지 못하고, 뿌리를 내려도 결코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상속권의 중요성을 알았던 야곱이 형을 속이지 않고 상냥하게 그것을 알려주었으면 좋으련만, 그도 영적인 욕심 때문에 형의 약점을 이용합니다. 에사오는 육신의 사람이었으므로 영적인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길 줄을 야곱은 알고 있었습니다. 결과 야곱은 하느님의 상속권을 얻기는 했지만 많은 아픔과 고난의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아버지 이사악과는 전혀 다른 험난한 인생이었습니다. 그래도 그는 아브라함과 이사악을 잇는 믿음의 계보에 당당하게 이름을 올렸습니다. 육신의 일보다 영적인 일을 먼저 쫓은 사람에게 주어진 축복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모든 관계는 개별적이고 실제적입니다. 이를 키에르케고르는하느님 앞에 단독자라고 표현했습니다. 여기서단독자 사유하는 사람이 아닌 신앙으로 거듭난 사람을 뜻합니다.  아브라함이 그러했고, 이사악이 그러했으며, 야곱이 그러했습니다. 사람의 삶은 중첩되는 것이 없이 각자 개인으로 야훼 앞에 서야 했습니다. 예수님의 가르침과 하느님의 아들로서의 권능을 직접 목격했던 이스라엘 사람들. 그들은 살아있는 하느님 권능 앞에서 그들의 조상들이 그러했던 것처럼개별자 없었습니다. 의심의 눈으로, 편견의 눈으로, 뒤틀린 마음으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보았던 것입니다. 마치 육신의 계보를 쫓았던 에사오처럼, 길가에 뿌려진 씨앗처럼 다양한 이유로 그들은 예수님의 말씀을대수롭지 않게여겼습니다. 마태오복음 11장과 12장의 말씀을 묵상해보면 이스라엘은 에사오가장자권 경멸했던 것처럼, 주님의 말씀과 행적을 경멸했습니다. 모두 육신의 일을 먼저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신앙인의 실존입니다. 우리가 그분 앞에서 어떤 길을 선택할지는 각자 철저히 개인의 몫입니다. 하느님의 장자권을 경멸했던 에사오나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던 이스라엘. 모두 육신의 계보를 중히 여겼던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경히 여기는 것은 결국 믿음의 부재를 말합니다. “그분은 모든 것을 당신의 힘으로 채우실 있으나 마음이 준비된 이들에게만 당신을 나누어 주십니다.” (카이사레아의 바실리우스, ‘성무일도중에서) 이는 교부 바실리우스가 성령에 대해 기록한 진술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준비된 만큼 우리는 성령의 은총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것은 양적인 말은 아닐 것입니다. 왜냐하면 성령께서는나지 않고 발출 하시는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오)이시기 때문입니다. 많다 적다로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마음 안에 가두어둘 없습니다. 그러므로 마음의 간절함은 수치로 가늠할 있는 양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간절함이 담긴 사랑인 것입니다. 

 

그러므로하느님 앞에 개인 성령이 충만한 사람입니다. 그것은 마음의 간절함이 충만하여 바람과 지향성이 오직 주님에게만 향합니다. 마음과 뜻과 정성이 주님께 닿아 있습니다. ‘개인으로 서야 하기 때문에 외롭고 고독하지만, 열매는 달고 풍성할 것을 우리는 믿습니다. 여러분이 하느님 앞에 개인이라면 육신을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리스도를 살리신 분의 영이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라고 사도 바울로는 말하고 있습니다. 그분의 능력이 여러분을 하느님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만드실 겁니다. 우리의 실존이 외롭지만, 또한 행복한 것은 바로 우리를 도우시는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 

 

여기까지 말하고 나니 마음이 무척 무거워집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이 앞에서 말씀드린 신학적 진술대로 설명이 가능하다면 얼마나 좋을 까요? 세상에 존재하는 개인의 수만큼 하느님과의 관계도 다양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 개인이 77억이라면 관계도 77 만큼 다양합니다. 그러나 우리 인간은 서로를 남과 비교하여 잘난척하길 좋아합니다. 남과 비교하여 남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어 합니다. 자신보다 남이 잘되는 것에 겉으로는 태연한 척하지만, 실상은 질투가 납니다. 특히 우리 신앙인들은 합니다. 똑같이 기도했는데 누구네 자식은 받아 되는 같고, 누구네 자식은 그렇지 않은 같을 . 우리는 상대적인 좌절감과 실망을 느낍니다. 하느님께서 자신의 기도는 들어주시지 않는 것만 같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하느님 안에서 사는 같은데 자신의 삶만 힘겹게 느껴집니다. 질투와 시기, 원망과 분노 같은 감정은 우리를 가만히 내버려 두지 않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납니까? 들에 꽃이 지나가는 나그네의 발에 밟혔다고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며 창조주를 원망하던가요? 폭풍에 넘어진 나무가 창조주에게 불평하던가요? 들꽃은 온실 속에 꽃을 부러워하지 않습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철저히 하느님께 시선을 고정시킵니다.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개인들과 각각 다른 관계를 맺으셨습니다. 그래서 고대 족장들은 자신들의 하느님을 자신과의 경험 속에서 각각 다른 이름으로 인식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하느님을방패”(창세 15:1)라고 불렀습니다. 이사악은이사악이 경외하는 ”(창세 31:42, 53)라고 불렀고, 야곱은야곱의 전능자”(창세 49:24)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므로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하느님’, ‘야곱의 하느님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개인들의 이름으로 표현된 것입니다. 그들의 삶이 다르듯이 받은 은총도 다릅니다. 각자의 복이 다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이렇게 자신 만의 관계를 하느님과 만들어 갑니다. 시선을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하지 말고 자기 자신에게 집중해야 합니다. ‘내가 이만큼 했으니 하느님께서 이만큼 복을 주시겠지하는 보상심리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가 누구 앞에 있는지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전지전능하신 성부하느님이 아닙니까? 우리를 위해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신 성자하느님이 아닙니까? 우리를 보호하시고 지켜주시는 성령하느님이 아닙니까? 

 

야훼여, 말씀하십시오. 종이 듣고 있습니다.” (1사무 3:10) 사무엘이 처음 하느님의 부름을 받았을 했던 말입니다. 주님 앞에 서는 개별자 이렇게 듣는 데서부터 시작하는 것입니다. “셰마 이스라엘!” “이스라엘아, 들어라!” (신명 6:4) 듣는다는 것은 순종을 뜻합니다. 듣는다는 것은 말하는 사람에 대한 경의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하느님은 말씀하시고, 인간은 듣는다. 이것이 구약을 관통하는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관계의 핵심입니다. 모든 죄와 문제들은 듣지 않음에서 시작됩니다. 귀를 닫는 것은 결국 하느님 없이 자신의 의지대로 살겠다는 것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이제 여러분이 하느님과 자신의 이야기를 살아오셨다면, 또한 마무리해 가시기 바랍니다. 각자에게 주어진 삶의 결은 모두 다릅니다. “하느님 앞에 개인 삶을 있는 그대로 주님께서 받으실 겁니다. 삶은 누구에게 보이기 위해, 누구에게 인정받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닐 겁니다. 그것이 가족이라 해도...각자가 하느님과 은밀한 관계 속에서 자기 자신의 이야기를 가시기 바랍니다. 각자의 삶을 각자의 고유한 이야기로 채워가야 합니다. 하느님과 함께 만들어 가는 이야기. 우리는 충분히 행복할 자격이 있습니다. 그것이하느님 앞에 개인에게 주어진 주님의 축복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말씀을 나눴습니다. 아멘.

 

 

 


연중 15 주일 (가해) 성서 말씀

 

창세25:19-34

19 아브라함의 아들 이사악의 역사는 아래와 같다.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 이사악이 태어났는데,

20 이사악이 리브가를 아내로 맞을 그의 나이는 사십 세였다. 리브가는 바딴아람에 사는 아람 사람 브두엘의 딸로서 아람 사람 라반의 누이였다.

21 리브가가 아기를 낳지 못하였으므로 이사악은 야훼께 아기를 갖게 해달라고 빌었다. 야훼께서 그의 기도를 들어주시어 아내 리브가가 임신하였는데,

22 뱃속에 아이가 서로 싸우므로 리브가는 "이렇게 괴로워서야 어디 살겠는가!" 하면서 야훼께 까닭을 물으러 나갔다.

23 야훼께서 리브가에게 말씀하셨다. "너의 태에는 민족이 들어 있다. 태에서 나오기도 전에 부족으로 갈라졌는데, 부족이 다른 부족을 억누를 것이다. 형이 동생을 섬기게 것이다."

24 달이 차서 몸을 풀고 보니 쌍둥이였다.

25 선둥이는 살결이 붉은데다가 몸이 털투성이였다. 그래서 이름을 에사오라 하였다.

26 후둥이는 에사오의 발꿈치를 잡고 나왔다. 그래서 그의 이름을 야곱이라 했다. 리브가가 그들을 낳은 것은 이사악이 육십 되던 해였다.

27 아들이 자라나, 에사오는 날쌘 사냥꾼이 되어 들에서 살고, 야곱은 성질이 차분하여 천막에 머물러 살았다.

28 이사악은 에사오가 사냥해 오는 고기에 맛을 들여 에사오를 사랑하였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다.

29 하루는 에사오가 허기져 들에서 돌아와 보니 야곱이 죽을 끓이고 있었다.

30 에사오가 야곱에게 "배고파 죽겠다. 붉은 먹자." 하였다. 그의 이름을 에돔이라고도 부르는 데는 이런 사연이 있다.

31 야곱이 형에게 당장 상속권을 팔라고 제안하자

32 에사오는 배고파 죽을 지경인데 상속권 따위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하였다.

33 그러나 야곱은, 먼저 맹세부터 하라고 다그쳐 요구하였다. 에사오는 맹세하고 장자의 상속권을 야곱에게 팔아 넘겼다.

34 그리고 에사오는 야곱에게서 떡과 불콩죽을 받아먹은 후에 일어나 나갔다. 이렇게 에사오는 자기의 상속권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시편119:105-112

105.당신의 말씀은 발에 등불이요, 나의 길에 빛이옵니다.

106. 한번 맹세하였으니 당신의 바른 결정을 지키리이다.

107.야훼여, 나의 받는 고난이 심하오니 말씀하신 대로 살려주소서.

108.야훼여, 입이 드리는 정성을 받으시고, 당신의 결정을 가르쳐주소서.

109.나의 생명 항상 손안에 있으니 당신의 법을 잊지 않으리이다.

110.악한 자들이 앞에 올가미를 쳐놓았으니, 나는 당신의 법령들을 어기지 않으리이다.

111.당신의 언약은 영원히 나의 유산이며 마음의 기쁨입니다.

112.당신 뜻을 따르기로 마음 정하였사오니 그것이 영원한 보상입니다.

 

 

로마8:1-11

1.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사는 사람들은 결코 단죄받는 일이 없습니다.

2.그것은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나를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시켜 주었기 때문입니다.

3.인간의 본성이 약하기 때문에 율법이 이룩할 없었던 것을 하느님께서 이룩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아들을 많은 인간의 모습으로 보내어 육체를 죽이심으로써 세상의 죄를 없이 하셨습니다.

4.이렇게 해서 육체를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 속에서 율법의 요구가 모두 이루어졌습니다.

5.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고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들은 영적인 것에 마음을 씁니다.

6.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죽음이 오고 영적인 것에 마음을 쓰면 생명과 평화가 옵니다.

7.육체적인 것에 마음을 쓰는 사람은 하느님의 율법에 복종하지도 않고 복종할 수도 없기 때문에 하느님의 원수가 되고 맙니다.

8.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들은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릴 수가 없습니다.

9.사실 하느님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다면 여러분은 육체를 따라 사는 사람이 아니라 성령을 따라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성령을 모시지 못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10.비록 여러분의 몸은 때문에 죽었을지라도 그리스도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여러분은 이미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에 있기 때문에 여러분의 영은 살아 있습니다.

11.그리고 예수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의 성령께서 여러분 안에 계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살아 계신 당신의 성령을 시켜 여러분의 죽을 몸까지도 살려주실 것입니다.

 

 

 

마태13:1-9,18-23

1. 예수께서 집에서 나와 호숫가에 앉으셨더니

2.사람들이 많이 모여들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앉으시고 군중은 그대로 모두 호숫가에 있었다.

3.예수께서 그들에게 여러 가지를 비유로 말씀해 주셨다. "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4.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었다.

5.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싹은 나왔지만 흙이 깊지 않아서

6.해가 뜨자 타버려 뿌리도 붙이지 못한 말랐다.

7.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혔다.

8.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맺은 열매가 배가 것도 있고 육십 배가 것도 있고 삼십 배가 것도 있었다.

9.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18."이제 너희는 뿌리는 사람의 비유가 내포한 뜻을 들어보아라.

19.누구든지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듣고도 깨닫지 못할 때에는 악한 자가 와서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간다.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바로 이런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21.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그런 사람은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가 닥쳐오면 넘어지고 만다.

22. 가시덤불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기는 하였지만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이 말씀을 억눌러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23.그러나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을 두고 하는 말이다. 사람은 혹은 육십 혹은 삼십 배의 열매를 맺는다."